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테니의 돌이킴 - 하나님 당신께 돌아갑니다
토미 테니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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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딱딱한 내용에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혀내려가는 책이 있고, 내용도 그리 깊이가 있지 않는데 진도가 잘 안나가는 책이 있습니다.


토미 테니의 ‘돌이킴’은 그야말로 술술 읽혀 내려가는 책입니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고 내용의 깊이가 앝은 것도 결코 아닙니다. 룻기를 통해 우리의 삶의 문제의 핵심을 찔러 들어옵니다. 머랄까요? 참 맛있게 읽은 책입니다.


룻기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로 말미암아 많은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성경 중에 하나였고, 또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자비(헤세드)는 많은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룻기에 관한 많은 문헌들과 설교를 감안해도 토미 테니의 ‘돌이킴’은 결코 뒤지지 않는 뛰어난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직 자신의 뜻만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환란과 고통이 닥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아무 관심이 없는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이 참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것이 사실상 우리 대부분이 겪는 문제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데에는 관심이 없거나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지요. 그러나 큰 곤경에 처하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오미가 바로 그러했지요.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기 보다는 하나님의 치심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오는 마지못해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그 길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뜻이 서려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의 상당부분은 우리의 행위의 결과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의 길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따라 죄악과 탐욕의 길로 가다가 멸망을 초래하지요. 그래도 우리에게는 감사와 희망이 있습니다. 가장 절망의 순간에도, 아무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마지칵 카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돌이킬 때, 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붙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확실한 표징과 길을 보여주시고 가라고 하기 보다는 먼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다음에 길을 보여주실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앞이 보이지도 않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렇게 행하면 완전히 망할 것 같은 그 길을 가라고 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서는 그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컨대 룻은 바로 그 어려운 순간에 믿음의 결단을 한 것입니다. 자기도 과부인데다 시어머니까지도 과부인데, 어찌 그 시어머니를 따라 가는 것이 쉬운 결단이었겠습니까? 차라리 풍요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를 통해 어렴풋이 보았던 하나님을 붙들기로 결단했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결단입니다. 나는 저런 순간에 저런 결단을 과연할 수 있을까? 자문 해봅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룻기는 참으로 멋진 이야기입니다. 토미 테니는 그 멋진 이야기를 그 감흥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룻과 나오미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임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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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합니다
저드슨 콘월 지음, 신상문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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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예배를 세금납부처럼 하나의 의무적인 행위로 그 의미를 퇴색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예배를 설교듣는 행위와 동일시 하는 분들도 있다. 이들은 설교 시간에 맞춰 예배당에 들어오고 설교가 끝이 나면 나가버린다. 예배시간이 예정보다 조금 늦게 끝나면, 아직도 예배가 진행중임에도 나가버리는 성도들을 종종 목격한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수 있는 예배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같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저드슨 콘웰의 “예배합니다”는 우리의 이러한 현실 가운데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는 예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배를 일로서 대체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내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예배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이미 큰 축복이요 감격이다. 그래서 예배에 은혜를 받았는 말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예배의 의미를 이미 감퇴시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배자로 설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크나큰 은혜인 것이다.

저자는 주일날 모든 공동체가 교회당에 함께 모여서 행하는 주일 예배에 국한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삶 속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께 경배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우리의 주일 예배가 무기력하고 하나의 의무감으로 전락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육일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주일날 예배에 나아가려하니, 예배가 무겁고 힘겹게 느껴지지는 것 아닐까? 우리가 예배에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예배에 아무런 댓가를 치루지 않기 때문이 것이다.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값어치없다고 생각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자가 어찌 그 행사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예배는 우리의 본분이다. 의무로서 본분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는 가장큰 기쁨과 안식과 평안을 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바쁘고 힘들고 지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고단한 것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배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본다. 내가 온 마음 다해 진심으로 예배를 드린 일이 얼마나 있던가? 예배할 때마다 간절함과 기대감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참되게 예배하고 싶다. 예배자로 서는 그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마음 속 깊이 소원하고 참된 예배자로 서기를 다짐해본다.

※일반적으로 예배 본다, 예배드린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예배 본다는 말은 영화 본다는 말처럼 예배자가 예배에 있어서 아주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 같은 어감을 준다. 예배드린다는 말은 예배본다는 말보다는 좋지만, 예배를 하나의 의무나 행위, 혹은 나의 일부분을 희생한다는 어감이 든다. 내가 보기에는 예배한다는 말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전인격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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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정하는 영적 분별력
젠센 프랭클린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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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분별력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인도하신다. 안타깝지만 이 사실을 머리로만 믿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이들은 합리주의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인도하신다. 물론 합리적인 선 안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신다.
 
