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양양 고사성어 어휘력 일취월장 - 어휘력을 키워주는 알짜배기 고사성어 30 일취월장 국어실력 1
세사람 지음, 백명식 그림 / 다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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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어든 외국어든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어휘력은 의사 소통을 위한 기초 공사에 해당할 만큼 매우 중요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예나 지금이나 영어 실력의 밑바탕을 다지기 위한 노력으로 학생들이 영어 단어 외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듯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준비 운동이자 심화 기술이기도 한 어휘력은 긴 시간에 걸쳐 쌓아가는 비장의 무기이자 언어 활용 능력을 위한 최고의 자산이다.

 

 

자문화권에 속한 탓에 어려서부터 수 많은 한자 어휘를 듣고 자란 우리에게 한자성어는 매우 가깝고도 친숙한 어휘인 동시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그저 어렵고 까다롭게만 느껴지는 부담스런 대상이기도 하다. 상황이나 문맥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기에 적절하면서도 언어의 깊이가 있는 장점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표의문자 특유의 어려운 접근성 탓에 많은 사람들이 배우기를 꺼려하고 활용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래선지 간단한 생활 어휘 몇 가지만 가지고도 충분히 의사 소통이 가능한데 굳이 배우기 어려운 한자성어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익혀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한다. 강의 현장(국어강사)에서 만난 학생들 대부분의 반응은 이 부분에 대해 꽤나 회의적, 부정적이다. 영어 단어 외울 시간도 부족한데 국어 시간에 한자성어까지 테스트 한다는 게 심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무엇보다 필요성 여부에 대한 공감이나 확신이 부족한 면도 큰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몇몇 학생들은 국어 시간에 왜 한자(한문)를 배우느냐는 비약된 질문을 던질 정도로 한자성어를 관용어나 동음이의어, 다의어, 속담, 명언처럼 생각과 정서를 보다 풍부하게 뒷받침해주는 어휘의 범주 중 하나가 아닌, 한문이라는 교과목의 범주로 오해하는 양상이 크다. 때로 백 마디 말보다 고사성어 한 단어가 모든 상황을 압축적이면서도 인상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음을 몇 가지 예로 들어가며 나는 아직까지도 매 수업시간마다 한자성어를 5개씩 테스트하고 있다. 어휘력은 결코 하루 아침에 책 한권으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과 더불어 깊이 있게 음미해보며 상황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느긋한 표현으로 한자성어 활용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번에 다봄출판사에서 나온 동화작가, 소설가, 편집자로 구성된 '세 사람(저자 공동명)'이 엮은 『의기양양 고사성어 어휘력 일취월장』은 어려서부터 쉽고 재미있게 고사성어(한자성어 중 고사의 유래가 있는 것)를 익힐 수 있는 또 하나의 반가운 책이다. '세 사람이 가면 그중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공동 저자명을 따온 글쓴이들의 재치있는 이름 풀이가 책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다.

책의 구성은 '노력, 공경, 존중, 마무리, 성장, 순리, 위기, 준비성, 배신, 이중성, 경박, 상식, 정직, 욕심, 의리, 공감, 겸손, 재능, 결단, 집중' 등등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상황과 감정이 5장의 큰 주제 아래 묶여져 있다. 개인적으로 고사성어마다 활용되는 각각의 상황을 핵심 주제어로 간략하게 짚어준 점은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인 초등학생을 크게 배려한 저자의 멋진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기껏 고사성어를 공부하고 암기했어도 정작 어떤 상황에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를 모른다면 헛고생한 것밖에 되지 않겠는가? 기능에 충실하도록 활용 유형과 방법을 키워드로 간략하게 제시해준 것은 습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활용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안내자 하나를 덧붙여둔 것과 같다.

