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세계화 - 왜 전 세계적으로 엘리트에 대한 공격이 확산되고 있는가
존 B. 주디스 지음, 오공훈 옮김, 서병훈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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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들어서 세계 정치에 있어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결선투표 진출과 유럽 극우정당들의 약진 등등 미국과 유럽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이것뿐이라면 우경화, 내지는 극우화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겠지만, 저자는 미국 대선에서의 버니 샌더스 열풍, 그리스의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 같은 좌파 정당의 집권까지 더해 "포퓰리즘의 세계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좌파, 우파, 중도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러한 포퓰리즘을 하나로 관통하는 논리는 기득권 엘리트에 대한 반감과 증오다. 포퓰리즘 세력은 정부, 제도권 정당, 대기업, 지식인 등의 엘리트들을 적으로 묘사하며 기득권들로부터 권력을 국민들이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얼핏 보기에 극과 극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는 샌더스와 트럼프가 기득권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라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샌더스와 트럼프는 각각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티파티의 적자(嫡子)라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가지고 있는 반감을 기존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적절하게 흡수하는 데 실패한 데서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퓰리즘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로 회귀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포퓰리즘 정당이나 정치인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굳이 찾아보려고 노력한다면 조원진이나 이재명, 새정치민주연합 합당 이전의 안철수 정도가 포퓰리스트로 분류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포퓰리즘이 바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 같지는 않다.

포퓰리즘의 역설은 성공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실패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집권 가능성이 없는 야당일 때에 기존 정치권에 대해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며 실현가능성이 낮은 대안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실제로 집권하게 되면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게 되고 자신들이 비판했던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을 지지했던 지지기반을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을 때는 지지율이 높았지만 민주당이라는 현실 정치세력과 결합하면서 인기가 폭락한 안철수가 좋은 예다. 유럽연합이나 국제기구들의 긴축 압박을 단호하게 거부하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역시 집권 후에는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지지층의 실망을 야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지, 혹은 4년 임기라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흥미롭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 사람들은 많았지만 집권 2년차에 들어선 트럼프는 한미FTA 개정, 철강 수입 제한, 북미정상회담 등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집권한 이후에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부분은 많지만, 현실과 장밋빛 공약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며 성공한 포퓰리스트로 기록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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