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3 - 금융 하이 프런티어 화폐전쟁 3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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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제한적이라 여겼던 달러의 팽창에 제동이 걸리는 것일까? 탈출구가 없다는 위기론이 급상승중이다. 이미 2차 양적완화정책에 대한 필요성이 충분히 무르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다. 6조원에 달하는 단기주식융자금액이 새로운 폭탄으로 지목되고 있으나 한국자본시장은 ATM(현금인출기)라는 불명예를 기록 중이다. 유동성이 넘치는 것은 좋으나 그 도가 지나치면 새로운 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나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한국금융의 갈대와 같은 현실을 지켜보면 정말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 잘난 정책지도자들은 위기 때 마다 무얼 하고 있다는 말인가?

한국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취약하다. 자본규모도 작거니와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환율에 대한 공포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는 환율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향후 폭락하는 달러에 대비한 미국의 정책에 따라 한국경제도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폭락 전조가 무서운 것은 그들이 펼쳐낼 경제정책에 대한 변수가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정부는 고공비행을 하는 물가를 잡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최근의 대외적인 위기덕분에 또 한 번의 물가상승이라는 단기위기를 넘어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물가에 대해선 두루뭉술한 정책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미국이 통화팽창으로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고 위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듯이 우리 역시 위기를 뒤로 미루기만 하는 것은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하는 전조 가될 가능성이 높다.

폭풍이 몰아치는 하루가 지속된다. 뜨거운 태양이 지속될 것 만 같았는데 어느새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화폐전쟁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이념전쟁은 여전히 세계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통화의 흐름을 놓치는 기업이나 국가는 즉시 ‘부도’라는 위기에 직면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가 21세기 벽두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미 18,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자들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치열한 통화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동아시아의 통화정책에 대해선 그리도 몰랐던 것일까? 아마도 1949년 공산화된 중국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청나라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세계경제의 수출과 수입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상업적 국가였다. 하지만 영국이 주축이 된 ‘아편무역’은 중국이 그동안 이룩해놓은 역사와 경제를 하루아침에 몰락시켜버렸다. 화폐전쟁 3는 당시 중국 최고의 부자였던 호설암을 무너뜨린 동정산방과 그 배후 홍콩상하이 은행을 필두로 동아시아 화폐전쟁의 서막을 열어젖힌다.

화폐전쟁의 저자 쏭홍빙은 왜 서구에 비해 발전된 금융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중국이 글로벌 제국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까 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은 쏭홍빙의 말대로 유럽열강이 가장 탐내는 수출품과 은을 수입하는 최고의 국가였다. 하지만 중국이 글로벌 제국이 되지 못했던 원인은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었다. 양매판은 외국정부나 기관과 청과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독자적인 특수세력이었다. 혼란의 틈을 타 그들이 외국은행과 손을 잡고 외국은행이나 기관의 앞잡이가 되는 것은 무척 쉬운 돈벌이 수단이었다. 결국 양매판은 국가를 좌우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자 국가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돌변했다. 쏭홍빙은 중국경제의 실패가 곧 청일전쟁, 청러전쟁의 패망으로 이어졌고 이는 동아시아에 커다란 짐을 만들어놓았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해 메이지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일본의 근대경제를 무척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국가를 우선시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통화정책이 일본의 선진국화를 앞당겼다는데 무척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가 펼치는 중국의 화폐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장제스의 실권, 마오쩌민의 공성계든 중국근대사는 전쟁으로 얼룩졌지만 결국 그 중심에 화폐가 지배적이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앞선 두권의 화폐전쟁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자들의 화폐음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3권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일본의 통화정책이 중심이다. 그는 최근에 급격하게 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를 한걸은 뒤로 물러서 바라보며 기축통화로서의 위엔화의 위상을 높일 것을 촉구한다. 그 역시 중국인의 한사람으로 과거 화려했던 중국의 금융시장재패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줄기차게 금융 하이 프론티어와 인민폐의 국제화를 이야기한다.