각 장마다 소개하고 있는 각각의 고사성어는 고사성어에 얽힌 유래를 친근한 이야기체로 풀어가고 있으며, 고사성어가 지닌 상황적 의미와 고사 성어를 이루는 낱낱의 한자, 짧은 문장 속 고사성어 활용, 신문 기사 속 고사성어 활용, 비슷한 말/반대말/따로 쓰는 말 등 실생활 속에서의 활용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그림은 초등학생들이 동화책 읽듯 자연스럽게 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되고 있으며, 책 뒷부분에 편집해놓은 '알짜배기 고사성어 30'도 책에 수록되지 않은 다양한 고사성어들을 추가로 찾아볼 수 있도록 보충해놓은 곳이다.

 

 

가지 아쉬운 점은 책에 수록된 고사성어가 30 개로 이루어진 점인데, 어휘력 향상을 위한 고사성어 본연의 기능 면에서 좀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든다. 후에 시리즈로 다음 편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권당 4~50 개 정도는 소개돼야 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을 익히는데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양적 소개 면에서 아쉬운 것은 가격대비 가치를 염두해두는 소비자의 일반적인 심리가 아닐까?

 

 

래도 흥미로운 접근과 교육적인 내용이 다양한 시도 속에서 시대에 맞게 출간되고 있음은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온갖 애매한 신조어와 자모음을 줄여쓰는 통신어의 범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일취월장하는 고사성어 실력으로 의기양양해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며 이번 서평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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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의 크리스마스 미니 미니 4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크리스티아네 뇌스틀링거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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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들녀석이 초등학교1학년 때 내 생일 선물로 준비한 것은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커다란 시계 반지였다. 검지 손가락에 끼울 만큼 넉넉한 사이즈에 큐빅 대신 소형 시계가 달린 것으로 학교 문방구에서 파는 일종의 초등학교 여학생을 위한 소품이었던 것이다. 평소 시계 볼 일이 많아 시간 체크를 해야만 하는 내 일의 특성을 고려해 아들녀석이 고심 끝에 선택한 시계 반지였건만, 정작 그 반지를 끼고 외출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큼 몹시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런 조화로밖에 안 보였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해 문구점 안에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만져보며 어떤 것이 좋을지 고심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내 입에서는 과장적인 탄성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4년이 지난 지금도 그 특별한 선물은 여전히 내 보석함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미니 시리즈 4편 『 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제목 그대로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동안 발생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실용적이고 유용한 것을 선호하는 어른들의 기대 심리와 달리 아이들은 그 사람만의 독특한 이미지나 개성을 잡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듯 가끔씩 포장을 뜯어보면 예상치 못한 선물에 깜짝 놀랄 경우가 있다. 어려서는 엄마가 준비한 선물에 포장 글씨만 본인이 써서 전달식을 거쳤을 법한 선물의식이 점차 성장해가면서는 오로지 자신만의 이벤트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도 아이 키우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인공인 미니 또한 한때는 할머니의 경제적 지원과 참견으로 그저 할머니가 일러준 '실용적인' 물건 고르는 일에만 참여해 선물을 마련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을 좀 아는 친구로 미니가 신뢰하는 막시의 조언을 받아 진정한 선물은 자신의 용돈을 모아 각자의 취향과 개성에 맞춘 선물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아무 쓰잘 데 없는 것'을 사기 위해 즐거운 실행을 한다. 마치 수학여행에서 아이들이 사오는 '아무 쓰잘 데 없는 것(실용성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기준에서)'을 아이들은 흥미롭게 고르고 선택하는 것처럼 미니는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들만의 행동 특성과 취미, 습관 등을 고려해 따뜻한 속바지나 양말, 냄비 대신 재떨이(아빠), 머리핀(엄마), 말채찍(오빠)을 준비한다. 오랜 시간 동안 용돈을 모은다는 것은 어른으로서도 참 견녀내기 어려운 일인데 고작 일곱 살인 미니가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오로지 진정한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비밀스런 기쁨을 간직한 채 생활한다는 것은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숏커트로 머리스타일을 바꾼 엄마, 너무 크고 위험해 다시는 말을 타지 않겠다고 선언한 오빠,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아빠 등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 생겨 애써 준비한 선물이 무용지물이 돼버려 속상한 미니는 잠시 슬픔에 젖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씩씩하고 긍정정인 마인드 전환으로 변화된 상황에 맞춰 새로운 선물을 준비한다. 물론 절친한 친구 막시와 막강한 지원자인 막시의 언니 도를리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돈을 다 써 버려 새로운 물건을 살 수 없게 된 미니는 생활 속 재활용을 통해 아빠에게는 서류철을, 엄마에게는 스카프를, 오빠에게는 열쇠고리를 직접 만들어 준다.

