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의 '내가 읽은 박완서'에 실린 '망설임 없는 의식'(1979)이란 글에서 그는 소설사적 맥락으로 박완서 작품세계의 특장점을 설명하며 박완서 소설의 뛰어난 가독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시기적으로도 알맞게 그의 데뷔작은 장편 『나목』(1970)이며, 70년대적인 성격을 바야흐로 고대하던 무렵에 「지렁이 울음소리」(1973), 「부처님 근처」(1973),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 등의 단편을 들고 나왔다.

그의 새로움은 제목이 표상하는 것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가르치고자 함에 있지 않았다. 60년대 혹은 70년대를 살아온 우리들이 유달리 뻔뻔스러웠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새로움은 일종의 부끄러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 부끄러움은 모럴상의 그것이 아니고 지적 게으름에 연유되는 것이다. 이 점에만 논의를 국한시켜도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소설사적 검토가 이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엄숙주의에 주눅 든 독자들을 해방시킨 것, 그것이 7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문단적 독자층에서 대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광범한 독자층의 형성으로 전환된 70년대 한국사회의 구조와의 관련성에 한국소설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조우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작가 박완서가 맡은 바는 매우 특이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작가 박완서의 소설사적 의미강은 사색의 목적론적 정지 혹은 대독성(代讀性)에 있다. 하도 엄숙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독자들에게 이 작가는 대신 그 작품을 읽어주는 것이다.

이 작가의 ‘망설임 없음’이야말로 엄숙주의에 주눅 든 독자를 해방시킨 요인이다.

읽기만 하면 된다. 이는 저 60년대 엄숙주의 소설의 독법과 얼마나 다른가. 그 엄숙주의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사색하게, 골치 아프게 했다. 작가들이 문제의식에만 불탄 나머지 자기도 잘 모르는 세계를 주절대었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완서에 와서는 독자들은 골치 아플 필요가 없다.

이 진술 속 실상은, 근자 한국 독자층이 외국소설보다 국내 작품을 더 많이 읽는 현상에 대한 우려성이 내포된다. 사색 기피증은 유아의식일 따름이다. 그러한 사회나 집단은 보잘것없을 것이다. - 망설임 없는 의식‘(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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