최근의 위기덕분에 온스당 금 가격이 17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이제 금의 단기고점을 예측한다는 것은 효용성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은’이다. 이미 작년부터 중국은 은 사재기를 통해 엄청난 은을 모았다고 한다. 덕분에 은 가격도 연일 고공비행중이다. 헌데 아직까지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15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쏭홍빙은 은의 가치가 재평가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은은 금과는 달리 산업용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은은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금속들 중의 하나다. 중국이 은은 화폐로 사용했던 적이 불과 200년 전이다. 은에 대한 중국의 집착이 그들을 어두운 과거로 몰아세웠지만 쏭홍빙은 은을 새로운 가치의 실현으로 평가하고 있다. 쏭홍빙은 화페전쟁 4편으로 한국의 금융시장을 주제로 선택했다. 화폐전쟁은 한권의 소설 같은 책이지만 우리들에게 여느 역사서나 경제서 못지않은 무거운 교훈을 암시한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경제학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지나친 욕심일까?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우리들이 선택해야할 부분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위기의 순간, 쏭홍빙의 화폐전쟁을 들추어보는 것도 큰 힘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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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의 바다에 빠져라 경제공부는 경제저축이다 2
최진기 지음 / 스마트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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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만원이라도 투자를 해봐야 조금이라도 경제기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익이 없는 곳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경제학적 정의가 사회정의로 대두된 현대사회에서 돈의 흐름은 그 어떤 명제보다 우선권을 가진다. 사회정의가 돈에 치우친다는 것이 너무 지나친 판단일까? 물론 사회는 돈의 흐름만으로 구성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돈에 좌우지 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돈의 흐름을 지배하는 개인이나 조직이 세상의 중심에 서고 있다.

한국형 부자의 원형을 부동산이라고 한다. 부동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문제를 쉽게 엿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직후 한국부동산은 커다란 위기를 맞았으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완화로 연착륙을 기대하게했다. 뉴타운의 건립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힘차게 요동치려던 부동산은 갑자기 땅으로 꺼져버렸다. 이유는 과도한 거품에 대한 두려움이 정부의 용인술(?)마저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에 물린 가계대출이 사상최대를 육박한다. 최근에 급격한 주식하락을 경험한 개인투자자들은 신용대출을 앞세워 연일 주식을 사들인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를 창출해낸다. 즉,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가치나 문화적 이해보다 돈의 흐름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기사의 바다에 빠져라.’ 유명강사로 사회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최진기’님의 경제학 입문서다. 그의 강의는 경제학보단 사회과학에 치중된 느낌을 받는다. 경제학의 태생적 신분이 사회과학의 일부였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에 그가 주목한 부분은 ‘경제기사’다. 눈뜨면 온갖 통계학적 수치가 난무하니 도대체 세상의 어디에 중심을 맞추어야 하는가? 현대사회는 새로운 경제학적 용어에 둘러싸여있다. 우리가 CDS니 리보금리니, KIKO와 같은 파생상품을 알아야할 하등에 이유가 없다. 하지만 관심을 같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커다란 비용을 감수해야한다. 그렇다면 경제기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는 것일까? 저자의 선택은 관심이다. 단편적인 정보를 볼 수 있는 스마트 폰보다는 전문을 이해할 수 있는 신문을 추천한다. 특히 경제신문은 타이틀만 관심을 갖더라도 세상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경제학적 용어는 ‘금리’다. 돈의 이자로도 불리는 금리를 이해하는 것은 경제기사의 원리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금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이자보다도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통화를 창출하거나 제어한다. 금리를 제어하는 곳은 정부와 한국은행과 같은 기관이지만 금리를 평가하는 곳은 시장이다. 최근의 위기로 한국의 외평채 가산금리가 가파르게 오른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부관계자들은 소액규모에 그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가계대출에 대한 위험성을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부채는 외국 자본가들이 보기에 한국 역시 언제든 위기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사들에 대한 정부나 기관들의 태도와 국민들의 반응이다. 결국 경제기사를 해석하는 방법은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금이나 원유에 대한 시각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일 오를 주식을 미리 안다면 그 사람은 평생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 어느 누구도 내일, 심지어는 1분 후의 인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신은 가난과 부라는 차별을 인간에게 부여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측능력만큼은 평등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고 남들보다 빨리 자본의 흐름을 잡는 사람이 있을까? 과거에는 내부자 거래나 독점적 권력을 이용해 미리 자본의 길목을 잡을 수 있었지만 정보가 넘치는 현대사회에선 ‘공정사회’라는 이름으로 어떠한 독점적 권한도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보의 판단여부다. 