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 - 전3권 - 참된의료개혁을 위한 보고서
황종국 지음 / 생명광장 (우리문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황종국, <의사가 못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 1, 2, 3, 우리문화, 2005.








지난 주, 심하게 앓았다. 요새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열대야가 여전히 기승을 부러던 그 때, 나는 방문을 닫고 이불을 쓰고 눠있어야만 했다. 몸은 떨렸으며, 머리는 지끈지끈 거리는 게 정말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열을 재어보면 그리 높지도 않은데, 왜 그리도 통증은 심했는지...
아프기 바로 전에 다녀온 신당 기행이 문제가 되었던 걸까? 내가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신당을 찾아다니다가 그만 잡귀에 씌운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 꼭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빠지지 않는 요가까지 하루 빼먹은 것만 봐도 그 때 나의 증상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몸 속에 들어온 균이 있으면 그것이 소멸될 때까지 열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사그러들지 않는 두통 때문에 정말 환장할 지경이 되었다. 머리가 아프니 책도 볼 수 없고 그냥 멍 하니 머리만 쥐어잡고, 견딜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두통이 빠진 건 3일째 밤이었다. 그날 역시 잠을 제대로 못이루며 끙끙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소변을 보고 싶어 화장실에 갔다가, 급한데, 이거라도 먹어보자 하고는 나오는 소변을 받아 마셨다. 전에 들었던, 그리고 약 1개월 간 실천해 보았던 소위 '요로법'이다. 근데 말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소변을 마시고 와서 드러누었더니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다. 그리곤 나머지 밤을 편안히 잤다.

머리 아픈 게 빠지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이나 한 권 봐야겠다 싶었는데, 전공 책은 아예 보기도 싫고, 아차, 그래 예전에 사 두었던 황종국 판사의 책을 읽어야지 싶었다. 잡자마자 진도가 획획 나갔다. 아픈 와중임에도 첫 날 1권을, 둘째날 2권을, 그리고 3권은 몸이 좀 나은 뒤라 이것저것 같이하면서 며칠에 걸쳐서 읽었다.

황종국, 내가 그의 이름을 접한 건 10년도 넘은 것 같다. 당시 월간 <말>에 그가 쓴 글이 실려있었던 것 같다. 내용은 현행의료제도가 기존 제도권 의사들만이 의료행위를 독점케 하고 있어 실제 능력있는 민중의들이 현행법에 걸려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내가 놀랐던 건 그 글의 내용이 아니라 글 쓴 사람의 신분이었다. 현직 판사였던가. 그 때 기억으론 창원지검 검사로 생각했는데, 지금보니까 판사인 것 같다. 그런 법관이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적극 옹호하는 글을 썼으니까 내가 놀란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번에 읽은 3권의 책은 그 때 읽었던 내용과 기본 맥락이 같다. 다만 좀 더 상세히 소개했을 뿐이다. 얼마전 <녹색평론> 서평란에 양동춘 선생님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하셨다. 좋게 평했다. 나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양동춘 선생님의 지적처럼 우리민족의 의학만이 최고는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신토불이다. 이건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닐 터이다.

나는 양선생님의 서평을 읽고 황종국 판사가 조금 오버했겠구나 생각했다. 본시 우리 것의 우월함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이런 오버들을 좀 한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건 조금 오버가 아니었다. 심각했다. 소위 <환단고기>류의 책을 근본에 놓고 모든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다. 3권에 민중의학의 근거를 밝혀놓았는데, 그 근거라는 것이 바로 그 <환단고기>류의 극우민족주의적 시각이었다.
아, 이런...... 그것 때문에 1권에 실린, 한국의 민중의술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질 것 같아 아쉬웠다. 단식, 침,뜸, 부황, 수기요법, 민약법, 자연요법, 물요범, 음양조절법, 이도치병, 마음으로 병 고치기, 심지어 영혼 벽사법에 이르기까지 나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는데, 아 글쎄 그걸 말미에 가서 황당무계한 역사 이야기로 귀결을 맺다니.....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민중의학의 중요성이 사라질 건 아니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며, 돈이 거의 들지 않는 민중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런만큼 가장 겸손한 의술이 민중의술이다. 앞서 내 두통을 치료한 것도 비싼 약이 아니다. 나의 오즘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
멀리서 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의료행위를 타인에게 행하면 쇠공랑을 차야한다. 본시 본능적으로 몸은 그 몸을 잘 고칠 곳을 찾아가는 것이지, 어느 대학을 나온 자격증을 찾아가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제도권 의술 이외의 것은 모두 돌팔이라고 몰아세우며 단죄하고 있다. 실제 훌륭한 의인들이 징역살이를 몇 번씩이나 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고발한 황종국은 좋은 사람이다.

