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 자녀 잃은 부모의 희망 안내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오혜련 옮김 / 샘솟는기쁨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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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주고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생의 완성이자 졸업이며, 또 다른 출발을 위한 작별인사이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의 종결이다. 죽음은 위대한 변화다.’ 죽음은 삶의 변화만큼 다양하다. 우린 태어남을 알 수 없듯이 죽음을 예고할 수 없다. 죽음엔 상실과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죽음은 남겨진 자들에 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우린 죽음을 통해 삶에 다가선다. 인간 본성을 만나고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인생에 던지는 메시지는 생의 시간만큼 유한하다. 하물며 아이의 죽음엔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가?

 

어린아이의 죽음은 거론하기 힘든 주제다. 죽음이란 노화를 연상하는 단어이기에 어린아이의 죽음은 마치 모든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단절시키는 충격을 가져온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알지 못하는 수많은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 , 불치병, 사고, 자살, 어린아이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씻기 어려운 고통과 상실감, 죄책감, 무기력, 절망을 안겨준다. 인간은 심리적 안정감을 통해 고통을 승화시키고 내면적 성장을 이끌어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인다. 우린 타인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이들에 의해 성장한다. 공감으로부터 희망이 싹튼다.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삶을 일으키고 곁을 허락하는 마음이 생명을 지켜나간다.

 

아이의 죽음 뒤엔 부모와 가족들의 상실과 애통이 뒤따른다. 저자는 너무 애통이 큰 나머지 자신을 추리지 못하고 실성하는 정도에 이른다면 이를 허락하라고 충고한다. 상실의 고통은 의사가 처방하는 진정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며 수년 동안 죄책감과 무기력에 빠져들어 또 다른 병을 유발한다. 죽음은 저항하지 않고 마주해야한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인정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형제, 자매간의 죽음이라면 아이들에게 떠나는 형제의 모습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야할 날에 대한 성찰을 위해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욱 중요하다. 상실과 애통의 감정치유는 죽음을 대하는 필연적 조건이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이용하지만 여전히 내면적 외로움을 감추지 못한다. 외로움은 죽음 앞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죽음과 마주하기 위해선 타인의 공감과 시선이 필요하다. 그들은 고통을 이해하고 있으며 생에 대한 이해가 특별하다. 또한 죽음이주는 메시지를 알고 있다. 죽음 앞에선 부모와 형제들에게 이들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고통을 이해하고 조용히 주변 일을 정리한다. 무엇보다 삶의 단순함과 경건함 그리고 생이 주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은 타인을 보살피는 것이라는 실천적 의미는 생이 주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자 신의 메시지와 동일하다.

 

죽음을 삶의 끝이라는 생각은 처절하리만치 고통스럽다. 죽음에 대하는 자세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에겐 삶이 한번이듯이 죽음 또한 단 한번이기 때문이다. 본 책을 통해 아주 가까이 죽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 엘리자베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죽음학의 효시로 죽음에 관한한 세계적인 사상가다. 그녀는 세계 각국을 돌며 불치병과 암, 에이즈, 사고등을 통해 죽음을 앞둔 이들에 위로와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저자는 수많은 상담과 편지를 통해 무너져가는 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슴 뭉클하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은 무엇일까? 무거운 주제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나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희망 안내서로 교체된다. 죽음은 삶의 위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삶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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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 혁명 - 맛은 즐기고 칼로리는 낮추는 비밀
레이첼 허즈 지음, 장혜인 옮김 / 인라우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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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심을 형성하는 의식주는 사회변화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기업들은 매년 소비자의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한다. 급격하게 변하는 소비심리에 맞춰 AI를 이용한 맞춤형 소비분석 또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개인마케팅을 중심으로 한 sns와 유튜브의 성장은 소비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정 개인은 일반화를 넘어선 자신만의 패턴을 형성한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하게 분출되고 있으며 사회적 이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식욕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너무 많이 먹어도 너무 적게 먹어도 문제가 발생한다. 먹는 것은 갈망 못지않게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린 먹는 것에 대해, 먹고 있는 음식의 특질과 관계에 대해 상당히 무관심하다. 정보는 넘치는데 연계성이 부족하다. 중구난망의 건강상식도 한 몫을 차지한다. 특히 식욕과 신체의 역학관계, 뇌 기능과 정서적인 반응, 무엇보다 행동관계와의 상호성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단지 음식을 배만 채우는 것으로 해석하는 결과다.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감정과 정서 그리고 행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식욕 혁명의 원제는 Why you eat, What you eat. 왜 그리고 무엇을 먹느냐는 곧 자신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신경미식학은 뇌와 음식, 먹는 행동관계의 이해하는 학문이다. 음식에 따라 좌우되는 감정과 정서, 행동의 이해관계를 다루고 반대로 감정과 정서에 의해 바뀌는 식습관을 연구하는 분야다. 이는 갈수록 구체화되고 세분화되는 음식과 신체와의 조화가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바꿀 수 있는 지를 설명할 수 있다. 감정이나 행동은 뇌의 심리적 기제에 의해 통제된다. 뇌기능의 혁신적인 발전은 감각에도 적용되어 최근 미각과 후각을 통한 신경구조 연구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맛은 신경세포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1만여 개의 맛봉오리를 지닌 초미각자들에겐 미각세포 못지않게 혀 감각의 풍미 또한 특별한 감각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맛있다란 말 만큼 우릴 행복하게 해주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맛있다는 느낌은 모든 고민과 시름을 잊게 만든다. 또한 행복을 만드는 기적의 열쇠와 같다. 통증을 줄여주고 사랑과 공감의 감정을 일으킨다. 당은 대부분 탄수화물을 통해 몸으로 공급된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단맛에 길들여있다.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단맛도 과용하면 치명적인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 과도한 당 섭취는 인슐린 저항성을 생성하여 당뇨, 심혈관, 간지방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 단백질을 통해 섭취되는 짠맛 또한 인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미각이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은 인간이 지닌 최강의 네 가지 맛이다. 어쩌면 인간은 맛을 느끼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맛만큼 우리의 정서를 움직이는 것도 드물다.

