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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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프랑스 경제학자의 <21세기 자본>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자본>은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다. 수식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일반교양서보다는 전문적이고, 무엇보다 분량의 압박이 심상치 않다. 본문만 700페이지에 주석이 100페이지, 도합 800페이지의 압박이 어마어마하다. 편한 기분으로 며칠만에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나온 뉴스에 따르면 이 책을 구매한 독자 중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한 사람은 2.4%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독자는 머리말을 겨우 읽었을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든다.


1. 이 책이 이렇게 두꺼워야 할 이유가 있는가?
2. 이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책 내용을 요약해 보도록 하자. 이 책의 저자는 18세기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의 불평등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극심한 수준이었던 불평등은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후의 경제 성장을 통해 축소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다시 극대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역사적으로 자본수익률이 항상 경제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상속 등을 통해 자본이 자본을 낳는 이상, 이러한 불평등은 20세기 초 수준까지 확대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진적 소득세, 글로벌 자산세, 조세회피처 단속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강 요약하자면 위와 같은 내용이지만, 300여년 간의 각국 통계자료 등을 인용하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두께는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저자가 쓸데없는 내용을 넣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두꺼운 책이어야 할 이유는 있는가라는 의문은 책을 완독한 다음에도 남는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중요한 부분이었겠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산만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800페이지를 그대로 실은 풀버전과 별개로 요약본을 따로 출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책의 만화로 해설한 책도 팔리고 있는데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만화를 읽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판매에는 두께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 역시 책의 분량에서 찾을 수 있을지 않을까? 만약 이 책이 2,300페이지 분량이었다 하더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그저 그런 경제학 서적 중 하나로 취급받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책의 어마어마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두께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맑스의 <자본>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함께 800페이지라는 두께가 독자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21세기 자본>이 번역되기도 전에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라는 비판서적이 먼저 출판되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책이 번역되기 전부터 책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배경에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있음이 분명하다.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리기 때문에 더더욱 많이 팔리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가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자본>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양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불평등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진단은 타당하다. 동시에 <21세기 자본>이라는 도발적 제목과 800페이지나 되는 두께가 텍스트 외적으로 언론 매체를 매개로 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완독한 사람이 2.4%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실 8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모두 다 읽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개 책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서론에 나오기 마련이므로 구매자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서론만 읽었다는 사실은 타당한 판단일 지도 모른다. 책의 여러 효용들 중 <21세기 자본>이 지적 허세를 충족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책을 산 이상은 완독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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