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의 완간 고려왕조실록 - 상 - 전기 왕권시대(918∼1170) 우리역사 진실 찾기 3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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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얼마전부터 국민적인 역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어쩌면 TV드라마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사에 근거를 둔다고는 하지만 결코 내용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 한마디로 작가의 상상력과 연기자들의 연기가 잘 버무려져 시청자들을 푹~ 빠져들게 하는 것이 바로 TV역사드라마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그만인 갈등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속의 큰 사건들만 골라 만들어지던 것이 근래에는 숨겨진 역사, 이른바 비화(祕話)도 종종 우리의 흥미를 끌고 있다. 

또, TV드라마 못지 않게 역사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소설도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역사적 진위여부를 밝히고자 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독자들의 감탄과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작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TV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접하는 역사에 대해 무척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온전히 역사적인 내용을 담지 않았다는 자체보다는 어쩌면 성분함량이 채 2%도 되지 않을 지도 모를 역사적 소재에 나머지 근거없는 작가의 상상력이 대부분이다보니 자칫 근거없는 작가의 상상력을 역사적 사실인양 받아들일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비록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긍정적으로만 여기기에는 조심스러운 일이다. 

어쨌거나 우리의 역사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이 드높은 이때 찬물을 끼얹는 2011학년도 수능부터 국사과목이 선택이 된다는 년초의 정부 발표는 그 어떤 작가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일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역사가 선택과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솔직히, 우리말도 깨우치기 전에 영문도 모른 채 영어에 곤죽이 되어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영어를 선택으로 한다면야 모르겠지만, 얼토당토않은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정부의 심사를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과거 국사는 그저 교과서와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만 배우던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로(인터넷, 도서, TV다큐멘터리 등)로 배울 수 있는 요즘,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한 것 같다. 

그래서 역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역사가(혹은 역사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역사를 주제로 한 책들을 펴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역사학자가 아니면서도 젊은 시절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수많은 역사서를 섭렵하고 또 평생에 걸친 역사 공부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역사클럽을 이끌고 있다는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우리 역사 진실 찾기 시리즈>의 제3탄인 '고려왕조실록'은 상권인 왕권시대와 하권인 비왕권시대로 구성되어 있다는데, 아직 고려왕조실록은 다른 어떤 책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접하게 된 것이라 무척 설레고 기대되었다. 

원래 실록이라 하면, '역대 제왕의 사적을 편년체(연월에 따라 기술하는 역사편찬 체재)로 기록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초에 사관()을 설치하고 《칠대실록()》 《덕종실록()》 《숙종실록()》 등이 편찬되었으나 고려시대의 실록은 전래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칠대실록>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그래서(사실 확인이 가능한 자료가 부족해서) 우리나라 역사는 비교적 고려에 대한 연구가 덜 활발한 것일까? 조선시대나 통일신라, 삼국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함을 느끼는 고려사를 건드려주는 이 책이 더욱 반가울 수밖에.......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든 이 책의 특징은 다름아닌 판소리의 추임새와 같은 저자의 기탄없는 사설(私說) 혹은 사설(邪說)이 주는 재미라고나 할까...... 

역사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국사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독창적인 저자의 해설(배경이나 속내?)만큼은 참으로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판소리의 추임새가 흥을 돋구듯 말이다.
처음엔 그저 기탄없는 저자의 해설로 생각하며 재미있다고 여겼는데... 더욱더 빈번해지고 가차없는 저자의 비판과 탄식(사실이야 어떻든)에 '과연 정말일까? 그랬을까?'하는 의구심이 일어났다. 

흔히들, 점쟁이는 사람의 지나간 과거는 잘 맞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우는 역사(국사) 역시 지나간 과거일텐데... 우리의 역사를 잘 맞추는 점쟁이가 있다면 한 번쯤 묻고싶어지는 책이다. 우리의 고려사는 과연 어떠했는지?