 

치 오 헨리의 단편 소설 <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서로에게 더 이상 필요없게 된 물건도 정성스럽게 준비한 마음만큼은 영원히 가슴 속에 살아있듯 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 과정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 속에서 유쾌하게 그려나간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서서히 작은 실천으로 옮겨가는 미니의 성장과 좌충우돌 갈등을 풀어가는 모습, 미니의 마음을 헤아려 작은 선물도 큰 기쁨으로 선물을 나누는 가족 간 이해의 소통을 통해 한 아이의 성장기에서 누구나가 겪을 법한 일상의 잔잔함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잃어버린 쇼핑백을 대가없이 돌려준 한 남자의 방문은 미니로 하여금 더 이상 상상 속에 빨간 옷을 입고 찾아오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닌,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진정한 산타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색다른 경험까지 맛보게 하니 일곱 살 미니의 크리스마스는 진정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크리스마스로 기억될 듯 싶다.

이들의 일상 생활 속 사소한 장면까지도 예리하게 포착해 유쾌하게 표현해내는 저자의 재능은 인물의 특징을 복잡한 배경 없이 간결한 표정에 담아내 상황을 구체적으로 연상시키도록 도와주는 딸의 그림과 만나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낸다. 독일의 유명한 아동작가로 안데르센 상을 비롯해 수많은 아동문학상을 수상한 저자의 경력이 그저 부풀린 인지도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책을 읽다보면 곧 공감하게 될 것이다. 미니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본 독자라면 서점 어딘가에 꽂혀있을 성장한 미니의 모습을 만날 때마다 "안녕, 미니! 다시 만나 반가워~!" 가볍게 마음 속 인사를 나누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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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인 - 우울을 행복으로 반전시켜라
유한익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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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 세계 1위의 부끄러운 자화상, 벼랑 끝에 선 위기의 한국인

 

신과 의사 유한익이 쓴 『위기의 한국인』은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암 덩어리로 존재하는 우울증에 대해 다각도의 진단과 더불어 34가지의 심리치유 처방전을 일러주는 책이다.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개인심리상태를 넘어 사회병리적 현상을 가늠하게 할 정도로 널리 쓰이는 오늘날, 신문의 사회면을 우울하게 차지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자살'이다. 이 단어만큼 한 사회의 정신 건강 상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현재 우울하다.

2010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1년 동안 자살하는 사람은 10만 명 중 28.4명으로 OECD 가입 33개국 중 단연 1위라고 한다. 하루 평균 43명이 자살하는 셈으로, 특히 10~30대 사이의 자살은 교통사고와 암을 넘어설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 하니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신 건강 상태를 점검해봐야 할 위기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병적 현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대인의 우울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표정들,

그 속에 갇혀 경련으로 일그러져가고 있는 자살공화국의 타살적 흔적들.

 

자가 '지금, 여기, 우리의 표정을 돌아보라'며 지적했듯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 얼굴은 1등만 기억하는 '1등 지상주의'와 특별해야 행복하다는 '스페셜주의', 현대판 마녀 사냥처럼 질투에서 비롯된 '악성 댓글', 돈의 맛에 길들여져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물질 지상주의',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극단적 경쟁에서 비롯된 '루저 양산 사회', 무조건 앞서 나가야 내 아기가 성공한다는 '선행중독증', 짝퉁 자신감을 명품으로 포장하려는 '명품중독증',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치닫는 '성공 스토리의 허상'으로 일그러져 있다.

