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페미니즘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촘촘하게 톺아보는 《여전히 미쳐 있는 Still Mad》의 시작에서 힐러리 클린턴 아니 힐러리 로댐의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책은 '항의 행진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글을 쓴다.(p.11)'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녀는 타당한 이유로 여전히 미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p.488)'는 문장으로 본문의 끝을 맺는다. 여성운동에서 엄청난 역량을 보여준 멋지게 미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힐러리 로뎀

《여전히 미쳐 있는》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나'가 아니라 나 자신 자체로서 인정받고 살아가려고 하는 여성들의 힘겨운 여성운동을 많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의 글과 삶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다. 미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물론 여성운동이 함께한 가치 있는 활동들도 보여주고 있어서 페미니즘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혁신 운동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페미니즘의 시작부터 다양한 모습으로의 변화 그리고 현재의 모습까지 여성운동의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어서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멋진 책이다.


20세기 말 미국의 도덕적 타락에 기여한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가장 선명하게 다룬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와 가장 단호하게 다룬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가 들려준 애니타 힐 성희롱 사건을 보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도대체 누굴 위한 제도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991년 애니타 힐 사건을 조사한 상원 법사 위원회 위원장이 현재 미국의 대통령 조 바이든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도 의아하지만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것도 의아하다. 정말 이 책에서 소개한 <타임>의 제목 "페미니즘은 죽었는가?"처럼 미국의 페미니즘은 죽은 것일까?


1950년대 페미니스트 작가들의 작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말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보았고 모두가 다 좋았다. 작가들의 삶은 하나같이 드라마틱 했다. 특히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은 삶을 산 앨리슨 벡델『펀 홈』『당신 엄마 맞아?』는 꼭 읽어보고 싶다. 페미니스트 작가 벡델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하자 생기는 정말 놀라운 일들을 담은 책이다. 『펀 홈』은 아버지와의 일을, 『당신 엄마 맞아?』는 엄마와의 일을 바탕으로 담은 것이라 한다.


p.437.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서 주로 뭘 배웠어요?"

···(중략) ···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지."


이 책에서 소개한 작품들을 통해서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작품 속에 녹아있는 작가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게 공감하고 그 공감이 페미니즘을 더욱더 공고하게 또 넓혀나가는 방법이 될 것 같다.



"북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모사 1867 - 대만의 운명을 뒤흔든 만남과 조약
첸야오창 지음, 차혜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르모사 1867》은 대만의 역사소설가 첸야오창陳耀昌 구상하고 있는 '대만삼부곡'의 첫 번째 작품으로 2021년 대만에서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스카루SEQALU>의 원작이다. 기록된 역사에 작가의 상상을 더해서 흥미롭게 만들어낸 역사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록된 역사'는 새로운 지식을 만나는 즐거움을 주고,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는 그 즐거움에 재미와 흥미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흥미로운 역사에 빠지고, 재미난 스토리에 빠져 역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멋진 책이다.


680여 페이지의 분량을 자랑하는 벽돌책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정말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첫 번째 매력은 역사적 사실을 촘촘하게 톺아보고 알려준다는 것이다. '양안'으로 대변되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던 무지에서 건져준 책이다. 대만이라는 섬에 그렇게 많은 종족(낭교18부락연맹)이 존재했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들의 생활방식도 놀라웠다.


두 번째 매력은 낯선 지명과 용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약간의 긴장은 흥미와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세 번째 매력은 역사(사실)에도 소설(허구)에도 치우치지 않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역사 속 인물(이양례)이 허구의 인물(접매)과 사랑에 빠지고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상상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16세기 대만을 발견한 포르투갈인들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별칭으로 부른 '포르모사'는 그 후 근대화 과정에서 전혀 아름답지 못한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당시 대만 원주민들의 비극의 시작점을 찾아보는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한다. 허구와 역사를 구별하고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들려주고 있는 '에필로그'를 만나보길 바란다.


이 소설에서 눈에 밟히는 인물은 '문걸'이다. 그런데 더 가슴 먹먹하게 하는 것은 이 인물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임문걸로 살다가 문걸이 되고 다시 반문걸이 된 사내.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으로 '사가라족'을 이끌었던 지도자.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은 자신의 종족을 사라지게 했다.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다른 의미에서 눈에 걸리는 인물은 '이양례'이다. 프랑스인(샤를 르 장드르)이지만, 미국(찰스)을 택했고 또다시 중국인(이양례)으로 살다가 일본인(이선득)으로 조선에서 죽은 남자의 삶도 만만치 않게 불행하다. 어디에도 녹아들지 못한 '이방인'의 삶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오늘날 대만과 중국의 통합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까닭을 알려주고 있다. 대만에는 한족이 건너오기 이전에 그곳에 살던 많은 종족들이 있었다. 그 종족들이 서양인을 만났을 때 생긴, 생길 수 있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대만의 근대사를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역사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어낸 '나비효과'의 시작점을 1867년의 한 사건으로 잡고 있다. 그때 포르모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RHK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개토태왕 담덕 7 - 전쟁과 평화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개토태왕 담덕』은 저자 엄광용이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만든 장편 소설이다. 역사소설이 가진 모든 재미와 흥미를 담고있는 수작秀作이다. 역사에 기록된 내용은 너무나 미미하지만 우리들 가슴속에는 그 어떤 역사적 인물보다 커다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영웅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고구려 역사뿐만아니라 동북아 역사와 함께 들려주고 있어서 '순삭'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영웅 담덕의 22년 치세를 중국, 한반도 그리고 일본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광개토태왕 담덕 7. 전쟁과 평화》10권으로 기획된 장편소설의 일곱번째 이야기이다. 요동을 둘러싼 후연과 북위의 전쟁을 시작으로 백제와 왜국의 비밀동맹으로 일본으로 가게되는 왕인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역사소설의 가장 재미난 점은 '진짜 그랬을까?'라는 궁금증을 찾아보는 데 있는듯하다. 아직기와 왕인이 함께 등장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떠나 일본에 정착한 장군들이 등장한다. 정말 그들이 그곳에 있었을까?


p.339. 학문을 익히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행동이 뒤따라야만 비로소 지혜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알겠느냐?