그가 중심이 되어 조만간에 집회도 연다고 한다. 의술을 국민에게 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그렇다.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무조건 단죄할 것이 아니다.
허락해야 한다. 그 무면허 의료행위가 돌팔이라고 염려된다지만 아픈 사람들은 어디가 진짜 명의인자 알아서 찾아간다. 그러니 허락해야 한다. 기존 의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탐욕 이외로는 그 불허를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그만 생명관리권을 의사가 독점하지 말고, 국민 각자에게 돌려주자.
의사 파업기간에가 가장 사망률이 낮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의사들에게만 그 독점권을 주는가.

심하게 아팠던 지난 주, 그런 생각을 하며 황종국을 만났다. 참 더불어 그가 축농증, 비염, 콧뼈 휨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하는데, 귀 밑 오목한 곳에 뜸을 계속 떠서 완치했다고 한다. 나도 그걸 해봐야겠다. 내 코병은 평생 달고 가는 것으로 지금까지 여겨야 할 정도로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영희, 대담 임헌영,<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한길사, 2005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우상과 이성>(1977)머리말에서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삼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 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으로서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내 삶에 있어서 '리영희'는 어떤 존재일까?

1994년 말이었나, 포항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제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던 무렵, 난 내 삶의 모델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 분들을 내 삶의 교과서로 삼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장기수 어르신들, 그 혹독한 공작을 다 이겨내고 인간이 신념과 지조를 지키기 위해 온 삶을 다 내어던지신 그 분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선생님들을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나는 그 분들을 욕되게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내가 지금도 그 분들에게 보내는 존경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크다. 다만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변명 아닌 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책상 앞에 다른 사진을 붙였다. <말>에 실려 있던 사진을 복사한 사진이다. 컬러 사진이 흑백으로 되어서 오히려 느낌이 더 좋았다. 바로 리영희 선생님 사진이다. '전사'로서의 삶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으로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독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그런 다짐만큼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물들고, 많이 타락하고, 많이 타협하면서, 이젠 그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지키며 살겠다고 수세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그런 내 삶인지라 리영희 선생님의 글이라면 다시 긴장을 높이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번 <대화>를 읽었다.

그런데 글 시작부분부터 가슴이 아리다.
"긴 세월에 걸친 문필가로서의 나의 인생의 마지막 저술이 될 이 자서전을..."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마지막 저술이 될'이라는 구절 말이다. 이 구절이 나를 더욱 무겁게 한다.



선생님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아마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아니 나보다 한참 앞선 선배 세대들도 그렇다고 한다. '사상의 은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글 시작부터 무겁다. 가장 큰 울림의 문장들을 앞에 내새운 건 그 때문이다.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이라, 근데 그게 오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나는 어떠한가. 기교나 부리며서 알맹이 없는 글이나 남발하는 건 아닌가. 짧은 글 하나를 쓰더라도 과연 진실을 추구하기 위함이낙, 아니면 헛된 공명심을 쫓는라 그런 것인가.
항상 나를 성찰케 하는 울림 있는 메시지다. 그가 있기에, 그가 저렇게 거목으로 서 있기에 나 같이 여린 나무들도 의지를 한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다면 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채찍질 한다.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 분은 분명 나의 스승이다.