 

금 더 세밀한 표정 관찰을 위해 현미경으로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너무 참아 병이 돼버린 '화병'(화병이 한국 문화의 특수적 상황에서 비롯된 독특한 현상이라 문화-관련 증후군으로 분류됨은 뜻밖이다), 성인이 되도록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리불안', 남과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 장애인 '획일화 강박증', 남을 쫓느라 나를 잃게 만드는 '유행강박증',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의 경제적 책임에 짓눌려 아버지로서의 올가미에 묶인 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 딜레마' ,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분노조절 장애', 통제할 수 없는 억압된 충동에서 거짓된 공포를 조장해 발생한다는 '공황 장애' 등이 불안과 우울이 가득한 현대인의 표정이다.

 

결과 유명 연예인과 일류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과 생계비관형 집단 자살, 성적 비관이나 왕따 문제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의 외로운 자살, 현대 사회의 무서운 경쟁에서 밀려난 젊은이들의 자살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의 사회면을 우울하게 차지하고 있다. 급격한 경제 성장률 속에 가려진 급격한 정신 불균형이 절름발이 사회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우울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권하는 건강한 심리 되찾기 처방전

 - 대인관계 치료법 및 약물치료의 효과

 

찌기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한 바 있다. 절망은 일상을 우울한 기분에 젖게 만들고, 우울은 자아를 잊게 만들며, 결국 '자아'가 없는 자기 상실은 죽음을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는 쉬운 선택으로 부추겨 생을 놓아버리게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모든 우울의 밑바탕에는 공통적으로 '나'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없는 공허함은 우울의 가장 큰 원인(p.115)이라고 압축한 저자의 표현처럼 앞에서 진단한 우울의 은밀한 곳에는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아우라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과 사회의 영향력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환경에 처했다는 불안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며, 주류를 쫓아가지 못하는 비주류의 조바심은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듯한 자괴감에 빠지게 해 절망적으로 '나만 행복하지 못하다'라는 비약된 생각을 품게 만든다.

 

책은 우울한 사회의 원인 분석과 진단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건강한 심리 치료인 처방전 제시에 기획 의도를 두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우울증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해줄 수 있는 구체적 실천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고 있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나'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주변의 의식에 억눌려 '나'를 감추고 포장하고 비하해온 우울증 환자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과감히 실수하고 비난에는 말대꾸하며 당당히 거절하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벗어나 당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여라. 염려가 결정을 지배하지 않도록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라. 사랑을 구걸하기보다 당당히 홀로서기를 준비하라. 더불어 철저하게 혼자임도 즐겨라. 분노를 조절하고 화를 표현하는 부드러운 방법을 연구하라. 그리고 움직여라. 생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빛 가운데로 움직여 나오라. 빛이 곧 치유의 시작이다.

 

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우울증이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기인한 질병이 아니라 기분과 생각을 조절하고 의욕과 동기를 유지하는 뇌의 기능이 약화되는 데에서 비롯된 질환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심리치료 못지 않게 약물 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은 그간 약물치료에 대해 인위적 억제 작용일 뿐이라며 부정적이었던 내게 좀 충격적인 의식 깨기로 다가왔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볼 일이다.

 

 

우울한 상황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특수 개념이 아닌,

 '나에게도' 적용되는 일반 개념일 뿐!

방관하지 말고 지켜보기, 그리고 지켜주기가 절실히 필요한 위기의 시대

 

실 이 책을 읽던 중에 남동생의 절친한 친구의 아우가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2년 간을 계약직으로 열심히 꿈을 키우며 일해왔는데 결과는 희망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전세값 상승으로 살던 집에서 나와 월세로 거주지를 옮긴 후부터는 여자친구와도 다툼이 잦아졌었나 보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른 모양인데 먼길로 돌아가는 대리운전수와 시비가 붙은 후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는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모든 일이 안 풀리고 꼬여만 가는지, 왜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만큼 생활은 비례적으로 나아지지 않는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닥쳐오는지,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도'라는 보편적 적용보다 '나에게만'이라는 특수 적용이 절망적인 추락으로 끝없이 자신을 몰고 갔을 것이다. 가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친구의 아우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남동생에게도 충격적인 일인지라 더 이상 캐묻지도 못한 채 며칠 간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고 지냈다.

