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시각장애인들을 생각하면 잘못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 중 황정은의 글 '가까스로, 인간'(문학동네 2014 가을호 수록)으로부터 옮긴다. 




눈을 감으면 물에 잠긴 선창이 보이고 그 속에 누군가 있어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뜨고 다시 감고 도로 뜨기를 반복하는 형태로 꾸는 꿈, 도무지 꿈이 아니라서, 꿈에서 깨고도 달아나지 못하는 꿈.

봄엔 벚꽃을 환영하고 여름엔 복숭아를 환영하고 가을엔 사과를 환영하고 겨울엔 옷을 두껍게 입고 봄을 기다리면서 살자, 너무 많은 걸 걱정하지 말고, 소중한 사람들이 집에 돌아오면 반갑고, 그들을 여전히 반길 수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고, 그렇게 살자, 엉겁결 살게 된 인생, 그 정도로 퍽 만족스럽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시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게 부끄럽게 되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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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완서, 해산 바가지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v101ha120a11


'해산바가지'는 문학동네 박완서 단편전집 중 '저녁의 해후'와 문지 작가선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에 실려 있다.

By Rik Schuiling / TropCrop-TCS


그분의 망가진 부분이 육신보다는 정신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건 그후였다. 우리는 그걸 서서히 알아차리게 됐다. 처음엔 아이들 이름을 헷갈려 부르는 정도였다. 노인들이 흔히 그러는 걸 봐온지라 대수롭지 않게 알았다. 그러나 바로 가르쳐드려도 믿지를 않고 한사코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건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같은 말에 같은 대꾸를 해야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 빈도가 하루하루 잦아지고 있었다. "쌀 씻어놓았냐?" "네." "쌀 씻어놓아라. 저녁때 다 됐다." "네, 씻어놓았다니까요." "쌀 씻어놓았냐?" "씻어놓았대두요." "쌀 씻어놓았냐?" "쌀 안 씻어놓으면 밥 못 할까 봐 그러세요. 진지 안 굶길 테니 제발 조용히 좀 계세요." 이렇게 짜증이 나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그 줄기찬 바보 같은 질문이 조금이라도 뜸해지거나 위축되는 것도 아니었다. - 해산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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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산바가지, 저도 읽은 것 같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단편집을 많이 갖고 있어요. 밤새워 읽던 기억이 나네요.
작품이 다 훌륭한 것도 놀랍지만 소설도 산문도 다작을 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어찌 그리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감탄! 감탄!

서곡 2023-03-20 12:08   좋아요 0 | URL
네 어느 순간 필력 폭발하신듯요 저는 문학동네단편전집 정주행 중입니다...한 주 잘 시작하시길요~댓글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2023-03-21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박과 바가지입니다.ㅎ 어렸을 때 시골에서 저 바가지를 소여물 푸는 바가지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서곡 2023-03-21 14:41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박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흥부놀부 생각났어요 ㅋㅋ 오후잘보내세요 ~~
 

pelargonium (commonly known as geranium) 2016년 7월 불가리아 By Fjmustak (위키미디어커먼즈)


By Neltharion (위키미디어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페라고늄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 2020. 03. 23., 송한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226369&cid=46694&categoryId=46694







내가 이야기하려는 제라늄은 페라고늄(학명 Pelargonium)이다.

페라고늄이 남아프리카 케이프에서 유럽으로 처음 들어왔던 17세기부터 제라늄 두 종은 혼동되기 시작했다.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두 종류가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류법이 제대로 정리될 때까지는 익숙한 이름을 포기하려는 정원사가 거의 없었다.

몇백 년 전만 해도 제라늄은 귀하고 이국적인 식물이어서 부유한 수집가들이 애지중지했다. 그들은 제라늄이 비나 서리를 맞지 않게 하려고 비싼 온실까지 지었다. 바깥은 혹독한 겨울 날씨지만, 온실 안에서는 남반구에서 온 제라늄이 여름인 줄 알고 꽃을 피웠다.

18세기 말에 투명한 유리 지붕을 덮은 온실이 처음 나타난 이유는 주로 제라늄 같은 식물에 햇빛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들어온 새 품종에 따뜻하고 건조한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난방 장치도 더 정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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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19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라늄 종류가 다양하다고 해요. 어느 집 앞을 지나면서 빨간색 제라늄 화분을 본 적 있어요. 다른 것보다 크고 예쁜 색이라서 인터넷 검색해보았는데, 처음 보는 색과 모양도 많더라구요.
사진에 나온 꽃도 색감이 선명하고 예뻐요.
서곡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서곡 2023-01-19 21:59   좋아요 1 | URL
네 그렇더라고요 ㅎ 이 포스팅 하면서 백과사전을 보니 매우 다종다양하더군요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 밤 편안히 보내시길요~~~
 


Nocturne With Apple Tree, 1966 - Karl Schrag - WikiArt.org





나는 그녀에게 외투를 건넸다. 해는 이미 졌고, 사과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옅은 보랏빛이었다. 시들어버린 가벼운 화관, 혹은 후회처럼 고집스러운 파란색, 분홍색 작은 구름들이 수평선 위를 수놓았다. 우수에 젖은 백양목의 행렬이 머리를 성당의 장미 무늬 스테인드글라스 쪽으로 기울인 채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빛줄기는 나무 밑동에 닿지 못하고 그저 줄기 부분에 간신히 매달려 빛의 장식 줄을 형성했다. 산들바람은 바다와 젖은 잎들과 소의 젖 세 향기를 섞어놓았다. 노르망디의 시골이 저녁의 애수를 이처럼 감미로운 향락으로 감싼 적이 없었으나 나는 친구의 불길한 말 때문에 걱정되어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 밤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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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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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크라이나 땅에서는 또 전쟁 중이다. 침략과 전쟁은 인류가 도저히 근절할 수 없는 절대악인지, 역사는 멈추지 않고 자비 없이 흐른다. 이 책을 위해 구술하신 분들이 그 사이 세상을 떠나셨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람으로서 생명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을 겪은 그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영면에 드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이 책의 많은 특별한 소제목들 중 이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 "끔찍함의 침묵과 허구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책의 표지에 대해 한 마디 적는다. 다 읽고 나서 표지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이 표지가 과연 최선일까? 마지막으로, 격분과 비애를 복합적으로 느낀 부분을 옮긴다.

[남편이 우리 모녀를 보더니…… 잠깐 있다 가버렸어.

‘정상인 여자라면 과연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총 쏘기를 배우고? 그래서 당신이 정상아를 낳을 수 없는 거다’라고 나를 비난하며 가버렸지.

나는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해……

어쩌면 남편 말이 맞는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다 내 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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