 

이 책을 통해 꼭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후각이다, 후각은 풍미에 관한 이야기다. 맛을 입으로만 느끼는 줄로 알았는데 냄새 또한 식욕에 굉장히 중요하다. 사고나 질병으로 뇌의 후각신경이 끊어져 뉴런의 재생이 어려운 환자는 맛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들은 풍미를 잃어버렸다. 풍미는 입 뒤쪽의 작은 구멍, 후방후각으로부터 느껴진다. 맛봉오리의 맛과는 달리 풍미는 음식의 냄새를 통해 뇌에 각인된다. 베이컨을 맛보기전 냄새만으로 충분히 침이 고이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풍미가 제대로 작동하는 결과다. 풍미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감각으로 먹을 때, 그리고 숨을 내쉴 때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진화적 선물이다.

 

본 책은 맛과 음식, 식습관을 중심으로 식욕과 마음, 정서와 행동 간의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신경과학자로서 음식관련 기업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그래서인지 음식과 사회적 이해관계, 특히 식습관이 개인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양한 자료를 예시하며 소개하고 있다. 사회적 측면에선 소비와 윤리라는 다소 상반되는 기업들의 속사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마음에 변화하는 식욕을 설명하면서 저칼로리 음식과 유기농에 대한 함정, 과식을 피하기 위한 식습관의 재배치등 음식에 대한 개인적 오류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우린 스스로 원하는 것을 먹는다고 하지만 진실일까?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곧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보다. 식욕 혁명을 통해 그 진실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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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고 쓰다 - 뇌기반 독서심리치료
오수아 외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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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다양성이 늘어나지만 마음의 안정과 평화는 더욱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정보의 노출빈도에 비해 외로움과 고독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역설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개인화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젠 각자도생이란 말이 그리 심각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타적인 주제가 특별한 메시지로 인식되고 있을까? 우린 간혹 가던 길을 의심하며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막막한 세상은 주변을 살피게 한다. 의미를 찾기 어려운 시대다.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혼란스러운 세상 그리고 아프고 고통 받는 마음, 우린 어떻게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인가?

 

독서는 마음을 읽고 마음에 글을 쓰는 작업이다. 독서는 내 마음을 알아가는 것,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독서엔 인내가 필요하다. 시간은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독서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독서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고전 한마디에 마음을 다독이고 시 한 구절에 고통을 승화시킨다. 또한 새로운 비즈니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독서는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지식과 지혜를 전달해준다. 아무리 많은 양을 주어도 받아들이는 그릇이 작다면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독서는 끊이지 않은 샘물처럼 필요한 자에게 삶의 지혜를 선물한다.

 

독서는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시각과 청각, 몸짓과 손짓, 그리고 뇌의 인지와 기억, 회상, 추론, 상상등 우리 몸은 대부분 독서를 위해 특화되어 있다. 특히 뇌는 생각과 감정 행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뇌기능 연구와 발전은 심리학의 변화를 가져왔고 신경세포 연구는 심리학을 보다 객관적인 학문으로 전환시켰다. 신경세포와 더불어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호르몬 역시 감정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제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은 뇌의 역할을 통해 보다 근접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그리고 독서는 뇌와 심리학의 균형과 조화를 다룰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추천되고 있다. 뇌기반 독서침리치료는 이러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심리학과 독서, 뇌과학과 독서 그리고 마음과 독서의 연결을 이야기 한다.