너무도 많은 영감과 깨달음 준 분이고, 또 그만큼 쓸 것이 많아서인가 오히려 쓰기가 두렵다. 그냥 책의 몇 구절만을 남긴다.
그 분이 살아온 많은 시절, 그 모든 시절이 다 힘들었겠지만 박통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보다 더 암담해질 내일을 견디어야 할 절망적 상태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중압감에 시달렸어요" "자살이 유일한 구원으로 다가온 군인정권 30년을 살아온 결과이지"라는 구절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선생님은 그 어떠한 전쟁도 반대한다. "전쟁의 전투현장에서 전개된 비극보다 오히려 전선 뒤 인민대중의 생활과 그 사회의 구조적 기능적 틀이 겪는 파괴가 더욱 혹독하지요", "어떤 큰 선(善)을 위해서도 전쟁은 반대요, 전쟁은 악(惡)이야. 그것이 나의 신념이요."

딸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갔을 때, 두 번이나 선생님은 딸에게 참다운 아버지로서의 말씀만을 하신다.
"나는 딸에게 네가 무엇을 하든 네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견지해라."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따위의 비열한 행위만은 하지 마라고만 말하고 발을 돌렸어."
괜히 나의 눈 밑이 짠해 지는 대목이다.

선생님의 생활 자세.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할까. 딱히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아껴서 독서에 열중하고, 허튼 친구들과의 사귐을 멀리하고 목적 없이 방황하는 식의 인생을 혐오하고, 시간을 아껴서 부족한 지적 교양을 충족해나가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어."
"자가 자신에게 규율을 가하고, 그 규율이 자기 삶에 의미 있는 규율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에 따름으로써 보다 승화된 삶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현실 세계와 안 맞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타협보다는 자기 사상을 지키려면 확고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우리나라와 외국관의 관계를 말할 때 "남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라는 중국 고전을 인용한다.

근데 그 분의 스승은 누구였을까? 없다. 시대일 뿐이다. 아니 그가 모델로 삼은 사람은 있다. 노신, 아니 루쉰이 그 스승이다. 여기서 나는 부끄러웠다. 노신의 저작을 하나도 못 읽어봤으니....

솔직히 너무도 거대한 인간의 삶이 있는 책이라 오히려 글이 그냥 가볍게 나갔다. 글에 보다 그냥 마음에 담고 싶다. 아니 생활 실천으로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장에서 길을 묻다 - 마리서사 현장문학선 1
유경희 지음 / 마리서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유경희, <시장에서 길을 묻다>, 마리서사. 2005





월간 <말>이 위기라고 한다. 몇 년전부터인가 <말>을 구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사의 질이 그렇게 떨어졌던 게 다 내부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하긴 그 쟁쟁했던 신준영, 오연호, 최민희 등의 이름이 빠진지가 언제이던가. 그래도 그 어려운 시절 우리사회를 지탱해주었던 공로가 있었기에 나는 질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구독해 왔다.
그러다가 정기구독 만료가 다가왔다. 그래서 이번에 마음 독하게 먹고 끊었다. 몇 년동안 마음 모질지 못해 끊지 못했던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마지막 <말>이 전해 준 책이 하나 있다. 어느 시장 아줌마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책이 괜찮다. 그러나 <말>지에서 그렇게나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소개할 책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내 손에 마지막으로 잡혔던 <말>이 전해준 책이기에 성의껏 읽었다. 우선 재미있다. 삼천포 중앙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이 숨김 없이, 어쩌면 가슴 아리게 다가왔다. 특히 경제 상황 악화 이후인지라 그 절절함이 더했다.
그런데 그 어려움 속에서 어느 아줌마가 악착같이 글을 썼던 모양이다. 가게 문닫고 와서 자판을 두둘겼을 생각을 하니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매일 아닌가.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님에도 그런 성실성을 보였다는 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글쓰기로 몰았을까?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했던 나는?

