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합니다
저드슨 콘월 지음, 신상문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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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예배를 세금납부처럼 하나의 의무적인 행위로 그 의미를 퇴색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예배를 설교듣는 행위와 동일시 하는 분들도 있다. 이들은 설교 시간에 맞춰 예배당에 들어오고 설교가 끝이 나면 나가버린다. 예배시간이 예정보다 조금 늦게 끝나면, 아직도 예배가 진행중임에도 나가버리는 성도들을 종종 목격한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수 있는 예배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같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저드슨 콘웰의 “예배합니다”는 우리의 이러한 현실 가운데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는 예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배를 일로서 대체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내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예배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이미 큰 축복이요 감격이다. 그래서 예배에 은혜를 받았는 말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예배의 의미를 이미 감퇴시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배자로 설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크나큰 은혜인 것이다.

저자는 주일날 모든 공동체가 교회당에 함께 모여서 행하는 주일 예배에 국한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삶 속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께 경배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우리의 주일 예배가 무기력하고 하나의 의무감으로 전락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육일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주일날 예배에 나아가려하니, 예배가 무겁고 힘겹게 느껴지지는 것 아닐까? 우리가 예배에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예배에 아무런 댓가를 치루지 않기 때문이 것이다.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값어치없다고 생각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자가 어찌 그 행사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예배는 우리의 본분이다. 의무로서 본분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는 가장큰 기쁨과 안식과 평안을 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바쁘고 힘들고 지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고단한 것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배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본다. 내가 온 마음 다해 진심으로 예배를 드린 일이 얼마나 있던가? 예배할 때마다 간절함과 기대감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참되게 예배하고 싶다. 예배자로 서는 그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마음 속 깊이 소원하고 참된 예배자로 서기를 다짐해본다.

※일반적으로 예배 본다, 예배드린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예배 본다는 말은 영화 본다는 말처럼 예배자가 예배에 있어서 아주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 같은 어감을 준다. 예배드린다는 말은 예배본다는 말보다는 좋지만, 예배를 하나의 의무나 행위, 혹은 나의 일부분을 희생한다는 어감이 든다. 내가 보기에는 예배한다는 말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전인격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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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스타일 - 4가지 인간 유형을 알면 인간관계 주도권은 내것!
로버트 볼튼.도로시 그로버 볼튼 지음, 김은경 옮김 / 길벗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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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관계에 트러블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는 바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행동 유형이 나와 다를 때, 혹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상대방을 나와는 다르다고 인정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틀렸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부분에 많은 트러블이 발생한다. 


피블 스타일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아마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4가지 유형의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확실하게 이해한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확실히 달라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관용하게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 마당에서는 4가지 유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분석형으로서 완벽주의자이다.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팀플레이보다는 혼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충하는 것을 싫어하것 때문에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기기 쉽고 비판적이기 되기 쉬운 것이 약점이다. 친절형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남들을 도와주기를 좋아하고 지시에 순응적이다. 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사람들을 지나치게 배려하다보니 일의 진척이 드디게 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단더이다. 세 번째는 표현형인데, 상당히 사교적이고 활발하다. 아이디어가 넘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상당히 다이나믹한 반면 한가지를 꾸준히 끝을 내지 못하고 쉽게 싫증을 내고, 언제나 행동보다 말이 앞서서 낭패보기 십상이다. 추진형은 아주 일의 추진력이 뛰어나고 난관을 쉽게 돌파하며 결단력이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 중심적이어서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꼼꼼하지 못해 작은 실수 때문에 일을 망치기도 한다. 


4가지 스타일은 각각의 장점들이 있는데 이 장점들이 지나치게 부각되면 그것이 바로 단점이 된다. 그런데 이들의 스타일이 너무나 달라서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에 대해서 비난하게 된다. 예를 들면 분석형과 표현형이 만나게 되면, 분석형은 표현형에 대해 말만 많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며, 매사에 덤벙되서 같이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반대로 표현형은 분석형에 대해 매사에 비판적이고 지나치게 부정적이며 혼자 잘난척한다고 비난하게 된다.
둘째마당에서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와 다른 상대방의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셋째 마당과 넷째 마당에서는 각 스타일에 대한 한층 깊은 이해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스트레스 받았을 때의 상황과 갈등상황에 직면했을 때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MBTI와는 다르다. MBTI는 사람들의 심리유형을 이해하는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피플 스타일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이 보다 훌륭한 도구는 찾기 힘들 것이다.
 
각 유형의 사람들이 쇼핑할 때 어떻게 다른가를 보면 아마 흥미로울 것이다.
분석형: 쇼핑가기 전에 꼼꼼히 시장 조사를 다 한다. 인터넷이나 팜플렛 등에서 정보를 알아보고 가격 모델을 확실히 파악하고 그 제품을 바로 산다.
친절형: 단골집을 한 번 정하면 왠만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한 번 구입해서 괜찮은 브랜드라면 다음에도 그 브랜드를 사려고 한다.
표현형: 물건을 사는 것보다 쇼핑 자체를 더 즐긴다. 이 매장 저 매장 둘러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티브를 사러갔다가 매장 점원에 말에 혹해서 냉장고를 사는 스타일이다.
추진형: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맨 처음 보이는 매장에 가서 원하는 제품이 보이면 바로 사 버린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인간관계는 확실히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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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정하는 영적 분별력
젠센 프랭클린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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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적 분별력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인도하신다. 안타깝지만 이 사실을 머리로만 믿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이들은 합리주의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인도하신다. 물론 합리적인 선 안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신다.
 
