오리무중에 이르다
정영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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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리무중에 이르다>를 읽기 시작하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긴 문장들에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어디에도 없는 곳에 가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 정도는 될 수도 있겠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 어디에도 없는 곳을 갈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향해 어딘가를 가다보면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거나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고는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느라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 정도는 될 수도 있겠지, 하는 어지러운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머리가 무척 어지러운 덕분인 것 같았다. (299, 300)

위의 인용문은 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문장들 중에서는 상당히 짧은 편에 속한다. 어떤 문장은 두 페이지에 걸쳐 마침표 없이 쉼표만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읽는 게 난해해서 소설 내용을 쫓아가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특유의 읽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 

화자의 의식의 흐름이 도대체 어디로 이어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그야말로 오리무중인 느낌을 들게 만든다. 소설이 그리고 있는 종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이러한 문장이 적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음 인용문을 보면 특유의 문장 스타일을 통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은,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그 필연성이 없는 세계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일어나도 그만,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 뭔가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도 그만, 다른 식으로 일어나도 그만인, 아무런 원리가 없는 세계였다. 이 세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78)

궁극적으로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세계의 문제를 이 소설은 다루고 있다. 제목에 나타난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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