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걸 축하하는 의식 - 그렇다. 성인식은 축하해 줘야 할 일이고 축하를 받아야 마땅한 그런 날이다. 근데 내게 이런 성인식이 있었나? 별다른 기억이 없다. 대학생이 되고서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성년의 날이다 하여 잔뜩 술을 마셨던 기억이 전부인거 같다. 어쩜 아직 내가 성인이 안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식에 등장하는 5명의 주인공. 아직 성인식을 논하기엔 좀 어리지 않나 싶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워낙 성장속도가 빠르니깐...물론 신체적인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도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할 만큼 빠르니깐, 이미 그네들 입장에선 이미 성인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홀어머니 밑에서 아주 착실하게 공부잘하는(과학고 다니는) 시우는 그동안 가족처럼 키우던 개를 수술후 허약해진 자신의 몸을 보신하기 위해 잡겠다는 어머니와의 마찰 속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물론, 애완견이 아닌 식용을 목적으로 키우는 개였기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동생처럼 잘 따르는 누렁이를 저 좋자고 먹기가 영 아니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우는 "개를 죽인다고 아파하지 말고, 내 몸속으로 작은 목숨 하나 들인다고 생각해라.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고, 저 개 잡아서 네 목숨으로 만들고 가라. 그것이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집안 큰 어른의 말을 듣고 무사히 거사(?)를 치른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다리 밑 돌담에 새겨진 - 아니 지워져 잘 알아볼 수 없는 낙서들을 통해서 성인식의 무게감을 느낀다. 성인식이란 '눈물'과 '통증'없이는 치룰 수 없는 의식임을... 여중생 슬기와 예분(애는 몇학년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ㅋㅋ)은 요즘 학생들의 큰 문제인 왕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왕따는 피해자나 가해자나 모두 비성인다운 행동이다. 슬기는 피해자가 되고나서야 본인이 소중한 친구에게 가해자였던적을, 그리고 그 단짝 친구에게 사과를 구하지 못함을 반성한다. 예분이는 미천한 동물이라 가벼이 여겼던 암탉에서 자기의 소명(?)같은 걸 배운다고 해야하나? 성인식은 성장소설이다. 이런 성장 소설은 청소년들의 눈물과 통증을 잘 견뎌내고 사회인(사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돕는 그런 바람직한 소설이다. 작가의 이 성장 소설속에는 조류독감이나 광우소 파동 등 시사적 문제도 다루고 있지만 그만큼 그네들의 아픔이 아주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어야만 한다는 걸 비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 이슈거리가 곧 그네 가족들의 생계와 연계되어 있고 그네들도 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아픔을 같이 공유하는 구성원이기에. 비록 아직 성인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다. 날 위해 기다려 준 그대가 고맙다고 말하는 우리는 지금 성인이 맞는 걸까? 박지윤의 성인식이나 한 번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