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자기만의 방'(공경희 역)에 정희진이 쓴 해제로부터 일부 아래 옮긴다. 뮤지션 심규선(루시아)의 노래 '자기만의 방'도 가져왔다.

Near the Table, c.1950 - Victor Zaretsky - WikiArt.org





근대에 이르러 <여성 지식인>이 형성되고 가시화되면서, 울프 같은 여성들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남성보다 뛰어나게 태어나거나, 완전히 비범하거나, 아니면 <단지 여성>일 뿐이라고 겸손해야 했다.

근대는 이성애 핵가족 제도를 중심으로 개인의 감정부터 국제 정치까지 인간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젠더가 제도화된 시스템을 말한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경제력과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은 해방의 기본 조건이자 영원한 과제다. <영원한 과제>라는 건 달성되지 않을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가부장제나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이나 모두 변형을 거듭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해방, 완전한 문제 해결은 없다는 뜻이다. - 해제(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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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생일이다. 1871년 생, 1922년 몰.

La Plage de Cabourg 1896 By René-Xavier Prinet







여름의 일부를 마르셀은 할머니와 함께 영불 해협 연안의 바닷가에서 보내곤 했다. 어떤 때는 트루빌(Trouville), 어떤 때는 디에프(Dieppe), 나중에 카부르(Cabourg)에서 보냈다. 이렇게 해서 소설에 나오는 바닷가 발베크가 생겨난다. -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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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7-10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가 휴가를 뵤낸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이 아마 잃.시.찾에 나오는 발베크인 것 같네요.
올려주신 유튜브는 프루스트를 추억하는 콘서트인가요?

서곡 2023-07-11 09:19   좋아요 1 | URL
네 발베크의 모델이라고 합니다 프루스트가 기획한 1907년 공연을 재현했대요 영상 밑에 가져다놓은 음반의 소개에 자세히 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XYs95aWNfoM 박완서의 딸 호원숙이 출연한 작년 방송 영상 - 박완서는 200편 정도의 많은 시를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http://m.ksmnews.co.kr/view.php?idx=346536





저는 특히 선생님의 수필을 좋아했어요.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읽고 나서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제목부터 충격이었어요.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하신 〈내 안의 언어 사대주의〉라는 글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이 조그만 나라의 일억도 안 되는 인구가 쓰는 언어는 어차피 변방의 언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모국어야 너는 얼마나 작으냐? 작지만 얼마나 예쁘고 오묘한지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작아지는 건 차마 못 보겠다. (……) 말은 이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주인이고, 작가는 그 말의 신봉자이니 작가야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겠는가. (……) 나는 모국어 안에서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게 내 한계이자 정체성이다."

박완서: 먼저, 말씀하신 것 중에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이게 제목이 좋다고 그러셨는데, 그건 김수영의 시에서 빌려온 거예요. 그리고 "모국어야 얼마나 작으냐." 이것도 김수영 시에 그런 표현이 있어요. 어떤 시 같은 걸 읽다 보면, 짧지만 깊고 광범위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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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장녀 호원숙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에 살면서 쓴 산문집 '엄마 박완서의 부엌' 중 '오븐 앞에서 1'로부터 옮긴다.

By robertorodriguex - CC BY-SA 2.0


https://youtu.be/-eM3KZoVQNA 오븐 없이 굽는 호두파이





어머니가 이 집을 지을 때 부엌에 들였던 이태리제 오븐이 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 오븐으로 호두파이나 쿠키를 구워드리곤 했었는데 어느 틈에 그런 여유조차 없어지고 나니 오븐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호두파이도 곧잘 굽더니만 요즘은 안 하네."하며 서운해 하시는 걸 "그거 다 설탕덩어리예요."하며 과자 구울 여유가 없는 마음을 한 마디로 덮어버리고 말았다. 겨우 밥 차려 먹는 데 급급했다. 내 아이들 교육에 온통 신경이 가 있을 때이니, 노모를 위해 과자를 구워드릴 여유가 없었다.

그 후 고기나 생선을 굽거나 하는 용도로만 쓰다가 오븐으로 케이크를 다시 굽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전염병 시대라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유튜브에서 케이크나 쿠키를 만드는 화면을 즐겨 보다 보니까 만들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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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내가 읽은 박완서'에 실린 '망설임 없는 의식'(1979)이란 글에서 그는 소설사적 맥락으로 박완서 작품세계의 특장점을 설명하며 박완서 소설의 뛰어난 가독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시기적으로도 알맞게 그의 데뷔작은 장편 『나목』(1970)이며, 70년대적인 성격을 바야흐로 고대하던 무렵에 「지렁이 울음소리」(1973), 「부처님 근처」(1973),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 등의 단편을 들고 나왔다.

그의 새로움은 제목이 표상하는 것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가르치고자 함에 있지 않았다. 60년대 혹은 70년대를 살아온 우리들이 유달리 뻔뻔스러웠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새로움은 일종의 부끄러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 부끄러움은 모럴상의 그것이 아니고 지적 게으름에 연유되는 것이다. 이 점에만 논의를 국한시켜도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소설사적 검토가 이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엄숙주의에 주눅 든 독자들을 해방시킨 것, 그것이 7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문단적 독자층에서 대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광범한 독자층의 형성으로 전환된 70년대 한국사회의 구조와의 관련성에 한국소설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조우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작가 박완서가 맡은 바는 매우 특이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작가 박완서의 소설사적 의미강은 사색의 목적론적 정지 혹은 대독성(代讀性)에 있다. 하도 엄숙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독자들에게 이 작가는 대신 그 작품을 읽어주는 것이다.

이 작가의 ‘망설임 없음’이야말로 엄숙주의에 주눅 든 독자를 해방시킨 요인이다.

읽기만 하면 된다. 이는 저 60년대 엄숙주의 소설의 독법과 얼마나 다른가. 그 엄숙주의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사색하게, 골치 아프게 했다. 작가들이 문제의식에만 불탄 나머지 자기도 잘 모르는 세계를 주절대었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완서에 와서는 독자들은 골치 아플 필요가 없다.

이 진술 속 실상은, 근자 한국 독자층이 외국소설보다 국내 작품을 더 많이 읽는 현상에 대한 우려성이 내포된다. 사색 기피증은 유아의식일 따름이다. 그러한 사회나 집단은 보잘것없을 것이다. - 망설임 없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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