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황당 상식사전
기타조노 가즈마 지음, 서수지 외 옮김, 강희우 그림 / 뜨인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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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은 세계 “황당” 상식 사전이라고 붙어있지만, “황당”이라는 말이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여러 가지 내용들 중에는 굳이 ‘황당’하다고 말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우리가 잘 몰랐던 세계 각처의 여러 가지 풍습이나 지식을 소개해주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넓혀주고 있다.

일단은 재미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풍습을 소개하면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재들만을 추려서 소개하고 있는데 중간 중간의 삽화도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재미를 주는 동시에 작은 박스에 코너를 만들어서 우리가 꼭 필요한 상식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편집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나라가 아닌 주제별로 에피소드들을 묶어놓아서 책을 읽을 동안 계속해서 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세상은 참으로 넓고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많으며,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인가 하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이를테면 페루에는 혈액형이 O형이 100%이고 세계적으로는 AB 형이 드물다는 것이 이채롭게 다가왔다(내가 AB형이, AB형이 적는 정도만 알았지 이정도인 줄을 몰랐다. 우리 나라는 AB형이 많은 나라측에 속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마음에 드는 여성을 납치해서 아내로 삼는다고 하는데 옛날 우리나라에도 여자를 보삼하는 악습(?)이 있었는데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행위가 일반화된 것인지 아니면 드물게 있지만 허용되기 때문에 소개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개인 생일 때도 플랜카드를 부착한다고 해서,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 살다 온 친구에게 물으니 정말 그렇단다. 물론 매년이 아니라 성년식 같은 특별한 날에 플랜카드를 붙이고 함께 즐거워한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을 아르헨티나 친구에게 직접확인하고보니, 이 책에 소개된 조금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에도 신뢰가 갔다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계의 풍속을 소개하는 이런 책들 중에 그 나라에 대해 과장되게 소개해서 책의내용만 믿고 그대로 행동했다가 봉변을 당할뻔 했다는 이야기들을 들은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는 각국의 신기한 풍속등을 소개하고 있는 반면에 2부는 특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2부에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해외토픽에 소개될만한 그런 말그대로 황당한 사건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세계에 대한 상식보다는 흥미위주로 재미를 위해 편집한 것 같다.

아무튼 ‘세계황당사전’은 말그대로 참 재미있는 책이다. 지루한 지하철이나 집에서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황당한 잡학지식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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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1-19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족자비안 나이트 - 족자카르타 선교사 이야기 ㅣ ○○비안 나이트 1
손창남 지음 / 죠이선교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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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족자비안 나이트는 손창남 선교사가 인도네시아 족자지방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담은 수기집 또는 간증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극적인 요소나 재미는 없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담담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화려한 수식어나 레토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이다. 하나님의 역사나 혹은 자기 선교업적을 과장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멘트없이, 진솔하게 조근조근 말하듯이 꾸려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손 선교사의 진실됨을 엿볼 수 있다.
 
1부에서는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어떻게 그가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게되었는지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은 쉽지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보통 결심으로 가능할 것인가? 손 선교사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쫒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참 제자의 모습일 것이다. 작은 것 하나 버리지 못하고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를 이루는지, 한 편으로 부끄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마음은 언제나 주를 향해 달려가지만 삶에서는 한 발자국 움직이기도 힘겨하기에...
2부 왕궁의 도마뱀은,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두따와짜나 대학에서 교수를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어의 어려움 대학 생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들, 그리고 여러 어려움가운데에서도 현지에서 죠이라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선교 활동을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그의 헌신된 삶 속에서 선교사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모범적인 교수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멀리 있지 않아도 선교라는 거창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 삶에서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더 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3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다에서는 죠이 공동체의 성장과정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고 역사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선교사역은 참으로 인간이 행하는 일이 아님을 또 다시 확인한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서 있어라고 한 곳에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곳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믿음이라는 것을 ...
4부 또다른 부르심에서는 그가 현지 사역을 떠나서 선교 동원 사역자로 부름받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이 든 곳을 떠나기란, 자신의 땀과 눈물과 온 힘이 담겨져 있는 곳을 떠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 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종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힘을 쏟았다한들, 우리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면, 하나님의 보다 큰 부르심과 계획을 좇아가야 할 것이다.
 
