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 -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클래식 해설서의 고전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지음, 김형석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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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은 클래식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 확실히 차원이 다른, 성격이 다른 책이다.  

기존에 내가 접했던 클래식 서적이 감상의 이해를 돕는 안내 서적과 유사했다면, 이 책은 클래식이라는 음악의 뿌리를 순전히 음악적인 요소로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평가한 비평서적에 가깝다. 화려하게 치장한 의상보다 골격과 뼈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미적 기준이랄까?

대부분의 클래식 관련 서적이 클래식의 역사나 유파, 음악가의 생애, 음악에 얽힌 일화 등을 통해 감상의 지평을 넓혔다면, 이 책은 오로지 음악적 요소에 근거한 치밀하고 논리적인 악곡 분석부터 전통 클래식은 물론이거니와 재즈, 뮤지컬, 현대음악, 오페라 등 각각의 음악적 장르가 지닌 특성을 적확한 비유와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책에는 ‘적확한’이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여러 번 쓰이는데, 이것은 아마도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구하는 음악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에 태초부터 허락된 이 악장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 그것이 맞춰지는 순간 우주가 완벽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p31)

작곡가는 다음 도착지가 어떤 곳인지 아는 능력, 풀어 말해 주제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음이 정확히 그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음이라는 감각, 이 ‘적확함’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음 다음에 어떤 음이 나와야만 하는지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p83)

지휘자는 시간의 흐름에 극히 민감한 사람입니다. 가장 ‘적확한’ 순간에 가장 ‘적확한’ 길을 통해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P169)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서 펼쳐나가고 있는 방대한 음악 지식을 때로는 압축해서, 때로는 확장해서 절도있게 표현해주는 것만 같다. 작곡가든 연주가든 지휘자든 음악가에게 이 ‘적확한’이라는 용어는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임을 책 곳곳에서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평소 번스타인이 지니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1부 ‘상상의 대화’를 통해 독특하게 보여준다. 베토벤이 왜 위대한 작곡가인지, 정통 클래식에서 벗어난 세미 클래식으로의 접목이 어찌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현상인지를 가상의 서정시인과 매니저를 등장시켜 대화와 편지의 형식을 통해 상반적인 논쟁 방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팽팽한 논리로 서로를 이해시키는 상상의 대화라니, 꽤나 흥미로운 전개 방식이다.    

이어 2부에서는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레너드 번스타인 옴니버스> 프로그램의 방송대본 7강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에 근거한 진행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난새 지휘자가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으로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토벤이 그 유명한 <운명> 교향곡 제 2악장의 서두를 위해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장 ‘적확한’ 음을 찾아내기 위해 최소 14가지 버전의 악보를 만들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이들 중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완성곡이 왜 필연적 결과물로서 완벽한지를 무대에서 각각의 연주를 들려주며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비교하게끔 이끈다. 그 결과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주제 뒤에 이어져야 할 바로 그 음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임을, <운명> 교향곡이야말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가며 가장 ‘적확한’ 음과 리듬, 클라이맥스, 화성, 악기 편성에 대한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말해준다.

“ 내가 재즈를 사랑하는 것은 재즈의 유머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즈는 실로 음을 가지고 ‘놉니다’. 우리는 ‘논다(play)'라는 단어로 음악을 ’연주한다(play)'고 말합니다. 브람스를 논다, 바흐를 논다? 실은 스포츠에 더 잘 어울릴 법한 단어지요. 그런데 재즈는 진짜 놀이입니다. 재즈는 음들을 가지고 놀고 음들로 재미를 만듭니다. 재즈는 그야말로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입니다.(p107)

 

재즈는 악보로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분음을 정확히 기록할 방법도 없고 그 다양한 음색, 그 미묘한 조음법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리듬 역시 애초에 정확하게 기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재즈 음악의 성격은 악보를 읽는 연주자의 감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결국 재즈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연주자들은 심오하고도 순전한 감으로 재즈를 창조해 냅니다.  (P131) 

는 일찍이 재즈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고도 멋진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때 저급한 하층민의 음악으로 폄하되기까지 한 재즈에 대한 번스타인의 놀라운 지적 탐구와 세밀한 관찰은 개인적으로 뜻밖에 얻은 이 책의 백미이다. 클래식이라는 견고한 테두리 안에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장르를 번스타인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과감히(?) 건드린 것이다. 향유층에 따라 음악에도 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정통 클래식과 확연히 다른 재즈는 선술집에서나 흥얼거리듯 흘러나오는 서민층의 가벼운 노래일 수 있겠으나 탁월한 음악적 안목을 지닌 그에게는 재즈의 세계야말로 음악 영역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분야였던 것이다.