젠센 프랭클린의 영적분별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담고 있다. 책의 첫부분에서는 조금은 불안하고 염려스러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지나치게 개인화하고 내면화하고 있으며, 결국 신비주의의 함정에 빠져있지 않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읽어나가면서 저자 역시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지나치게 개인화할 때의 위험성에도 지적하고 있다.(저자는 분별이 틀릴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실제 예를 들고 있는데, 이 위험성을 좀 더 강하게 강조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비주의는 치명적이지만 또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1부에서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 인도하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시켜주고 있다. 이 사실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강하게 도전 받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있으며 심지어는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강하게 강조하면 더 좋았을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국 교회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인도하심 이전에 회개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회개함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1부에서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면 2부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보다 보편적이고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환경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몰고 가심으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이다. 3부에서는 삶의 중요한 문제에서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부는 삶의 순간, 순간에서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3부에서는 보다 우리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결정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로 인내와 경청과 기도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 4부에서는 보다 더 보편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무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곧 남자로서, 여자로서, 부부로서, 가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우리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도전을 주며, 그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치우침없이 잘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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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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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미있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클래식의 배경을 이렇게 제대로 풀어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의 공연도 멋질 것이다. ‘조윤범’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당연히 그의 공연은 본적이 없지만 이 책을 보면서 그의 공연은 대단히 멋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래식을 지루하게 여기거나 혹은 어렵게 여긴다. 또는 클래식을 지식층의 전유물로 여기는 풍토가 있어서 속으로는 따분하게 느끼면서도 지식층인척 하기 위해 클래식을 듣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어렸을 때에 몇몇 유명한 곡을 제외하고는 클래식은 지루한 음악이었다. 우선 곡명부터가 무슨 암호같고, 가사없는 긴 멜로디와 화음은 몇 번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클래식의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은 ‘가면 속의 아리아’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클래식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영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플롯의 전개와도 자연스럽게 들어맞았다. 클래식이 참으로 매력적인 음악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면서 클래식은 배경을 알거나 혹은 어떤 내용과 어우러지면 얼마든지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구나고 느끼면서, 클래식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조윤범은 나와 같은 일반인이 느꼈던 클래식의 문제점과 내가 ‘가면 속의 아리아’를 보면서 느꼈던 해결점을 멋지게 끌어내었다.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클래식에 대해 문외한이 느끼는 어려움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뿐 아니라 그 해법역시 제대로 해결했다. 클래식을 알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음악보다 더 매력적이다. 조윤범은 클래식은 헤미메탈과 힙합과 발라디를 모두 합쳐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클래식이 대중에게 외면받는 것은 음악가와 연주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발상이고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1장과 2장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 벤델스존, 슈만, 브람스, 차이코프스크, 그리그, 드보르작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스케타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지만 리스트는 알아도 스메타나는 처음 들어본다) 각 음악가의 일생과 음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잘 역어 내고 있다. 3장과 4장에서 다루고 있는 음악가들은 생소한 음악가들이지만 역시 나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현대로 옮겨가면서 클래식이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파악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에 그의 콰르텟엑스가 어떻게 출발했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짦막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조윤범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내 컴퓨터에는 6기가정도의 클래식 mp3가 저장디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소개되는 음악이 있으면 찾아서 틀어놓고 함께 읽었는데, 내 컴에 없는 곡이 소개될 때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혹 후에 개정증보판이 나올 예정이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음악을 실은 cd을 첨부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ps 혹 출판관계자가 보시면 참고하시라고 적습니다. p.90 8째줄에 오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이 아니라 ‘이 곡’의 오타 같습니다. 재판을 찍을 때 수정하면 좋을 듯해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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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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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는 광기에 대한 유명한 데리다와 푸코의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상식(?)에서 벗어나 ‘미친 것’에 대해 ‘광적’으로 서로를 공박하는 것을 보면 ‘미친 것’을 정의하기 힘들기는 힘든가 보다. 이 책은 ‘미친 것’이 아닌 ‘멀쩡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제기되었을수도 있겠지만...) 멀쩡함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문제 의식의 근저에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우선 ‘멀쩡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멀쩡하다고 말하는데 그 멀쩡함의 기준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멀쩡함을 알아보기 위해 그는  광기를 들여다본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충동들과 일상의 여러 광기(돈과 섹스 등)들에 대한 통제를 ‘멀쩡함’으로 보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진정한 멀쩡함은 현대가 규정한 그 멀쩡함의 기준을 버리고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논증은 난해하기는 하지만 그 핵심 가치는 ‘모든 것을 권력게임’으로 바라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 서 있다. 푸코로 촉발된 ‘광기’에 대해 ‘광’적으로 주목하는 현상은 정신병조차 권력게임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사람들은 ‘힘이 곧 진리다’라는 말을 비진리라고 믿지만, 실상 우리는 ‘힘이 진리’인 세계를 살고 있으며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은 실상은 권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푸코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 이유도 저자가 현대인이 생각하는 멀쩡함은 ‘강요된 멀쩡함’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저자의 결론적 주장을 단순화하자면, 우리가 멀쩡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규범과 대중의 표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겉으로만 멀쩡하게 보일 뿐 사실은 미친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순수한(?) 의도는 권력에 의해 억압된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로 옮겨지게 되면 더 큰 혼란과 더 큰 억압을 가져올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자면 권력에 의해 진리가 조작된 측면이 분명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진리가 조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현대인이 생각하는(혹은 강요된) ‘멀쩡함’ 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오히려 저자의 주장을 철저히 따라가게 되면 저자가 주장하는 멀쩡함이 인간성을 말살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멀쩡함’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주 신선한 접근이기는 하지만 ‘멀쩡함’은 광기의 측면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존재론적이고 윤리적으로 접근해야 바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애초에 문제제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쉽지 않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철학적 배경이 없다면 읽기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가 놓쳐지 말아야할 중요한 진리 중 한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당연함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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