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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트의 노래
프란츠 베르펠 지음, 이효상.이선화 옮김 / 파람북 / 2024년 9월
평점 :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경건한 몸짓들이 행렬을 이루며 서둘러 자리를 찾는다. 눈웃음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모종의 암시다. 모든 몸짓이 장엄한 음악 속에 묻히고 경건한 목소리에 잡다한 생각들이 흩어진다. 거룩한 종소리가 마음의 울림을 일깨운다. 시공간의 지배를 벗어나는 순간이다.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 떠오른다. 우린 기적이 필요하다. 삶을 괴롭히는 고통을 벗어나는 기적을 원하고 있다. 그 끝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과 일상을 뒤엎는 놀라운 평범함이 드러난다. 종교는 바라고자하는 실상이다. 인간 실존에 대한 극한 두려움과 불안이 종교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성찰을 이야기한다.
베르나데트의 노래는 1858년 2월11일부터 7월 16일까지 프랑스 남부 루르드 지방에서 벌어진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소설은 베르나데트의 일상과 일상을 뒤엎는 여인과의 만남,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금은 성모로 추앙받는 베르나데트 생가는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또한 루르드시장의 바램대로 샘물은 기적을 일으키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우린 종교적 형상에 익숙하다. 과거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린 한 소녀가 겪었던 고뇌와 고통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전개 앞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모순을 엿볼 수 있다.
왜 신은 가난하고 근본 없고 병약한 어린 소녀에게 현현했을까? 평범한 이들과는 달리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신의 섭리다. 신부, 경철서장, 검사, 공의, 교장, 그리고 부자들은 특별한 존재다. 그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지위와 경계선을 상징한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는 혁명의 중심지였다. 체제를 유지하려는 황제권력과 산업혁명의 여파가 유럽을 뒤흔들고 있는 혼란의 시대였다. 권력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했고 권력의 대척점에선 종교는 균형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이 혼란한 시기에 가장 가난한 소녀에게 성모 발현이 나타난 것이다.
베르나데트는 솔직함과 정직함 그리고 강인함의 상징이다. 그녀는 어떤 중상모략에도 견딜 수 있는 자신감을 표출한다. 병약한 소녀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동굴 여인과의 만남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꾼 것일까? 토방에 6식구가 살고 있다. 근근이 끼니를 때우는 일상은 빵 한 조각에 가족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만든다. 무엇하나 풍족하지 않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체념은 그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이웃들이 살아간다. 가난하지만 위계가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다. 베르나데트는 이들에겐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쓸모없는 소녀였다.
베르나데트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과 행복을 맛본다. 창백한 얼굴, 핏기가 사라진 관자놀이, 죽음을 앞둔 이의 모습과 같다. 여인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사랑과 순종을 심어주었다. 첫 만남 이후 전개되는 주변 인물들의 설정은 소설의 진미다. 학교 친구들의 시기와 질투, 부모의 근심에 대한 지각, 특히 이를 관리하려는 관료들의 움직임,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듯한 지방 유지들의 이해관계, 소녀와 여인과의 만남이 던진 파동은 루르드를 넘어 프랑스 전역에 확산된다. 베르나데트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넘어간다.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베르나데트를 소유화하려는 이기심은 권력의 이중적인 메시지와 동일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위성에 대한 자기 확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눈에 띄는 설정이 주임신부다. 거절하고 싶지만 기적을 받아들이는 그의 선택에서 우리가 원하는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관념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유지해온 핵심이다. 타협은 불가하다. 하지만 이웃사랑은 어디 갔는가? 주임신부는 어린 소녀를 받아들인다. 가난하고 부족한 이들에 정성을 다한 신부는 기적은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일상은 기적이다. 숨 쉬는 것도 기적이고 가족이 있는 것도 기적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고마움과 감사함이 존재할리 없다. 베르나데트는 우리의 일상을 노래한다. 그리고 일상에 숨긴 기적을 깨닫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