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의 기술 -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판단력
이대진 지음 / 반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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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은 예술과 같다. 패턴을 분석하고 가능성에 올인한다. 패턴은 경험의 축적과 시계열에 의해 유추가 가능하다. 패턴분석은 직관에 가깝다. 하지만 직관만으로 예측의 확률을 높일 수 없다. AI모델이 형성되면서 수많은 변수들을 통제하고 보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AI모델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전문가들조차 AI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AI모델링을 믿을 수 있는가? AI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특히 데이터 의존도가 강한 직업일수록 AI모델링 선호가 강하다. AI는 자료수집과 요약, 보고서를 기존보다 훨씬 바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협업하고 의사소통하는 시간이 현저히 단축된다. 반면에 작업의 반경은 훨씬 늘어났다. 반갑지만은 않은 결과다. AI의 등장과 함께 가장 각광받는 분야가 예측기술이다.

 

저자는 글로벌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과거엔 해운사 선물트레이너와 싱가포르 S&P 글로벌에너지의 리서치 디렉터로 시장분석과 예측을 주도했다. 선물은 현물과는 달리 미래의 특정시점에 대한 거래다. 예측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거래를 실현해야한다. 기후, 지형, 인구, 전쟁과 같은 다양한 변수가 거래를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거래에 따라 기업은 물론 국가의 운명마저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직업적 선택과 판단을 중심으로 AI를 접목한 12가지의 예측 원칙을 제시한다. 저자는 업무 특성상 AI의 도움을 누구보다 많이 받는다. 수개월 걸렸던 정보수집과 모델링, 협업이 순식간에 이루어져 보다 빠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반면에 과도한 정보량이나 빠른 속도에 비해 인간이 필요한 영역도 부각되었다. 맥락을 읽고 결과를 의심하고, 서로 다른 신호를 연결하며, 자신의 판단으로 책임지는 능력, 인간이 AI를 앞설 수 있는 지점인 휴먼 엣지다.

 

AI시대, 우린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지금과는 판이한 환경이 사회를 구성할 것이며,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에 적응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시장의 신호조차 바뀌진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시장은 시장 결정권자들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스템, 프레임, 알고리즘이 구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환경을 구축할 것이다. 시장은 이미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자들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AI가 발전하더라도 이익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판에서 누가 이익을 보는가? 누구를 위해 이 시스템이 고안되었는가? 프레임은 어떻게 짜여있는가? 이익구조를 파헤치면 충분한 예측이 가능하다. 저자는 결정권자의 인센티브를 분석하는데, 세 차원을 소개한다. 첫째, 시장을 움직이는 결정권자는 누구인가? 두 번째, 이익은 무엇이고 손해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시장이 다음에 어떻게 움직일까? 모든 위기와 충돌 갈등의 해법은 충돌자간의 인센티브가 정렬될 때 예측이 가능하다.

 

이란 전쟁의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은 왜 전쟁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것일까? 미국과 이란, 주변국을 둘러싼 첨예한 이권다툼은 전쟁의 양상과는 달리 각국의 인센티브를 벗어날 수 없다. 호르무즈의 긴장은 중국에너지의 동맥을 죄는 레버다. 반면 중국은 할인된 원유를 공급받기에 제재해제를 반길 이유가 없다. 미중은 서로의 인센티브에 반응했을 뿐이다. 반면 유가제재로 인한 수입국들은 아무런 대가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시장에서 무엇을 예측하든, 인센티브와 동기가 중심에 있다. 시장 결정권자의 이익은 시장의 방향과 흐름을 결정한다. 그들의 이익과 손해를 주시하고, 인센티브가 정렬된다면 시장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일 것이다.