친구가 내년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간단다. 한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그의 헌신된 삶이 너무 부럽다. 친구 녀석도 손 선교사처럼 헌신된 선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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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전한 사람인가? - 빌 하이벨스 목사가 격찬한 사람볼 줄 아는 영적 능력을 길러주는 책
헨리 클라우드, 존 타운센드 지음 I 김한성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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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 시리즈(“No라고 말할 줄 아는...”)로 우리에게 친숙한 헨리 클라우드의 또 하나의 역작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도 저자 때문이다. (no 시리즈는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수작이다. 그리스도인의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저자를 보고 무턱대고 고르기는 했지만 하지만 제목이 의외로 생소했다.
안전한 사람이라니... 그리고 1장에서 대뜸 해로운 사람부터 정의해나간다.. 목차만 보면 언뜻 사람을 골라서 사귀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사람을 고른다는 것은 나쁜 시각에서 보자면 사람을 차별하고 판단한단 의미로 보여질 수도 있다.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인가? 완벽한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조금의 의아심을 품고 읽어 내려갔다.
해로운 사람이란 습관적이고 만성적으로 관계를 파괴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다. 놀라운 것은, 해로운 사람에 대한 분별력이 없으면, 우리가 해로운 사람에게 이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클라우드 박사의 의도는 그런 사람들을 가려내어서 그들과 관계를 끊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그러한 해로운 요소가 있어서 언제든지 발동할 수 있으며, 또한 죄 가운데 거하면 언제든지 우리도 해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죄에서 떠날 것을 권면하는데 있다.
클라우드 박사는 우리의 문제의 대부분은 고립감에서 비롯되고, 그 고립감의 원인은 죄의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고립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사랑에 대한 갈구’가 아닐까?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사랑받지 못함으로 인한 사랑의 영양실조, 물론 그 사랑의 굶주림 자체가 사실은 죄로 인한 것일 것이다. 사랑은 원래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우리 영혼의 최고의 치유책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일 것이리라. 그리스도의 차고 넘치는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은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클라우드 박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좋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사람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아주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의 경험으로도 분명히 그랬다. 관계가 틀어지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리고 그 갈등의 원인이 모두 상대방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사실은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과 멀어져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전한 관계란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출발한다.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상대방의 심령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안전한 사람이 된다면, 해로운(사실 해롭다기보다 안전하지 않은 사람이다. harmful people이 아니라 unsafe people이다) 사람을 안전한 지역으로 인도해서 그들 또한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 박사의 다른 바운더리 시리즈처럼 이 책은 우리의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지에 대한 아주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주고 있다. 만약 당신이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혹은 좋은 관계 자체에 무관심하다면, 이 책은 아주 좋은 치료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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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 - 하나님의 강력한 기름부음을 덧입기 위한 기도의 명품 고전
E. M. 바운즈 지음, 최은하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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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도의 능력 - 기도를 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책
E.M.바운즈는 기도 시리즈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중 ‘기도의 능력’은 특별히 우리에게 기도해야할 강렬한 동기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기도의 능력’은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시종 일관 우리에게 기도해야한다는 강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다. 그의 말은 짧고 간명하지만 그 메시지는 힘과 확신이 넘친다. 기도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바운즈는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들이 넘쳐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며 기도로 나아갈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그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기도의 능력’은 주로 설교자 혹은 목회자나 사역자를 대상으로 쓰고 있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 기도없이 행하는 사역들은 양들을 나약하고 병들게 만든다고 말한다. 진실한 사역자라면 이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 설교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가? 화술이 부족해서? 신학적 지식이 딸려서? 예화가 적절치 못해서? 아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운즈는 단언한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는 죽은 설교다.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는 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케 하는 설교, 그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기도없이도 사람들을 재미있고 감동케 하며, 인기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 기도없이도 화려한 언변과 유창한 말솜씨로 청중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을 살리지 못하며 살아있는 영적인 꼴을 먹일 수는 없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파이프와 같다. 파이프가 녹슬고 막히고 끊어져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설교를 통해 전달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없이는 올바른 설교를 행할 수 없다. 바운즈는 말한다. “설교자는 설교의 사명과 동시에 기도의 사명을 받았다” 설교 준비는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는 하나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명의 절반만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절반의 사명만 감당하는 것은 사실 사명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땅의 설교자들은 기도에 헌신해야만 한다.
 