 

약 누군가가 미세한 낌새라도 눈치를 채고, 아니 그 마음의 우울한 한 조각이라도 이해하고 먼저 다가가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줬다면, 부질없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행여 그 친구가 극단적 행동 이전에 이 책을 만나게 됐더라면, 혹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타인도 그렇구나!' 공감에서 비롯된 새로운 위안과 힘을 얻지 않았을까? 저자가 내린 처방전 중 하나인 '방관하지 말고 지켜보기, 그리고 지켜주기'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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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스타가 되다 미니 미니 3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크리스티아네 뇌스틀링거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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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꿈의 획일화'라고 규정하기엔 억지스런 면도 있습니다만, 요즘의 십대 청소년들에게 '장래 희망 사항'으로 압도적인 지지와 동경을 받고 있는 대상은 단연 인기 많은 유명 연예인이 되는 길이라고 합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문화의 중심 기둥으로 아이돌 스타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만큼 십대들이 닮고 싶은, 하고 싶은, 되고 싶은 분야의 일인자는 여전히 그들에게 우상이 되고 있는 '스타'들이겠지요.

 

유명 연예인이 되어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예술적 끼를 발산하는 것이 무에 나쁘겠습니까마는, 염려되는 것은 자신만의 독창적이고도 개성적인 능력을 신중하게 탐색하는 기회도 없이 동경과 희망을 그대로 '꿈'으로 뭉쳐가는 획일적 모습 속에서 정작 '남의 꿈'이 '나의 꿈'으로 탈바꿈되어 버리는 점입니다. 과거 전통사회보다 사회 각계 각층의 모습이 다양화, 세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유독 장래희망만큼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기회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남과의 비교 속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덮고자 공동의 꿈에 자신을 맞춰가거나 화려한 표면만 보고 고달픈 이면은 보지 못하는 평면적 사고로 인해 막연히 스타를 꿈꾸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비교 속 '타인'의 재주가 아닌, 성찰을 통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남과 다른 나만의 특성과 재주는 무엇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남과의 비교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속에서 서서히 자신만의 꿈의 색채를 선명하게 색칠해 나가는 것이 다양한 구성원들이 다양한 일에 분포되어 다양한 모습을 연출해나가는 가운데 조화와 균형이라는 아름다운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겠지요.

 

2.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미니, 스타가 되다> 속 미니 역시 처음에는 남과의 비교 속에서 내세울 것 없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풀이 죽어 엉뚱한 방법으로 자신을 돋보이고자 노력합니다. 노래를 굉장히 잘 하는 막시, 그림을 엄청나게 잘 그리는 크산디, 근사하게 춤을 추는 가비, 수영에서 메달을 두 개씩이나 딴 미키와 베르티, 피아노를 무척이나 잘 치는 다니를 보며 뭐든지 조금씩 할 수 있는 미니는 특별하게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능력에 소심해집니다. 자신도 남들보다 특별하게 잘 하는 것이 있어 다른 아이들이 감탄해주기를 바라는 상상을 하면서도 그 꿈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데, 어떤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잖아.(p.21)'라는 미니의 독백은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근원적인 불평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이 숫자 암기에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된 미니는 며칠 동안 숫자를 외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고자 아무 때나 숫자를 적용한 계산 능력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니의 피나는 노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오히려 코웃음으로 끝나고 맙니다. 미니가 새로운 꿈으로 연극배우를 상상하며 보내던 중 절묘하게도 학교에서 연극 공연을 준비하게 됩니다. 모두가 주연 배우를 꿈꾸듯 미니 역시 대사가 제일 많은 토끼 역할을 탐내지만 미니는 아쉽게도 아주 간단한 대사를 말하는 벌레 역할을 맡게 됩니다. 헌데 공연이 열리는 날, 주인공 막시가 엄지손가락에 깁스를 하는 바람에 준비한 모든 것이 수포로 끝나버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미니의 진정한 재능은 이때 통쾌하게 발휘됩니다. 숫자를 잘 외우는 것만큼 대사 암기에도 능한 미니는 연극을 준비하면서 주인공의 대사까지 완벽하게 외워버렸으니까요. 위기의 상황을 미니 덕에 넘긴 친구들과 선생님은 미니에게 모두 감탄하며 "미니 최고!"를 외칩니다. 미니가 진짜 스타가 되어버린 셈이죠.