 

신뢰는 가중치를 의미한다. 누구를 얼마나 믿을지, 그 무게를 다는 것, AI시대의 GIGO. 월스트리트 트레이너 출신 나심 탈레브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때 무엇을 걸고 있는지 봐야한다는 뜻을 지닌 Skin in the Game이란 책을 출간했다. 판단하다, 숙고하다란 의미를 포함한 가중치는 말의 의미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일지 저울질 하는 것이다.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데 정작 내용이나 행동이 형편없다면 신뢰가중치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가중치, 즉 스킨이 클수록 말에 신중해진다. 가중치를 통한 위험신호를 읽는 것은 예측의 기술이다. 이 발언은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가. 발언자의 이익은 무엇인가, 발언자가 자기 돈, 자기 평판을 걸고 있는가? 세 원칙은 신뢰가중치를 판단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정보의 대부분은 신뢰가중치 극히 낮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GIGOAI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AI는 사람의 오류를 더 빠르고 매끄럽게 재생산한다. AI의 신뢰가중치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AI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마음이 분주해진다. 기술발전에 비해 턱없이 뒤떨어진 직업능력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AI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패턴화하며 반복적인 계산을 통해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정확도는 빠르게 늘어간다. 예측은 이제 변수가 아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빅테크 기업들 역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고 있지 않는가? 시장 결정권자의 이익, 신뢰 가중치, 컨센서스와 펀더멘탈, 아이디어는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 인간은 AI가 보지 못하는 데이터, 직관을 활용해야한다. 직관은 인간만의 적극적 사고방법이다. 본 책은 일맥상통한 예측의 기술을 현장의 언어로 풀어낸다. 반면에 인간에 필요한 분석도 빼놓지 않는다. AI는 더 빠르고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예측을 보정하고 분석하며 판단하는 최종 결정권자의 위치를 차지해야한다. AI와 인간의 공존은 예측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확산되지 않을까? 본 책을 통해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는 12가지의 원칙을 만나본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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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조작되는 것이다 시대철학 2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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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괴벨스, 히틀러의 2인자이자, 프로파간다의 최선봉자, 홀로코스트의 주인공인 희대의 전쟁광이자, 선동가다. 평생을 주도했던 광신적 믿음과는 달리 병약한 신체를 지닌 채 평범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다. 그를 변화시킨 건 전쟁 후 독일인의 실상이었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은 엄청난 부채와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렸다. 가난과 추락, 버려짐에 대한 공포가 생존을 짓눌렀다. 정치적 혼란이 반복되면서 삶의 가치마저 흔들리며 매 끼니를 걱정해야했다. 당시 문헌학박사였던 괴벨스는 혁명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는 폭력적이지만 카리스마가 넘치는 나치당의 히틀러를 눈여겨보았다. 선동적이고 파괴적이었던 히틀러는 혁명에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나치당에 입당한 괴벨스는 히틀러의 오른팔로 전 방위로 전쟁을 지휘하며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대중은 진리가 아니라 맹신할 우상을 갈망한다.’ 진리는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고통스러운 자기성찰을 강제한다. 대중은 자신의 짐을 대신 짊어질 우상을 갈망했다. 모든 짐을 자신이 짊어지겠다는 우상, 히틀러의 등장은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괴벨스의 작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상을 인정한 대중은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며 무릎을 꿇었다. 대중은 스스로 우상을 지어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히틀러에게 신성을 부여했다. 합리적 의심이 사라진 우상 앞에 권력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괴벨스가 기획한 총통신화는 모든 의심과 의혹을 멈추게 만들었다. 우상은 실수하지 않는다. 실패는 평범한 인간의 몫이다. 괴벨스의 철저한 조작과 논리는 반유대주의를 통해 가장 혐오스러운 시대를 거치게 된다. 대중이 의지를 잃었을 때 세상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조그만 흔들림에도 감정이 폭발한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논리보단 내재적 불안과 두려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괴벨스는 두려움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통치수단임을 깨달았다. 불안과 공포는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한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시각적 효과가 훨씬 뛰어난 각인효과를 가져온다. 한 번의 발언보다 수천 번의 반복적 언어와 행동이 신념을 바꾸고 믿음을 확정한다. 괴벨스는 다양한 선전광고를 통해 대중여론을 바꿔갔다. 불안에 싸인 대중은 대체수단을 찾는다. 진실과 사실, 논리적 증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단순한 구호가 마음을 끌어당기고 대중의 행동을 구축한다. 같은 공간, 같은 구호, 같은 외침은 괴벨스 특유의 선전과 함께 독일인의 감정을 자극하며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우상의 갈망, 본능적 두려움, 치명적인 약점, 분노와 증오, 단호한 구호, 대중은 괴벨스와 히틀러의 농간과 세뇌에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게 된다.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탈취하는 것이다. 권력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오직 손을 뻗어 빼앗는 자의 것이다. 민주주의 권력은 너무 이상적이다. 하지만 권력의 이면엔 무수한 갈등과 시기와 질투, 혐오와 분노가 내재되어있다. 권력을 잡는다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권력누수에 대한 불안과 집권에 대한 의문이 꼬리처럼 물고 늘어져 권력자의 의지를 무너뜨린다. 권력은 만들어진다. 만들어진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빚어진다는 뜻이다. 빚어지는 권력은 점토와 같다. 점토엔 지문이 새겨진다. 모든 권력엔 손댄 자의 지문이 남아있다. 지문의 주인이 곧 권력의 주인인 것이다. 모든 권력은 대가를 요구하며 언젠가 지불해야할 몫으로 남아있다. 모든 권력자가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 믿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AI의 등장과 함께 가장 많이 통용되는 단어가 알고리즘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심리적 행동은 일생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다. 대중의 알고리즘을 넘어 개인의 알고리즘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우린 이미 국가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통해 일생을 보낸다. 국가는 규정과 규범을 정하고 범위를 한정하며 강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한다. 프레임은 사회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SNS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타인의 프레임에 종속시킨다. 비교, 경쟁, 타인의 시선은 자신을 가두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권력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권력 욕구는 본능적이다. 반면 권력에 대한 이해와 생각, 태도에 따라 공동체의 삶이 바뀔 수 있다. 본 책은 괴벨스의 권력찬탈에 대한 뛰어난 예지를 바탕으로 현대사회, 권력구조를 파헤친다.