 

우린 기억의 구성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억의 표현에 대해선 알고 있다. 언어는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문명의 증거다. 특히 언어에 대한 심증은 자아 정체성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곧 자신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언어는 생각하는 것 보다 깊이 각인되어있다. 특히 감정과의 이입은 자신에 주어진 삶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깊은 상처와 상실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글자는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고 지친 나에게 평안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를 붙잡는 시 한편이 있다면 이미 심리치료가 시작된다.

 

본 책은 독서를 통한 심리치료 방법을 소개한다. 10인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사례를 예시하며 독서가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켰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심리치료 상담사로서 심각한 감정문제를 겪고 있는 환자들에 적절한 독서 치료법을 제시한다. 특히 심리치료를 위한 책 소개가 돋보인다. 나의 심리상태를 호전할 수 있는 책을 고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는 불안과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의학처방을 통해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내면적인 치유는 결국 자신을 만나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리고 개인에 맞는 독서를 통해 마음을 다독이고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불안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내면에 대해 꾸준한 관찰을 해온 사람이라면 불안에 대한 인지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 특히 왜 이런 감정에 쉽게 빠져드는지. 뇌의 기능과 심리학적인 연결을 수용한다면 보다 근원적인 치유가 가능하다. 독서는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독서를 통한 뇌 인지기능의 활성화는 훨씬 안정적인 심리적 환경을 제공한다. 누구나 황혼기가 찾아오고 나이듦과 노화라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독서는 이런 과정을 묵묵히 수용하고 받아주는 좋은 친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를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동반자로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줄 것이다.

책은 가장 조용하고 변함없는 벗이다.’ 찰스W.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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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익스프레스 - 한 권으로 빠르게 끝내는
김영석(써에이스쇼)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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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전환을 가져온 시점은 언제일까? 만약이란 단어가 통용된다면 어떤 시기를 교체하거나 바꾸고 싶을까? 오랫동안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다는 것은 그 민족이 지닌 간절한 집념의 표현일 것이다. 민족이라는 정체성, 안과 밖이라는 틀은 상상 이상으로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 이랄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조건이 지리적 범주를 넘어 인류사 지류를 뒤흔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국가라는 범주에 속한 거의 모든 문명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또한 그 어떤 국가나 민족이든 세계사라는 큰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세계사는 어떤 방향을 정하고 있지 않다. 어떤 시기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 커다란 물꼬를 트고 방향을 전환시킨 시간의 흐름이다. 세계사는 당면한 문제가 아닐 수 있기에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변환 점은 세계사와 맥락을 같이해왔다. 인간에 특화된 역사는 지구 생태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1000년을 넘기기 어려웠고 그 어떤 이념이나 종교도 생존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세계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문명인으로 존재하고자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동안 세계사의 단편적인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면 세계사 익스프레스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중심으로 특정한 사건에 대한 특별한 과정과 역사적 진로를 바꾼 사건들을 진술하고 있다. 가볍지만 독특한 매력을 느낀다. 학창시절부터 배워왔지만 통합하기 어려웠던 관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연도별 집중도가 뛰어나 그간 중구난망으로 흩어져있던 세계사적 관점들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본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첫 번째는 기원전 4000년경 문명의 시작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각 시대를 전환시킨 결정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두 번째 파트는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까지 세계를 움직인 패권국들의 문명사에 집중한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절반을 앗아갔다. 하지만 어둠 뒤에는 빛이 있듯이 종교관에 파묻힌 중세의 장막이 인문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시대를 열어젖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테의 신곡은 본 책에서 유일하게 소개하는 시대를 바꾼 서적이다. 정치적 망명 중 단테는 영적 여정을 위한 신곡을 발표하는데 이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이 번창한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인간에 대한 성찰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예술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는 근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과학과 기술발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은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구신교의 분리를 만들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성에 대한 의미는 중세를 이끌었던 수많은 전쟁과 분쟁의 중심에 종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성경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들에 영감을 주고 특별한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만약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하였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러일전쟁의 승리 후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이전 일본의 정치, 경제 성장 배경을 주목해야한다. 1868년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단행한 메이지 유신은 부국강병을 위한 초석을 가져왔는데 특히 군대창설은 일본의 경제발전뿐만이 아니라 패권국에 대한 야욕을 노출시킨다. 그 후 조선의 운명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을 통찰하는 혜안을 가져다준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우린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역사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사건들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다. 실시간으로 지구반대편의 사건을 알 수 있고 정책자들의 계획을 미리 예측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끊이지 않는 전쟁이다. 이념과 민족, 종교, 신념과 가치로 일어나는 전쟁은 세계사의 모든 방향을 전환시켰다. 현대전은 과거 배고픔을 탈출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다. 하지만 이면엔 자국의 이익이라는 변치 않는 전쟁의 속성이 숨겨있다. 세계경찰을 자인했던 미국의 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972년 닉슨은 중국을 자본주의 체제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미중간의 냉전은 과거 미소냉전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사 역시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계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세계사 익스프레스를 통해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들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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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권력자 - 무도한 시대, 무도한 권력자들의 최후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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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란 칭호는 왕정이 무너지는 근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왕정은 말 그대로 왕의 말과 행동이 곧 법이었다. 산업화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열강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지배민족과 국가를 파괴시켰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신흥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국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세계지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자유, 독립, 민주화는 허울 좋은 선전일 뿐이었다. 문제는 파괴적 분리와 분쟁이 지속적인 내란을 유발했고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땅은 수십 년 동안 분쟁과 내전을 겪으며 영혼마저 피폐시킬 정도로 잔인한 독재자를 출현시켰다.

