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온우주 단편선 1
곽재식 지음 / 온우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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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의 <최후의 결말의 마지막 끝>이라는 단편집을 읽고 푹 빠졌던 적이 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역시 곽재식 작가의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인데, 그래서인지 훈훈한 사랑 이야기들을 농축해 담았던 <최후의 결말의 마지막 끝>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소설 중 <다슬기와 달팽이>를 제외하면 남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연애소설이다. 1인칭 화자가 되는 주인공은 그야말로 평범한 남자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력적인 여자의 마음을 얻어 연애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어떤 위기가 닥쳐오고 남자 주인공이 그 위기를 극복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 단편집에 나오는 공통적인 패턴이다. <달과 육백만 달러>에서 주인공은 종적을 감춰버린 옛 연인을 찾아나서고, <왕>에서는 옛 애인과 재회하기로 약속했던 장소인 남산 자물쇠 탑이 벨기에 왕의 방문으로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벨기에 왕을 찾아 탄원을 하기 위해 나선다. <최악의 레이싱>은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을 숨기고 썸녀와 자전거 데이트를 하자는 약속을 해 버린 주인공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서 주인공은 백두산 화산 분화로 인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이 없어진 와중에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 터키, 몽골, 북한을 거쳐 지구 일주를 하게 된다. 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1인칭 서술에 적합한 유머 능력을 구사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별 볼 일 없는 남성들이지만 순애보만으로 자신의 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훈훈하게 다가오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어째서인지 막연히 저자를 SF 소설 작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른바 SF로 분류될 만한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 주인공들이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단편집을 통틀어 우주로 날아가는 등장인물이 한 명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내용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땅 위에서 평범한 문제들을 고민하며 바득바득 기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SF가 아니라 일반적인 연애소설로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적 요소를 찾자면 남자 주인공들이 평범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계기 없이 매력적인 여성들과 연애에 성공한다는 점이 아닐런지...

저자 특유의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빛나는 작품들이지만, 국제결혼이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왕>에서 주인공은 인도 여성과 결혼하고,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서 주인공은 방글라데시 여성과 결혼한다.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연애소설이 아닌 <다슬기와 달팽이>는 국제결혼의 주제가 전면에 드러난 소설이다. 여기서는 다슬기와 달팽이가 등장하는 베트남 설화와 다문화 가정의 1인칭 주인공의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드러난다. 1인칭 주인공은 선생님의 편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지만, 설화 속의 다슬기와 달팽이가 그러했듯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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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 -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이원석 지음 / 필로소픽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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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는 일세를 풍미한 자기계발서 14권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기계발서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익숙한 것과의 결별>,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아침형 인간>,<보보스>, <시크릿>, <인생 수업>, <긍정의 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리딩으로 리드하라>,<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미움받을 용기>다. 누구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베스트셀러다. 이 목록을 보며 자기계발서는 뭇 지식인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출판업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이러한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한국, 미국, 일본에 특징적인 현상이며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에서도 자기계발서가 유행한 것은 90년대 IMF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고 경쟁에 내몰리면서부터다. 책에도 나오는 농담이지만, 부자되는 법을 읽고 부자가 되는 사람은 책 저자 밖에 없다고 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 책들을 읽고 부자가 되었다는, 혹은 성공했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내용은 과학적으로, 통계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저자의 개인적 주장이 많다. <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사실은 책을 쓰기 전에 사업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거나 <아침형 인간>의 독자가 회사원이 아니라 경영자나 학부모였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자기계발서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나 열정의 문제로 환원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고 있다. 현실과는 다른 허황된 내용으로 때로는 독자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고, 때로는 독자들을 질타하는 자기계발서는 작지 않은 부작용과 해악을 낳고 있는 것이다. 꾸준히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기계발서는 개신교, 뉴에이지, 인문학, 심리학, 힐링 산업 등과 결합하면서 그 형태를 바꿔가며 살아남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스트셀러는 시대상과 사회상의 반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계발서의 문제는 그 책을 쓰고, 팔고, 읽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책이 읽힐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양극화로 인해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불안을 파고 들어 책을 파는 얄팍한 상술이라는 비판은 쉽지만, 그러한 비판을 넘어서 더이상 자기계발서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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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 학기가 시작된다. 올해도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가 대학 신입생이 된 내게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한다면 어떨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10권 선정해 보았다.