리는 이 책에서 종종 음악가로서의 번스타인 이외에도 문학가, 철학가로서의 번스타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지휘의 기술을 논하는 2부 3강에서는 특히나 빛나는 문학적 표현과 진지한 철학적 고찰 속에 이루어진 깊이 있는 해석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지휘자의 악기는 100명의 ‘인간’입니다. 자기 의지를 가진 전문 연주자 100명으로 마치 하나의 의지로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듯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는 강력한 권위의 소유자인 동시에 이 큰 집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심리적 통찰력의 소유자여야 합니다.(p138)

지휘자는 이런 악보를 처음 받아들고 무슨 일을 할까요? 대개는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읽습니다. 탐정 소설 읽듯 말이죠. 악보에도 서스펜스가 있고, 사태의 결말이 궁금해지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휘자는 악보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듣습니다.(p160)  

길고 가느다란 지휘봉의 움직임이 소리를 입힌 언어가 되어 완성된 연주를 위한 소통의 통로가 된다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머릿속으로 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내겐 소설책 읽듯 구성단계별로 음을 그려내는 능력이, 선율만이 아닌 의미까지 읽어내는 능력이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래식과 대중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번스타인의 음악지평은 재즈에만 국한되지 않은 채 뮤지컬과 영화음악, 오페라, 현대음악에까지 이어져 방대한 전문성을 드러낸다. 뮤지컬이야말로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발생한 예술로 가장 미국적인 언어와 빠르기, 도덕관, 방향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 형식이라 평하며 음악에 있어서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열광한다.

밖에도 음악의 아버지라 일컫는 바흐의 음악세계를 절대신앙의 신심에서 비롯된 찬양으로 규정지으며, 그가 작품을 쓰는 것은 신앙 활동이었고,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찬양 활동이었으며 그는 음 하나하나를 오롯이 신에게 봉헌했다,는 멋진 말로 정리를 한다.

오페라의 매력에 대해서는 오페라야말로 짧은 시공간 속에서 모든 장치, 즉 노랫말을 확장하고 상황을 확장하고 분위기를 확장하고 인물을 확장하고 감정을 확장하는 기법이 전부 동원되는 음악예술이라고 평한다. 단순한 가사로 이루어진 드라마에 음악이 들어가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심도를 부여하는 오페라야말로 ‘그랜드’하다고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화려함과 대규모가 주는 황홀함을 상상해볼 만하다.

 

을 읽다 문득 번스타인의 탁월한 문장력에 그의 이력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그는 작곡 공부 이전에 하버드대에서 언어와 철학을 전공한 인물로 이미 글쓰기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능과 교양을 여러 곳에서 선보였던 바, 이 책에서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한다. 그래선지 글 흐름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한 가지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기도 어려운데 다방면에 걸쳐 흠 잡기 어려울 정도의 조화로운 재능을 지녔다는 점에서 살짝 인간적인 부러움이 이는 부분이기는 하나 덕분에 이렇게 질적으로 우수한 책을 읽게 된 독자로서는 호강을 누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개인적으로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방송에서는 노래와 연주를 통해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부분도 책에서는 악보로만 전해지기에 그 소리와 분위기를 원래 취지대로 온전히 못 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스타인의 수려한 문장과 ‘적확한’ 비유 덕에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으로의 색다른 독서법을 보여준 멋진 예라 하겠다.

