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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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대담 임헌영,<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한길사, 2005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우상과 이성>(1977)머리말에서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삼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 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으로서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내 삶에 있어서 '리영희'는 어떤 존재일까?

1994년 말이었나, 포항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제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던 무렵, 난 내 삶의 모델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 분들을 내 삶의 교과서로 삼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장기수 어르신들, 그 혹독한 공작을 다 이겨내고 인간이 신념과 지조를 지키기 위해 온 삶을 다 내어던지신 그 분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선생님들을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나는 그 분들을 욕되게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내가 지금도 그 분들에게 보내는 존경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크다. 다만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변명 아닌 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책상 앞에 다른 사진을 붙였다. <말>에 실려 있던 사진을 복사한 사진이다. 컬러 사진이 흑백으로 되어서 오히려 느낌이 더 좋았다. 바로 리영희 선생님 사진이다. '전사'로서의 삶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으로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독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그런 다짐만큼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물들고, 많이 타락하고, 많이 타협하면서, 이젠 그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지키며 살겠다고 수세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그런 내 삶인지라 리영희 선생님의 글이라면 다시 긴장을 높이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번 <대화>를 읽었다.

그런데 글 시작부분부터 가슴이 아리다.
"긴 세월에 걸친 문필가로서의 나의 인생의 마지막 저술이 될 이 자서전을..."이라는 구절 때문이다. '마지막 저술이 될'이라는 구절 말이다. 이 구절이 나를 더욱 무겁게 한다.



선생님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아마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아니 나보다 한참 앞선 선배 세대들도 그렇다고 한다. '사상의 은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글 시작부터 무겁다. 가장 큰 울림의 문장들을 앞에 내새운 건 그 때문이다.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이라, 근데 그게 오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나는 어떠한가. 기교나 부리며서 알맹이 없는 글이나 남발하는 건 아닌가. 짧은 글 하나를 쓰더라도 과연 진실을 추구하기 위함이낙, 아니면 헛된 공명심을 쫓는라 그런 것인가.
항상 나를 성찰케 하는 울림 있는 메시지다. 그가 있기에, 그가 저렇게 거목으로 서 있기에 나 같이 여린 나무들도 의지를 한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다면 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채찍질 한다.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 분은 분명 나의 스승이다.

너무도 많은 영감과 깨달음 준 분이고, 또 그만큼 쓸 것이 많아서인가 오히려 쓰기가 두렵다. 그냥 책의 몇 구절만을 남긴다.
그 분이 살아온 많은 시절, 그 모든 시절이 다 힘들었겠지만 박통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보다 더 암담해질 내일을 견디어야 할 절망적 상태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중압감에 시달렸어요" "자살이 유일한 구원으로 다가온 군인정권 30년을 살아온 결과이지"라는 구절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선생님은 그 어떠한 전쟁도 반대한다. "전쟁의 전투현장에서 전개된 비극보다 오히려 전선 뒤 인민대중의 생활과 그 사회의 구조적 기능적 틀이 겪는 파괴가 더욱 혹독하지요", "어떤 큰 선(善)을 위해서도 전쟁은 반대요, 전쟁은 악(惡)이야. 그것이 나의 신념이요."

딸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갔을 때, 두 번이나 선생님은 딸에게 참다운 아버지로서의 말씀만을 하신다.
"나는 딸에게 네가 무엇을 하든 네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견지해라."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따위의 비열한 행위만은 하지 마라고만 말하고 발을 돌렸어."
괜히 나의 눈 밑이 짠해 지는 대목이다.

선생님의 생활 자세.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할까. 딱히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아껴서 독서에 열중하고, 허튼 친구들과의 사귐을 멀리하고 목적 없이 방황하는 식의 인생을 혐오하고, 시간을 아껴서 부족한 지적 교양을 충족해나가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어."
"자가 자신에게 규율을 가하고, 그 규율이 자기 삶에 의미 있는 규율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에 따름으로써 보다 승화된 삶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현실 세계와 안 맞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타협보다는 자기 사상을 지키려면 확고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우리나라와 외국관의 관계를 말할 때 "남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라는 중국 고전을 인용한다.

근데 그 분의 스승은 누구였을까? 없다. 시대일 뿐이다. 아니 그가 모델로 삼은 사람은 있다. 노신, 아니 루쉰이 그 스승이다. 여기서 나는 부끄러웠다. 노신의 저작을 하나도 못 읽어봤으니....

솔직히 너무도 거대한 인간의 삶이 있는 책이라 오히려 글이 그냥 가볍게 나갔다. 글에 보다 그냥 마음에 담고 싶다. 아니 생활 실천으로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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