 

1.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의 역사> 로저 오스본(최완규)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는 대선, 총선, 지선 등 각종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도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기초적 지식은 배우지만, 투표권을 가지고 민주주의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역사를 개괄하는 이 책을 읽어보면 민주주의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2. <포스트민주주의> 콜린 크라우치(이한)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책이라면, <포스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알기 위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적절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3.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로버트 하일브로너, 윌리엄 밀버그(홍기빈)

 

한국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면,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어뜬 식으로든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게 될 대학생이라면 경제학과 자본주의에 대해서 기본적인 수준의 이해는 할 필요가 있다. 하일브로너와 밀버그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서 기본적이면서도 상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일독의 가치가 있다.

 

4. <청년, 난민 되다> 미스핏츠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에게 <청년, 난민 되다>라는 암울한 제목의 책을 추천하기는 미안한 일이지만, 대학생들에게 절실하고 심각한 주거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홍콩, 타이완, 일본과 함께 한국 청년의 주거문제를 다루고 있어 흥미롭기도 하고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5.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김태환)

 

대학생에게 취업, 공부, 군대 등 여러 고민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애가 아닐까? 대학생도 됐으니 연애를 한 번 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이란 무엇이고 연애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긴 책을 한 권 추천한다면 <에로스의 종말>이다. 단, 이 책을 읽고 연인이 생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6. <빈 서판> 스티븐 핑커(김한영)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대의 고전이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 등을 이용하여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에 대해 탐구한 책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7.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리처드 뮬러(장종훈)

 

나는 문과라서 이른바 이과 학문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한편, 자연과학에 대한 일종의 동경이 있다. 한때 통섭이라는 키워드가 인구에 회자되었듯이 문과와 이과의 대화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원자력, 에너지, 온난화 등 정치 영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자연과학의 문제들을 물리학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현실 사회에서의 물리학을 다루고 있어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도 부담이 덜하다.

 

8. <현대미술 강의> 조주연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교양은 문과, 이과 등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예술에 대한 지식을 가지길 권하고 싶다. 학생 할인이 있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니 대학생 시절에 부지런히 미술관 전시회에 다니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전시라도 보는 안목과 최소한의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 달리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이라면 말이다. 인상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면 전시회에 갈 준비로는 충분할 것이다.

 

9.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임희근)

 

외국문학 중에서는 <고리오 영감>을 추천한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도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인용되는 것처럼 프랑스혁명 이후에 도래한 근대라는 시대와 오늘날을 연결하는 고전문학으로서 최적의 책이다.

 

10. <관촌수필> 이문구

한국문학 중에서는 한국 근현대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관촌수필>을 추천한다. 한국현대사를 살아간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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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원작 소설, 공식 출판작,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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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제시대 때는 경성역(현재의 서울역)에서 만주, 시베리아를 통해 유럽까지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러 번 갈아타야 했지만 철도로 조선에서 유럽을 잇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한국에서 기차로는 한반도 남쪽 밖에 여행할 수 없어졌다. 비행기가 일반화되고 기차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면서 침대차는 물론이고,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존재했던 '식당차' 역시 사어(死語)가 되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모를까, 몇날 며칠을 기차 안에서 보내는 여행의 낭만(romance)은 한국에서는 꿈꿀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나 중국, 인도, 유럽 등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기차 여행이 가능하다. 기차 객실에서 잠을 자고 식당차에서 식사를 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기차 여행 말이다. 객실의 등급이 높으면 그 외에도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크루즈 여객선이 그러하듯 기차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극단적으로 끌고 나간 작품이 기차를 세계의 메타포(metaphor)로 사용한 영화 <설국열차>다.

