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 열도 속의 슬픈 인물 탐구
김충식, <슬픈 열도-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효형출판, 2006.
책을 잡자 순식간에 진도가 나간다. 글쟁이가 쓴 글이라서 그렇다. 글발이 좋다. 아주. 이런 사람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난 당분간 차분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 논문 말이다. 하지만 그 논문 끝나면 다시 저널적 글쓰기로 돌아가고 싶다. 학자들 안에서의 글이 아니라, 대중적 글쓰기 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문성은 더 높여야 한다.
김충식은 <동아일보>도쿄 지사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래서 일본 속의 사정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그도 역시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일본 속의 한국인을 집중 취재했다. 인물 취재인 것이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일본과 한국 사이엔 드러나지 않은 인적 관계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을 받다 보니 사실 피해자 입장이 많다. 그 과정에서 조선 사람이 택할 수 있었던 길은?
처절하게 저항하거나. 아니면 철저히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화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생각 없이 사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이었기에 그 모든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순히 친일파라고 밀어버릴 것만은 아니다.
먼저 저자는 김옥균을 탐구한다. 일본을 이용하려다가 처절히 배신당했던 풍운아. 그러나 그의 용일(用日)을 단순히 친일이라고 할 순 없다. 1958년에 김일성도 김옥균의 긍정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일본 망명 생활과 최후가 드라마틱하게 잘 묘사가 되어있다. 암살당한 후 시신은 다시 능지처참되었지만, 1904년 그의 머리카락과 의복 일부를 훔쳐다가 도쿄 아오야마 공원 안 외국인 묘역에 그의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그 묘에는 유길준이 썼다는 묘비명이 있다.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도 세우지 못하고, 비상하게 죽어간, 하늘나라의 김옥균 공이여.”
최익현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대마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문제는 돈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일본어를 좀 해야 되겠다. 돈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일단 일본어만 되면 한 번 뛰어봐야겠다.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일본의 섬. 최근엔 한국인에게 부동산 투자까지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선전문구가 “대마도에 별장을”이란다.
임란 때 잡혀가 그곳에서 일본인의 스승이 되어 살았다는 이진영의 이름은 처음 듣는다. <간양록>을 남긴 강항과는 달리 그는 돌아오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때 잡혀간 도공의 후예 중에 일본의 외무대신을 두 번이나 지냈다는 도고 시게노리, 역시 처음 듣는다. 약간 당혹스럽지만, 그의 치열한 삶은 인정한다. 다만 그런 힘이 한일 간에 화해와 평화에 기여했기를 바랄 뿐이다. 본래 이름이 ‘박무덕’이었다고 한다.
한국 이름 ‘김신락’이라는 함경도 출신 역사 ‘역도산’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김일성 생일에 독일제 벤츠를 선물하기도 했고, 또 남한의 중앙정보부와도 거래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 그가 했다는 말 “나는 항상 네 귀퉁이를 쳐다보며 살아야 했다”는 그 말이 가슴을 때렸다.
도공 심수관의 집, 거긴 나도 가봤다. 지금은 ‘심수관’ 14대와 15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시바료타로’라고 한다. 이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지극 정성이면 이런 행운이 오는가 보다. 심수관 집에 걸려 있다는 액자의 문구, “黙而識之(묵이식지).” 말로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말이다. 가슴에 새긴다. 성심으로 살아갈 뿐이다.
근데 ‘심수관’ 편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본다. 이번에 총리가 된 아베 신조, 그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인데, 바로 그 ‘기시 노부스케’가 이 도예촌 출신, 즉 조선 핏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럴 수가. 하긴 중세의 민족과 오늘날의 민족이 무슨 의미가 있으련만. 암튼 그래도 황당했다. 이런 점들이 모두 평화를 향한 것으로 쓰이면 좋으련만. 천만에. 그는 일본 최대의 극우분자다.
문인 ‘김달수’와 ‘이회성’ 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삶 자체가 지옥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올린 문학 혼. 절절한 체험이 가난도, 멸시도, 차별도 이겨냈던 것 같다. 김달수의 말, “무엇을 소재로 글을 쓰든 인간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문학이 된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리다.
특이한 건 둘 다 열렬한 조총련 인물이었다가 모두 탈퇴했다는 점.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특히 이회성의 경우 1998년까지도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조선국적. 나라를 빼앗길 때 그 때의 국적. 남도 북도 아닌 하나인 조선 국적을 고집했다고 하니, 그의 정신세계를 짐작할 만 하다.
다 읽고 나니, 일본이라는 나라가 더 당긴다. 그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삶도 새롭게 보였다. 말 그대로 슬픈 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