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 - 신 국부론 불후의 명작 1
애덤 스미스 지음 / 에버필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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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공포의 경계는 어디일까? 한국주식시장이 도박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단지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과도한 변동폭 때문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변동폭이 커질수록 돈의 움직임도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26년 상반기 한국주식시장은 유례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수조원의 자금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투기판은 외국자본이 만들어놓았던 것은 아닐까? 탐욕은 인간의 정당한 욕구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돈을 벌기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사용한다. 주식시장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본시장에서 도덕을 찾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 앞서 도덕감정론을 통해 공명정대한 관찰자 이론을 제시했다. 위선이 만연한 구조에서 타인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는 결코 도덕적 승인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위선이고 무엇이 정당성일까?

 

애덤 스미스, 이름만으로 경제학을 상징한다.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난립했지만 스미스의 경제학 원론을 뛰어넘지 못했다. 스미스는 자본시장과 인간관계를 꿰뚫어본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 이기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도덕 감정론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도 제시했다. 스미스는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힘을 시장이나 경쟁이 아닌 공감이라고 보았다. 도덕 감정론은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며 스스로를 평가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말한다. 이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다분히 주체적이다. 하지만 스미스가 자본시장에 도덕을 앞세웠던 이유는 자본시장이 확산될수록 누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될지 예측했기 때문이다. 중상주의가 활개 하던 시대. 누구보다 먼저 자본주의 시대를 예견하고 이를 통합했던 스미스의 통찰력은 오히려 21세기에 더욱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인간본성은 250년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250년이 아니라 태초 이래 변한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공포를 두려워하고 항시 불안하며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옭아매며 손실을 회피하는 신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인간의 심리를 가장 농밀하고 세밀하게 드러낸다.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스미스는 사회구조, 특히 금융이나 경제를 통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했다. 빵집 주인은 선의나 자비를 위해 빵을 제공하지 않는다. 빵집 주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밀가루를 반죽하고 빵을 굽는다. 이익주체가 선의를 포장한다면 시장은 이익주체에 의해 좌우되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많은 사람은 선의라는 포장으로 자신의 이익을 숨긴다. 스미스의 해법은 상공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봉건영주들의 자비보다 상공업자들의 정당한 교환이 인간을 예속에서 해방시킨다고 보았다.

 

교환은 시장거래의 핵심이다. 교환이 가능한 물건이어야 정당한 가격을 치룰 수 있다. 또한 상호이득이 전제되어야 한다. 강요된 호의나 희생은 오히려 피해자를 양산한다. 스미스의 덕 감정론은 개인에 한정되어있다. 사회는 개인을 구속할 수 없다. 거래가 곧 관계다. 거래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이기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교환의 바탕에 깔린 이기심을 인간 본성에 내재된 중력과도 같은 보편적 법칙으로 보았다. 자비는 변덕이 심하고 일회적이다. 또한 개인의 성격이나 감정에 의해 쉽게 변한다. 하지만 이기심은 항구적이다. 이기심이란 본성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서로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지, 가장 솔직하게 답변한다.

 

노동과 노력, 사회구조를 상징하는 단어다. 대부분 노력한 만큼 보상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시장은 당신의 노동이나 노력보다 당신이 내 놓은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가, 아닌가로 판단된다. 사람을 가격으로 환산하는 시대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노동의 가치도 변화했다. 지금 자신의 생각과 하는 일이 가치를 전달 할 수 없다면 자기만족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의미의 성장은 제로에 가깝다. 스미스는 오히려 이런 구조가 훨씬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스미스의 의도대로만 확장된 것은 아니었다. 자본은 물과 같다. 이익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분업을 통한 기회균등은 새로운 악습을 탄생시켰고 노동 가치를 폄훼했다. 거대기업의 등장과 1인가구의 확산은 노동 가치를 재정의하며 독점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보수경제학자들에 의해 시장을 완화하는 특별한 처방책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스미스 이후 인류는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대부분 무분별한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었다. 거래가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이 발생한다. 문제는 빵집의 파산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좋은 궁합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림자 또한 만만치 않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거대한 흑막으로 자본시장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았던 자본주의는 인류를 거대한 문명으로 이끌었다. 인류는 자본주의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간혹 파괴적인 행동을 자행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구조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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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
라일리 블랙 지음, 조정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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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오모르파, 수십 억년전의 고대생물이 21세기 바닷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2마이크로미터도 되지 않는 조그만 다세포조류는 햇빛에너지를 이용해 유기분자를 재조립하여 생존을 유지해왔다. 방기오모르파의 나이는 16억년이다. 당시엔 지금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친 파도와 모래, 암석이 전부였다. 물고기는 물론 조개, 그 흔한 식물등, 눈에 띄는 생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산은 민둥산이었고 생명체는 바다에만 존재했다. 놀라운 것은 최초의 단세포부터 방기오모르파와 같은 다세포 홍조류가 출현하기까지 20억년이 필요했는데 방기오므로파와 최초인간 사이의 시간은 12억년 정도라는 사실이다. 방기오모르파를 포함한 초기 다세포생물들은 향후 지구 생명체의 증식, 진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지구생태계를 바꿔나갔다.