철도문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다. 이스탄불에서 칼레로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정지한 가운데, 승객 중 한 사람이 살해당하는 사건을 벨기에인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해결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소설이 출간된 것은 이른바 전간기(戰間期)로 불리는 1934년이다. 소설 내의 배경 역시 그 무렵이다. 러시아 공작 부인은 혁명으로 인해 유럽을 떠돌아다니고, 인도에서 복무하는 영국인 대령이 나오며, 미국의 금주법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시리아의 겨울 아침 5시였다. 알레포 역의 플랫폼을 따라 철도 안내판에 타우루스 특급이라고 표시된 열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13)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알레포라는 지명이 귀에 익다. 최근 몇 년간 시리아내전과 IS와 관련된 이슈로 뉴스와 신문에 등장했던 곳이다. 1930년대 당시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알레포는 이스탄불에서 기차를 갈아타면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도시였던 것이다. 아직 아시아,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독립하기 전이었던 당시 지구상에는 훨씬 적은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고, 오늘날 유럽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여행하는 것처럼 유럽과 오리엔트 식민지 사이를 기차여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의 지구촌보다 1930년대가 훨씬 국제적(international)이고 글로벌(global)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철로로 유럽으로 접속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일제라는 제국주의 열강에 지배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수많은 국경들이 지도상에 새로 생겼고, 냉전으로 인해 그러한 국경들은 훨씬 오고 가기 어렵게 변했다. 한반도 남쪽에서 대륙으로 가는 철로가 끊기고 남한이 일종의 섬으로 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혹은 유럽으로 가는 기차의 출발역이었던 알레포가 내전으로 인해 폐허가 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오리엔트 특급 살인으로 돌아가자면 살인사건이 일어날 당시 기차에 타고 있던 용의자는 모두 13명이다. 프랑스인 차장 미쉘, 이탈리아계 미국인 포스카렐리, 피살자의 미국인 비서 매퀸과 영국인 하인 매스터맨, 러시아의 드래고미로프 공작 부인과 그녀의 독일인 하녀 슈미트, 스웨덴인 간호사 그레타 올슨, 영국인 가정교사 메리 더밴햄, 헝가리의 안드레니 백작 부부, 영국인 군인 아버스넛 대령, 미국인 탐정 하드맨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고립되고 폐쇄된 기찻칸의 승객들이 모두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적, 나이, 성별, 신분 등이 모두 각각 다른 사람들이다. 마치 기찻칸 하나가 하나의 세계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저자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하나의 소우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부분적으로는 <설국열차>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정체하고 쇠퇴해가는 유럽과 성장해 가는 미국의 대비가 소설 속에서 주된 소재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1930년대의 세계는 지금보다 오밀조밀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또 하나의 무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결코 갈 수 없는 곳, 미국이다. 미국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유괴 사건이 오리엔트 특급 안에서의 살인 사건을 유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탐정 푸아로의 말을 통해 그 점을 알 수 있다.

제일 먼저 관심을 끈 점은 이스탄불을 떠난 다음 날 부크 씨가 식당차에서 제게 한 말이었습니다. 모든 계급과 모든 국적을 대변할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기차 안에 모여 있어서 흥미롭다는 말이었지요. 전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도대체 어떤 곳에 이렇게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았습니다. 답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이라면 한 집안에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습니다.(323, 324)

하나의 세계에 대한 은유였던 오리엔트 특급 열차는 다시 한 번 미국이라는 나라로 환유된다. 다양한 국적과 민족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용광로(melting pot)로서 말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유학하고 평생 전세계를 떠돌아다녔던 진정한 세계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이 다양한 국적과 계급이 망라된 작품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오리엔트 특급이라는 하나의 기차 안에 하나의 세계를 욱여넣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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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좋든 싫든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사드 보복이라는 형태로 중국의 위험성을 엿보았던 것처럼 중국, 미국, 북한, 일본 등의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잘 다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과연 현재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사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중국에 관한 책이 워낙 많은 탓에 열 권으로는 택도 없겠지만, 오늘날의 중국을 읽을 수 있는 책 열 권을 골라 보았다.