그렇기만 하다면, 재미있게 느낀 저자의 해설이 과연 사설(私說)인지 아니면 사설(邪說)인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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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어린이 도서관 101% 활용법, 쫑나지 않는 해충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우리동네 어린이도서관 101% 활용법
김명하 지음, 마이클럽닷컴 기획 / 봄날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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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무심한 부모는 결코 없으리라. 특히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에서는 말이다. 부모의 수입이 많고 적음을 떠나 가계지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녀의 사교육을 위한 비용.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부모들이 부담하는 사교육비는 세계 최고, 그러나 국가의 교육비지출은 턱없이 낮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6월 2일 지자체선거에서 아이들의 무상급식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나라, 대학의 평균 등록금이 700만 원에 육박하고, 일류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운 현실에 학생 스스로 자퇴를 선언하는 나라.......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 교육계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사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의지와 기대는 멈출줄 모른다. 방과 후 학교 정문과 후문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자연스레 학원 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초등학교의 풍경.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부대끼며 친구를 사귀기 보다는 방과 후에 다시 만나는 학원이나 공부방에서 유대감을 쌓아나간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끈끈함보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새로운 소속감이 더 결속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학원으로 공부방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학원이 아닌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 학교의 방과후 특별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 동네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사교육이라 칭하는 범주에서 용감하게 벗어난 무리들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원이 대표격인 사교육의 울타리를 아직은 거부하는(?) 무리들인 셈이라고나 할까.......

광풍처럼 몰아치는 사교육이 공교육을 옥죄고 있는 현실에서 무대뽀(?)와 같은 사교육에 맞서는 방법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무조건적인 사교육의 그늘에 대항해 용감하게 맞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에서 길을 묻고 답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더불어 온갖 책들이 있는 그곳 '도서관'도 함께 방법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적지 않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몇해 전 2008년이었던가.. TV프로그램에서도 '기적의 도서관'이라하며 지방의 여러 곳에 도서관을 세워주고 독서에 대한 국민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새롭게 세워진 산뜻한 모습의 도서관을 갖게 된 그 지역의 주민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지......

그 후 도서관은 새롭게 우리의 생활 깊숙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아마도 어린이도서관이란 특별한 공간도 새롭게 우리의 생활에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1979년 5월 4일 세계 어린이의 해를 맞이하여 개관한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과 2002년일산에 문을 연 숲속작은도서관이 있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는 지자체에서 삐까뻔쩍(?)하게 시설도 모양새도 멋지게 만들어 놓은 어린이도서관이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요즘이다. 그런 어린이도서관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이 책은 물론 어린이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하고 있는 기본적인 독서활동 외에 다양한 문화활동과 체험활동 등에 대한 알짜정보들로 가득하다. 문득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린이도서관에만 열심히 다녀도 사교육은 물론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교육이 보장될 것만 같아 지금 당장에라도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도서관으로 향하고 싶은 유혹이 피어오른다. 

그야말로, 누구 하나 딴지를 걸 이유조차 없는 '책'과 '독서'에 온갖 다양하고 유익한 체험활동과 참여가 가능한 활동에 대한 안내를 읽고 있자면 도서관이야말로 무분별한 사교육이 판치는 암울한 현실에서 한줄기 빛이 된듯 희망이 솟아난다.
참고도서에서 인용한 도서관 이용자들의 하나같은 도서관 예찬론은 나름의 이유때문에 평소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나를 주눅들게 한다. 여태껏 어린이도서관과 긴밀한 혹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감에 상심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사교육도 모든 아이들에게 독이 아니듯 어린이도서관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책과 독서가 상당부분 좋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듯 말이다. 그럼에도 어린이도서관 활용법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내 보기에 예찬론에 가까운 이 책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 (물론 내가 좀더 어린이도서관과 친했더라면 짜증보다는 수긍이 컸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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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네 방향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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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파란막대 파란상자> <두 사람> <생각> 등을 통해 독특한 매력을 느낀 이보나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로 하여금 브라보~를 외치게 하는 것은, 두툼한 책의 두께라든가 또는 시원스레 큼지막한 판형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이보나 작가의 독특함을 물씬 느끼게 하는 표지 그림과 '시간의 네 방향'이란 다소 의아한 제목에 '시간이 방향을 나타내는 걸까?' '시간이 가리키는 방향을 의미하는 걸까?' 이런저런 짐작으로 궁금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과연 '네 방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처음 한두 번 휘리릭~ 보고서는 그 깊이 있는 재미를 제대로 못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책은 '유럽의 동쪽을 굽이져 흐르는 비스와 강가에 아주 오래된 도시'에 있다는 시내 광장(네모반듯한)에 무려 600년 전에 세워진 커다란 시청 건물 위 네모난 시계탑에 얽힌(?) 이야기 또는 시계탑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네모난 시계탑의 네 면에 설치된 네 개의 시계판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어 네모난 광장의 동서남북으로 서 있는 집들에서 가장 잘 보인다. 그냥 창밖으로 보이는 시계를 보기만 하면 될테니까. 