 

선천적 병약함과 작은 외모의 독일인은 어떻게 대중을 그토록 처참하게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었을까? 전쟁광이라 하기에 그는 너무도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괴벨스는 전쟁 막바지에 자녀들을 독살한 후 자살했다. 히틀러와의 조우, 광범위한 선전과 대중세뇌, 권력의 내외적 조건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했던 괴벨스의 마지막은 너무도 허망하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은 권력의 무상함을 일컫는 고사 성어다. 역사는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권력을 찬탈하려는 욕구는 변함이 없다. 괴벨스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시대와 환경, 자신의 경험이 만든 시대의 괴물에 가깝다. 우리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든 권력을 차지하려는 괴물이 등장할 수 있다. 어떻게 대중은 그토록 쉽게 한 인간의 프레임에 빠져들 수 있는가? 저자는 현대사회의 조직구조를 통해 권력의 향방을 유추해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은 자신의 의지인가. 타인의 계산으로 시작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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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뿐인 내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한창욱 지음 / 정민미디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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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영생을 주장하는 종교나 신앙은 인생을 영원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생리학과 물리학, 유전학은 인생은 한번뿐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영혼을 갈망한다. 이대로 세상에서 잊히거나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번 뿐인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은 시절, 그토록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주변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은 참으로 변하지 않고 흐른다. 인간은 주변의 모든 것을 의인화하여 자신에 맞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공간속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흐름을 측정하기 위한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인간을 종속하고, 변화시키며 삶의 유한성을 확인한다. 시간은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통찰되고 해석되어왔다. 그들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했을까? 시간은 인생을 직시하는 첫걸음이다.

