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2%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지만 <21세기 자본>이 던지는 불평등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화두가 아닐 수 없다. 800페이지나 되는 <21세기 자본>을 읽기 위해서는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할 지 10권을 선정해 보았다.

 

1,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장경덕)

 

경제학 전공자라면 그렇다쳐도 일반 독자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다른 개설서를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800페이지나 되는 책을 완독하면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2. <만화로 읽는 21세기 자본> 코야마 카리코(오상현)

 

사실 800페이지나 되는 <21세기 자본>은 일반 독자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차라리 책 내용을 만화로 요약한 이 책을 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21세기 자본> 일본어판 번역자가 감수를 한 만큼 내용 면에 있어서도 신뢰가 간다.

 

3. <피케티 패닉> 김동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고 그에 대한 학계의 반향과 비판, 재비판을 담은 책이다. <21세기 자본>의 흥행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해설하고 있어 유익하다.

 

4.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 안재욱, 현진권

  

한국에서는 <21세기 자본> 한국어판보다 비판서인 <21세기 자본 바로읽기>가 먼저 출판되었다. 자유경제원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학자들이 자유방임경제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21세기 자본>을 비판하고 있는데, 겹치는 내용이 많아서 구성이 아쉽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비판을 알고자 한다면 읽을 필요가 있겠다.

 

5. <애프터 피케티> 토마 피케티 외

<21세기 자본> 출간 이후 3년간 있었던 전세계 학자들의 논쟁적인 글들을 모은 책이다. <21세기 자본> 못지 않게 두껍지만(웃음), <21세기 자본>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을 보충하고 있어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6. <피케티의 신자본론> 토마 피케티(박상은, 노민수)

 

<21세기 자본>이 이론편이라면,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리베라시옹>에 실렸던 칼럼들을 묶은 이 책은 실전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그때 프랑스, 유럽에서 시사 문제로 떠올랐던 사안들에 대해 피케티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7. <위대한 탈출> 앵거스 디턴(최윤희, 이현정)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화제가 되자 그 대항마로 <위대한 탈출>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출판사가 의도를 가지고 저자의 책 내용을 왜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21세기 자본>과 함께 세트로 읽혀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8.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이순희)

 

<21세기 자본>은 현대에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루었을 분, 불평등이 늘어나는 게 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불평등의 대가>는 불평등의 증가가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 <21세기 자본>의 내용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 있다.

 

9. <불평등과의 싸움> 이나바 신이치로(김영주)

 

루소에서 피케티까지라는 부제가 나타내듯이 18세기 이후 경제학계에서 불평등의 문제가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다른 경제학적 사조들의 맥락에서 피케티와 불평등의 문제를 재조명해 볼 수 있다. 

 

10. <오늘 자본을 읽다> 강신준

<21세기 자본>은 맑스의 <자본>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21세기 자본>을 읽고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자본>에 대해 관심이 간다면 <오늘 자본을 읽다>를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때마침 올해는 맑스 탄생 200주년에 해당하는 해이니만큼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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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세계화 - 왜 전 세계적으로 엘리트에 대한 공격이 확산되고 있는가
존 B. 주디스 지음, 오공훈 옮김, 서병훈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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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들어서 세계 정치에 있어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결선투표 진출과 유럽 극우정당들의 약진 등등 미국과 유럽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이것뿐이라면 우경화, 내지는 극우화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겠지만, 저자는 미국 대선에서의 버니 샌더스 열풍, 그리스의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 같은 좌파 정당의 집권까지 더해 "포퓰리즘의 세계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좌파, 우파, 중도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러한 포퓰리즘을 하나로 관통하는 논리는 기득권 엘리트에 대한 반감과 증오다. 포퓰리즘 세력은 정부, 제도권 정당, 대기업, 지식인 등의 엘리트들을 적으로 묘사하며 기득권들로부터 권력을 국민들이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얼핏 보기에 극과 극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는 샌더스와 트럼프가 기득권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라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샌더스와 트럼프는 각각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티파티의 적자(嫡子)라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가지고 있는 반감을 기존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적절하게 흡수하는 데 실패한 데서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퓰리즘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로 회귀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포퓰리즘 정당이나 정치인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굳이 찾아보려고 노력한다면 조원진이나 이재명, 새정치민주연합 합당 이전의 안철수 정도가 포퓰리스트로 분류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포퓰리즘이 바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 같지는 않다.