시계탑이 있는 시청 건물이 무려 600년 전에 세워졌다고 하니 아마도 이 시계탑도 600년을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셈일까?  백 년이 지나고 또 백 년이 지나고 또 백 년이 지나고.... 또 지나도록 사람들은 창 너머 시계를 보듯 시계는 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무생물에 불과한 시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또 죽는 것을 지켜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관객임을 깨닫게 한다. 한 마디로, 유구한 시간 앞에서 인간은 생과 사, 희로애락을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우쳐 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이다. 

1500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동쪽 집의 부엌 풍경, 남쪽 집의 공방 풍경, 서쪽 집의 아이들 방 풍경, 북쪽 집의 거실 풍경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시시각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동서남북의 네 집에서 광장을 둘러싼 모든 집들, 그 시, 그 나라, 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그려보게 한다. 와우~ 순간 머리가 복잡해져 온다. 

그 뒤로 계속되는 1600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9시, 1700년 6월의 어느 날, 오후 1시, 1800년 8월 어느 날, 오후 5시, 1900년 10월 어느 날, 저녁 8시, 2000년 12월 31일, 자정.....의 이야기는 무려 600년에 걸쳐 같은 공간에서 그러나 다른 계절과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시계(시간)은 이야기한다.  

'똑같은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빨리 흐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치 느리게 가요.(본문 9쪽)'

'한 시, 두 시, 여덟 시 반, 열두 시 십오 분...... 시계가 가리키는 이름들은 몇백 년 동안 똑같아요. 하지만 그 시간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 한 번뿐인 시간들이에요.(본문 11쪽)'

시간... 그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 바로 한 번 지나면 되돌릴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이 아닐까. 또 부자건 가난뱅이이건 어른이건 아이이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공평한 시간. 그 시간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문득, 광장의 시계탑에 걸린 시계라는 관객 앞에서 배우가 되어 연기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 우리집은 시계탑의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장소는 거실이고, 시간은 2010년 4월 어느 날, 오후 8시 무렵, 우리의 모습은 딸아이는 중간고사 준비로 책상 앞에 앉아 시험준비로 열심이고, 엄마인 나는 그림책 <시간의 네 방향>을 보고 또 보면서 브라보!를 속으로 외치고 있다~^^ 

시간 혹은 시각의 중요한 성질, 절대적으로 공평하다는...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는.....것을 연극(어릴 때 하던 인형놀이같은?)처럼 보여주는 이 책은 정말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는 책이다. 

아닐게 아니라, 처음에는 이보나 작가의 특징적인 화려한 콜라쥬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책장을 넘기기 바빴으며, 두 번째에야 비로소 인형놀이(연극)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깨닫게 된 이 책은 도대체 몇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지 몇 번을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오호 이런..... 내 눈썰미가 없는 탓인지 그 인물이 그 인물같으니 말이다. 

여태껏 보았던 그 어느 작품보다 화려한 콜라쥬로 나의 시원찮은 눈썰미를 탓하게 하는 이 그림책은 비스와 강가의 오랜 도시의 역사(짐작컨대 폴란드)와 곳곳에서 명화를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이보나 작가의 깜짝 출연이 반가운, 그야말로 브라보!다~ 

한 가지, 몇백 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모습이며 생활상이 그다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모습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문명의 발전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물론, 세심하게 살펴보면 미미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비스와 강가의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일까?)