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레너드 번스타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카라얀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위대한 지휘자로서의 명성과 하루에 담배 5갑 정도를 피워댈 정도의 애연가였다는 것(결국 그는 폐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예술가에게 흥미로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독특한 성적 취향(양성애자), 지휘 도중 흥에 겨우면 폴짝폴짝 뛰는 열정적인 재스추어 등 음악적 알맹이는 빠진 채 지극히 대중적인 관심권에 머물러 있었다.

허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 해설가로서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음악가로서의 레너드 번스타인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평생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과 함께 살았으며, 음악의 향유를 개인적 감상으로서의 ‘사유’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지대 형성을 위한 ‘공유’로 확장할 수 있었던 그는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대중에게 기억될 것이다.

런 의미에서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음악이라는 영원한 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의 즐거움>이라는, 참으로 값진 선물을 남겨주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서 ‘아는’의 범주를 전문가답게 펼쳐놓은 책, ‘아는’의 진정한 의미가 ‘느끼는’이라는 것임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책, 따라서 이 책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이라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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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섹스, 그리고 사랑
틱낫한 지음, 신소영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님이 말하는 섹스와 사랑이라?  

왠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 않는 단어의 연결이다.

저자가 금욕적인 생활 속에서 정신적인 도를 구하는 종교 지도자라는 신분 때문인지 다소 선정적인 제목이 우선 눈길을 끌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내용은 수행자의 마음 다스리기처럼 차분하고 고요하다.

섹스라는 자극적인 요소보다는 본질적으로 진실한(또는 성숙한) 사랑을 논하는 책이라 보는 게 맞다.

가볍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쿨한(?) 시대에 전 세계의 정신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이 들려주는 참된 사랑법은 무엇일까?

 

마치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는 원숭이와 같이 인간도 애욕의 감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닌다.(p9)   

 - 애욕망경 9절  

 

애욕의 뿌리는 깊고 견고하다. 나무를 잘라버릴 수는 있지만 가지와 잎은 다시 돋아날 것이다. (p40)     

- 애욕망경 8절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 덧없음을 꿰뚫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지한 우리는 그 형상이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 여긴다. 겉모습에는 진실되거나 영속적인 가치가 담겨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p63)      

- 애욕망경 16절 

 

 

욕망을 뒤에 내려놓고 애욕을 좇는 길에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애욕의 그물을 찢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하면 어떤 것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다.(p151)

- 애욕망경 21절

 

 

'욕망경'은 올바른 사랑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경전으로 첫 번째 글자인 '애(愛)'는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은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두 번째 글자인 '욕(慾)'은 갈망과 탐욕, 욕망을 말한다. 그러므로 '애욕'은 '욕망이 담긴 사랑'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부처가 수도승을 대상으로 가르치고자 한 마음수양법이었으나 가벼운 인스턴트 사랑에 점점 익숙해지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가르침이다.

 

랑이 집착의 옷을 입게 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고, 사랑이 감정에만 충실하게 되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기 어렵게 된다.

스님은 남녀가 서로 진실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적, 육체적, 영적으로 온전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육체적 친밀감이 감정적 친밀감과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성적 친밀감은 서로에 대한 교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영적 수준의 공감이 더해졌을 때라야 성숙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감정적, 영적 친밀감이 없는 섹스는 공허할 뿐이며 진실한 사랑이 없는 성행위는 외로움만 더욱 부추길 뿐이니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 속에 안식처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을 권한다.  

 

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 쉽게 사랑에 빠진다.

아니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감정에 빠진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인지 모른다.

감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힘들 때 빠르게 다가온 사랑은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열정으로 포장되기 쉬운 법이다.

관계가 지속될수록 실체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은 크게 벌어질 것이며 결국 서로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스님은 진정한 영적 동반자란 당신이 찾아 헤매던 아름다움과 사랑을 당신 내면 깊은 곳에서 찾아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임을 조언한다.

 

스컴은 물론이거니와 손 안에 들어온 인터넷 세상 속에서 상품화된 성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변심한 애인을 찾아가 해꼬지를 하는 흉흉한 기사가 종종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요즘 시대에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 사랑이 아닌, 서로에게 진실한 사랑을 얻기 위해 스님의 마음수행법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지혜의 명상과 욕망 다스리기, 내 안의 나에게 집중하기,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기, 서로에게 깊게 뿌리 내리기 등 마음 먹기에 따라 충분히 연습이 가능한 일들로 말이다.