 

시간은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이 있다. 천체의 움직임이나 세월의 변화를 측정해 월, 일을 계산하는 것이 객관적 시간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주관적 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변화가 일어나는 삶의 무대라 해석했다. 칸트는 우리 머릿속에서 빚어지는 주관적인 틀로 해석했고 하이데거는 시간의 본질을 우리가 무대 위에서 어떤 춤을 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에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곳에 투자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이다를 각인시켰다. 뉴턴은 우주에서의 절대시간을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은 중력에 의해 왜곡되고 느리게 흘러간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사고의 범위를 우주로 확장시켰다. 시간은 고정적이지 않다. 남은 시간이 자신이 담을 인생의 몫이다. 시간이 풍족하다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시간을 넘어선 삶이 충족된다.

 

부자의 선택을 따라하면 풍요로운 인생이 보장될까? 욕망을 채우면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하고 원하는 인생을 만들 수 있을까? 눈앞의 욕망은 마음을 흔든다. 지금 갖지 않으면 손해 볼 것 같은 본능이 포기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지만 결국 탈진 해 죽고 마는 농부의 예를 통해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현대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국인은 아파트로 산다. 거대한 자본이 얹힌 콘크리트 빌딩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농부, 파홈의 욕심과 다르지 않다. 파홈은 3아르신(2미터)에 묻혔다. 자산에 대한 사회적 배경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지만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았다. 부자보다 멋진 인생은 많다. 더군다나 인생은 자신의 가치나 의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선택의 기준이 변하면 욕구와 행복의 조건도 바꿀 수 있다. 현인들의 주장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풍부한 체험을 해라, 그리고 선행을 베풀며 살아라. 삶은 물리적으론 덧없을지 몰라도 내면은 외면적 욕구 못지않게 인정받고 존중받고픈 자아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이다.

 

그러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은 변수로 가득하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정확히 알 고 있다고 자부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가? 인간의 시선은 대부분 타인에 묶여있다. 민감하고 예민하지만 본능적이다. 생각이 다를지라도 비슷한 행동이 반복되면 거부하기 어렵다. 정체성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하지만 무엇이 자신을 규정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무엇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내 삶의 답을 찾는 조용한 질문들은 가장 어려운 성찰과정이다. 하지만 누구도 벗어날 수도 피해갈수도 없다. 한번 뿐인 삶을 제대로 살기위한 자신만의 노력이 곧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치로 세상을 저울질하는 순간,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 세상이 바로 보인다.

 

본 책은 내 삶을 찾는 조용한 질문들,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심리 습관, 나를 최고로 만드는 사소한 습관들, 함께 성장하는 관계의 연금술이란 네 가지를 주제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생명의 가치, 시간. 자아, 목표, 열정, 성격, 진로로부터 배움, 믿음, 집중, 긍정, 몰입, 성취, 관계, 신뢰, 공감등 39가지의 질문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반추하고 삶의 범위를 확장한다. 핵심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나다운 삶을 살기위한 태도를 갖추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많은 시간이 축적되고 경험이 체화되면서 나라는 정체성이 확립된다. 나는 개별적인 나인 동시에 우주에 유일한 개체다. 수많은 나가 모여 사회가 구성되고 문명이 진화한다. 하지만 개인의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선택에 묶여있다. 인생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시간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간이 곧 기회인 셈이다. 카이로스는 상대적이고 능동적이며 유의미한 자신만의 시간이다. 어떻게 살 건인가?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삶의 태도는 일상의 습관이다. 깊은 철학과 통찰의 시간이 내면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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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메이트북스 클래식 32
호메로스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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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지중해의 뜨거운 열풍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가 거의 3,00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왜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 것일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내재적 불안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불확실한 미래, 현실의 고민, 타인의 시선이 언제나 자신을 억누르고 가로막는다. 오히려 자신을 보호해줄 신의 구원이 훨씬 가깝고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호메로스는 제우스와 아테나를 인간세계로 데려와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로 현인하며 삶의 당위성과 정의의 기준을 내재화한다. 오디세우스는 영웅의 모험담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내면적 갈등도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처절한 논증에 가깝다.

