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성서의 핵심가치]

신상필벌의 두려운 절대자에서
공감하고 기댈 수 있는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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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을 논하다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86
이황.기대승 지음, 임헌규 옮김 / 책세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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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명도설은 천명과 인성의 관계를 도식화하여
해설한 것이다.
이는 주희 성리학의 이념체계가 되는 주렴계의
태극도설과 주희의 사상을 집약 되였다.
당초 정지운이 만든 구본을 퇴계가 수정했다

고봉과 퇴계간의 사단칠정에 대한 논쟁은
서로 다른 자기생각을 끝내 견지하기 위하여 성현들이 주장했던 근거를 제시한다.

성현의 논리 역시 가설이지 명백한 근거일 수
없다는 점이 사실임에도 중국 성인의 말은 진리
이고 감히 조선의 선비가 다른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가설을 주장하는 것 만으로도 사문난적 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질 수 있었던 것이 중세 유럽의 헤브라이즘 시대와 같다.

측은, 사양, 수오, 시비지심이라는 감정은 인간
감각에 따라 발하는 것이며, 그것이 인의예지
라는 性(理)의 단서라면, 결국 理發而氣隨之,
氣發理乘이기보다는 氣發而隨之가 옳다.
주희가 단지 四端만이 천지지성(理)이라했는데
이는 주희보다 무려 15백년에 살았던 맹자가
말한 것을 차용한 것 이외에 어떤 객관적 사실은 전혀없다.
BC 4,5 세기라면 희랍의 자연 철학자 들이 ˝만물
은 물, 불, 수, 분자 등으로 이루어 졌다˝고 주장
했을 만큼 과학적 지식이 미천한 시대였다.
인간이 성장 할 수 있는 것은 수천년의 지식이 누적된 결과이므로 온고이지신해야 한다.

14세기 북송 주돈이가 음양의 원리로 태극도를 구상하고 설명한게 대단히 논리적이고 혁신적
이였다 생각 되지만, 오행이 사람과 만물을 생성
했다는 것이 요즘에는 타로점 수준일 뿐이다.

사람의 본성이 천명이고, 그것이 태극이고 순선 하다는 가정이 옳은지에 대한 시비지심이 없이 이분법적으로 이기론을 설명 하려니 기대승의 논리에 번번히 밀리는 느낌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전제가 본성, 불성,
영성을 지녔다는 미화가 필요했다 본다.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은 이기적 유전자로 프로그래밍된 본능일 뿐이며, 본능은 우리몸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숙주의 역할에
적합 하도록 진화되었다.

사람의 행동은 mbti와 같이 각자가 지닌 기질
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르게 표출될 뿐이다.
一切唯心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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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 참다운 성인의 길 계명교양총서 59
이황 지음, 홍원식 옮김 / 계명대학교출판부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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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시대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유학을
유교화하는대 논리적 체계를 구성하는데
기여한듯 싶다.

과학적으로 증빙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의 자연 철학자들이 주장하던 것 보다는
양자역학에 가까워 보인다.

도교와 불교의 스트럭쳐에 유가의 살을 붙인
퓨전으로 보다 보편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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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주자어류 낭송Q 시리즈
주희 지음, 이영희 옮김 / 북드라망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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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은 음양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음양이 기氣라면 음양이 되는 까닭은 리理이다. 
리는 음양오행이 봄·여름·가을·겨울의 차서를 
밟아가듯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봄에 만물은 
태어나고, 여름에 만물은 성장한다. 
가을에 만물은 수렴하고, 겨울에 만물은 한 점 
씨앗으로 응축한다. 
이 한 점 씨앗은 다시 다가올 봄에 만물을 낳을 
것이다. 
한 점 씨앗, 그것은 만물의 유일한 궁극적 본질인 
태극인 동시에 모든 사물의 본질이 무로 돌아가 사라져 버리는 본질없는 한점 無極 이기도 하다. 천지만물은 이 음양의 원리를 감응한채 광대무변 하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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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소인은 남탓을 하나, 군자는 자기를 돌아 본다는
게 유학이 추구하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비의 자기수행이나 止高至善의
높은 도덕적 수준에 대한 요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니
협력하고 양보하는 禮의 단서인 辭讓之心을 실천 하지 못하고 남탓에 명분 타령만 하는 무능한 선비의 시대였던 듯 싶다.

조선의 유학 광신자 집단인 사대부 패당들의
당쟁과 가렴주구로 정치와 민생이 파탄나고
결국 망국의 치욕을 당했던 거다.

儒學이 학문이 아닌 儒敎라는 종교가 되니
거경궁리의 자기수양도, 여민동락이라는 정치적
이상도 없이 단지 권력과 재물만을 쫓는 탐관오리 만을 양성했다.
이리에게 양을 지키라고 한것과 같이...

요즘民主主義는 권력을 잡기위해 떠벌리는 ˝국민팔이˝가 혹세무민의 주문으로 굳어졌다.

고려의 불교나 조선의 유학이 나쁜게 아니다.
좋은 철학이 나쁜 의도로 사용되어 부패돠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요즘 민주가 절대자를 숭배하는 民主敎가 되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숙주일 수 밖에 없는 취약한
인간의 약한 면을 이해 할 수 있어야 仁義를 실천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과 근대의 불화]

근대적 사고는 유학의 원리의 반대편에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을 도덕감이 아니라 사적 욕망
으로 보며, 사회를 자기 절제와 배려가 살아 있는 
공동체적 유대의 장이라기 보다 여러 개인들이 
물질을 소비하고 타자와 경쟁하는 공간으로 이해
한다. 
과학과 기술은 이 같은 이념에 따라 욕망의 무한 
충족을 위한 수단과 도구를 제공하고, 법률과제도
는 도덕과 관습 대신 분절된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사회적 질서유지를 위한 파수꾼으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자유의 궁극은 방종이고, 개인의 기원은 
이기이며, 평등의 궁극은 권위의 부정과 질서의 
파괴로 이어지기 쉽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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