정보의 진위 못지않게 어떤 정보가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지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경제는 현대사 100년을 통틀러 전매미문의 사건이 진행 중이다. 덕분에 신문을 비롯한 미디어들의 초점은 온통 경제기사에 집중되어있다. 세계경제를 이끌던 미국의 침체는 한국을 비롯한 수출위주의 국가들에겐 치명적인 암운으로 다가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의 지존이랄 수 있는 영국과 프랑스도 부채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도 않았던 문제들이 우리의 등을 칠 수 있는 건 글로벌 경제라는 간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기사를 아는 것은 돈을 벌거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하기보다는 버핏의 말처럼 자본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제기사의 바다에 빠져라.’ 바다에 빠져도 살아남기 위한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탁월한 강의와 알기 쉬운 해설, 최진기님의 특별한 경제입문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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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경제 - 시대의 지성 13인이 탐욕의 시대를 고발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 마이클 루이스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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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이렇게 복잡한 학문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원래는 단순했지만 복잡한 인간사회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서일까? 경제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추구하고자했던 인류의 행복과 번영의 추구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간사회를 코너로 몰고 있다. 이제 경제학을 금융학의 대부로 불러서는 곤란할 것 같다. 오히려 정치나 사회과학, 심지어는 철학과 심리학을 겸비한 초대형 학문으로 평가해야 그 전모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순이다. 누가 이런 학문의 실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경제학의 그릇된 출발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서브프라임 사태 3년, 세계 금융가는 다시 한 번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의 위기 역시 노동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위기의 본질은 일반 대중을 향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낙관론이 사라지고 비관론이 자리를 채웠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국채가격은 이상이 없다며 이번 위기가 단발성에 그칠 것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이번 위기를 조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우의 폭락과 함께 시작된 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급격한 실물경기의 하락에 따른 불안감의 확대다. 더불어 팽창적인 양적완화가 세계금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달러를 무제한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의 한계를 연상시키는 이번 위기의 본질은 빚 위에 놓인 자본주의의 허상이다.

유럽발 위기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과도한 부채문제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빚을 끌어다 사용하고 과도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예상했던 위기의 범위가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동아시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해지펀드들의 장난일까?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이번의 위기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위기를 좌초한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선 일말의 고찰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최근에 1000조가 넘는 가계부채 때문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빚을 지려는 가게, 위험을 간파한 금융당국, 설왕설래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느슨한 금융정책과 무분별한 대출은 자본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경제의 비상을 꿈꾸는 자들은 눈이 멀어버렸다. 10년은커녕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탐욕에 눈이 멀어버렸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론이 심상치 않다. 특별한 대안이 없음에도 자본주의를 선택한 인류의 목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석학들은 무분별하게 커져가는 경제학의 효용성에 제동을 걸고 있다. 경제학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일 뿐 그 이상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서브프라임은 다수의 묵인(?)하에 직접적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누구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금융장세를 깰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눈먼 자들의 경제’는 늦게나마 위기의 원인을 파악해보고 반복되는 위기의 중심은 무엇인지, 최근에 일어난 금융사건을 중심으로 소설보다 재미있게 금융이야기를 전개한다. 책은 총 4부로 베어스턴스의 몰락을 필두로 숨겨진 월스트리트의 내막을 파헤치는 1부와 핸리 폴슨과 어리석은 자본주의자들이 펼치는 엉뚱한 구제금융을 다룬 2부, 그리고 일반인들이 알 수 없었던 아이슬란드 부도와 하버드대의 재정위기를 다룬 3부, 폰지사기로 금융사기의 절정을 다룬 메이도프의 일대기를 4부로 엮으며 금융자본주의가 전달하는 위엄과 허상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스티글리츠와 니얼 퍼거슨등 당대의 석학들과 루이스를 비롯한 기자들이 중심이다.

