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2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좌절감만 깊게 한 국밥

김경원·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유토피아, 2006.



디자인이 재미있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제목도 그렇지만 그 제목 중에 ‘국’자와 ‘밥’자만을 크게 키워 얼핏 보면 ‘국밥’처럼 읽힌다. 국밥, 재미있다. 부제는 ‘글이 좋아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한국어 연습장’이다. 이 책을 읽고 정말 그리 된다면 좋겠다. 추천사도 화려하고 많다. 그 만큼 좋은 책이란 말이겠다. 서평도 여기 저기 실렸다. 여러 평이 다 좋다. 그렇게 좋은 책을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상황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표현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 문맥에 딱 들어맞는 단어를 구사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침서라는데······.
이 책은 ‘단어편’이다. 나중엔 문장편도 나온다고 한다. 이 단어편에서 다루는 것은 대부분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비교하며 가장 적절하게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속와 안, 끝과 마지막, 기쁨과 즐거움, 껍데기와 껍질 등등. 아 그러고 보니 이 원고는 예전에 한겨레에 연재가 되었던 것 같다. 맞다. 그 때 많이 도움이 된다 생각하긴 했지만 꾸준히 보질 못했다. 왜냐고? 어려워서.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풀면 반도 못 맞추기에 짜증이 나서. 그래서 ‘에이, 대충 쓰지 뭐. 뜻만 통하면 될 거 아냐, 내가 뭐 문필가도 아니고, 그냥 연구자인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좌절감 때문에 말이다.
이 책 역시 그랬다. 매번 문제부터 시작한다. 맞춰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여전이 반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은근히 부아가 난다. 내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 아닌가. 그래도 참고 봤다. 내 실력 향상을 위해서.
근데, 문제는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헷갈린다는 것이다. 어쩌랴.
이제 다시 마음먹는다. 좌절하지 말자. 평소엔 그냥 쓰다가 혹시 생각이 나면 찾아보자. 찾아보는 사전처럼 활용하면 된다. 이걸 내가 항상 암기하고 있거나 언제든지 바르게 쓸 것에 대해 강박적 생각을 하지 말자. 그냥 편히 생각하다가 찾아보자. 이렇게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암튼 대단한 내공들이다. 이런 비슷비슷한 말들을 어찌 그렇게도 똑 부러지게 분류하고 설득력 있게 해설해 놓았는가. 글쟁이는 이런 사람들이다. 아니, 사상적으로 옳고 그러면서 또한 이런 저자들처럼 어휘를 정확히 골라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난 멀었다. 그래도 정진, 정진할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성동 천자문 -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
김성동 쓰고 지음 / 청년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성동, <김성동 천자문>, 청년사, 2004.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이번 책은 지금 읽을 책이 아니었다. 방학 때 좀 차분해진 시간에 읽어야 할 것을 바쁜 와중에 허겁지겁 읽었다. 그래서 아쉽다. 차분히 하나 하나 읽어야 할 것을....

하긴, 내가 이 책을 읽은 게 다른 상황 때문이다. 덕연이 한자 공부 시킨다고 , 그러러면 나도 역시 좀 참고 자료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고른 책이다. 의도는 빗나갔다. 6살 딸에게 천자문 공부는 무리다. 천자문이라는 게 한자 공부의 입문서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건 옛날 이야기다. 현재의 상황과는 다르다. 지금 천자문을 한자공부 입문으로 삼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나 역시 천자문을 예전에 대충 봤었지, 이번처럼 그나마 꼼꼼히 본 적은 없다. 김성동의 해설을 보면서 읽었더니 이건 완전히 동양 고전을 참고로 만든 4자 성구집이었다. 동양 고전에 대한 기초가 없이는 글자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할 책이라는 말이다. 논어, 맹자, 대학, 시경, 시전, 그외 사기열전 등 두루 섭렵하고 있어야 그 본 뜻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니 현재 상황에서 한자 공부의 입문서가 되긴 어렵다. 그러다 보니 6살 딸 덕연이 한자 지도 참고자료로서의 역할은 애당초 사라졌고, 그냥 나는 동양 고전의 짜투리를 챙기는 마음으로 읽었다.