 

20억년이란 시간은 박테리아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초기 시아노박테리아는 생식을 통해 생존과 증식을 유지했지만 분해되지 않은 시아노박테리아가 세포 안에서 살아남으면서 숙주세포와 함께 분열이 가능하게 되었다. 둘의 공생은 서로의 유전자를 공유하며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진화적 경로가 합쳐져 하이브리드 생명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광합성을 하는 세포 안에서 양분을 제공하는 엽록체가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세포들은 혐기성 광합성방식을 통해 생존을 유지했다. 그런데 복제하는 과정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광합성 방식이 탄생하게 되었다. 바닷물속의 산소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유기체는 빠르게 증식했고 바다는 산소로 가득하게 되었다. 바다를 탈출한 산소는 메탄이 가득했던 지구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산소분자의 탄생은 우연과 행운이 겹쳐지면서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었다. 산소 농도의 증가는 기존 생명체의 멸종을 앞당겼다. 지구는 멸종과 생성이라는 거대한 경계를 넘나들며 수십억 년을 유지해오고 있다.

 

인류문명, 특히 근대사를 변혁시킨 것은 화석연료다. 중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지구 지하엔 엄청난 화석연료가 묻혀있다. 정치, 경제적 문제를 일으키는 주 원인을 제공하지만 인류에게 명과 암을 가져온 극명한 물건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5억 년 전, 최초 식물과 동물이 탄생했던 데본기를 지나 미시시피기가 도래하면서 지구 생태계는 엄청난 변화에 직면한다. 이제 해조류은 모래언덕을 넘어 웅덩이에 안착하고 진화를 거듭하며 리그닌이란 세포를 새롭게 만들어 부피를 키우게 된다. 광합성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런 단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과정의 결과다. 산소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은 초기식물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식물은 탄소로 이루어져있다.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탄소로 분해하는데 탄소는 식물의 신체 일부가 되고 산소는 대기로 방출되었다. 초기 이끼식물과 해조류는 탄소를 함유한 채 모래층에 묻혔고 퇴적물과 암석이 되었다. 대기 중 산소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제 식물은 모래를 벗어나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산소가 증가하면서 동물은 부피를 키워야했다. 2미터가 넘는 절지동물이 20미터가 넘는 시릴라리아가 빽빽한 숲을 돌아다니며 60센티미터의 거대한 잠자리와 함께 생존하고 있었다. 리그닌은 식물이 높이 자랄 수 있도록 세포벽을 단단히 만들었고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을 높은 곳까지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관목은 아니었다. 가발을 쓴 것처럼 거대한 덩치에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시갈라리아는 석탄기를 거대한 숲의 시대로 만들었다. 식물왕국은 거대한 곤충과, 양서류, 식물로 가득했다. 하지만 페름기 말, 지구는 거대한 멸종을 겪게 된다. 식물왕국은 지구 암석에 영구적인 표시를 남기며 엄청난 석탄층이 되었다. 37천만 년 전의 석탄층은 현재 지구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빠르게 증가하는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의 주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탄소시대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난 적도 벗어날 수 도 없었다. 단지 환경을 이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병행했으며 이는 진화적 이점과도 맥을 같이한다.