글 내용은 단순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순한 게 오히려 진리다. 그 단순함 속에 우리네 삶이 있다. 괜히 지식인의 어줍잖은 기교로 복잡하게 만들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좋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어떤 내용을 얻을 건 아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챙겨려던 건, 글쓰기 스타일이다. 생활글을 쓸 땐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게 좋을까, 뭐 그런 것에 대한 참고로 본 것이다.

그의 글은 주로 처음에 일상의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대화에서 파생되는 사건들이 그 다음을 이룬다. 이게 줄거리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상황의 반전을 가져오는 또 한마디. 그걸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그래서 때론 강렬하기도 하고,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짧은 글이로되, 단단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시장에 나온 할머니와 대화 하다가 마지막엔
"허이구- 죽을 때가 됐으면 방안에서 넙죽 기다리지 모하러 나왔노?"
촌철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짧은 한마디에 설움과, 비애와 유머와 기지가 다 담겨 있다. 글은 이런 식으로 끝맺고 있었다.
아니면 "씨꺼!, 노무현이 우리 오빠다. 건들지 마라!"
이런 식이다. 한 방으로 대화를 끝내버리면서 여운을 남긴다. 그게 이 사람 글의 스타일이자 장점이다.
괜찮은 방법이겠다. 칼럼 쓸 때도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글은 여러 사람들이 즐겨 썼다. 그래도 그의 글이 힘을 갖는 건 단순히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시장 사람들의 진솔한 삶, 그게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펜션으로 성공하기
김창범 지음 / 전우문화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김창범, <펜션으로 성공하기>, 전우문화사. 2003.





제목부터가 노골적이다. 그래 나 돈 좀 벌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도 구입했다. 사실 구입은 오래 전에 했다. 몇 년 전부터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책을 모았다. 그러다가 이제야 읽는다. 이제 작게나마 이 일을 시작해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책이 차분하다. 단순히 돈 잘벌자는 경영서가 아니다. 펜션은 문화사업이며 가치창출 행위라는 개념규정부터가 그렇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자신이 평생의 일로 삼을만한가. 일단 그게 관건이란다. 이 점에서 나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내가 책을 보고 글을 쓰기 위해서 마련하는 현실적인 호구대책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돈 벌이만을 생각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 속에서의 문화 나누기. 이것 역시 하고 싶은 일이다. 물론 번잡한 만남은 싫다. 에너지만을 빼앗기고 탁해질 뿐이다. 그러나 진정 사회를 고민하고 생태주의를 꿈꾸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면 좋은 일이겠다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경영 노하우의 핵심은 테마를 가지라는 것이다. 이건 우리도 역시 생각한 바다. 그리고 그 테마 때문에 문화 사업이고, 평생 사업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테마를 이용해서 이벤트를 자주 가지라고 한다. 이 역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저자가 말하는 영원한 테마는 건강과 자연과 안식이란다. 맞는 말이다. 거기에 나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도 곁들일 수 있다. 아니면 차를 재배새서 직접 차를 뽑는 것도 좋겠다. 천연염색도, 물론 아직은 관념이다. 그 일에 직접 투여되는 노동을 생각하면 그리 쉬운 일만도 아니겠다. 그래도 그게 나이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기쁜 일이 아닐까. 소박하고 단순하게. 데이비스 소로나 니어링을 생각하면서..... 그래도 아직은 관념이다.

