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 김서영의 치유하는 영화읽기 정신분석과 미학총서 5
김서영 지음 / 은행나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분석, 분석심리학, 심리학...너무 어렵다.

한국 도서시장에서 '심리'란 단어가 들어가면 언제나 베스트 셀러10에 들어간다. 나 역시 심심풀이로 어떠어떠하면 어떠어떠 하더라...'하더라'식의 그런 심리에 꽤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저자는 라캉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고, 학위를 받은 사람 같다. 지난 학기에도 자주 들었던 라캉 - 친숙하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라캉이여. 구조주의 철학을 발전시킨 프랑스 철학자.

물론, 뒤에 의학과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면서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고자 했다.

가령 우리가 하는 말들은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 인식되어진 사상이 말로 나오는 것이니깐, 말을 함에 있어서 능동적이기보다는 '말해진다'의 수동적 자세이다. 그리고 그는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라캉과 자주 비교되는 칼 구스타브 융 - 스위스 출신으로 정신의학을 전공한 뒤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연상실험을 창시하였다고 한다. 융 역시 프로이트의 애제자 였으나...'리비도'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각자의 길을 간다. 융은 리비도가 성적 욕망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에너지라는 생각을 가진다고 한다. 어찌보면 융이 좀 더 프로이트보다 더 에로스적일거 같지만, 내 생각엔 프로이트보다 덜 한거 같다는.

그리고 그네들의 사상이나 철학을 완전히 이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융이 좀 더 정이 간다...ㅎㅎㅎ

융은 임상사례를 통해서 무의식 속에는 치유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그가 말하는 심리학(심리 분석학)은 신비함을 가지고 있어서 좀 더 어렵고 난해하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감성에 더 가깝게 밀착되는 거 같아서...그러하다고 느끼는 거 같다. 아무래도 로직보다는 이모션...

근데 책을 다 읽고 나면 라캉에 대해서도 약간의 애정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렇게 라캉과 융을 들먹이는 건 이 책을 접하는 데 있어서 자주 등장하고 하니깐 나름의 정리가 좀 필요치 않을까 싶어서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보다 더욱 완성된 경지이며, 부족한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욱 견고한 것임을 강조한다. 욕망의 움직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가 결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스스로 만든 엄격한 규칙들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결국 본인 스스로를 만족하지 못하리라. 본인만의 규율이나 규칙이 있는건 바람직하나 본인이 만든 규율이 감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균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는~

 

저자는 비만과 디스크와 혈투를 벌이면서 학위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학위를 받기 위해 명마와 싸우고 있을 때 되려 더 편안했음을 느꼈다고 한다. 비록 몸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되려 정신은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치유 - 과연 어떤 영화가 우리를 치유하는가? 난 한때 - 그러니깐 지나간 아쉬운 사랑에 대한 치유를 위해서 생각없이(?) 웃는 코메디 영화를 선택했다. 미친듯이. 아주 영화광이 아니라면 혼자서 영화를 관람하기는 힘듦을 느낀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직업적으로 그러해야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참으로 큰 도전이였다. 화장실도 절대 혼자 안가는 나. 꼭 누군가를 동행해서 가는 내가 혼자 영화관을 찾는다니...

그때는 스크린을 보면서 혹은 TV를 보면서 나의 생각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멈춰진 내 생각은 나를 일상으로 복귀시켰다. 그럼 이게 치유가 아닌가?

그렇다. 비록 흥행에 실패해도 모두가 혹평하는 폭력적이고 가볍기 짝이 없는 저급(?) 영화라 할지라도 그 순간에 내가 치유를 받았다면 그 영화는 본인에게 치유력이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이건 아마추어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저자는 이왕이면 치유력을 가진 영화라면,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이 무엇 무엇이다 정확히 정의는 내리지 못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은 머리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겉모습과 상관없이 진정한 자신이 되어 선택하고 당당해 지는 그런 자아 찾기 여행.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나~아니,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

 

서로 양극은 통한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가 피하고 싶은 내면의 모습을 치유하는 방법은 하나가 되는 방법이 최고이다. 즉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암에 걸려도 이 암도 내 자신이구나 하고 보듬어 안으면 더 이상 암도 전위되지 않고 치유의 경험을 얻게 된다고도 하는데, 요런것도 일종의 그림자와 하나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그림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모습정도라 여기면 될 거 같다.

 

정신분석을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히스테리와 강박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왠지 나는 강박증이 있는거 같고 이 강박증은 히스테리보다 조금 더 무서운거 같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부정하지 말고 부족한 내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서두에서 라캉은 불완전한것이 되려 완전한 것이라 했다. 본인의 불완전함, 부족함, 떨림을 인정해야만 완전함으로 갈 수 있는게 아닐까?

 

그 완전함으로 가는 여정에 좋은 영화 한 편이 기억속에 있다면 얼마나 여유있는 삶일까?

내겐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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