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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 ㅣ 거인의 어깨에서 묻다 철학 3부작
벤진 리드 지음, 진승혁 기획 / 자이언톡 / 2025년 8월
평점 :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인류 역사는 본능적 욕구와 개인적 이기심, 권력찬탈을 통한 과도기적 시간의 연속이었다. 변화는 시대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고 개혁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사회변혁을 가져왔다. 권력은 변화를 싫어한다. 덕분에 혁명은 지속적으로 사회를 흔들었고 사회학은 끊임없는 해체와 충돌의 과정을 거치며 인류에 새로운 가치관과 신념을 요구해왔다. 21세기 세계는 관세를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가 팽창중이다. 임마뉴엘 윌러스톤이 주장했던 세계체제론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 핵심부에 체제 전체의 잉여를 흡수하는 지배적인 국가들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윌러스톤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체제의 장기적 추세와 모순이 결국 구조적 위기를 야기하며, 세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할 것이라 예견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등장은 균열과 분열을 상징하며 세계체제의 재조정 압력을 높일 것이라 경고한다.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 생존이 불가능하다. 생태적 환경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무척 빈약하다. 사회학은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인류역사가 곧 사회학이다. 사회학에 대한 의문은 인간이란 왜 존재하는 가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과 같다. 비교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토마셀로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유로‘공유 의도성’을 이야기한다. 공유 의도성은 여러 개인이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동시에 행동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라는 주체로 공동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조율하며 협력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원시인류의 생존조건은 협력이었다. 토마셀로는 협력, 문화, 언어를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3가지 요소로 보았다. 특히 문화적 산물의 개선을 통한 레칫효과를 강조한다. 토마셀로의 공유 의도성은 사회적 신뢰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회는 징서의 총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마음을 나누며 다시 짜이는 관계의 직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게 되었을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를 통해 유대적 인간관계와 상징성의 의미를 설명한다. 인간 생존의 최우선적 조건은 협력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협업엔 허구적 요건이 필요하였고 관계는 신뢰보단 기호, 규범, 제도와 같은 상징체계가 요구되었다. 상상력의 도약과 허구의 탄생은 스토리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인류에 혁명을 일으켰다. 인류는 허구적 사실에 공동의 믿음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상징체제를 만들 수 있었다. 국가. 사회, 종교, 문화, 경제등 우리가 인식하는 실체의 대부분은 허구적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실체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시켜 미래를 실현한다. 하라리는 허구적 실체를 통해 인간사회의 존재 조건을 통찰하고 있다.
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 자인언트톡으로 명명된 클레온의 인문학 콘텐츠 구축의 2번째 시리즈다. 본 서는 사회와 힘, 특히 권력과 지식, 정의,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구성요소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회의 탄생에 대한 토마셀로의 공론으로부터 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한 드닌의 정치질서의 요구까지 사회학의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는 거인들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사회학은 당대의 시대적 요구와 맥을 같이한다. 국가적 혼란이나 재난은 항상 새로운 규칙과 규범이 강요되었고 권력의지 또한 다각적으로 표출되었다. 16세기 군주론을 통해 운명, 힘, 미덕을 권력의 기원이라 설명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의 혼란기를 잠재울만한 군주이론을 펼쳤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알려진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강력한 통치기구인 리바이어던을 설파했다. 반면에 모어는 평등, 정의, 공공선을 사회의 청사진으로 여기며 이상적 사회를 꿈꾸었다.
사회분야에서 가장 큰 흥미를 느끼는 주제가 경제일 것이다. 애덤스미스를 필두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은 시장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제공하였고 인류에 큰 성장과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고 불평등이 현실화되었다. 20세기 독창적 사회사상가들 중의 한명인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을 통해 시장 방임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자기조정기능을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라 치부하며 인간사회와 자연환경을 파괴할 것이라 경고한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화 될수록 경제 시스템 전제의 불안정성이 확산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반복되는 경제위기에 허상이 되었다. 위기는 더욱 증폭되었고 결국 시장은 정부의 개입에 의해서만 통제가 가능해졌다. 폴라니는 자유방임주의 확산과 시장 확대로 인한 자기보호 운동의 반작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중운동을 사회현상으로 설명한다. 폴라니의 사상은 시장에 대한 본질적인 위협과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조건이자 구성요소에 대한 깊은 성찰과 대응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생각은 종잡을 수 없지만 사유는 자유를 가져다준다. 세상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사상과 철학은 물밀 듯이 다가온다. 사회는 한 곳을 향해 가지 않는다. 끊임없는 부침과 갈등, 대화와 협력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선택을 받아들인다. 지식은 삶에 다양성을 선물한다. 저자는 이를 삶의 근육이라 표현하며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넓게 바라보고, 더 멀리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생각은 많지만 정작 필요한 생각이 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생각마저 대체하다면 인간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사회는 인간에 필요한 공동체적 요소다. 인공지능에 사회가 중요할까? 어떤 방식이든 새로운 시스템이 다가올 것이며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인간사에 혼란스럽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수많은 사상가들이 탄생했다. 우린 그들의 사유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어깨를 빌릴 수는 있을 것이다. 사유의 디지털화를 기대해본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