지식은 똥자루지만, 지혜는 황금보따리다.


백제에서 건너간 목만치는 소가노 마치로, 고구려 해평은 고마 헤이라는 인물로 일본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 도래인들은 일본에서 세력다툼을 하며 본국으로의 귀향을 꿈꾼다. 도래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았고 소가노 마치가 목만치라는 설說도 찾아보았다. 그외에도 전前편들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짧은 설명을 덧붙이는 저자의 친절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광개토태왕 담덕』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1편부터 역사의 흐름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지금 7편 전쟁과 평화를 따로 읽는다고 해도 재미와 흥미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요동을 둘러싼 탁발규와 모용수 그리고 담덕의 이야기가 광개토태왕의 요동점령을 재미나게 그리고 있고, 왜왕 응신과 백제의 왕 아신의 비밀 동맹은 다음 이야기를 그려보게 한다. 8편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기대된다. 그런 까닭으로 『광개토태왕 담덕』을 7편부터 읽어도 역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새움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상의책 '묻고 답하다'시리즈는 소설이 묻고 과학이 답을 하고,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을 하는 등 서로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두 학문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인류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멋진 인문학 시리즈이다. 과거를 배우는 즐거움과 미래를 생각하는 힘이 조화를 이루어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을 수 있는 묻고 답하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을 만나보았다.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묻고 답하다 05'는 아름다운 미술 작품도 함께하고 있어서 흥미를 배가(倍加) 시켜주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컬러 화보로 본문 내용과 관련 있는 명화를 실어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다. 명화에 머물던 시선은 인간의 진화와 연결되는 10가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밝혀내고 있는 생명과학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10개의 키워드로 보여주고 있다.

출산· 유전· 마음· 질병· 장기· 감염· 통증· 소화· 노화· 실험


생명과학의 발전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다양한 예를 보여주고 있어서 생명과학이 다루는 영역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이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조금 더 명확하게 정해져야 할 것 같다.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가능하게 한 '맞춤 아기'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무엇인가에 맞은 듯이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는 가능한 일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인류는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아이를 태어나게 할지도 모른다. 아니 중국이라는 사이코 집단이 벌써 성공? 했다고 한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 중에 하나다. 질병 치료보다는 유전자조작으로 발생할 돌연변이나 부작용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생명과학이 미래의 흐름을 들려주고 있다면, 역사는 과거 속 교훈을 보요 주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포도를 납 용기에 넣고 끓여서 사파sapa라는 단맛 시럽을 만들었다. 이 시럽이 고대 로마 멸망의 한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역사를 처음 접했다. 단맛이 대제국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만나볼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책이다.


유전자라는 생명과학의 기초로부터 인공지능, 유전자가위 등의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열 가지 키워드로 생물학의 재미난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가는 즐거움에 빠져보길 바란다.



"지상의책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1년 『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고 2011년 『제노사이드』야마다 후타로상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다카노 가즈아키가 2022년에 선보인 작품《건널목의 유령》을 만나보았다.


《건널목의 유령踏切の幽靈》은 제목이 무척이나 직설적이다. 이 소설의 주된 흐름에 처음부터 끝까지 '건널목의 유령'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자주 목격되는 유령으로 보이는 하얀 형상 때문에 운행하던 열차가 급정거하고 그곳에서 촬영된 사진에 유령으로 의심되는 물체가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주인공 마쓰다가 다니는 잡지사에서 유령의 정체에 대한 기사를 다루려고 하고 그 업무를 마쓰다가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회부 베테랑 기자였던 마쓰다가 유령담을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제목만큼이나 직설적인 표지의 숫자(0,1,3)의 시간만 되면 전화벨이 울린다. 별 관심 없이 시작한 취재는 그 전화벨과 함께 마쓰다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 자주 나타나는 '유령'의 정체를 밝히려는 월간지 기자 마쓰다와 함께 유령의 정체에 다가갈수록 사건은 유령을 넘어서 더 커다란 정체에 연결된다.


건널목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유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얼마나 큰 억울함이, 분노가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 소설의 정체는 무엇일까? 원한을 품고 죽은 처녀 유령이 나오는 괴기소설인가 싶어질 때쯤 이 소설의 진짜 정체를 알려줄 실마리를 조금씩 만나게 된다. 그렇게 미스터리한 유령담의 흥미로운 호기심이 엄청난 분노로 바뀌고, 또 가볍게 읽기 시작한 가상의 공포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현실의 공포로 변해간다.


살아서는 유령처럼 존재감 없는 아픈 삶을 살고 죽어서는 진짜 유령이 되어 고향을 그리는 한 맺힌 여인의 삶이 공포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