 

한때 지구가 정원이었을 때, 대기는 어떤 분자를 분출하고 있었으며 땅위의 생명체는 식물과 어떤 연결을 맺고 있었을까? 450억년이란 시간은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지구라는 행성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선물해주었다. 어떤 우연히 있었던 현존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생성되지는 않았다. 생명은 그 오래된 역사만큼 숙성기간이 필요했다. 식물도 예외는 아니다. 바다를 헤매던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생존과 번식을 거듭했던 수십억 년의 시간은 생명체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햇빛을 얻은 유기분자들이 재조립되어 다세포 조류가 탄생했고, 지구의 역사를 바꾸었다. 본 책은 식물의 역사를 통해 바라 본 지구의 역사다. 생명체는 지구환경을 변화시켜 기후, 침식과 같은 다양한 현상에 영향을 미쳐왔다. 식물은 지구역사를 더 획기적으로 변환시켰다.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의 모습에서 지구를 떠나지 않으려는 생명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앞에선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지구를 인지하고 있을까? 식물이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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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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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 무거운 질문에 몽테뉴의 모든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인생이 담겨있다. SNS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모두 자신이 정답이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들의 주장에 내면의 생각이 담겨있을까? 표면적이고 현상적 이론에 파묻힌 사고가 깊은 울림을 전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철저히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각을 벗어난 언어가 이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회는 다양성을 배제한다. 몽테뉴는 확신에 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파괴적인지를 직접 목격했다. 어제까지 웃음을 나누던 이웃이 사회적 기준에 의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은 공포를 넘어서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다. 삶에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잠적했다. 모든 이들이 비난했지만 어쩌면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것이 진실인가?

 

1572년 파리는 위그노(개신교)와 카톨릭간의 갈등이 폭발해 종교전쟁이 발발했다. 어제의 이웃이 적이 되어 서로를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짐승이라 불렀고 신은 자신의 편이라 믿었다. 학살은 죄가 아니었다. 종교학살의 바라보았던 몽테뉴는 도대체 믿음이 무엇 이길래 인간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지, 너무도 당황스러웠고 절망했다. 몽테뉴는 사회의 기준의 침착했다. ‘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16세기 보르도는 신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나의 정체성은 곧 신에 의해 규정되었다. 절대적 기준은 정체성을 확립시킨다. 결국 자신의 확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왔던 확신이 절대적이란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당시 몽테뉴의 생각은 너무도 위험했다.

 

몽테뉴는 현실에서 떠났다. 하지만 탑에 들어선 후 더욱 강하게 자신에 침착한다. 우울과 불안으로 날뛰는 감정을 마주하며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는 신의 말, 세상의 시선, 타인의 의견이 아닌 흔들리는 한 인간의 감각과 감정, 행동을 들여다보며 일상을 글로 적었다. ‘여기서 내가 그리려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짧은 어구와 함께 몽테뉴 세계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정의와 공정이란 개념을 심어놓았다.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하는 도덕적이자 정치적 언어다. 개념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용되며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개념이 오용되면 본래 목적이 상실된다. 삶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개념들은 편리성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구속하기 위해 존재한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정의와 공정을 누군가는 당연하다는 듯이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리도 진실도 아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데 왜 인정해야하는가?

 

