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 대상작가 최윤 인터뷰로부터 

https://youtu.be/rFwb7o1EBz0 Goldberg Variations, BWV988: Aria da Capo · Evgeni Koroliov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돌아보면 어린 나이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프란츠 카프카를 거의 다 읽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도 번역이 거의 다 되어 있었거든요. 카프카의 편지류까지 당시에 읽은 것 같아요. 사무엘 베케트도 좋아했고 그래서 베케트를 모방한 작품이 저의 첫 신춘문예 응모작이기도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플로베르도 많이 읽었고요. 그러고 보니 다들 서구작가였네요. 모든 작가의 작품에는 흠이 있고 모든 작품을 성공하는 작가는 없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한 작가에게는 그에게서만 발견되는, 빼어난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 뛰어남 앞에서 숙연해지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한 작품을 통해 한 작가를 만나게 되면 그 작가 안으로 들어가 세밀하게 다시 읽는 거예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는 예브게니 코롤리오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어요. 그가 연주하는 바흐 시리즈는 정말 퓨어하지요. 이전에는 글렌 굴드를 주로 들었고요. 조용한 작품만을 고르지는 않지만 완전히 작품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살아보게 됩니다. 작품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고 제게 익숙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저만의 방식이지요. - 대상 수상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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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2020 대상 수상작 '소유의 문법'(최윤)을 읽었다. 단막극으로 제작해도 괜찮을 듯.

Village in valley, c.1834 - Theodore Rousseau - WikiArt.org


'소유의 문법'은 최윤 소설집 '동행'에도 실려 있다.



아이가 자라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대학 때 은사 한 분으로부터 한 가지 놀라운 제안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선물이었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K산 초입의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곡에 은사 소유의 집이 두 채 있다고 했다. 그중 한 곳이 비어 있으니, 괜찮다면 그곳에 와서 살면서 집이 상하지 않게 돌보아달라고, 어쩌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딸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계곡의 여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한 모습을 보여주어 나는 마을 사람들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에 살다 보니 내게도 욕심이 폴폴 일어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 계곡에서 오래 살면 동아의 병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계곡에 집을 지을 만한 빈 땅이 있는지를 이장에게 메일로 문의하기까지 했다. 답을 받지 못한 것이 다행이랄까. 우리의 처지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 대상 수상작 소유의 문법 |최윤

저의 어머니께서 습작시절 학교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을 읽으셨던가 봅니다. 앞자리에서 과일을 깎으시던 그 분은 무심한 듯, 안타까우신 듯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무 어두운 글은 쓰지 마."

병약하셨던 어머니는 딸이 소설가가 되기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조언은 큰 효력이 없었나 봅니다. 저는 늘 어둡고 그늘진 생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문득, 어머니의 생각이 나는 곳은 어디나 내 문학의 생가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반항의 사춘기, 가출을 할 생각으로 기차를 타고 이 부근을 지나쳐, 당시의 세상 끝인 동해안까지 갔습니다. 그 해안 도시의 한 책방에서 시집을 몇 권 사들고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투숙객이 많지 않은 겨울이었습니다. 여학생 혼자 밤새 불 밝히고 있는 것이 불안했던지 주인아주머니는 여러 번 "학생 자?" 하고 저를 불렀습니다. 이것이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지만, 맘속으로 저는 늘 가출 중입니다. - 대상 수상작가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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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악스트의 백수린 인터뷰를 읽는 중. 아래 발췌글 속 백수린의 스승은 소설가 겸 불문학자가 최윤(최현무). 2023년 출간 최윤 산문집 '사막아,사슴아'와 백수린이 번역한 뒤라스의 '여름비'를 함께 담아둔다.