 

트남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나의 집'이라 부른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호칭이 '나의 집'이라니, 얼마나 황홀하고 멋진 말인가? 

이 책은 어쩌면 사랑이 욕망이 아닌 안식처가 되는 법을 핵심으로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식처를 얻기 위해, 안식처를 가꾸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한 유용한 힌트가 부록으로 실린 '마음챙김 수행법'에 실려 있으니 꼼꼼하게 챙겨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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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준 선물 -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운 52번의 기적
사라 스마일리 지음, 조미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1.

내 아들녀석은 늦은 밤까지 일하는 엄마 때문에 저녁식사를 늘 혼자서 해결한다.

행여 안 먹었다,말하면 엄마가 속상해할까봐 잘 챙겨먹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이 가벼운 눈속임일 뿐인 것을 나는 안다.

밥통에 있는 밥도 그대로인데다 내가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걸신들린 사람마냥 야식거리를 찾곤 하니까....

간혹 해놓은 밥도 못 찾아 먹느냐고 핀잔을 주다가도 혼자서 먹어야 하는 밥의 서러움을 알기에 속상한 마음은 늘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곤 한다.

혼자 먹는 밥은 방금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날지라도 찬밥과 다를 바 없이 쓸쓸하고 처량하다는 것을 나 역시 경험을 통해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의 보살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에게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날의 일과를 서로 주고받으며 공감과 위로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저녁식사 자리는 밥 이상의 알파(α)적 요소가 있으므로 '혼자라도 잘 챙겨 먹어'라는 말은 분명 가혹한 요구사항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인정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직업을 바꿔볼까도 고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적인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작은 힌트나마 얻을 수 있는 귀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저녁식탁에서 사라진 아빠의 빈 자리를 가족을 대신해 다양한 이웃들이 채워주는 감동 실화를 담은 책 <저녁이 준 선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

아프리카로 파병간 아빠의 부재로 인해 평화롭고 단란했던 스마일리 가족은 불안에 휩싸인다.

이미 군인 남편의 파병으로 인한 이별상황을 몇 차례 경험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인 사라는 아이들이 커나감에 따라  또다른 문제에 부딪히며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나 갈수록 남편(아빠)의 빈자리는 존재감의 무게만큼이나 크게 다가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삐딱하게 구는 큰아들 '포드(당시11세)'와 형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둘째 '오웬(당시 9살)', 이별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막내 '린델(당시 4세)'과 이들 개구쟁이 삼형제를 돌보며 일을 해야 하는 사라가 남겨진 가족이다. 

남편은 떠나기 전 아내에게 매주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덜 외롭고 덜 힘들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보지만 내성적인 데다가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라는 내켜하지 않는다. 

요리하는 것도,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어하는 아내로서는 매주 새로운 손님과의 불편한 저녁식사 자리야말로 또다른 피곤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일단 한 번 보내본 초대장(첫번째 손님-상원의원)에 의외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약속한 날에는 취소하고 싶다느니 방에서 안 나올 거라느니 억지를 쓰며 낯선 사람과의 저녁식사 자리를 회피한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차츰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 를 특별하고도 신선한 만남으로 하나둘 채워 나간다. 그것도 무려 52주라는 긴 시간 동안 말이다.

상원의원, 기상캐스터, 작곡가, 야구역사가, 일러스트레이터, 소방관, 밀렵감시인, 주지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사회적 저명 인사는 물론이요, 암을 극복한 제니퍼 아줌마, 이웃집 글로리아 할머니,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 국립공원 기념품샵 직원, 결혼반지를 찾아준 스쿠버다이버, 문앞에 몰래 음식을 놓고가는 '음식요정' 등 평범한 일상 속 이웃들이 아빠인 더스틴의 식탁의자에 앉을 수 있는 특별손님으로 초대된다.

감동적인 건 이 특별한 저녁식사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격식을 갖춤 없이 소박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초대된 이웃들은 그들만의 직업 세계와 인생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배려와 인내, 사랑과 절제 등을 배워 나간다. 

