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녁이 준 선물 -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운 52번의 기적
사라 스마일리 지음, 조미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1.
내 아들녀석은 늦은 밤까지 일하는 엄마 때문에 저녁식사를 늘 혼자서
해결한다.
행여 안 먹었다,말하면 엄마가 속상해할까봐 잘 챙겨먹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이 가벼운 눈속임일 뿐인 것을 나는 안다.
밥통에 있는 밥도 그대로인데다 내가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걸신들린 사람마냥 야식거리를
찾곤 하니까....
간혹 해놓은 밥도 못 찾아 먹느냐고 핀잔을 주다가도 혼자서 먹어야 하는 밥의 서러움을
알기에 속상한 마음은 늘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곤 한다.
혼자 먹는 밥은 방금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날지라도 찬밥과 다를 바 없이 쓸쓸하고
처량하다는 것을 나 역시 경험을 통해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의 보살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에게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날의 일과를 서로 주고받으며 공감과 위로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저녁식사 자리는 밥 이상의 알파(α)적 요소가 있으므로 '혼자라도 잘 챙겨
먹어'라는 말은 분명 가혹한 요구사항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인정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직업을 바꿔볼까도 고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적인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작은 힌트나마 얻을 수 있는 귀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저녁식탁에서 사라진 아빠의 빈 자리를 가족을 대신해 다양한 이웃들이 채워주는 감동
실화를 담은 책 <저녁이 준 선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
아프리카로 파병간 아빠의 부재로 인해 평화롭고 단란했던 스마일리 가족은 불안에
휩싸인다.
이미 군인 남편의 파병으로 인한 이별상황을 몇 차례 경험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인
사라는 아이들이 커나감에 따라 또다른 문제에 부딪히며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나 갈수록 남편(아빠)의 빈자리는 존재감의 무게만큼이나
크게 다가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삐딱하게 구는 큰아들 '포드(당시11세)'와 형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둘째 '오웬(당시 9살)', 이별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막내 '린델(당시 4세)'과 이들 개구쟁이 삼형제를 돌보며
일을 해야 하는 사라가 남겨진 가족이다.
남편은 떠나기 전 아내에게 매주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덜 외롭고 덜 힘들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보지만 내성적인 데다가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라는 내켜하지 않는다.
요리하는 것도,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어하는 아내로서는 매주 새로운
손님과의 불편한 저녁식사 자리야말로 또다른 피곤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일단 한 번 보내본 초대장(첫번째 손님-상원의원)에 의외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약속한 날에는 취소하고 싶다느니 방에서 안 나올 거라느니 억지를 쓰며 낯선 사람과의 저녁식사 자리를
회피한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차츰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
를 특별하고도 신선한 만남으로 하나둘 채워 나간다. 그것도 무려 52주라는 긴 시간 동안 말이다.
상원의원, 기상캐스터, 작곡가, 야구역사가, 일러스트레이터, 소방관, 밀렵감시인,
주지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사회적 저명 인사는 물론이요, 암을 극복한 제니퍼 아줌마, 이웃집 글로리아 할머니,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
국립공원 기념품샵 직원, 결혼반지를 찾아준 스쿠버다이버, 문앞에 몰래 음식을 놓고가는 '음식요정' 등 평범한 일상 속 이웃들이 아빠인 더스틴의
식탁의자에 앉을 수 있는 특별손님으로 초대된다.
감동적인 건 이 특별한 저녁식사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격식을 갖춤 없이
소박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초대된 이웃들은 그들만의 직업 세계와 인생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배려와 인내, 사랑과 절제 등을 배워 나간다.
'이럴 때 남편이 있었으면, 아빠가 있었으면'이라는 원망 섞인 아쉬움은 차츰
'남편(또는 아빠)을 대신해주는 이웃 덕분에'로 바뀌어 가면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개념을 뛰어넘어 아무런 바람 없이 누군가를 돕고 함께
기뻐하는 이웃으로서의 또다른 가족애를 공감있게 보여준다.
이별이 또 다른 성장 과정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이는 누구보다도 불평 불만이
많은데다 툴툴거리기 잘 하던 큰아들 '포드'인데 그만큼 사춘기 남학생에게 아빠의 역할은 동성어른으로서의 역할모델이 되는 셈인지라 아빠의 부재감을
견뎌내기가 더더욱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포드는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가 끝나갈 즈음 엄마인 사라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있을 만큼 꽤나 성숙한 소년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듯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는 모두에게 기다려지는 저녁식사,
아쉬워지는 저녁식사가 되고 마침내 52번째를 끝으로 하여 막을 내리고, 남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3.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점은 이 부부(더스틴과 사라)의 현명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부모 역할과 사려 깊은 부부 관계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책임감은 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활일수록 더 빛나는 힘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됐으며, 평소에 늘 아이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놀이를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빠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유대감 속에 존경의 마음까지 싹트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저녁식사에 순순히 응해준 초대 손님들 또한 타인의 어려움(상처)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고 요란스럽지 않게 돕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잔잔한
감동으로 심어주었다.
삐딱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아빠를 대신해 줄 손님으로 오늘
저녁 식사에 와주시겠어요?'라는 초대장을 받았을 경우 사회 고위 인사들 중 몇 명이나 긍정적인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
씁쓸해진다.
부모는 맞벌이로 직장에, 아이들은 학업으로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온가족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를 갖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대 사회에서 저녁식사 자리는 단순히 밥만 먹는 게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아주 멋진
책이다.
더불어 기회가 된다면 나 또한 가까운 이웃이라도 한 번 초대해 특별한 저녁식사를 한
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이다.
멋있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 무엇이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