 

3.

 

누구나 한 번쯤은 주목받는 인생이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라 수많은 객석의 갈채를 받기를 기대합니다. 남이 가진 재능을 동경해 부러움만으로 모방에만 그치거나 남과의 비교 속에 주눅들어 아예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니가 보여준 깜찍한 도전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은 남보다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태도에서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아볼 밝은 눈이 떠지는 것이 아닐까요? 건강하고 유쾌한 미니의 생활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교육은 무엇에서부터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힌트를 넌지시 알려주는 책, 작가의 <미니 시리즈>가 계속해서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다음 시리즈에서 미니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까요? 어떤 기발함과 엉뚱함으로 독자를 매료시킬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도 미니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가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모두가 스타요, 주목받는 주연배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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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 개정판
옥성호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애착과 독자의 외면 사이에 낀 방언 논란 

 

'저자의 사랑은 가장 많이 받았지만, 정작 독자의 사랑은 가장 덜 받은 책(p.4)'으로 저자 스스로가 소개하고 있는 옥성호의『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는 현대 교회의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방언' 에 대해 노골적으로 건드렸다는 자체에서부터 궁금한 독자와 불편한 독자로 지지층을 가르고 있는 독특한 책이다. 

하나님의 계시서인 성경을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 완벽하게 해석하는 일 자체가 애초에 한계가 보이는 시도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강요된(일반화된) 교리에 각자의 신앙을 짜맞추려는 것 또한 우매한 태도라 여기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반갑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축복의 은사인가?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인가?

 

저자의 고백처럼 나 역시 한때는 방언의 은사를 사모한 나머지 부흥회나 간증집회에서 여기저기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에 상대적 결핍감과 위축감을 느껴 기도 중에 주위를 둘러보곤 했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나보다 뒤늦게 신앙생활을 한 성도가 어느 날 갑자기 따발총처럼 퍼붓는 방언으로 주위의 눈길을 사로잡는 일을 목격했을 때는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성경 구절이 꼭 나를 두고 지적하는 것만 같아 주눅이 들기도 했다.  간절히 갈구하는 내게는 왜 방언의 은사가 내리지 않는지, 내 신앙의 정체성은 아직도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하나님은 왜 나를 가둬두고 계신지 많은 의문과 절망감이 물밀 듯 찾아와  영적 방황 속에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품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간절함은 말씀의 본질을 사모하고 온전히 경배하는 섬김의 자세보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가와 비교에 더 큰 부분을 할애하며 인간적 기준에서의 등급을 마음 속에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을 향하는 은사가 아닌 인간을 향한 은사로서 말이다.

 

인간의 언어인가? 하나님의 언어인가?

 

저자는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격려와 충고 속에 이 책을 저술하면서 저명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방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한편 방언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의 구절을 꼼꼼하게 되짚어가며 성경이 정의하고 있는 방언의 본질과 역할은 무엇인지, 성경적 방언과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방언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쳐 들어간다. 오로지 성경에 초점을 둔 해석이야말로 정통과 이단을 구분짓는 유일한 잣대라는 측면에서 살펴 볼 때 저자는 오늘날 집단적 최면제 내지는 신비 체험 위주로 행해지고 있는 방언을 성경적 방언이 아니다,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방언에 절대적인(호의적인) 이들에게 다소 불편한 도전을  하고 있다.  흔히 하늘의 언어(?)라고 높이 평가되는 방언의 폐해가 교회의 안과 밖에서 어떤 유형으로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지적해주고 있어 방언에 대한 맹목적적인 믿음을 지닌 이들에게 분별의 호소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

 

 

사도행전 속에 언급된 방언

 