'이럴 때 남편이 있었으면, 아빠가 있었으면'이라는 원망 섞인 아쉬움은 차츰 '남편(또는 아빠)을 대신해주는 이웃 덕분에'로 바뀌어 가면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개념을 뛰어넘어 아무런 바람 없이 누군가를 돕고 함께 기뻐하는 이웃으로서의 또다른 가족애를 공감있게 보여준다.

이별이 또 다른 성장 과정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이는 누구보다도 불평 불만이 많은데다 툴툴거리기 잘 하던 큰아들 '포드'인데 그만큼 사춘기 남학생에게 아빠의 역할은 동성어른으로서의 역할모델이 되는 셈인지라 아빠의 부재감을 견뎌내기가 더더욱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포드는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가 끝나갈 즈음 엄마인 사라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있을 만큼 꽤나 성숙한 소년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듯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는 모두에게 기다려지는 저녁식사, 아쉬워지는 저녁식사가 되고 마침내 52번째를 끝으로 하여 막을 내리고, 남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3.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점은 이 부부(더스틴과 사라)의 현명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부모 역할과 사려 깊은 부부 관계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책임감은 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활일수록 더 빛나는 힘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됐으며, 평소에 늘 아이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놀이를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빠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유대감 속에 존경의 마음까지 싹트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저녁식사에 순순히 응해준 초대 손님들 또한 타인의 어려움(상처)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고 요란스럽지 않게 돕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잔잔한 감동으로 심어주었다.

삐딱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아빠를 대신해 줄 손님으로 오늘 저녁 식사에 와주시겠어요?'라는 초대장을 받았을 경우 사회 고위 인사들 중 몇 명이나 긍정적인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 씁쓸해진다.

 

부모는 맞벌이로 직장에, 아이들은 학업으로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온가족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를 갖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대 사회에서 저녁식사 자리는 단순히 밥만 먹는 게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아주 멋진 책이다.

더불어 기회가 된다면 나 또한 가까운 이웃이라도 한 번 초대해 특별한 저녁식사를 한 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이다.    

멋있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 무엇이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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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문학독서법 - 삶의 기적을 일으키는 인문학 독서법의 비결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바쁜 아침에 현대인이 즐겨 찾는 곡물 셰이크나 칼로리바는 편리성 못지않게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해가 갈수록 종류도 다양해지고 판매량도 높아지고 있다. 초 단위까지 계산해가며 하루를 바쁘게 살아내야 하는 현대인에게 어찌 보면 구세주와도 같은 영양 공급원으로 충분히 제 몫을 다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세 끼 모두를 곡물 셰이크로 채울 수는 없는 법.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와 씹을수록 독특한 향내와 깊은 맛을 내는 산나물로 가득 차려진 밥상은 충분한 영양 공급은 물론이거니와 입 안 가득 남아있는 맛의 추억까지 음미할 수 있는 맛의 향연이다.

 

  비인문학과 인문학의 독서법도 이와 같다면?

 

김병완이 쓴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은 독서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인문학 독서를 하는 사람과 인문학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까지 거론하고 있어 독서법의 세분화를 보여준다. 압축된 전문적 지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비인문학(일반서적, 실용서적)이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간편한 독서법(Fast reading)이라면,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을 통합적이고 다면적으로 보여주는 인문학(문학, 신화, 역사, 철학)은 천천히 곱씹어야 제 맛을 아는 느린 독서법(slow reading)이다.

 개인적으로 깊은 공감과 인상 깊은 여운을 준 대목은 모티머 J.애들러가 쓴 『독서의 기술』 중 인용한 문학작품을 읽을 때의 자세로, 이 표현이야말로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적극적으로 독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중요하지만, ‘교양서’와 문학서는 그 자세가 달라진다. ‘교양서’를 읽을 때에는 눈을 언제나 매처럼 빛내며 금세라도 습격할 수 있는 태세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시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적극적인 수동(手動)이라고도 할 만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야기가 마음에 작용하는 대로 맡기고, 또 그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맡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무방비(無防備)로 작품을 대하는 것이다.”(p. 107)

책 초반에서 저자가 말한 “비인문학 도서를 읽을 때는 비즈니스맨으로, 인문학 서적은 친구를 사귀듯 스승을 대하듯 인생의 선배를 만나서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듯”이라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뒤 늦은 질문이겠지만, 왜 인문학인가?