비록 설교자들을 주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기는 하지만, 평신도에게도 역시나 기도해야할 필요성에 대해서 엄청난 도전을 줄 것이다. 당신이 설교자라면 이 책을 읽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평신도라면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도하라!, 기도에 대해서 100번의 설교와 강의를 듣는 것보다 한 번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도의 필요성을 외치는 것보다 지금 당장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또한 명심해야 한다. 기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투이고 노동이다. 우리의 본성은 기도를 싫어하고 영적인 것을 멀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혹을 이기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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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ㄹ 2026-10-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소망]
대한민국에는 ‘사기’를 쳐서, 돈을 뜯는 사람이 없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 성경의 3대 ‘사기‘극~
① (가짜 하느님) ‘타력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서 믿는, 성경의 창조는 ‘지동설’ 창조가 아닌, ‘천동설’ 창조이다. 비과학적인 천동설 창조를 말하는, 가짜 창조주 야훼는, 원래 유대인들의 먼 조상, 고대 ‘셈족‘부족장 이름이었다. 바빌론 제국의 포로 시절에, 유대인들은 수메르 신화를 복제하여 구약을 만들면서, 비과학적인 천동설 창조를 말하는 수메르 신화의 가짜 창조주 엘림을, ‘야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경의 창조는 ‘사기‘)~
[①일차] 빛과 어둠을 만들어, 낮과 밤을 구별하게 함 → 지금도, 야훼가 만든 ‘빛과 어둠‘만으로, 태양도 없이 낮과 밤이 구별될까? 야훼가 태양 없이 낮과 밤을 구별하게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기이고, 거짓말이다.

[②일차] 하늘 뚜껑인 ˝궁창˝을 만듦 → 궁창 즉, 지구의 뚜껑은 ‘야훼‘가, 지구를 평평하다고 생각하며, 지구 뚜껑인 궁창을 열고 닫아, “비”나“눈”이 오게 하는 장치를, 성경에서 ‘궁창‘이라 말한다(욥기 참조). 야훼는, 첫째 날에, 태양이 없어도, 빛과 어둠만으로,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게 했다고, 이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후, 더 나아가서, 태초 허공의 우주에는, 지구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야훼가 그 지구에 뚜껑(궁창)을 만들어 씌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태초 허공에 ‘지구‘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천동설이다. 야훼는 초등학생도 믿지 않는 비과학적이고, 상식에 어긋난 천동설에 근거한, 창조를 주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 지구에 뚜껑(궁창)까지 달았다고, ‘사기‘를 치고 있다. [③일차] 태양을 창조하지도 않고, 태양을 필요로 하는 풀과 식물을 만들었다고 또 ‘사기’를 친다. [④일차]에 가서, 드디어 야훼는 (지구 창조 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구에서, 우주를 향해), 태양과 별, 달을 창조했다고 ‘사기’를 치고 있다(천동설은 진리가 아니므로, 야훼의 창조는 ‘사기’이다).

이런 엉터리 천동설의 ‘사기’ 창조주, 야훼는 구약에서 창조주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야훼라는 이름으로는 한국에서 전도가 되지 않으므로, 개신교에서는 이 가짜 창조주 야훼를, 1891년쯤, 유일신이라며, 숫자 ‘하나’로 바꾸고, 그 숫자 ‘하나‘에 ‘님‘자까지 붙여서, 마치 숫자 ‘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야훼를, 사찰에 계신 진짜 하느님으로 착각을 하게끔 유도하여, 전도를 하려는 ˝기만행위‘이다.

천주교도 처음에 천주님이라 불렀는데, 1980년대 김수환 추기경 때부터, 이름을 바꾼 개신교를 본받아, 숫자 하나님의 표준말이라며, 숫자 ‘하느님‘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숫자 ‘하나님‘으로, 천주교는 숫자 ‘하느님‘으로 표기하며 부르고 있다. 숫자 ‘하나’가 살아있나? 불교가 전래되자, 사찰에서는 하느님을 사찰의 삼성각에 모셨다. 삼성각은, 예로부터 현재까지, 하느님(칠성님), 나반존자, 산신님의 3분을 모시는 전각이다.

한민족 자손이 하느님을 배신하고, 유대민족 신의 부하가 되어, 숫자 ‘하나’를 숭배하는 미친 짓은, 진짜 하느님의 미움을 받을 미친 짓이다. 천동설 창조가 진리인가? 숫자 ‘하나’가 살아있나?