 

인간에 권력은 어떤 권능을 부여하는 것일까? 왕을 넘어 신으로 군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 끝을 알 수 없기에 두렵고 공포스럽다. 인류사를 통틀어 정치에 만족하던 시대는 없었다. 항상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역사이기에 권력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인간이 지닌 인간에 대한 판단, 앞뒤가 맞지 않고 편향적인 인지구조가 독재자를 키웠다. 독재자는 여과 없는 역사의 증거다. 정치적 불안이 경제를 일으킬 수 없으며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용할리 만무하다. 21세기의 권력지향은 여전히 세계사를 뒤흔들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러시아 망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또 다른 독재자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떠도는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이민문제는 세계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포용이 사라진 시대는 인간성은 의미를 잃는다. 한 가지 두려운 것은 누구도 또한 어떤 민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아픈 과거사를 갖고 있기에 더욱 처절하게 민족성을 강조하지만 잘못된 권력자의 선택은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할지도 모른다.

 

교활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온 몸이 짐승의 털로 뒤덮인 상상의 동물이다. 일부러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몸속을 파먹으며 결국 호랑이를 쓰러드리는 흉측한 괴물이다. 독재자는 민중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대중에 영합한 정치 이면엔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이 숨겨있다. 정책보단 이념을 강조하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신화에 종속된 노예가 된다. 교묘한 말로 대중을 속이고 결국 대중을 잡아먹고 만다. 찬양과 아첨에 능숙한 자들이 주위를 감싸며 오직 자신만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힌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히틀러와 스탈린을 능가한다는 유일무이한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 부두교 사제로 주술공화국을 만든 아이티의 뒤발리에가 이들이다.

 

권력에 대한 사랑은 귀천이나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권력은 권력자들의 내공에 의해 통제된다. 권력에 대한 의지나 의미, 생각이 부재한 이들에 권력은 무소불위의, 가공할만한, 치명적인 무기로 전락한다. 그들의 염원과는 달리 독재자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하다. 한때는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놓을 수 있다는 착각과 망상에 빠져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결국 도망자로 전락하거나 정적에 의한 축출 혹은 죽임을 당한다. 근대사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성장, 문화의 혼재, 역사의 소용돌이라는 수많은 난제가 등장하는 혼돈의 시대였다. 사상과 이념이 탄생했고 정당과 민족이 대립하며 무엇이든 수용했으나 배타적인 과정도 지속되었다.

 

쫓겨난 권력자는 근대사를 관통하는 치명적인 독재자를 소개한다. 내전과 내란의 중심이 되었던 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 분쟁지역의 독재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권력을 잡는 순간 괴물로 돌변해버렸다. 무엇을 위해 권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지워버렸다. 오직 자신의 탐욕을 위해 민족을 수탈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권력의 사유화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양산한다. 또한 권력 유지를 위해 특권층이 필요하다. 그들은 교묘한 말로 위장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주역의 혁명이란 말을 꺼내면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이 옳은가란 화두를 던진다. 맹자는 인의 파괴자가 역적이고 의의 파괴자은 흉악범이라 말한다. 역적이나 흉악범은 군주가 아니라 범부라는 것이다. 권력은 뜨겁다. 곁에 다가갈수록 화상을 입기 쉽다. 그럼에도 자신을 불태우고 주변마저 황폐화시킬 이유는 무엇일까? 고증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권력에 불붙은 이들에 던져지는 메시지는 항상 유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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