사도행전에는 오순절 사건과 사마리아인 회심 사건, 고넬료 회심 사건, 에베소 세례 요한 제자들 회심 사건 등 총 4번에 걸쳐 방언이 등장한다. 저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방언의 공통적 특징이 '외국어'라는 점과 각각 독특한 대상들(예루살렘에 모여든 세계 각지의 유대인, 사마리아인, 이방인, 구약적 사고에 젖어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을 향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이 전파되고 새로운 교회 시대가 자리잡도록 하는 데 방언이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방언이야말로 예언 성취를 통한 구속사의 완성에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즉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에게 복음이 세계를 향해(이방인 포함) 전파되어야 할 넓이와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사도를 중심으로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한 표적이 방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불순종과 교만의 대가로 인해 각기 다른 언어로 흩어졌던 인류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 다시 '한 언어(방언)'로 통합됨을 보여주는 표적으로서도 방언은 상징적 의미를 드러낸다. 다시 말하면 입으로 '믿는다' 고백함에도 여전히 구약적 사고에 젖어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성령에 대해 모르고 있던 제자들(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바로 알게 한 표적이 방언이며, 방언의 은사를 받은 후 복음을 전파하는 데 제자들이 앞장서도록 기인한 것이 방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초대 교회의 성립에 필요한 표적으로 기능한 방언이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도구였다면 완성된 계시서인 성경이 존재하는 오늘날, 그밖의 또 다른 표적이 과연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제기됨과 동시에 믿음의 척도로써 인식되는 요즈음의 방언에 대해 독자로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고린도전서 속에 언급된 방언 

 

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속 방언과 달리 외국어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언어인 하늘의 언어(?)인가라는 출발점에서부터 고심하게 된다. 즉 성경에 등장하는 방언이 한 가지인가 두 가지인가라는 논의는 방언의 기능이 각각 나뉘게 된다는 측면으로 이어지는데 성경은 그 점에 있어 어떤 암시도 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고린도 지역의 특수한 배경을 감안해 볼 때 사도 바울이 그 점에 대해 충분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다. 교통의 요지이자 도덕적 타락으로 유명한 고린도 지역은 상업 중심지로 이교도주의, 신비주의에 의한 전통적 습관이 배어 있는 곳으로 현대의 은사주의자들이 행하는 방언과 같은 뜻 모를 소리로 이뤄진 주문과 기도가 유행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기록들을 근거로 당시 그 유명한 아프로디테 신전에서의 예배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가득 찬 그곳은 말 그대로 광란의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방언들이 이곳 저곳에서 쏟아지는 한편 한쪽에서는 신도와 여사제가 몸을 섞고 있습니다. 또 저쪽에서는 신내림을 받은 어떤 자가 온몸을 경련하며 누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매일 밤 타오르는 '광란'의 열기가 온 도시를 뒤덮고도 남을 것 같은 곳이 바로 아프로디테 신전이었습니다.(p.108)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낯설지 않은 것은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 은사의 장면과 일정 부분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자극적인 멘트, 잔잔한 음악과 혼이 나갈 것만 같은 압도적 분위기, 신과의 교접을 구하는 듯한 울부짖음, 엉덩이를 들썩거리거나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일정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소리 등등이 그러하다. 구약 시대 부터 이방 종교의 특징이 광란과 무절제로 나타났음을 생각해볼 때 경건한 질서가 깨진 위와 같은 모습은 결코 성경적 예배의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독자로서도 공감하는 바이다. 바울은 고린도의 방언 역시 통역 가능한 언어임을 전제로 하여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방언이 아닌 개인의 경건을 위한 생활 도구로 전락된 방언에 대해서는 분별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잘못된 방언에 대한 바울의 특별한 언급이 없음에도 그리 생각하는 것은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분노, 빈정거림, 책망, 교정, 그리고 교훈으로 점철되어 있다(p.115)'는 조지 가디너 교수의 말이 설득력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방언은 과연 성경적인가?

