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능력 - 하나님의 강력한 기름부음을 덧입기 위한 기도의 명품 고전
E. M. 바운즈 지음, 최은하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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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도의 능력 - 기도를 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책
E.M.바운즈는 기도 시리즈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중 ‘기도의 능력’은 특별히 우리에게 기도해야할 강렬한 동기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기도의 능력’은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시종 일관 우리에게 기도해야한다는 강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다. 그의 말은 짧고 간명하지만 그 메시지는 힘과 확신이 넘친다. 기도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바운즈는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들이 넘쳐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며 기도로 나아갈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그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기도의 능력’은 주로 설교자 혹은 목회자나 사역자를 대상으로 쓰고 있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 기도없이 행하는 사역들은 양들을 나약하고 병들게 만든다고 말한다. 진실한 사역자라면 이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 설교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가? 화술이 부족해서? 신학적 지식이 딸려서? 예화가 적절치 못해서? 아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운즈는 단언한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는 죽은 설교다.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는 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케 하는 설교, 그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기도없이도 사람들을 재미있고 감동케 하며, 인기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 기도없이도 화려한 언변과 유창한 말솜씨로 청중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을 살리지 못하며 살아있는 영적인 꼴을 먹일 수는 없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파이프와 같다. 파이프가 녹슬고 막히고 끊어져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설교를 통해 전달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없이는 올바른 설교를 행할 수 없다. 바운즈는 말한다. “설교자는 설교의 사명과 동시에 기도의 사명을 받았다” 설교 준비는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는 하나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명의 절반만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절반의 사명만 감당하는 것은 사실 사명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땅의 설교자들은 기도에 헌신해야만 한다.
 
비록 설교자들을 주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기는 하지만, 평신도에게도 역시나 기도해야할 필요성에 대해서 엄청난 도전을 줄 것이다. 당신이 설교자라면 이 책을 읽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평신도라면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도하라!, 기도에 대해서 100번의 설교와 강의를 듣는 것보다 한 번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도의 필요성을 외치는 것보다 지금 당장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또한 명심해야 한다. 기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투이고 노동이다. 우리의 본성은 기도를 싫어하고 영적인 것을 멀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혹을 이기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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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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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며 어떤 의미에서 위험한 일이기까지 하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시각에 의해 가공된 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공되었다는 것이 허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사실’은 얼마든지 다른 ‘진실’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바로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책임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통사를 쓸 때는 이러한 책임이 경감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 긴 시간에 일어난 각가지 수많은 사건들을 취사선택하고, 경중을 달리해서 배치해야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다루는 것 역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떤 것을 기독교 역사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기독교 역사는 단순히 교회의 역사가 아니다. 기독교가 세속 사회에 뿌리를 두고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고, 중세 역사는 기독교 체제 아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더더욱 어떤 것을 기독교 역사라고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들 수 밖에 없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는 역사 기술의 이러한 어려움들을 잘 극복한 꽤나 잘 쓰여진 통사라고 생각된다. 어떤 신학적 주장에 치우지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방대한 역사 중에서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중요한 사건들은 빠짐없이 잘 그리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총 12개의 장으로 구분하고,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기술하고 있다. 물론 그 사건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후 배경이나 영향을 미친 사상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통사를 기술하다보면 굵직굵직한 사건만 다루기 때문에 밋밋하고 재미없는 만연체가 되기 쉬운데, 잘 알려지지않은 이야기나 작은 에피소드들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책 중간 중간에 작은 박스를 통해서 우리가 의문을 품을 만한 역사적 질문이나, 혹은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벗어나지만 알아두면 좋을 만한 역사적 상식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박스의 내용을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이 책은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중세 유럽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식이 있다면 이해하기에 보다 더 쉬울 것이다.
 
사족: 한가지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등장 인물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름보다는 원 이름에 충실하게 번역해 놓아서 기독교 역사에 생소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한국 교회에서는 흔히 ‘폴리갑’으로 알려졌는데 ‘폴리카르푸스’로 ‘터툴리안’을 ‘테르툴리아누스’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서두에 인명과 지명을 원문에 충실하겠다고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알려졌던 분들의 괄호나 각주정도로 병기해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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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그릇 - 나를 찾아가는 먼 길
방현희 지음 / GenBook(젠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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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냥그릇 - 구도자를 위한 묵상집
 