포퓰리즘의 역설은 성공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실패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집권 가능성이 없는 야당일 때에 기존 정치권에 대해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며 실현가능성이 낮은 대안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실제로 집권하게 되면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게 되고 자신들이 비판했던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을 지지했던 지지기반을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을 때는 지지율이 높았지만 민주당이라는 현실 정치세력과 결합하면서 인기가 폭락한 안철수가 좋은 예다. 유럽연합이나 국제기구들의 긴축 압박을 단호하게 거부하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역시 집권 후에는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지지층의 실망을 야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지, 혹은 4년 임기라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흥미롭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 사람들은 많았지만 집권 2년차에 들어선 트럼프는 한미FTA 개정, 철강 수입 제한, 북미정상회담 등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집권한 이후에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부분은 많지만, 현실과 장밋빛 공약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며 성공한 포퓰리스트로 기록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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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한 NL 운동가의 회고와 성찰
이명준 지음 / 바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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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내의 종북 논란과,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논란, 내란음모사건과 정당 해산까지 한때 진보정당으로서 큰 기대를 모았던 민노당-통진당이 추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에는 '종북' 세력이라 불리는 NL, 그 중에서도 주사파가 있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폭압적인 북한 체제와 김씨 왕조를 옹호, 찬양하는 주사파의 존재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은 90년대 중반 서울 소재 대학에서 NL 운동권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쓴 논픽션이다. 평이한 문장으로 알기 쉽게 쓰여 있어 이해 불가능한 괴물로 그려지던 NL 주사파의 실체를 이해하는 좋은 교재다.


저자가 대학을 다닌 90년대는 민주화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생운동이 점차 쇠퇴해 가는 기미를 보였지만, 한총련을 중심으로 하여 학생운동의 조직과 운영 등이 체계화되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NL이 학생운동의 다수파가 되고 한총련을 비롯한 학생운동 조직들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 좌파는 민족해방을 중심에 둔 NL과 민중민주를 중심에 둔 PD로 양분되는데,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NL이 다수파였다고 한다. 민족해방을 중심에 둔 NL은 반미와 통일을 운동의 핵심적인 테제로 내세운다. NL 중에서도 주사파와 비주사파가 있지만, NL의 상층부로 갈 수록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주사파 NL 역시 알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NL 주사파와 비주사파를 구분하는 의미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입생은 본인의 정치의식에 따라 NL과 PD 중 정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와의 관계에 따라 정해진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있는데 본인의 주체적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따라 주사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NL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입생 역시 자연스럽게 NL에 감화되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학생운동 전체를 NL 세력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직의 문화에서 두 정파는 차이가 나는데 NL이 집단주의적이고 행동을 강조하는 반면, PD는 개인주의적이고 현학적이라고 한다. NL은 특히 품성, 예의, 의리 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일반적으로 유포되는 NL, PD에 대한 인상과도 일치한다. 그렇지만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개개인에 초점을 두고 대학생활과 운동의 양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점은 이 책만의 장점이다. 

저자는 학생운동 경험을 통해 NL에 대한 몇 가지 비판과 반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북한에 대한 다분히 비현실적인 인식이고, 또 하나는 조직 내의 비판이나 자성 자체를 금지하는 독선이다. 주체사상이나 조직 상부의 규칙을 절대시하며 그에 대한 다른 의견을 억압하는 모습은 NL이 내세우는 민주나 자주와 같은 가치와 정면에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PD나 다른 정파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정파 갈등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학생운동의 다양성을 없애고 쇠퇴로 이어진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 또한 저자가 비판하는 대목이다.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고 수긍이 가는 고찰이다. 좋든 싫든 한때 운동권의 주축을 담당했던 NL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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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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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프랑스 경제학자의 <21세기 자본>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자본>은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다. 수식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일반교양서보다는 전문적이고, 무엇보다 분량의 압박이 심상치 않다. 본문만 700페이지에 주석이 100페이지, 도합 800페이지의 압박이 어마어마하다. 편한 기분으로 며칠만에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나온 뉴스에 따르면 이 책을 구매한 독자 중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한 사람은 2.4%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독자는 머리말을 겨우 읽었을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든다.