 

오디세우스가 존재하지 않는 이타카, 수많은 구혼자들이 무위도식하며 텔레마코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태어나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트로이로 떠난 병사들이 속속 돌아왔지만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한 구혼자들의 끝없는 구걸행위가 텔레마코스를 괴롭혔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어렸고 무시당했다. 수세기동안 그리스인들을 괴롭혔던 신들은 마음이 동했다. 제우스는 아테나를 부르며 새판을 짜기 시작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 친구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에 접근했다. 필로스의 네스토로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에게 가서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찾아 나서라고 조언한다. 아테나의 말에 용기를 얻은 텔레마코스는 포도주와 음식을 싣고 필로스로 향한다.

 

그리스에선 낯선 손님을 보호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환대(xenia)를 신성의 의무로 여겼다. 나그네와 손님은 제우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필로스에 도착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영웅담을 듣지만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국가를 전전하며 재산을 모았던 메넬라오스가 오디세우스를 회상하며 프로테우스의 이야기를 꺼낸다. 프로테우스는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저주에 갇혀 님프 칼립소의 집에 붙잡혀 있다고 언급한다. 한편 이타카에 남아있던 탐욕자들은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소식을 듣기위해 필로스로 떠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늦게 아들이 떠난 소식을 전해들은 페놀로페는 이제 아들까지 잃게 됐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는 빛나는 신을 신고 칼립소에 날아간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명을 전하며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라 명한다. 아름다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불멸을 제시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고향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제우스의 명령은 즉각적으로 실행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도움으로 뗏목을 만들어 넘치는 파도위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여전히 오디세우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를 오랫동안 바다의 고통에 묶어놓았다. 그의 고난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질투를 받는 인간이었다. 뛰어난 지략과 용모, 위기를 헤치는 용기, 신은 오디세우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형벌과 고통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거두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가 도착한 곳은 파이아케스라는 아름다운 궁전이 있는 섬이었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그는 왕과 왕비의 호의에 힘입어 몸을 추스르고 그간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마녀 키르테, 죽은 자들의 세계, 쎄이렌과 스킬라,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짓눌렀던 시간을 회상하며 크나큰 상실과 절망에 빠진다. 같이 떠났던 동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의 주변엔 낯선 문명과 기억하기 싫은 수많은 고통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통이 심해질수록 그의 내면 안에선 더욱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야 했다. 또한 무너진 자신의 영예와 영광을 복구해야했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스무 해, 이타카에 도착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했을까? 인생은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불확실한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강구해왔다. 천문, 점성술, 신화, 종교, 그리고 다양한 문명의 진화까지, 삶의 반경이 확장될수록 불확실성은 커져갔다. 십년간의 전쟁, 끝없는 삶의 고통, 호메로스는 이 모든 것을 신들의 시기와 질투로 묘사한다. 개인의 인생을 신들이 좌우하고 있다면 그들에 충성을 바치면 나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면 신에 불충했기 때문이다.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아 동료들이 죽임을 당했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절멸했다. 하지만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위해 텔레마코스를 설득하고 오디세우스의 마음을 위로했다. 인간을 형상화한 신, 신에 위탁한 인간의 삶, 어쩌면 인간은 가장 나약한 종에 불과할지 모른다. 대다수 오디세우스의 평론은 방황은 할 수 있지만 목적지는 잃지마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는다. 하지만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다. 때론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묻혀야 하는 곳,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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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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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다. 통치기술은 권력의 핵심이다. 어떤 방향과 주제를 선정하느냐에 권력의 향방이 갈라진다. 부여된 권력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으나 사소한 일이 누적되어 상실되는 패배를 경험하기도 한다. 권력은 무상하다. 형태도 없지만 어떤 감정보다 공허하고 무기력을 경험한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권력투쟁은 본능에 가깝다.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경쟁구도의 생존전략이다. 본능을 벗어난 권력은 특별한 메커니즘을 요구한다. 인간의 역사는 권력쟁탈과 찬탈을 둘러싼 내분과 전쟁의 시간이었다. 반면에 뛰어난 통치술을 앞세워 덕을 밝힌 성군도 존재했다. 중국사는 요, , 우 시대의 태평성대를 기억한다.