인생은 오늘 하루의 부귀영화와 유희로 끝나지 않은 기나 긴 여정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앞서 왜 사느냐라는 질문이, 돈 버는 법에 앞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우선시 돼야 바르게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가능하다는 이치다.

 저자는 자신과 세상과 삶을 성찰하고 자신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강조하며, 삶의 이유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통로로 인문학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독서법을 소개한다.

 

 최하층 빈민들과 노숙자들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만나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아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나, 문학작품을 통해 얻은 감동과 환희, 운명과 극복의 지혜 등이 삶에 닥쳐오는 불행과 시련에 좀 더 잘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준 점 등은 인생을 좀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정신의 바탕에 인문학이 상당 부분 기여한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잘 나가는 삼성맨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3년 독서법을 통해 독서의 새로운 지경을 넓혀온 저자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이 책에서 팁으로 소개하고 있는 <분야별, 상황별, 권장∙추천독서>의 목록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부록이다. 그동안 그렇고 그런, 거기서 거기에 그치는 추천도서에서 벗어나 독자 개인에게 딱 맞는 책을 추천받고 싶다면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을 펼쳐볼 것을 권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색하지 않으면, 취하지 않으면, 넘치지 않으면 독서가 아니라는 저자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공허한 울림이 아닌, 간절한 호소로 깊이 있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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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는 엄마 기다리는 엄마 - 올바르고 참된 엄마가 되기 위한 엄마 공부법
홍미경.김태광 지음 / 베이직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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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고나서 아들 녀석에게 엄마가 은연 중에 자주 비교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대답이 뜻밖이다.

"글씨요, 점수 갖고는 뭐라고 안 그러는데 글씨 보고는 매번 나이 어린 누구누구보다 엉망이라고 하시잖아요."

"그래?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맞춤법? 5학년인데 아직까지 ㅐ랑 ㅔ를 헷갈려하냐고, **도 아는 거라고..."

"그랬구나. 또? 생각나는 거 또 없니?"

"음... 글쎄?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거? 그것 말고는 더 생각나는 게 없는데요. "

"좀만 더 생각해봐. 엄마가 뭐 좀 참고하려고 해."

"그러고보니 엄마는 남들이랑 별로 비교 안 하는 것 같은데?"

 

씨와 맞춤법이 의외의 대답이긴 하지만, 듣고보니 평소의 그런 내 모습이 떠올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사실 취학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들 녀석은 나름대로의 정서적 여유와 양육 철학 속에 유쾌하고 힘이 나는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했던 사이였다. 아들 녀석이 학교라는 커다란 사회에 발을 담그게 된 시점부터 노골적으로 티나지는 않지만 은밀한 비교를 수시로 해온 내게 아들녀석의 평가는 후한 점수요, 과분한 평가이기도 하건만,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 그래왔던 것에 대해 일정 부분을 들킨 것 같은 겸연쩍음에

"적당한 비교는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온대. 부족한 점은 채워가면서 어른이 되는 거 아니겠니?"라고 되물었지만, 내가 듣기에도 그닥 설득력은 없어보이는 말핑계일 뿐이다. 비록 겉으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해도 은연 중에 흘러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혹 내 아이가 또래에 비해 평균 아래로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자율방목형 양육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느긋한 부모 만나 내아이가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잣대로 아이를 저울질하며 근수를 달아보던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이이었으니까.

