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2020 대상 수상작 '소유의 문법'(최윤)을 읽었다. 단막극으로 제작해도 괜찮을 듯.

Village in valley, c.1834 - Theodore Rousseau - WikiArt.org


'소유의 문법'은 최윤 소설집 '동행'에도 실려 있다.



아이가 자라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대학 때 은사 한 분으로부터 한 가지 놀라운 제안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선물이었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K산 초입의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곡에 은사 소유의 집이 두 채 있다고 했다. 그중 한 곳이 비어 있으니, 괜찮다면 그곳에 와서 살면서 집이 상하지 않게 돌보아달라고, 어쩌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딸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계곡의 여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한 모습을 보여주어 나는 마을 사람들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에 살다 보니 내게도 욕심이 폴폴 일어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 계곡에서 오래 살면 동아의 병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계곡에 집을 지을 만한 빈 땅이 있는지를 이장에게 메일로 문의하기까지 했다. 답을 받지 못한 것이 다행이랄까. 우리의 처지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 대상 수상작 소유의 문법 |최윤

저의 어머니께서 습작시절 학교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을 읽으셨던가 봅니다. 앞자리에서 과일을 깎으시던 그 분은 무심한 듯, 안타까우신 듯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무 어두운 글은 쓰지 마."

병약하셨던 어머니는 딸이 소설가가 되기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조언은 큰 효력이 없었나 봅니다. 저는 늘 어둡고 그늘진 생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문득, 어머니의 생각이 나는 곳은 어디나 내 문학의 생가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반항의 사춘기, 가출을 할 생각으로 기차를 타고 이 부근을 지나쳐, 당시의 세상 끝인 동해안까지 갔습니다. 그 해안 도시의 한 책방에서 시집을 몇 권 사들고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투숙객이 많지 않은 겨울이었습니다. 여학생 혼자 밤새 불 밝히고 있는 것이 불안했던지 주인아주머니는 여러 번 "학생 자?" 하고 저를 불렀습니다. 이것이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지만, 맘속으로 저는 늘 가출 중입니다. - 대상 수상작가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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