최현무 교수는 뒤라스 전공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필명 최윤으로 소설을 쓴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윤 [崔允]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8233&cid=40942&categoryId=33385


마지막 학기 수업에서 사무엘 베케트를 배웠어요. 관련 논문도 어렵지만 원서로 읽고.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결국 불문학도 재미있고, 소설쓰기도 재미있으니까 둘을 모두 할 수 있는 대학원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알아보던 중에 소설가 겸 불문학자인 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심지어 그분 전공이 뒤라스라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였는데. 그래서 그곳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막연하게, 여길 가면 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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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뒤라스 최현무 최윤 백수린
    from 에그몬트 서곡 2024-01-20 23:49 
    뒤라스의 소설을 읽으며 불문학자 최현무가 쓴 논문을 참고하는 중이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29555 최현무, 「식민 경험과 타자인식 :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프랑스어문교육』, 36호, 2011.최 교수의 제자로서 스승처럼 불문학 박사이자 소설가인 백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키 바움 소설집 '크리스마스 잉어' 역자해설 중 수록작 '길'에 대한 부분이다. 토마스 만이 이 단편을 극찬했다고 한다. 내용과 결말이 누설된다.

By Angela M. Arnold, Berlin (=44Pinguine) - Vossische Zeitung, Anzeige, 4. April 1929,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1924년에는 소설 《난장이 울레》가 출간되었고, 토마스 만의 극찬을 받은 〈길〉도 이때 발표한다. 여기서는 가난 속에서 고된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주부의 삶이 이야기된다. 친칸 부인은 아름다운 옷장을 갖고 싶다. 옷장은 "누가 봐도 너무 작고 오래전부터 용량이 넘쳐서 더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빗속을 돌아다니면서 그녀가 구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중고 옷장이다. 그녀의 일생은 가족을 위한 노동의 연속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오늘 값싼 생선이 나오는 시장으로 간다. 가득 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서는 (……) 음식을 한다. (……) 블라우스를 다림질한다. 다시 음식을 한다. (……) 저녁에 먹을 빵을 준비한다." 한참을 헤매다가 갖고 싶은 옷장이 경매에 나온다는 걸 알게 되지만 비를 맞은 탓인지 심한 감기에 걸려 앓아눕게 된다.

감기를 얻고 일주일 만에, 옷장이 집에 배달되어 들어오는 날 세상을 하직하는 건 "삶이라는 협소하고 미비한 감옥에 갇히고" 만 친칸 부인을 떠올려봤을 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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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 바움 소설집 '크리스마스 잉어' 수록작 '길'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렸는데 폐렴으로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는 중인 여성 엘리자베트가 중심 인물. 호러 같고 스릴러 같다. 

Berlin memorial plaque, Vicki Baum, Koenigsallee 43-45, Berlin-Grunewald, Germany By OTFW, Berlin - Own work,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밤에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또렷한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엘리자베트!" 그녀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야?" 옆에서 친칸 씨가 목이 쉰 소리로 물었다. "누가 나를 불렀는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어서 쉬어." 남편이 웅얼거렸다. "꿈을 꾼 거야." 꿈을 꾼 게 아닌데, 라고 부인은 생각했다. 한순간 그녀는 굉장히 중요한 것을 의식했다.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그러다가 다시 조용히 뛰기 시작했고, 지식, 꿈, 흥분이 하나로 녹아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급히 서두르며 일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이 아니었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잠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뭔가 다른 것, 해체시키는 것, 부드러운 것이었다. 흔들리고 미끄러지면서 끌려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통의 뭉치에서 풀려나 계속 어디론가 앞으로 나아갔다. 강둑이 무너져 가라앉았다.

파란색이 점점 커지더니 꽃받침이 펼쳐져 그녀를 집어삼키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내 꿈의 보트가 고단한 호수 위를 저어 가네."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왜 그래요?" 누군가가 물었다. 그녀의 침대에 앉아 있는 머리가 네모난 사람이었다. "내 꿈의 보트가 고단한 호수 위를 저어 가네." 그녀를 조용히 건드리면서 물어본 것은 오토였다. "엄마, 왜 그래요?" 정신을 차린 그녀가 겨우 들리게 대답했다. "시의 한 구절이야."

그녀가 눈을 떴는데,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곁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침대가에 앉아 있었다. 젊어서 세상을 떠났는데 백발이었다. 친칸 부인은 미소했다. "알아요, 어머니." 그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 너도 곧 알게 돼." 어머니가 조용히 말하고 하얀 머리를 끄덕였다. 부인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이렇게만 말했다. "이제 쉬워졌어요." 그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을 잡아 자신의 목에다 놓았다.

그러자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니?" 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부인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우는 것 같은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저 멀리 자신의 삶이 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못 이룬 꿈뿐이에요, 어머니."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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