1. 이 책이 이렇게 두꺼워야 할 이유가 있는가?
2. 이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책 내용을 요약해 보도록 하자. 이 책의 저자는 18세기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의 불평등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극심한 수준이었던 불평등은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후의 경제 성장을 통해 축소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다시 극대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역사적으로 자본수익률이 항상 경제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상속 등을 통해 자본이 자본을 낳는 이상, 이러한 불평등은 20세기 초 수준까지 확대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진적 소득세, 글로벌 자산세, 조세회피처 단속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강 요약하자면 위와 같은 내용이지만, 300여년 간의 각국 통계자료 등을 인용하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두께는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저자가 쓸데없는 내용을 넣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두꺼운 책이어야 할 이유는 있는가라는 의문은 책을 완독한 다음에도 남는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중요한 부분이었겠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산만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800페이지를 그대로 실은 풀버전과 별개로 요약본을 따로 출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책의 만화로 해설한 책도 팔리고 있는데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만화를 읽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판매에는 두께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 역시 책의 분량에서 찾을 수 있을지 않을까? 만약 이 책이 2,300페이지 분량이었다 하더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그저 그런 경제학 서적 중 하나로 취급받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책의 어마어마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두께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맑스의 <자본>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함께 800페이지라는 두께가 독자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21세기 자본>이 번역되기도 전에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라는 비판서적이 먼저 출판되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책이 번역되기 전부터 책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배경에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있음이 분명하다.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리기 때문에 더더욱 많이 팔리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가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자본>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양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불평등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진단은 타당하다. 동시에 <21세기 자본>이라는 도발적 제목과 800페이지나 되는 두께가 텍스트 외적으로 언론 매체를 매개로 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완독한 사람이 2.4%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실 8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모두 다 읽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개 책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서론에 나오기 마련이므로 구매자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서론만 읽었다는 사실은 타당한 판단일 지도 모른다. 책의 여러 효용들 중 <21세기 자본>이 지적 허세를 충족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책을 산 이상은 완독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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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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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토리노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평범한 화학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을 지도 몰랐던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대적 비극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1930년대 이탈리아는 파시즘과 세계대전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인종법으로 인해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겪던 그는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있었다. 1943년 무솔리니 정권이 무너지자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게릴라에 참가한다. 그러나 이윽고 독일군이 이탈리아로 진주하고 레비는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0개월을 보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일을 기록한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작가가 된다.

<주기율표>는 프리모 레비가 어린 시절부터 전쟁이 끝난 후까지 자신의 반생을 회고한 자전적 소설이다. 책 제목이 <주기율표>인 이유는 아르곤, 수소, 탄소, 인, 우라늄, 티타늄, 금 등 원소의 이름이 챕터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화학책에나 나오는 원소들과 실제 삶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화학자 프리모 레비는 원소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아연을 사용한 실험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악에서 지켜주는 보호막 같은 순수함에 대한 찬미와, 변화를 일으켜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불순함에 대한 찬미가 그 둘이다. 나는 메스꺼울 정도로 도덕주의적인 첫째 것을 버리고, 내 마음에 드는 둘째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었다.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중략)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중략)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51)

아연 실험에서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대목이 비약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원소들은 삶의 은유로서 기능한다. 당연하지만 세계는 순수한 원소로 이뤄져 있지 않다. 비활성기체, 금속, 비금속, 준금속, 할로젠 등 다양한 성질을 가진 120여개의 원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조화롭게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이 화학자 프리모 레비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물질을 정복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물질을 이해하는 것은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요 몇 주 동안 힘들게 풀이법을 배워온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한 편의 시이며,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소화해온 그 어떤 시보다도 고귀하고 경건하다. (64)

화학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지구는 주기율표에 나오는 120여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삶 또한 주기율표의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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