그 다음 강조한 건 마케팅과 고객관리다. 이게 중요한데 사실은 자신이 없다. 성격 때문이다. 일단 책에 소개된 내용을 요약해 본다. 우리 '바다를 본' 식구들에게 한 번 브리핑이라도 해야할 내용이라서 그렇다.
1. 텔레마케팅을 위한 전화일지: 손님이 펜션을 떠난뒤 하루 지나서 전화할 것-즐거운 시간을 가졌는지, 귀갓길은 편안했는지, 다시 한번 들려주시면 더 즐겁게 모시겠다. 좋은 일 있으면 또 전화드리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앞으로 있을 통화에 대한 여지를 만들어 두는 것.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선생님과 같은 좋은 분이 있으면 꼭 모시고 싶습니다. 소개나 추천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이메일은 반드시 즉시 응답하도록, 이건 홈피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고, 누군가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3. 주말보다 주중 고객을 잡아라: 점심식사, 모임 장소로 적극 활용을, 가족행사 유치도 좋다. 빔과 노트북도 있으면 좋고-연수나 세미나 장소로 쓸 수 있다.
4. 고객 사진 자료 축적도 필요.
5. 인내심: 한발짝 물러나 음미하고 소화하여 대응-화내지 말것.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운영자의 원칙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6. 팬션의 테마로 서비스를 철저히
7. 객실마다의 체크리스트 만들어 항상 점검-집기, 비품 준비여부, 고객 요구사항 접수
8. 화장실은 반드시 두번 청소, 방향제 뿌릴 것.
9. 손님을 맞을 때는 항상 메모장을 지니고 다닐 것
10.돌발사태 대비, 이웃 펜션과 연계 가질 것: 그리고 고객에게는 사과와 함께 다음 이 펜션을 이용할 경우 절반의 값으로 보상해드리겠음을 약속할 것


에구, 대충 정리했는데, 암튼 쉽지는 않겠구나. 그래도 뭐 즐기면서 하지. 즐겁게 살려고 하는 일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까페나 할까? - 재미있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데...
김영혁.김의식.임태병.장민호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김영혁 외, <우리 까페나 할까?>, 디자인하우스, 2005.



어찌 내가 이런 책을 사서 읽었을까? 내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신간 안내 분류에서도 '실용, 경영'에 분류된 책이다. 그런 책을 내가 잡았다. 까페라?

혹시 투잡스? 맞다. 투잡스를 위해서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투잡스의 대상이 어째서 까페냐? 이게 아마 궁금할 거다.

그런데 나 지금 심각하다. 까페가 눈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농담 아니다. 나 지금 심각하다.
이 까폐를 어찌할 것인가? 요즘 이게 내 삶에 있어 작은 화두 중 하나다.

판포에 마련한 작은 공간 '바다를 본 사람을' 안에는 아주 예쁜 까페 공간이 달려 있다. 처음엔 단순히 민박만을 생각했던 것인데, 경영을 거의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영덕 씨가 그 공간을 까폐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만든 공간이다.
그런데 지금, 그 까페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문제다. 덕연 엄마가 실질적으로 거기에 매달린다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준석 엄마도 사실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코드가 다른 아무에게나 임대를 줄 수도 없다. 이런 고민의 와중에서 번듯 들어온 제목 "우리 까페나 할까?"를 본 것이다. 주저없이 주문했고, 단숨에 읽었다.

감각이 아주 젊었다. 저자들의 나이도 그랬다. 그리고 상당히 도시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고로 우리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배울 것도 적지 않았다. 유사한 상황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동업이라는 점, 그리고 각자 다른 직업이 있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취미생활겸 인생을 풍부하게 하자는 취지, 이런 것들은 우리와 상황이 닮았다.

그러나 우리를 훨씬 앞질러 있는 점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감각이다. 하기 홍대 앞에서 잘나가는 까페를 운영하는 젊음들이니, 어찌 우리가 따라갈 수 있겠는가.

우리 현실에 맞게 벤치마킹만 잘 해도 만족이다.
가장 뇌리에 많이 남은 건, 주력 종목을 키우라는 것, 그리고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것, 인터넷을 충분히, 그리고 내실있게 활용하라는 것. 음악을 어울리게 배치하라는 것, 동업을 즐겁게 하라는 것 등이다. 그리고 홍보는 지속적으로 하되, 난잡하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라는 것, 작은 이벤트를 끊임없이 만들라는 것도 평소 생각하던 것과 일치하여, 나의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다.

이제 얼른 동업자 영덕 씨 내외를 만나야겠다. 그리곤 이 책을 건네 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까페나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