나는 누구이며, 인생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자들에게 ‘동냥그릇’은 길동무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여년전도 더 전에 보았던 라즈니쉬의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너무나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 내용은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미지는 동냥그릇과 거의 흡사하다.
현대인들은(사실은 동서고금의 모든 인류는) 부질없는 욕심과 철저한 이기심, 뿌리칠 수 없는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기의 욕심이 자기의 온 생애를 갈아먹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달콤한 유혹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동냥그릇’은 동양적 구도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불교와 도교의 영향 아래에서(혹은 인도철학) 발전한 구도적 자세는 끊임없이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며, 삶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추구한다.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삶의 모습은 모든 것을 내어던지고 자연 속으로 회귀하거나 혹은 자연의 순리에 합일하라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동냥그릇’으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이 인간의 모든 고통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자기계발서’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자기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라,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이 정말 바른 길인가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거나 감명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선입견인지 몰라도,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이 책에 큰 감명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저 감명에 그치고 삶 속에서 적용하기 힘들 것이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너무나 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도의 길은 쉽사리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리도록 우리를 몰아세우고 있는 이 사회의 거대한 압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자들에게 이 책은 더 없는 안식처와 말동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인생이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와 소통할 기회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해 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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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영적 리더십
헨리 블랙커비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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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영향력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리더만이 가져야 하는 정신이나 태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길러야 할 덕목이다.

[청소년을 위한 영적 리더십]도 그런 의미에서 특정 그룹의 소수 엘리트를 위한 책이 아니라 모든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자기계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가 갖추어야할 요소들을 11가지 내용으로 분류해서(도전, 역할, 준비, 비전, 성품, 목표, 영향, 결정, 시간, 함정, 축복) 각각의 덕목들을 어떻게 기르고 함양해야할지를 짧지만 핵심적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쳅터마다 포인트라는 코너를 통해 묵상해야할 말씀, 해야할 기도, 그리고 실천할 행동들을 실어놓아서 실제 삶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 책이 일반적인 리더십 책이나 자기 계발서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점은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꿈과 나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메시지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리더십은 인격의 문제라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p. 46) 리더십은 큰 인물, 성공적인 인물이 되기 위한 방법론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은 리더의 가장 큰 적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적 리더십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길러야할 덕목인 것이다.

이 책은 굳이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포인트의 실천 항목이 청소년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조금 특화되어 있을 뿐이다. 성인이 읽어도 충분하다.(블랙커비의 [영적리더십]을 읽지 않아서 이 책과 어떻게 대비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청소년에게 조금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더십에 대한 선이해가 전혀 없는 가운데서, 리더십의 핵심 내용들만 간추려 놓았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염려도 조금 든다.

굳이 청소년에게 적용한다면 10대 초반(초등학생,중학생)에게는 조금 무리일 것같고 10대 후반(고등학생 이상)에게 적당할 것 같다.

 

하나님을 향해 선한 열심을 품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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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남자를 모른다
김용전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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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가 일생을 두고 궁금했던 것이 여자의 마음이었다고 한다(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멜깁슨 주연의 “왓 위민 원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남자도 여자를 모르고, 당연히 여자도 남자를 모를 것인데, 남자도 남자를 모른단다. 그럼 도대체 남자를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남자는 남자를 모른다]는 남자의 심리 보고서는 아니다. 일단 저자는 심리학자나 전문상담가가 아니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남자에 대해서 내가 가르쳐줄게”라는 태도가 아니라, “남자인 내가 봐도 남자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식으로 가볍게 남자에 대해 들추어 나간다.
에필로그에 보면 저자는 이 책을 저술방식을 “전문적이고 기술적이고 학문적인 이야기 말고, 삼결살에 소주 한잔 걸치면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나 겨우 털어놓을 수 있는 한국 남자들의 속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의도대로 썼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것 같다.
 
남자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 아니라 남자에 대한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다. ‘한국남자’라고 밝힌 부분도 마음에 든다. 따지고 들면 저자는 생물학적인 ‘남자’에 대해서 논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남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사회와 문화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지 생물학적인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한국 남성과 미국 남성은 분명히 다른 특질을 보인다. 그래서 애초에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진솔하게 한국 남자는 이렇더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쉽고, 무엇보다도 우리네 피부에 훨씬 와 닿는다.
 
저자는 ‘한국 남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 남자’는 주로 ‘남편’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남편’의 실상과 허상, 고뇌와 괴로움, 약점과 상처, 그리고 진면목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저자의 글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상들을 예화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왜 그렇게 지지리 궁상이고 그렇게 못 낫는지(여자의 입장에서 볼때)...
때로는 변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정하며 또 때로는 이해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각성하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한번씩 반박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남자들의 모습니다. 그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다.
 
남자인 내가 봐도 때때로 남자들은 한심스럽고 답답할 때가 많다. 절반의 책임은 한국 사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 절반의 책임을 인정하고 고쳐나가려고 하는 것.. 그것이 한국 남자로 성공하며 살아가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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