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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밤의 미술관 - 이지안 도슨트와 함께하는 벨 에포크 명화 산책
이지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10월
평점 :

색은 빛을 통해 형체를 드러낸다. 색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위대한 화가들은 빛과 함께 삶을 증명했다. 빛은 갇힌 세상을 탈출할 유일한 희망이었고 자신을 달래줄 삶의 언덕이었다. 색은 참으로 오묘하다. 기쁨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 마치 인간의 모든 감정을 빠짐없이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피워 낸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면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생애 가장 희망으로 부풀었던 시절, 고흐는 해바라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고갱과의 만남, 공동체의 형성, 평생 영원의 안식을 찾고자했던 고흐에겐 삶의 가치와 희망이 부여된 시간이었다. 색을 만난다는 건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어떤 색채를 가지고 있는가?
19세기. 새로운 르네상스시대가 열렸다. 산업혁명은 유럽을 광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인류는 전례 없었던 풍요로운 인생을 펼치게 되었다. 반면 빛과 어둠이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파리는 유럽의 중심이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에 모여들었다. 풍부한 자원이 예술가들을 움직였다. 몽마르뜨나 몽파르나스 외곽지역엔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던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각자의 노스텔지어를 꿈꾸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너무도 두터웠다. 하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아침이 다가올수록, 벨 에포크의 밤은 더욱 뜨거웠다. 가스등 일렁이는 파리의 거리, 허영기 가득한 귀족 살롱, 세기말의 퇴폐적 낭만이 짙게 흐르던 유럽은 풍요와 쾌락, 탐미와 탐욕이 거침없이 흘러갔다.
밤에 탐미하는 작품은 어떤 의미를 전달할까? 정적이 흐르고 아무도 없는 순간, 오롯이 작품에 빠져든다. 작가의 숨소리가 들리고 거친 호흡과 붓의 움직임이 정적을 깨운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삶의 여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감정과 감정의 만남, 기쁨에 설레고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벨 에포크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화가가 있다. 조반니 볼니디, 유려한 붓놀림과 경쾌한 색채는 유럽 사교계를 흔들어놓았다. 작은 체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의 화폭은 거침이 없었다. 욕망과 관능, 탐미와 유혹을 이보다 아름답게 표현한 화가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반니는 단숨에 화교계의 거장이 되었다.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역동적인 선과 거침없는 속도는 볼디니의 상징이 되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 베르디는 볼디니가 세시간만에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나를 쏙 빼닮았다고 고백했다. 볼디니는 에포크 시대를 불꽃같이 살았다.
잊으려해도 잊히지 않는 작품이 있다. 황금 빛 시대를 연 클림프의 키스다. 눈부시게 화려한 주인공과 주변의 암울한 분위기, 클림프는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을 통해 질서와 이성, 관능과 유기적 생명력을 표현했다. 무엇이 이토록 강렬한 이미지를 이끌었을까? 키스는 집중할수록 빠져드는 색채의 미학과 영원이 순간이고, 순간이 영원할 수 있음을, 감각의 정수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황금시대는 5년으로 마무리된다. 클림프는 장식공예를 통해 바로크와 르네상스 거장들의 전통기법을 익혔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성공이 인생을 보장하진 않았다.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의 회의와 죽음의 공포를 마주했던 작품이 사랑이다. 암울한 분위기의 사랑은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묘사되어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벨 에포크 시대를 이끈 클림프의 위대함은 자신만의 길을 걷고자했던 선언이었다. 빈 분리파를 결성한 클림프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주장했던 헤베시의 비평을 실천했다.
눈부신 불빛 아래 감춰진 얼굴, 영혼을 담은 그림, 불안한 새벽, 결핍을 건너는 화가의 고백, 물랭루주, 몽마르트르의 뮤즈들, 파리를 빛을 밝힌 수많은 아르누부의 대가들, 열 두밤의 미술관은 벵 에포크 시대를 호흡했던 열두명의 예술가를 만난다. 너무 일찍 삶의 불안과 고독을 알아버린 고흐는 빈센트라는 이름을 평생 짊어져야할 숙명으로 여겼다. 성화를 꿈꾸었기에 가난한 농부의 손을 이해했고 광부의 고단한 하루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네델란드를 떠나 파리의 강렬한 빛을 흡수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를에서 위대한 작품들이 쏟아졌다. 밤의 카페 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통해 고흐의 색채가 비로소 펼쳐진다. 고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수없이 반복되는 고통을 작품으로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과 함께 진정한 삶을 이해하게 된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아몬드 나무, 그는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꽃으로 피어난다.
열두 밤의 미술관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작품에 담긴 예술가들의 생애를 통해 삶의 본질과 예술이 주는 의미를 가슴깊이 느낄 수 있다. 벨 에포크 시대를 욕망과 관능, 탐미만을 추구한 시기로 이해하기엔 작품의 깊이가 너무도 심오하다. 시각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만나지만 사물을 이해하는 건 인간의 마음이다. 수많은 기억의 흔적이 삶의 여정을 반추한다. 벨 에포크를 빛낸 열두 명의 화가들은 저마다의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았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있었던 시선은 작품을 향한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누구의 생애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르다는 것은 인간의 여정이다. 붓을 통해 나타낸 삶의 흐름, 불안한 삶을 위로해줄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