젠센 프랭클린의 영적분별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담고 있다. 책의 첫부분에서는 조금은 불안하고 염려스러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지나치게 개인화하고 내면화하고 있으며, 결국 신비주의의 함정에 빠져있지 않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읽어나가면서 저자 역시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지나치게 개인화할 때의 위험성에도 지적하고 있다.(저자는 분별이 틀릴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실제 예를 들고 있는데, 이 위험성을 좀 더 강하게 강조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비주의는 치명적이지만 또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1부에서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 인도하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시켜주고 있다. 이 사실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강하게 도전 받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있으며 심지어는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강하게 강조하면 더 좋았을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국 교회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인도하심 이전에 회개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회개함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1부에서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면 2부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보다 보편적이고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환경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몰고 가심으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이다. 3부에서는 삶의 중요한 문제에서의 인도하심을 받는 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부는 삶의 순간, 순간에서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3부에서는 보다 우리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결정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로 인내와 경청과 기도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 4부에서는 보다 더 보편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무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곧 남자로서, 여자로서, 부부로서, 가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우리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도전을 주며, 그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치우침없이 잘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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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1%의 가치 - 세계밀알 총재 이재서 교수의 꿈과 끈기의 여정기
이재서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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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이재서 교수님께 ‘사회복지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앞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 교수를 하신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고, 또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았으면 절대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졸업한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고, 한 과목 밖에 듣지 못했지만 교수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차에, 책이 나온 것을 보고 교수님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상당히 기뻤다. 학창시절 듣지 못했던 교수님의 삶의 세세한 여정들을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하나의 설레임이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고,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내 자신... 아마도 내가 교수님의 처지라면 내가 눈만 볼 수 있다면 머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불평하지 않았을까? 지금 내게 없는 것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닐 것인데, 나는 내게 없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
‘실명을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으로 인하여 감사할 것이 아니라 내게 없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감사가 아닐까?
 
육안은 멀쩡하지만 영안이 멀어지는 것보다 육안은 멀어도 영안을 뜬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 영안은 감아버리고 육신의 눈만 부럽뜨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들었건만 어찌하여 내 삶에 감사가 이토록 없는 것인가? 삶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순종하는 것인데, 내게는 왜 이토록 순종이 없는 것일까? ......
 
수업을 할 때, 언제나 교수님 사모님이 동행했었다. 늘 미소를 지으면서 함께 수업에 임하셨는데, 그 때는 생각지 못했지만, 사모님의 고통은 교수님과는 또 다른 것이었음 돌아보게 한다. 사모님 또한 교수님 못지않게 존경스럽다. 꿈많은 20대 엘리트 여성이 장애인과 결혼하며 겪어야 하는 고통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 ....
 
하나님을 위해 1%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교수님의 모습이 더 없이 부러워지는 것은 결코 감정의 사치라고만 말할 수 없으리라. 아니 그것이야 말로 진정 복된 삶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추수 감사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게 부어주신 복을 헤아려 보게 한다.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다. 받은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없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진정한 감사 주일을 맞이하려 한다. 언제나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
 
교수님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또한 나의 하나님이기에 나의 나은 인생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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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1분 - 가치 인생을 위한 하루 1분의 좋은 습관
신경하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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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1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첫 인상은 머랄까? 맹물같다는 느낌이었다. 수필이라기는 너무 짧고 묵상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하고 교훈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계속 읽어 나가면서 먼가 조금씩 묵직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 편 한 편은 메시지가 약하거나 밋밋하건 같지만 계속해서 무게감이 더해져간다. 왜그럴까? 아마도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이란 본시 그런 것이 그렇다. 하루 하루 일상은 권태롭고 반복되는 평범의 연속인데, 무심히 흘려보낸 그 시간들이 어느덧 지금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의미없어 보이는 그 하루가 실제로는 지금 나를 만들어낸 중요한 소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되돌아 보아 어찌 그 하루를 소홀히 지나보내랴? 하루 하루를 금쪽처럼 소중히 여기며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면 저자는 맨 처음 글을 시간으로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경하 목사님이 누군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참되게 살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모습이 목사님의 글 속에서 배여 나온다.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에다 여러 직함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목사님의 소탈함을 증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어쩌면 내가 소위 유명하다는 목사님들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색을 띄지 않기 때문에 내 귀에 들려지지 않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의 구성에서도 목사님의 정성이 엿보인다. 주일을 빼고 매일 읽을 수 있도록 313개의 에피소드를 엮었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을 펴낼 때 그저 예전에 써둔 칼럼들 중에서 괜찮은 것 몇 개를 골라서 대충 엮은 것이 아니라, 한 편 한 편을 주제에 따라 분류하고 배치하고 또 글의 성격에 알맞은 금언들을 찾는데도 많은 노력이 들어 갔을 것이다.


이 책은 총 7개의 주제를 담고 있다. 나를 가꾸고 남을 바꾸고 만족을 주고 비전을 세우고 열매를 맺고 절망을 이기고 세상을 밝히는 것, 이것들 중 어느 한가지도 쉬운 것이 없건만, 이 일을 하는데 1분이면 된단다. 매일 1분의 시간만으로 어찌 가능하랴만은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에게는 그 1분의 여유마저도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1분은 단지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여유를 의미하는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우리를 정신없이 몰아 부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휘둘려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그냥 떠내려가는 것 같다. 나의 삶을 돌아봐도 그런 것 같다.
나를 돌아볼 1분을 찾아야 겠다. 아마도 그것이 목사님이 던져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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