우선 김성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점이 수확이다. 김성동, 영화 <만다라>를 본 게 고등학생 시절이었나, 그 때의 기억으로 대단한 작품이다 싶었는데, 그 원작이 김성동의 소설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보통 사람이 아님을 그 때 감잡았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그의 가족 내력을 보니 기각 막혔다.

조선시대 큰 벼슬까지 했던 집안(물론 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 벼슬자리를 자랑과 자부와 자존으로 삼으며 지내온 후손들, 그랬기에 병인양요 때 그의 조상은 화약 통 위에 올라가 자결했으며, 그 뒤의 여러 조상들도 꼿꼿한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 그리고 김성동의 큰 아버지는 해방정국에서 처형되어 김성동의 할아버지가 묻었으며 정작 김성동의 아버지는 마찬 가지 그 시절에 잡혀가 사망 날짜마저 모르고 있는 처지였다. 아들 둘을 먼저 보낸 꼬장꼬장한 선비가 김성도의 할아버지다. 김성동은 그 할아버지에게서 5살 때부터 천자문을 배웠다. 그 가락이 이 책을 만든 바탕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던 청소년 시절, 가출과 출가, 그리고 다시 문인으로서의 생활, 이런 게 대충 그의 삶의 과정이다.

이 책은 천자문의 4자 경구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현재의 상황과 연결지으며 나름의 해석과 감상을 적어 놓은 책이다. 앞서 이 책이 동양 고전에서 따온 내용이 많다고 했던 만큼 김성동의 해석도 동양적 냄새가 강했다. 당연히 유교적 가르침이 바탕이지만, 김성동은 그 부분에 대해서 전혀 딴 소리를 하고 있다. 가부장 우월의 이데올로기가 들어간 구절이라는 해설을 달아놓기 일쑤다. 그러나 무의자연의 도교적 사상은 많이 펼쳐 놓았다. 아마 그가 그런 사상에 치우쳐 있는 듯 하다. 하긴 현재 망가질대로 망가진 생태계를 보면서 최소한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문제이겠다. 그것만이 아니다. 극우 민족주의적 냄새도 있다. 환단고기류 말이다. 게다가 엉뚱하게도 주체사상에서 따온 해설도 한 곳에선 써 놓았다. 가히 사상 편력의 범위가 넓음을 알겠다.

내게 많이 다가왔던 건 도교적 사상이긴 하다. 그러나 그건 나도 평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공감은 했지만 큰 감동으로 오진 않았다. 그래서 그 보다는 선비의 지조, 절개, 삶의 원칙을 적어 놓은 부분이 더 다가왔다. 다음은 좋았던 구절을 옮긴 것이다.

"책이야말로 이 답답하고 힘겹기만 한 티끌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뗏목"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느 사람이라야만 비로소 만물만상을 읽을 수 있다고 옛 사람은 말하였습니다. 책을 읽기는 쉽지만, 자기 자신을 읽기능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고, 내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하여금 나를 보게 하여 마침내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하여금 나를 읽게 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기껏 글자나 좇아가서 무엇 하겠느냐는 채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나의 독서는 혹 눈으로만 글자 구경하는 건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

"무릇 천지의 정기를 얻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 사람이요, 그렇게 태어나게 된 사람의 몸을 맡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이다. 그 마음이 몸 밖으로 펴나온 것이 말이요, 그 말 가운데서 가장 알차고 맑은 것이 시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바르면 시가 바르고, 마음이 간사하면 시 또한 간사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로 된다."

"왕조시대 사대부들이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본 덕목이었던 절(節)은 대나무 마디처럼 그 경계가 뚜렷해서 변절을 받아들이지 않는 절개를 말한다"
-절개를 보기 힘든 요즘같은 세상에 다시 '절'을 생각하낟.