겉표지와 속표지의 그림~
속표지의 그림은 나중에야 한 편의 연극을 보여주듯 펼쳐지는 이야기의 전개를 의미하는 '무대'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시간의 보편적인(특징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문구와 어린시절의 '인형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사람들의 한바탕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 위에서는 모두 여섯 편의 연극이 공연된다.
여섯 편의 연극은 100년을 주기로 계절은 물론 하루 중의 새벽-아침-오후-저녁-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시계탑이 바라보는 동쪽 집, 부엌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은 시대에 따라 제각각으로 펼쳐진다.
창너머로 보이는 시계탑은 항상 변함이 없으나 부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남쪽 집, 공방> 시계탑의 남쪽 집, 공방에는 가장 많은 변화가 있다.
제본 기술자-구두 공방- 시계 기술자- 모자 장인-사진가-그림책 화가의 작업실.... 등으로 화려한 변천사를 가진 공방의 모습이 펼쳐진다~
 


깜짝 반가운 사실!
작가인 이보나의 까메오 출연??
작업 중인 책상 위에 펼쳐진 <파란막대 파란상자>를 짐작케 하는 증거물(?)로 인해 창너머 시계탑을 바라보는 뒷모습의 여인이 다름아닌 이보나 작가임을 눈치채게 한다.

흠.. 이렇게 이보나 작가는 자신의 그림책에 등장인물로 깜짝 등장을 하시는군요. 아쉽게도 뒷모습이긴 하지만요. 그렇다면 벽에 걸린 사진은 작가의 어린시절의 모습??



<서쪽 집, 아이들 방>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 방엔 장난감이 가득하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게 마련이다.



<북쪽 집, 거실> 온 가족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간인 거실이 오랜 시간이 지난 2000년 12월 31일, 자정에는 호텔 방으로 바뀐 그곳에서 묵게 된 외국인이 500년 묵은 종, 투바데이가 흥겹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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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1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새로운 상상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가
최근에 출간 되었습니다.
 
장미 별장의 쥐
왕이메이 글, 천웨이 외 그림, 황선영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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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초록빛 표지에 가벼운 수채화 느낌이 물씬 풍겨나온다.
코 끝에 걸친듯한 안경은 한눈에 보기에도 돋보기임을 짐작케 하는 머리카락이 희끗한 할머니의 무릎에 앙증맞게 올라선 쥐가 아마도 '장미 별장의 쥐'인가보다. 

홀로 도시 밖 작은 별장에 살고 있는 장미 할머니는 혼자 살다 보니 말을 할 일조차 별로 없다. 그나마 상처 입은 달팽이나 새, 강아지, 젊은이를 돌봐준 적도 있었지만 모두들 상처가 낫자마자 별장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장미 할머니가 무척이나 쓸쓸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림마저도 이층 창가에서 떠나가는 달팽이와 강아지, 젊은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장미 할머니라니....... 

어느 해 겨울, 남의 집 쌀을 몰래 가져다 쌓아놓는 습성때문에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쌀톨이가 장미 할머니의 별장 문을 두드린다. 바퀴 마저 하나가 빠진 낡은 가방을 들고 나타난 쌀톨이에게 장미 할머니가 바란 것은 별장의 울타리와 대나무 발을 갉아먹지 말라는 것!
할머니의 식탁에 올라 앉아 할머니가 준비해놓은 빵을 맛나게 먹는 쌀톨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그윽한 눈빛에는 추운 겨울을 함께 보낼 친구가 생겨서 기쁜 할머니의 마음이 온전히 담겨있다. 

에궁.. 그런데 지하 창고에서 겨울을 보낸 쌀톨이가 봄이 된 어느 날부터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남의 집에서 가져온 쌀로 술을 담아 배가 부르도록 먹느라 장미 할머니와 밥도 같이 먹지 않는 쌀톨이.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날파리가 바글거리는 전등불 옆에서 잠들어 있는 쌀톨이의 모습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더욱이 잼을 가지러 지하 창고에 내려간 장미 할머니에게 발견된 쌀톨이는 죽은 걸로 오인되어 자칫 구덩이에 묻힐 뻔 한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장미 할머니는 쌀톨이가 죽지 않은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여겼을테지만, 쌀톨이는 자기를 위해 울어주는 할머니에게 감동하여 술까지 끊게 된다. 그야말로 감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장미 할머니의 별장 문을 두드리는 고양이 뚱이. 하지만 이미 장미 별장에는 쌀톨이가 살고 있으니 집 안으로 들어오기란 쉽지 않을 터.. 역시나 장미 할머니는 뚱이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심술이 난 뚱이는 지붕에 올라가 쾅쾅거리기며 할머니를 괴롭힌다.
달빛에 비친 뚱이의 커다란 그림자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결코 그런 뚱이를 나무라지 않는 장미 할머니.
'사실, 어두운 밤에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지요.'라는 글귀에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차라리, 뚱이의 심술이 외로운 것보다 낫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심술을 부리는 뚱이의 마음이 몹시도 외로운 탓이라 생각하는 걸까? 