오늘날 교회 속에서 방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이런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방언이 통역될 수 있는 언어인가 아니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성경 본문의 문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몇 구절을 자르고 조합해서 오늘날의 방언 사용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통역하라고 하는데 통역할 수 없는 암호를 바른 방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말씀보다 나의 체험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p.215)

방언을 특별 은사로 여겨 개인의 신앙심을 등급화하는 척도로 삼거나 하나님과의 직통 연결 도구로 삼아 방언삼매경에 빠질수록 성경에서 멀어진다는 허점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성경의 가르침보다 개인의 신비 체험에 매료될수록 말씀은 시시하게 다가올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방언이 성경보다 위에 서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게다가 행함을 자랑 삼아 교만에 빠져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도구로 전락될 수 있음을 떠올려볼 때 과연 체험이 우선인가? 성경이 우선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리라 본다.

 

오늘날의 방언 열풍이 줄 수 있는 위험들

오늘날은 체험이 동일한 한, 교리가 달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추세입니다. 가톨릭 안에도 오순절파 가톨릭을 중심으로 방언에 대한 열기는 더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많은 사람은 개신교와 가톨릭을 하나로 만드는 데 방언보다 더 좋은 도구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점점 교리적 가르침보다는 체험적 감정 고조를 더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 교리를 벗어 던지고 체험으로 하나 되도록 하는 사탄의 보이지 않는 무서운 공격은 '연합과 사랑 그리고 관용'이라는 달콤한 가면을 쓰고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습니다.(p.258)<strong> </strong>

저자는 결국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하고자 했던 요지 그대로를 우리에게로 다시 전하고 있는 셈이다. 체험 아래에 말씀이 놓이는지 말씀 아래에 체험이 놓이는지를 놓고 벌이는 영적 전투의 중심(p.30)에 방언이 있다고 가정해볼 때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 방언이 아닌, 이방 종교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종교심의 발로에서 나온 지극히 인간적이고 지극히 체험적인 것으로써 교회공동체를 튼튼히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세우려는 인본주의적 해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적을 통해 믿음을 확인하려는 이들에게 사탄의 치밀한 계략이 하나님을 그럴싸하게 모방하는 신기술로 '방언'을 악용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

 

체험에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소박한 외침일 뿐!

 

저자의 시도는 참/거짓 또는 긍정/부정 등의 이분법적 정의를 떠나 모든 것을 말씀에 비추어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행17장)' 묵상하던 베뢰아인처럼 방언 또한 개인적인 체험 이전에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아닌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만으로도 이 시대에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을 해야할 지에 대한 경건한 힌트를 주고 있다. 

명절 때마다 과다포장으로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는 선물세트처럼 혹 우리의 신앙도 직분과 각종 은사들로 믿음을 과대포장한 채 거추장스런 포장재로 둘러싸여 본질이 축소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볼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담는 전인격적 기도여야 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채 내게 신비한 체험을 가져다 준다는 이유로 방언을 하늘의 언어라고 가르치고 권장하는 움직임은 중지되어야 한다(p.266)는 저자의 단호한 입장이 억지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구원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자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신비 체험은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방편일 뿐이지 그 자체가 믿음의 증거물로 목적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감사와 은혜의 삶보다 교회 안에서의 나의 위치와 직분은 어떠한지를 각종 은사로 확인해보려는 테스트 용품으로 혹 방언을 사모하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라는 소박한 외침으로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특정은사를 달라고 떼쓰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깨달아 필요한 곳에 온전히 쓰이게 해달라는 기도가 더 진정성있어 보이지 않을까? 세례증서를 받았다고 하여 언약백성의 자격을 온전히 획득했다는 증거물이 아니듯 방언 또한 아무 때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능력 과시용의 마패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짚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하늘의 언어가 아니라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닮기 위한 말씀임을 절실히 깨닫는 가운데 성령에 대한 오해와 진정한 기적이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본문 속 구절을 소개하며 서평을 마치려 한다.

 

왜 우리는 성령을 이렇게 오해하고 있습니까? 왜 기적만이 성령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자연법칙은 하나님이 성령과 함께 시작하신 창조 사역입니다(창1:2). 왜 성령 하나님이 이루신 그 창조 질서를 위반하는 것들을 성령의 일로 보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자연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되는 이 '진짜 기적' 속에서 성령을 만나지 못할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까?(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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