월스트리트와 워싱턴DC의 넘치는 구제금융, 월가의 천문학적인 보너스, AIGFP의 신용부도스와프 판매등은 워낙 유명하기에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하버드대학의 재정논란은 상당히 뜻밖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파생상품의 덧에 걸려 커피한잔 공짜로 마시지 못하고 있다는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는 아무리 지성인인들, 자본의 탐욕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겨둔다. 그나마 천문학적인 기부가 가능하기에 하버드는 여전히 최고의 학부를 유지하고 있다. 메이도프 연대기는 한편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속이려면 자식까지 속여라.’ 이 역시 금융위기가 발발했기에 포착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문제는 가치의 변화가 일방적으로 흐른다는데 있다. 특히 돈에 대한 가치는 최우선적이며 최고의 우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경제학의 명제, 경제학은 눈이 멀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일순간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합리적이라는 시장의 논리도 지극히 이성적이라는 인간의 탐욕도 위기 앞에선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기의 금융은 인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금융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헤친 ‘눈 먼자들의 경제’ 그 르포르타주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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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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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부담스러웠을까, 효용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일까?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대중들로서는 반겨야할 일이지만 과연 부자나 기업들이 순순히 정부의 부탁(?)을 들어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래퍼곡선을 창안한 아서래퍼는 증세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위린 버핏을 위선자라 언급하며 두루뭉술한 정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래퍼의 이론은 돈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금이 줄어든다고 부자나 기업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간교하게 세금을 줄일 방법을 강구할 것이며 이는 정부가 목적한 증세의 기대효과와는 달리 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증세는 감세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래퍼는 버핏이 말로만 증세를 주장하지 말고 절대적인 세금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버핏의 위선적인 선행(?)을 꼬집는다. 워린버핏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제정책이 그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비는 경제성장의 주춧돌이다. 올바른 소비는 저축과 더불어 가계와 기업에 큰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무분별한 소비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소비는 인간의 한계점을 벗어나기 일쑤다. 흔히 탐욕이라 불리는 인간의 욕망은 항상 거대한 거품을 양산해왔다. 자유개발 경제체재 하에서의 소비는 성장의 견인 돌로 미덕이란 칭호까지 받아왔다. 하지만 과도한 소비를 떠받들고 있었던 건 부채뿐이었다. 제조업 지수의 하락, 실업률 상승, 소비지수 하락, 의심하지 않아도 미국경제의 침체는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닐까? 오히려 신용사회를 부추기며 과도한 부채를 권장한 정부와 기업의 입장은 더욱 애매모호하다.

성장 없는 경제는 죽은 것일까? 경제의 근원적인 목적은 오로지 성장에 대한 환상과 이윤추구뿐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파생금융상품의 난립이 성장에 그토록 필요한 도구였을까? 제조업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금융장세는 세계경제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든든한 배경을 완성시켜준 것은 소비를 통한 탐욕이었다. FRB와 미국정부는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찍어 시장에 풀면 경기가 저절로 회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토록 믿었던 시장의 역할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편협한 믿음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것이란 믿음 못지않게 미국인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을 일거에 무너뜨린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학의 배신’은 우리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실패를 거듭한다고 경제시스템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며 화폐경제의 불합리성 때문에 돌연 물물교환의 시대로 회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우선적으로 경제학적 명제를 새롭게 고찰할 필요를 느낀다. 그토록 믿었던 경제학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합리적인 시장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상황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빈과 부의 격차는 더욱 격심해지고 사회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우린 인간이 아닌 인격체로서 자본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시장자본주의는 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특권층을 위한 통제 권력으로 바뀌어버렸다. 통제적이고 일률적인 시스템 하에서 마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의 배신은 통치자가 되어버린 시장의 비합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한 이면에 감추어진 기업들의 반사회적 인격이 어떻게 공공재의 기능을 무너뜨리는지를 기업의 윤리관(?)과 대중의 무관심을 통해 직접적으로 고찰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경제학은 대중의 방관위에서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전환을 요구한다. 