문득, 처음 책을 읽으며 장미 별장에 혼자서 살아가면서 이따금 다친 동물이나 사람들을 돌봐주는 장미 할머니가 무척 외로울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쩌면 할머니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미 외로움을 초월하고 있었을지도........상처 입은 동물들과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며 그들의 외로울 지도 모를 마음까지도 치료해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장미 할머니는 결코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뚱이에게 장미 별장을 양보하고 별장을 떠났던 쌀톨이가 장미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돌아와 장미 할머니가 없는 장미 별장을 꼼짝 않고 지키고 있는 뚱이와 함께 앉아 긴긴 눈물을 흘리는 뒷모습에 장미 할머니의 말 없는 그러나 넉넉한 사랑이 몹시도 진~하게 느껴진다.



장미 별장에서 홀로 사는 장미 할머니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은 상처 입은 달팽이와 새, 강아지 그리고 젊은이를 돌봐 주던 시간... 그러나, 상처가 낫자마자 모두들 별장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겨울, 장미 별장을 찾아온 쌀톨이를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장미 할머니. 왠지 둘의 모습이 닮아있다.^^
겨울을 보내기 위해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쌀톨이를 바라보는 장미 할머니의 표정에 섭섭함이 느껴진다.



술에 취해 잠든 쌀톨이를 죽은 줄만 알고 새하얀 장미 넝쿨 아래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려는 장미 할머니.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하고 두 손 고이 쌀톨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가엔 눈물이 흐른다.



장미 할머니가 받아주지 않자 화가난 고양이 뚱이는 별장의 지붕 위에 올라가 쿵쾅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달빛에 비친 커다란 그림자로 장미 할머니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장미 할머니는 그런 뚱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어두운 밤에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란 것을 이미 알기에....... 

장미 울타리에 올라가 꽃잎을 마구 뜯다가 가시에 찔려 다친 뚱이의 발을 치료해 주는 장미 할머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쌀톨이가 뚱이에게 장미 할머니를 양보라도 하듯 낡은 가방을 끌고 장미 별장을 떠난다.
그러나 쌀톨이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장미 할머니랑 뚱이랑 쌀톨이랑 왜 함께 살면 안 되는 거지??)



떠돌아 다니면서도 장미 할머니를 그리워 하며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쌀톨이와 장미 넝쿨 아래 꼼짝 않고 앉아 할머니의 장미 별장을 지키고 있는 뚱이가 왠지 닮은 모습이다.



이제 더 이상 장미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쌀톨이가 뚱이 옆에 앉아 긴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가슴이 짠~해져 온다.
쌀톨이와 뚱이를 저토록 울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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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어린이 도서관 101% 활용법, 쫑나지 않는 해충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쫑, 나지 않는 해충 이야기 - 해충의 역사 지식세포 시리즈 2
꿈비행 글.그림 / 반디출판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흠.. '쫑'나지 않는 해충 이야기란 제목이 몹시도 감각적(직접적?)으로 다가와 왠지 지구상에서 해충이 사라지는 일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마구마구 느껴진다. 

