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시각장애인들을 생각하면 잘못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 중 진은영과 황정은의 글로부터.
그러니 사고 이후 정치인들이 내놓는 주된 수습안들이 모두 연민과 시혜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엾은 희생자의 가족들을 위해 적절한 보상금을 책정하고 생존자에게 특혜를 베풀어서 착한 정치인으로 남고 싶은 거다.
동정이나 연민은 베푸는 사람의 마음이지 받는 이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히 동정해줬는데도 자꾸 사실을 규명해야겠다니 이제는 피곤도 하고 화도 치밀 것이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사회가 어째서 뻔뻔스러운 사회인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 진은영
눈을 감으면 물에 잠긴 선창이 보이고 그 속에 누군가 있어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뜨고 다시 감고 도로 뜨기를 반복하는 형태로 꾸는 꿈, 도무지 꿈이 아니라서, 꿈에서 깨고도 달아나지 못하는 꿈.
봄엔 벚꽃을 환영하고 여름엔 복숭아를 환영하고 가을엔 사과를 환영하고 겨울엔 옷을 두껍게 입고 봄을 기다리면서 살자, 너무 많은 걸 걱정하지 말고, 소중한 사람들이 집에 돌아오면 반갑고, 그들을 여전히 반길 수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고, 그렇게 살자, 엉겁결 살게 된 인생, 그 정도로 퍽 만족스럽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시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게 부끄럽게 되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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