그리고 그의 표현 중 재미있던 것, 복지뇌동, 컴본주의 시대,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 구절들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한테 사람이 먹히고"
-이건 아주 현재의 세태에 적실한 말이다. 밥한테 사람이 먹히는 세태,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지도 못하고, 밥만 좇아 삶을 다 써버리는 사람들, 소위 자본주의 시대는 그런 삶이 기본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라는 게 그건가? 이건 앞의 '내가 책을 보는가, 책이 나를 보는가' 보다 더 뼈 아픈 지적이다.

"지금은 이른바 민주주의 세상입니다. 아직 말 그대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바른말을 했다고 해서 이내 자리를 빼앗기거나 징역을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벼슬아치, 구실아치들은 바른말을 하지 않습니다. 눈치만 봅니다. 그래서 복지뇌동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좀 더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때 읽었더라면 더 많은 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인데, 허겁지겁 읽게 된 게 못내 아쉽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읽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장에서 길을 묻다 - 마리서사 현장문학선 1
유경희 지음 / 마리서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유경희, <시장에서 길을 묻다>, 마리서사. 2005





월간 <말>이 위기라고 한다. 몇 년전부터인가 <말>을 구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사의 질이 그렇게 떨어졌던 게 다 내부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하긴 그 쟁쟁했던 신준영, 오연호, 최민희 등의 이름이 빠진지가 언제이던가. 그래도 그 어려운 시절 우리사회를 지탱해주었던 공로가 있었기에 나는 질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구독해 왔다.
그러다가 정기구독 만료가 다가왔다. 그래서 이번에 마음 독하게 먹고 끊었다. 몇 년동안 마음 모질지 못해 끊지 못했던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마지막 <말>이 전해 준 책이 하나 있다. 어느 시장 아줌마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책이 괜찮다. 그러나 <말>지에서 그렇게나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소개할 책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내 손에 마지막으로 잡혔던 <말>이 전해준 책이기에 성의껏 읽었다. 우선 재미있다. 삼천포 중앙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이 숨김 없이, 어쩌면 가슴 아리게 다가왔다. 특히 경제 상황 악화 이후인지라 그 절절함이 더했다.
그런데 그 어려움 속에서 어느 아줌마가 악착같이 글을 썼던 모양이다. 가게 문닫고 와서 자판을 두둘겼을 생각을 하니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매일 아닌가.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님에도 그런 성실성을 보였다는 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글쓰기로 몰았을까? 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했던 나는?

글 내용은 단순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순한 게 오히려 진리다. 그 단순함 속에 우리네 삶이 있다. 괜히 지식인의 어줍잖은 기교로 복잡하게 만들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좋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어떤 내용을 얻을 건 아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챙겨려던 건, 글쓰기 스타일이다. 생활글을 쓸 땐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게 좋을까, 뭐 그런 것에 대한 참고로 본 것이다.

그의 글은 주로 처음에 일상의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대화에서 파생되는 사건들이 그 다음을 이룬다. 이게 줄거리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상황의 반전을 가져오는 또 한마디. 그걸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그래서 때론 강렬하기도 하고,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짧은 글이로되, 단단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시장에 나온 할머니와 대화 하다가 마지막엔
"허이구- 죽을 때가 됐으면 방안에서 넙죽 기다리지 모하러 나왔노?"
촌철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짧은 한마디에 설움과, 비애와 유머와 기지가 다 담겨 있다. 글은 이런 식으로 끝맺고 있었다.
아니면 "씨꺼!, 노무현이 우리 오빠다. 건들지 마라!"
이런 식이다. 한 방으로 대화를 끝내버리면서 여운을 남긴다. 그게 이 사람 글의 스타일이자 장점이다.
괜찮은 방법이겠다. 칼럼 쓸 때도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글은 여러 사람들이 즐겨 썼다. 그래도 그의 글이 힘을 갖는 건 단순히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시장 사람들의 진솔한 삶, 그게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