 

론은 쉽고 현실은 힘겹기만 한 것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자녀교육만큼 대한민국 엄마들을 무겁게, 그리고 무섭게 만드는 일도 없을 것 이다. 출판계에 각종 '내아이 ~법'이라는 제목류가 난무하는 가운데 양육과 교육의 가장 기초가 될 만한 행동지침서로 『 비교하는 엄마 기다리는 엄마』라는 책이 나온 것은 그런 점에서 참 반가운 일이다. '일등 만드는 법'보다는 '꼴지여도 행복해지는 법'이 더 바람직한 양육이요, 더 가치있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현직 유치원 원장(홍미경)과 자녀교육 전문가(김태광)의 공저로 이뤄진 이 책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최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으로 '내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 이라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다보면 내 아이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지게 보이기 마련이며, 단점이 부각될수록 엄마들의 조급증은 아이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져 결국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다. '옆집 아이는 이러한데 내 아이는 왜?'라는 아쉬운 질문 속에는 비교당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행복에서 멀어지는 아이들의 눈물과 한숨도 깊어진다는 것을 부모가 먼저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의 기준에 맞춰서 잠재력과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부터 아이의 모든 잠재력과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p.29)

기 다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에게 한 가지 길을 보여주고 그대로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 채 천편일률적인 사고를 주입시키는 기계화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금 빠르다고 해서 반드시 앞서가는 것도 아니요, 지금 늦는다고 해서 영원히 뒤처지라는 법도 없다. 어떤 분야에서는 앞서고 어떤 분야에서는 늦는 것이 각자가 타고난 재능대로 발휘될 뿐이니 조급한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인정하고 지켜봐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를 키우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저자는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다. 미국의 건축가 버크민스터 플러가 말한 "모든 아이들은 천재로 태어난다. 만 명 가운데 9,999명의 아이들은 부주의한 어른들에 의해 순식간에 천재성을 박탈당한다."(p.40)라는 말은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을 등급화하여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경고성 멘트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영재 교육이 오히려 영재를 망친다,라는 일부의 시각이 꼭 지나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틀려도 좋으니 세상을 뒤집어 보고 거꾸로도 보며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법을 배우자. 정답이라고 남을 따라하다가 중간에 머물기보다는 남이 안 가는 길을 찾아 그곳에서 보물을 발견해 보자. 산삼은 대로에서 발견되지 않는다.'(p.268)라는 멋진 양육 철학을 지니고 있다면, 내 아이가 비록 영재가 아니라도 개성있는 아이로 제 길을 행복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지자가 돼주지 않을까? 아이가 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맞는 일을 찾아 즐길 수 있도록 옆에서 결정해주는 것이 아닌 선택하도록 지켜봐주는 것. 그리고 격려해주는 것이야말로 부모 역할의 최상이자 최선이 아닐까 싶다.

 

[비교하는 엄마들의 3가지 특징(p.147)]

첫째, 아이가 자신의 기대 수준에 못 미쳤을 때 다른 아이보다 뒤쳐진다는 시각을 가진다.

둘째, 아이는 저마다 장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의 장점보다 단점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아이는 엄마의 욕심대로 자라지 않는다 는 것을 간과한다.

[비교가 아이를 망치는 3가지 이유(p.148-149)

첫째, 비교는 아이의 정서에 해를 끼치고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한다.

둘째, 비교는 아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셋째, 비교해서 칭찬 받으면 상대방을 얕보게 된다.

에서 지적하고 있듯 비교하는 엄마들의 공통적 특성은 부모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는 점이다. 낮은 자존감을 아이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은근히 내포되어 있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에 불편할지 몰라도 냉정하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유관성 있는 행위로 보여진다. 또한

비교의 유형들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중에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비교에서 오는 내 아이의 상처뿐만이 아니라 비교를 통한 칭찬도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좋은 엄마가 되보려는 노력이 자칫 내아이를 망치는 어리석음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마음에 새겨 내아이를 존중하듯 다른 아이들의 인격도 존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를 키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인내력을 요구하는 고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부모

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 양육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힘든 고행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의 즐거움을 찾아 각종 자녀교육 서적을 찾아보고 정보를 교환하며 모임을 주선하는 등 엄마들의 자녀 사랑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투쟁기에 가깝다. 좋은 엄마가 되고픈 열망이 자칫 자녀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이어져 비교를 통한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도록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아닌,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보자. 긍정적 비교가 필요하다면 옆집 아이와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내아이와의 비교를 통해 늦어도 조금씩 발전하고 변화해가는 모습으로서의 비교를 통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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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2-11-06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