몽테뉴는 자신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감각과 감정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닫는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핍에 찬 욕구를 내뱉는 것과 같다. 결함투성이 감정을 배제한 채 타인을 의식한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잣대를 들이댄다.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진 불안과 두려움이 자신을 가렸던 고유한 무늬다. 결함을 숨기려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에세는 실수투성이이자 결함이 가득한 인생의 모습을 담은 몽테뉴의 삶의 과정을 수록한 수필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강요하지도 이렇게 살아라 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수상록에 기록된 수많은 쪽지와 메모는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미완성이라는 몽테뉴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몽테뉴는 철저히 자신을 발가벗긴다. ‘인간은 놀라울 만큼 헛되고, 변덕스럽고, 흔들리는 존재라는 표현은 그만의 해방선언이다. 그는 인간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인물이었다.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특별한 사회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의지와는 상관없는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지 않는가?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의 방향을 가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 차라리 눈감고 발을 디디는 쪽을 선택한다. 자신을 잃어가는 시대의 초상은 16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스템 안에서의 자유,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 독립, 세상을 벗어나가 어려운 구조, 하지만 결국 인생은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 시작된다. 몽테뉴는 세상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닫았다. 오만과 의심, 자기 확신이 가득한 세상에 굳이 자유로운 영혼이 상처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채우려 발버둥 칠수록 나만 부서질 뿐이다. 헛된 욕망이 주는 메시지는 자신을 포기하는데서 가져온 얕은 만족에 불과하다. 권위와 권력, 부와 명에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도 결국 자신의 엉덩이 위일 뿐이다란 묵직한 울림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인생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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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유전자 - 선천적 지능을 압도하는 후천적 엘리트들의 환경 설계 법칙
다나트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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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엘리트 사회다. 한국사회의 중심이랄 수 있는 경제계의 대다수가 SKY, 그것도 최상위권 전공자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SKY대를 엘리트 중심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 집단이 차지하는 위상이 한국 정치, 경제, 문화, 언론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엘리트는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권위와 권력, 자리와 위치의 높이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담론을 중심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풀어나가는 인재를 의미할까?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회는 다양한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AI의 진화가 인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기대와 두려움이 팽배하다. 엘리트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엘리트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엘리트는 태어나는 것인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고등학교 입시가 마무리되면 인생의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 디딤돌이 될지, 조약돌이 될지 선택과 판단은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서로 다른 주체들은 공간유전자를 공유하게 된다. 학교의 위치, 분위기, 휴게소, 도서관 같은 공간의 밀도를 통해 끈끈한 연결이 규정지어진다. 다나트 채널을 운용하는 저자는 대학 탐방 콘텐츠 대학교에 가다를 통해 후천적 엘리트들의 환경설계법칙을 찾아 나섰다. 무엇이 개인의 미래를 결정하는가?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왔다. 공간, 인프라, 몰입, 지거국과 같은 공간프리미엄과 자부심, 언어, 경쟁, 관계를 통한 내적인 연결등 13가지의 공간유전자를 통해 환경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한다.

 

연고전은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나설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대결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지만 비슷한 점수와 지능을 지닌 스무 살 청춘들이다. 그런데 10년 뒤, 이들이 사회에 내미는 명함색깔은 확연히 달라져있었다. 연대를 졸업한 이들은 방송계, 엔터테인먼트, 마케팅등 트렌드를 선호하는 대표들이 즐비했다. 반면에 법조계, 정계, 대기업임원등 조직력이 필요한 분야엔 고대인들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무엇이 두 대학의 차이를 결정하고 있었을까? 저자는 물리적 공간에서 원인을 찾았다. 연대는 대표적인 서울 상권에 포함되어 있다. 연대생들은 매일 신촌거리를 거닐며 최신유행을 흡수한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다. 이들은 4년 넘는 기간 동안 신촌거리를 거닐며 변화하는 감각을 익힌다. 감각이 뛰어난 마케팅과 콘텐츠업, 미디어와 방송계등에 연대생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반면, 안암역에 내리는 순간 공기의 질감은 신촌거리와 180도 달라진다. 고려대는 특유의 고립문화에 익숙하다. 달리 나갈 일이 없으니 학교 안에 머물며 동질감을 유지한다. 말하는 문법이 같고 동일한 경험에 익숙하다. 안암의 공기는 함께 가는 법을 가르친다.

 

지방고등학생들의 로망은 인서울이다. 비단 고등학생들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가 인서울을 꿈꾼다. 서울은 이미 국제적인 도시로 인정받고 문화, 예술, 미디어등 최첨단 인프라가 갖추어져있다. 또한 창업과 취업에 대해선 가장 밀도가 높은 공간이다. 대기업의 본사가 집중되어있어 투자나 강연, 창업과 같은 다양한 정보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다. 반면에 높은 땅값과 부동산문제는 인서울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인서울은 정보의 편차를 해소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입지조건이다. 저자는 인서울이 우연의 빈도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강조한다. 커리어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한 계획이 아닌 우연한 강의나 선배의 조언, 모임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강남엔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성수에는 어떤 브랜드와 스타트업이 움직이고, 여의도는 어떤 금융언어가 흐르는지, 걷다보면 알 수 있다. AI시대는 어떨까? 빈도는 다양해지지만 밀도는 여전히 서울이 강할 것이다. 지방 대학은 서울을 성장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저자가 13장에서 논의한 명문대를 가지 못해도 시스템은 훔칠 수 있다는 복제유전자와 맥을 같이한다.

