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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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토리노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평범한 화학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을 지도 몰랐던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대적 비극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1930년대 이탈리아는 파시즘과 세계대전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인종법으로 인해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겪던 그는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있었다. 1943년 무솔리니 정권이 무너지자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게릴라에 참가한다. 그러나 이윽고 독일군이 이탈리아로 진주하고 레비는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0개월을 보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일을 기록한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작가가 된다.

<주기율표>는 프리모 레비가 어린 시절부터 전쟁이 끝난 후까지 자신의 반생을 회고한 자전적 소설이다. 책 제목이 <주기율표>인 이유는 아르곤, 수소, 탄소, 인, 우라늄, 티타늄, 금 등 원소의 이름이 챕터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화학책에나 나오는 원소들과 실제 삶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화학자 프리모 레비는 원소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아연을 사용한 실험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악에서 지켜주는 보호막 같은 순수함에 대한 찬미와, 변화를 일으켜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불순함에 대한 찬미가 그 둘이다. 나는 메스꺼울 정도로 도덕주의적인 첫째 것을 버리고, 내 마음에 드는 둘째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었다.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중략)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중략)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51)

아연 실험에서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대목이 비약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원소들은 삶의 은유로서 기능한다. 당연하지만 세계는 순수한 원소로 이뤄져 있지 않다. 비활성기체, 금속, 비금속, 준금속, 할로젠 등 다양한 성질을 가진 120여개의 원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조화롭게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이 화학자 프리모 레비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물질을 정복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물질을 이해하는 것은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요 몇 주 동안 힘들게 풀이법을 배워온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한 편의 시이며,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소화해온 그 어떤 시보다도 고귀하고 경건하다. (64)

화학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지구는 주기율표에 나오는 120여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삶 또한 주기율표의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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