시장이나 돈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경제의 참다운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오직 이윤과 편익에 중심을 두었다면 이젠 경제학적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양적팽창으로 풀려는 것 보단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경제학이 탄생할 주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보고 가는 길은 정상이라 말하지만 대중이 보기에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경제학의 허상은 자신의 믿음만이 옳다고 우기는 ‘안톤의 실명’과 흡사하다. 대중의 눈을 무시하고 소수의 판단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정책적 논리는 그들 앞에 놓인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오직 경제학은 참다운 정치 기반에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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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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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스톰이 닥칠 것이다.’ 대표적인 비관론자 루비니 교수는 미국재정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한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일본의 장기침체, 무엇보다도 EU의 재정혼란은 루비니의 경고를 더욱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 재무장관 루빈은 루비니의 경고를 한방에 일축한다. 그는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로 미국재정을 좌우해온 인물이다. 재정에 관한한 루빈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지만 세계 언론은 루비니의 경고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 재정정책은 루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무엇이 우리들에게 좋은 것이 될지 알순없지만 ‘블랙스완’ 이라 일컫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언제든 우릴 파국으로 몰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이제 세계는 평평해진 단계를 넘어서 운명의 공동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섣부른 판단을 해본다. 과연 패권국 미국은 다시 한 번 황소처럼 세계를 리드해 갈 수 있을까? 마치 무주공산인 듯한 세계정세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만리장성에 갇혀있는 듯하다. 세계경제는 중국만을 바라보고 있다. 성장과 부패라는 극과극의 모습을 지닌 중국은 마치 블랙홀처럼 달러와 원자재를 흡수한다. 이미 제조업과 금융서비스업으로 재미를 본 미국처럼 그들도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엄청난 도박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담비사 모요는 ‘미국의 파산하는 날’을 통해 거시경제학을 중심으로 미국이 어떻게 쓰러져가고 있는지를 꾸밈없이 서술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그녀는 미국의 정체성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제 그 과도한 탐욕과 가치관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산시키고 있는지 역사적 자료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담비사는 자본주의로서 미국은 파산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섬뜩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자본의 분배’ 에 관한 그녀의 이론은 잘못된 미국의 재정정책을 과감히 깨부순다. 자본이 고유의 목적인 생산적인 투자를 벗어나 주택과 같은 수익성이 낮은 ‘편의적 자산’으로 대체되었고 가치가 없는 주택가격을 올리기 위해 무모하게 펼친 금융정책이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택을 부양하기위해 특별한 금융정책을 시도했다. 저금리, 무분별한 대출, 신용카드등을 이용한 무제한적인 ‘빚’을 양산한 것이다. 빚의 마지막은 어디일까? 금융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파생상품은 빚의 마지막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었을까? 무제한적인 달러공급은 미국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뇌관이다. 중국이 이타적이라 미국을 위해 달러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중국 역시 생산품을 판매하기위한 공급처가 필요할 것이며 이는 미국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는데 더할나위없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못할 치킨게임이 될 확률이 크다. 최소한 그들은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다. 드러나진 않았어도 그들의 성공이 ‘전쟁’과 관계가 없다고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담비요는 전쟁으로 부유해진 국가가 힘을 잃어간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패권국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이었다. 당시 미국을 일으켰던 주인공은 ‘제조업’이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의 위상은 영원히 지속될 아메리카 드림을 완성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추구해왔던 세계화는 일순간 세계를 장악할 순 있었지만 신흥국가들의 성장은 더 이상 미국의 독주와 독단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2008년, 세계는 분명하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담비사는 경제학자다. 그녀의 이론은 경제학이 추구하는 시장의 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시장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후 미국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통계수치는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정계를 움직이고 있는 관료들의 목소리가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담비요의 도전을 보면서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미국에 좋은 것이면 한국에도 좋은 것일까? 미국정책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깝지만 이를 무분별하게 따라하는 풍토는 더욱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미국은 진정 파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 G2를 중심으로 한 담비요의 경제정책, 미국 파산시나리오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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