 

복제유전자를 통해 가장 먼저 훔쳐야할 것은 공간이다. 공간은 명문대의 핵심자산이다. 공간에 있는 분위기, 시간, 사람의 밀도는 인간을 조용히 바꾼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인간은 옆 사람의 생활방식을 닮아간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이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 세 번째는 좋은 글, 좋은 강연, 좋은 인터뷰를 포함한 언어의 사용이다. 말은 그 사람을 만든다. 다음은 기준을 상향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좋은 루틴은 삶의 기준을 높이고 방향을 바꿔준다. 복제유전자는 사소하지만 작은 설계를 통해 사람을 바꿀 수 있다. 후천적 엘리트 유전자는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지배를 받는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범위가 규정된다. 공간은 다양한 조건을 변형시키며 새로운 복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킨다. 좋은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엘리트 유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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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관계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 사람이 서툰 당신을 위한 심리학
성유미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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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참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조그만 일에도 예민해지고 마음 졸이는 자신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스스로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도 많아집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만나는 일이 숙제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것, 만나도 굳이 할 이야기도 없는데 일상적으로 만나야하는 것, 이런 관계가 지금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평생 효율을 중시해온 까닭에 수많은 만남에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적 없는 대화가 공허하듯이 딱히 얻을 것이 없는 만남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다른 하나는 갈수록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예민해진다는 것입니다. 간혹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일어나지만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관계를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1인가구의 증가와 독립세대가 늘어나는데, 정작 사회는 관계부재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습니다. 아직은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외로움과 고립을 호소합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 생존을 유지하고 타인을 바라보며 정체성을 익혀왔습니다. 관계를 잘 하려는 것은 본능입니다. 또한 타인의 눈빛에 예민한 것도 생존전략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DNA의 기대와는 달리 세상이 훌쩍 변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양심이나 도덕을 판가름하는 엄격한 목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판단하는 초자아입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초자아의 지배를 받습니다. 초자아는 자기통제에 꼭 필요하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자각하는 자아가 필요합니다.

 

초자아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웁니다. 타인엔 부드럽지만 자신을 모질게 대한다면 지금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틈을 내어 바라보아야합니다. 초자아는 어린 시절 부모의 역할이나 주변의 교우관계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의 심리적 정서는 오랜 기간 축적되어 무언가에 발화되었을 때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나를 강하게 옥죄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감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마음을 거슬러 내면에 쌓였던 문제를 직시해야합니다. 직장이나 가족의 실수를 용인하기 어려웠다면 가까운 어른들이나 부모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이나 반응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자아는 자신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자아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수용이나 자기친절을 선택합니다. 자신을 만나는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은 스스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관계 또한 자아와 초자아와의 연결을 통헤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와 명에, 권력을 원하지만 욕구의 중심엔 채우고 싶은 욕망과 결핍이 있습니다. 아무리 외형을 채워도 갈증이 일어나는 이유는 내면이 여전히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을 이해하면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예기치 않았던 문제들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혼자살고 싶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모든 인간이 지닌 본능입니다. 가족, 연인, 친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다른 마음을 지닌 체 상대를 만납니다. 특히 상대의 시선은 자신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놀랍게도 인간은 스스로가 인식하는 자신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본 책은 마음을 다독이고 관계를 이어줄 소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습니다. 유독 인간관계가 어렵다면 지켜야할 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때론 타인에 목메지만 결국 자신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관계의 질이 형성됩니다. 이는 2부의 나를 대하는 방식이 관계를 만든다를 통해 세세히 소개합니다. 자기수용, 자기친절은 자신을 믿는 동시에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숨은 나를 조심스럽게 만나고 대화하며 이해하는 것, 가장 중요한 관계방식입니다.

 

가족은 평생 자신을 지켜보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가장 소중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간혹 뜻하지 않은 행동이나 반복된 습관으로 마음이 뒤틀려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20년을 같이 살아왔던 남편이 원수처럼 느껴진다면, 아이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예기치 않았던 우울과 외로움이 찾아든다면, 가족은 오랜 시간만큼 아픔도 크지만 기대도 큽니다. 가족은 너무 가까이 있기에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 어렵습니다. 이정도면 당연히 자신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강박이나 강요도 흔합니다. 부부간 갈등의 원인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말투하나가 불씨가 되어 깊은 갈등이 생깁니다. 아이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 부모는 아이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언어를 사용하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갈등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를 타인에게 전가할 때 시작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경계를 지어주는 것, 가족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보다 같은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좋은 관계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관계 속에 반드시 포함되어야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심리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충분한 조건입니다. 지켜야할 나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길 기대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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