'해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언뜻 파리, 모기가 제일 먼저 떠올라 <차례>를 살펴보니 아닌게아니라 바퀴와 함께 '주변에 흔히 보는 해충들'에 떡!하니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꼭꼭 숨어 사는 해충들>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벼룩, 빈대가 <떼 지어 몰려다니는 해충들>로는 메뚜기, 멸구, 흰개미가 제각각 금,은,동메달(?)을 차지한 선수처럼 순위에 올라있다. 
아닌게 아니라, 하나같이 우리의 생활에서 무엇하나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야말로 '해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글'을 쓴 신이현 박사는 '해충이라 할지라도 미래에 유익한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어린이들 스스로 단순히 해충으로 보지 않는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라고 쓰고 있어 과연 해충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절로 밀려왔다.
과연 해충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이로움이란 무엇일까? 

해충 중의 최고의 해충을 뽑는 해충왕어워드가 하수구의 전당에서 열린다는 설정이 다소 코믹한데, 이름을 알 수 없는 벼룩의 사회와 해충계의 전설 나메뚝 옹이 문답형식을 빌어 아홉 가지의 해충을 낱낱이 파헤쳐 과연 누가 해충왕의 최고인지를 가름하는 한 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화석이나 역사적 기록과 사건 등 시간을 거슬러 인류의 출연보다 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해충의 역사는 물론 해충이 인간들에게 미친 악영향과 해충에 맞서는 인간들의 투쟁과 같은 노력이 나메뚝 옹의 해설로 여지없이 밝혀지는데....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도 등장했다는 바퀴는 물론 세계 재패의 꿈마저 무너뜨린 말라리아모기,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을 있게한 이, 유럽을 공포의 페스트로 벌벌 떨게 한 벼룩, 고대 철학자들을 괴롭혔던 빈대, 성서에도 등장하는 메뚜기, 쌀을 주식으로 삼는 아시아 국가의 골치거리 멸구, 우리의 목조로 된 문화재를 위협하는 흰개미까지 어느 것 하나 이쁘게 봐줄 수 없는 해충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크릿 파일>코너에서는 그래도 해충들에게서 터럭만큼의 이쁜 구석을 찾으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배설하는 불결한 바퀴를 자연의 분해자로서의 본능에 충실하다고 추켜세우는 것이나 애완용 바퀴를 키우고, 메뚜기를 식량으로 이용하고, 흰개미에게서 건축기술을 배운다고는 하지만 해충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그야말로 세 발의 피가 아닐까..... 

해충에게서 인류의 이로움을 찾는 것이 역시나 무리일까? 아니면 아직까지는 가상에 불과한 것일까? 
책 뒤에 마련된 <다자바 박사의 해충다잡았쇼>코너에 소개된 해충퇴치법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이색적(?)으로 까지 느껴지는 <해충의 한국사 연표>와 <해충의 세계사 연표> 역시 보고 또 보아도 해충은 해충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몇 가지 이로운 점때문에 해로운 것이 더 많은 해충들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지 않은가?

곧 무더운 여름과 함께 우리를 괴롭힐 파리와 모기와 도대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지...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여름이 끔찍하다.

 

<차례> 제목만 보아도 끔찍한 해충들~
       세균과 불결의 화신, 바퀴/ 열병 세계의 대통령, 모기/ 최고의 질병 전도사, 파리/ 발진 티푸스의 독재자, 이/ 페스트의 검은 마왕, 벼룩/ 알레르기계의 거성, 빈대/ 농경지 최강의 불한당, 메뚜기/ 세상 모든 벼들의 킬러, 멸구/ 목조 건물의 테러리스트, 흰개미



<본문의 구성1> 사진과 함께 분류와 특징을 담고 있는 해충왕 어워드의 후보 해충들~



<본문의 구성2> 벼룩 아나운서와 나메뚝 옹의 해설로 진행되는 각 해충들의 역사와 생태 그리고 특징까지 샅샅이 담고 있다. 유용한 정보가 알찬 <지식세포 퐁퐁퐁> <시크릿 파일> <더 알고 싶다면?> 코너들~



<관련 자료들>   

- 스즈키 하루시게의 일본 풍속화- 모기장 안에 들어온 모기를 태워 죽이는 풍경
- 벨기에 화가 얀 시베레츠히의 <농장>- 아이의 머릿니를 잡아주는 어머니
-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서압 원정을 묘사한 조각품- 수도 콘스탄티노플로부터 페스트가 전파
- 1860년대 독일의 <브렘 동물기>에 실린 메뚜기 재앙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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