 

덕을 밝히는 통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통치의 조건은 외부적 변수보다 백성과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책임감을 요구한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열여섯 자는 요 임금으로 순이 받고 순이 다시 우에게 건넨 것이다. 서경의 핵심주제이자 통치자의 심법이라 불리며 동아시아 통치론의 핵심으로 인정받고 있다. 열여섯 글자 중 ()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쌀미와 푸를청이 합쳐진 정은, 쭉정이를 골라내어 맑고 깨끗한 알곡만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수양하는 과정이다. 도심은 마음의 근원이다. 민심은 사사로우나 도심은 본성의 바름이다. 도심이 어지러우면 나라가 혼란스럽고 부패가 시작된다. 도심은 왕의 얼굴이자, 통치의 근간이다. 저자는 연산군과 정조의 도심을 비교하며 임금의 한결같음을 강조한다. 도심으로 통치한 정조는 만년에 스스로를 만 갈래 시내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이라 칭했다.

 

불긍세행, 종루대덕(不矜細行 終累大德), 작은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을 무너뜨린다. 서경 여오의 말이다. 긍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태도다. , 긴장을 풀지 말고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다. 큰 덕은 작은 일상이 쌓여 이루어진다. 권력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지만 결국 작은 일 하나에 무너지는 정치인들을 일컫는다. 여오의 다음 문장은 더욱 심오하다. 위산구인, 공휴일궤(爲山九仞 功虧一簣), 산을 아홉 길이나 쌓았는데 마지막 삼태기에 무너진다. 한 길 쌓지 않아 무너진다면 아홉 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지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역시 방심하지 말라는 긍의 의미를 포함한다. 권력자는 큰일에 치중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작은 일은 무엇인가? 서경은 민유방본을 통해 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고 말한다. 또한 내가 만 백성 위에 서 있음이,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듯 두렵다고 기록되어있다. 작은 일은 백성을 돌보는 것이며 큰일은 백성을 헤아리는 것이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은 통치의 핵심덕목이다.

 

정치는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욕망을 내재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지만 개인의 야욕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대부분 외부의 적보다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무너진다. 흙을 만지고 수로를 고쳤던 우 임금의 굳은살은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된다는 부열의 조언과 일맥 한다. 흙으로 담을 쌓던 부열은 하루아침에 재상이 되었다. 권력은 통치하는 자리가 아니다. 듣고 경청하는 자리에 가깝다. 부열은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로워지고, 곧음을 밖에서 구하는 겸손함을 가지면 성군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가르침은 배움의 절반이기에 남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라 강조했다. 높이 오를수록 곧은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아랫사람 역시 미움을 살까 두려워 먹줄을 대지 못한다. 제 굽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대의 굽음을 곧게 그어 줄 먹줄 하나가 있는가? 먹줄은 권력이 가장 싫어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본 책은 채침의 서집전을 기본텍스트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번역서다. 춘하추동 사계절을 바탕으로 리더의 조건과 실천, 유산과 완성을 담았다. 어떤 한 부분도 허투루 넘길 수 없을 정도의 빼어난 문장과 해석이 돋보이며 고대사는 물론 현대 정치구조를 파악하는데도 뛰어난 기지를 발휘한다. 무엇보다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통치해야하는지, 통치기술에 질문과 해법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서경은 민유방본을 근간으로 한 통치기술을 서술하고 있다. 중국은 수천 년동안 권력찬탈을 위한 전쟁으로 시달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적은 백성의 평화와 안정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의해 백성이 사라져갔다. 시대는 변하였지만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현실정치는 더욱 교묘하게 국민을 호도하고 괴롭힌다. 정치 때문에 피곤하고 혼란스럽다. 누가 정치인들에 호감을 갖고 신뢰를 주겠는가? 서경은 정치 본래의 모습을 추구한다. 리더의 조건과 태도를 이야기하며 권력을 대하는 자세를 좆는다. 고전은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반복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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