 

1. <중국어의 비밀> 박종한, 김석영, 양세욱

 

중국의 성장과 함께 요즘은 영어 못지 않게 중국어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네 개의 성조와 간체자, 한국어와는 다른 문법체계가 있는 중국어는 한국인으로서 습득하기 쉬운 언어는 아니다. 중국어란 무엇인가, 그 역사와 체계를 재미있으면서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2. <예정된 전쟁> 그레이엄 엘리슨(정혜윤)

투키디데스의 <펠로포네소스 전쟁사>는 패권국 아테네가 성장하는 신흥 도전국 스파르타를 견제하려고 하다가 펠로포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이는 제1,2차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독일과의 관계에도 투영되고는 한다. 그렇다면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의 전쟁 역시 불가피한 것일까? 국제정치의 대가인 저자가 미중간의 전쟁을 피할 길을 밝히고 있다.

 

3. <차이나 모델> 다니얼 벨(김기협)

 

높은 경제 발전 속도와 공산당 독재라는 정치와 경제의 이질적인 면모는 한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중국이 특수하게 보인다. 중국의 공산당 체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의심케 하는 논조 또한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품성과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중국 공산당의 현능주의가 대의민주주의보다 나을 수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전개한다. 중국 공산당 정치체제의 특수한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권이다.

 

4. <여덟 번의 위기> 원톄쥔(김진공)

 

공상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가 개혁개방 이후 세계제2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성공신화는 실로 눈부시다. 하지만 중국의 버블이 빠지고 세계경제에 타격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예언 또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중국 성립 이후의 여덟 번의 위기들을 통해 경제사를 다룬 이 책은 중국 경제의 허와 실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5. <백 사람의 십 년> 펑지차이(박현숙)

 

마오쩌둥 시기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 참상에 관해서 한국에서는 영화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는데, <백 사람의 십 년>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기억하는 평범한 중국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은 책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문화대혁명을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6. <고별혁명> 리쩌허우, 류짜이푸(김태성)

 

중국현대사는 쑨원과 신해혁명에서부터 마오쩌둥의 중국혁명,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혁명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혁명이 결과적으로 폭력과 독재를 낳았다는 사실은 중국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별혁명>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두 사람이 혁명의 사상을 비판하고 개량의 사상을 주장한 책이다.

 

7.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조경란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교해서 중국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다. 그래서 현재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고, 그에 대한 지식인들의 입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는 중국 현대사와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수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중국의 지식인들에 대해 개괄적이면서도 본격적으로 다룬 중요한 책이다.

 

8. <중국은 어떻게 서양을 읽어왔는가> 왕치엔(홍성화)

 

개혁개방 이후로 중국에 베버부터 푸코, 데리다, 레비스트로스, 하버마스, 하이에크,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가들이 소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두 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서양사상이 불과 30년 사이에 압축되어 수용되는 상황 자체가 중국의 특수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학자의 책을 한국어로 읽는다는 경험 역시 독특하다.

 

9.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 쉬즈위안(김태성)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가 낯설게 여겨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일 지도 모르지만, 급변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중국인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문학자 쉬즈위안이 중국의 남과 북, 타이완 등을 여행하며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10. <13.67> 찬호께이(강초아)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에야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그 역사적 변천 때문에 중국에서도 가장 독특한 지역이다. 홍콩에 갔을 때는 좁은 땅덩어리의 도시에 즐비하게 늘어선 수많은 고층빌딩들이 인상적이다. <13.67>은 1967년부터 2013년까지 홍콩에서 있었던 6건의 살인사건들을 다룬 소설인데, 홍콩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절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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