② (유령인간 예수) 예수는, 동방박사가 예수 탄생을 지켜보았다면서, 성경에 예수 탄생일이 없다. 그래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자신도 미트라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 탄생일을, 자신이 믿던 태양신 ‘미트라‘의 생일과 같은, 12월 25일로 정했다. 즉, 예수 탄생일은 313년이 지난 후, 태양신의 날짜로, 로마황제가 정했다.

12사도들은 최후의 만찬에 참석 했다면서, 예수 사망일을 몰라, 성경에는 예수 사망일이 없다. 그래서 325년이 지난 후, 천주교 공의회에서, 유대교의 유월절을 예수 사망일로 정했다. 매년 달라지는 유월절에 따라, 부활절과 예수 사망일은 매년 다르다.

성경에, 예수에 대한 탄생일과 탄생연도, 사망일과 사망연도도 없어, 예수는 허수아비 유령인간이며, 신약 성경은 소설이다. 사실 예수는, ‘바울’이 이집트 호루스와 페르시아 미트라 신화를 복제한 복제품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이단인, 마태를 비롯한, 예수 12제자 등의 사도들은, ‘이단 및 사기죄’로, 모두 처형을 당했다. 바울의 복제품, 허수아비 예수에게 기도하는 자는, 모자라는 인간이다.

③ (사기 구원) 성경은 죽은 자의 귀신을 부정한다(신약에 나오는 귀신은, 천사의 변심인 ‘마귀’를 의미한다). 죽은 자의 귀신을 부정하므로, 제사를 거부한다. 죽은 자의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후세계가 없다는 뜻이다. 즉,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소멸되어, 사후세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세계가 없다는 것은, 곧 천국, 지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 ‘천국, 지옥‘을 운운하는 목사와 신부는 한낱 사기꾼일 뿐이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지옥도,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야 실현되는, 실현 불가능한 ‘육신 부활‘을 의미하는 ‘사기‘이다.
[대한민국은 ‘사기’를 쳐서, 돈을 뜯는 사람이 없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출처] 천동설 창조, 성경의 가짜 하나님, 신학논리(회전문 논리)
https://blog.naver.com/2andsing/223637131673

[출처] (신약 성립 과정) 기독교 성립과정, 이집트신화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https://blog.naver.com/andsing/224336351217

[출처] (구약 성립 과정) 유대교 성립과정, 슈메르신화
https://blog.naver.com/nandsing/223638647165

[출처] (삼성각) 하느님(칠성)기도 영험 사찰, 독성기도, 산신기도 영험 사찰.
https://blog.naver.com/andsing8330/223646576995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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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며 어떤 의미에서 위험한 일이기까지 하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시각에 의해 가공된 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공되었다는 것이 허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사실’은 얼마든지 다른 ‘진실’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바로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책임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통사를 쓸 때는 이러한 책임이 경감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 긴 시간에 일어난 각가지 수많은 사건들을 취사선택하고, 경중을 달리해서 배치해야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다루는 것 역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떤 것을 기독교 역사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기독교 역사는 단순히 교회의 역사가 아니다. 기독교가 세속 사회에 뿌리를 두고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고, 중세 역사는 기독교 체제 아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더더욱 어떤 것을 기독교 역사라고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들 수 밖에 없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는 역사 기술의 이러한 어려움들을 잘 극복한 꽤나 잘 쓰여진 통사라고 생각된다. 어떤 신학적 주장에 치우지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방대한 역사 중에서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중요한 사건들은 빠짐없이 잘 그리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총 12개의 장으로 구분하고,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기술하고 있다. 물론 그 사건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후 배경이나 영향을 미친 사상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통사를 기술하다보면 굵직굵직한 사건만 다루기 때문에 밋밋하고 재미없는 만연체가 되기 쉬운데, 잘 알려지지않은 이야기나 작은 에피소드들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책 중간 중간에 작은 박스를 통해서 우리가 의문을 품을 만한 역사적 질문이나, 혹은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벗어나지만 알아두면 좋을 만한 역사적 상식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박스의 내용을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이 책은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중세 유럽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식이 있다면 이해하기에 보다 더 쉬울 것이다.
 
사족: 한가지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등장 인물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름보다는 원 이름에 충실하게 번역해 놓아서 기독교 역사에 생소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한국 교회에서는 흔히 ‘폴리갑’으로 알려졌는데 ‘폴리카르푸스’로 ‘터툴리안’을 ‘테르툴리아누스’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서두에 인명과 지명을 원문에 충실하겠다고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알려졌던 분들의 괄호나 각주정도로 병기해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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