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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처방 101 - 내가 만든 병은 내가 고친다!
아보 도오루 지음, 황소연 옮김 / 전나무숲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병이 나를 살렸다>

아보 도오루, <면역처방 101>, 전나무숲, 2007.



자기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자기 방식대로’, 확실히 나는 병에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런 모양이다. 사실 이게 병을 만들 텐데, 또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으니.
요즘 아프다. 자주 아프다. 급기야 내시경이라는 것까지 했다. 일단 큰 병은 아닌가보다. 하지만 몸이 개운치 않다. 그럼 정답은 뻔하다. 쉬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다 안다. 그런데도 나는 이것초차 책을 읽고 다시 확인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이게 내 스타일?
사실 이 책은 나 때문에 산 게 아니다. 막내의 아토피가 심해 어떤 면역 요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산 것이다. 근데 요즘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려니 심심해서 그냥 읽어 보았다. 말 그대로 뻔한 책이다. 메시지는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말이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게 인간의 마음인가.
핵심적인 가르침은 생활을 바꾸라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과로가 최대의 적이다. 그러니 병이 났을 때, 의사에게 의존하지 말고, 생활을 바꿈으로 해서 스스로 해결하라고 한다. “내가 만든 병은 내가 고친다”가 핵심 메시지다.
그러니 매사 감사하라고 한다. 병을 준 것에도 역시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 병이 없으면 나를 돌아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그래야 ‘병에 걸린 보람’이 있다고 한다. <아함경>에도 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병을 통해서 생활습관이나 태도를 바로 잡는 계기를 만들라고 한다. 의사의 처방은 대증요법일 뿐 근본적 치유가 되질 못한다. “일벌레, 성급한 성질, 원리원칙, 다혈질이 아니었던가”를 돌아보라. 또한 “감사의 마음으로 인생을 밝고 희망차게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리도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면 어찌 하나. “죽기 살기로 매달리지 않지만 포기하지도 않는다.” 예전에 우리 요가 선생님이 하셨던 말, “추구하되 집착하지 말라”라는 것도 통하는 말 같다. 말이 쉽지. 그래도 어쩌겠나.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세상의 일이 필요와 필연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일에 원인이 있고, 그것이 필연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그렇게 수용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꼭 필요한 일, 필연의 결과일 것으로 수용하는 긍정적 사고, 마음의 평화. 그거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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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겨레출판, 2007.



박노자의 글. 내가 좋아하는 글이다. 박학다식 앞에서는 주눅들 수밖에 없지만,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선 고마움을 느낀다. 사상적으로 분명 나는 그에게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민족을 넘어, 국가라는 족쇄를 넘어, 평화적 아나키스트임이 분명한 그.
그의 그런 시선 때문인가 동아시아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근현대사에 대해선 나도 한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전혀 아니다. 관점이 달라지니 전혀 몰랐던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제목부터가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다. 한국사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역사까지 훤히 꿰뚫는다.
특히 티베트의 역사, 달라이 라마와 미국 부시와의 관계 등을 읽을 땐 완전히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티베트는 오리엔탈리즘으로 활용하기에 딱이다. 그의 말 그대로 “이슬람권과 달리 유럽과 경쟁한 역사도, 유럽의 본격적인 식민 지배를 받은 적도 없는 그야말로 ‘경계선 밖의 오지’, ‘우리’에게 저항한 적이 없는 ‘그들’을 영적 스승으로 받아들이기에 별로 거리낄 게 없었다. 근대성에 회의를 느낀 지식인들이 신좌파 등 ‘불온사상’에 빠지는 걸 막으려했던 미국 등지의 주류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도, 1959년부터 망명하여 대중국 독립투쟁에 나서면서 미 정부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달라이 라마가 서구 지성계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미 중앙정보국이 티베트를 활용하며 중국을 견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결심하게 된 건 김명식이다. 그의 말대로 1930년대 최고의 논객인데도 좌파 지식인들마저 무관심하다. 그에 대한 평전도 그리고 전집도 없는 게 현실이다. 다시 생각해도 그건 말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건 해야 한다. 살아 있는 후손의 의무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책무다.
우장춘에 대한 이야기도 신선하게 읽었다. 일본인 어머니. 그래 우리 사회는 지독히도 인종적 차별이 심하다.
그가 건져낸 여성의 역사도 눈여겨 볼만하다. 여성을 다룬다고 다 여성사가 아니다. 관점이 달라야 여성사다.
그의 기본적 관점, 민족, 국가를 넘어 계급으로 사회를 보는 시선, 그렇다. 붉은 악마의 그 열정이 다 사그라지고 나면, 남는 건, 여전히 청년실업이다. 양극화의 극대화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라니.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우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인왕경>에서 이야기하는 ‘호국’이 “승려의 참전이 아니라 왕이 삼보를 받들고 계율을 지킨다면 나라는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저절로 지켜진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신선했다.
글 속에 피가 섞여 있지 않으면 문학의 성립되지 않는다는 니체의 이야길 인용한 것도 심장을 때렸다. 요즘은 대부분 그렇다. 피가 섞이기는커녕 돈을 쫓는 얄팍함만이 풍긴다.
어쨌거나 “각종 규율로 우리의 내외면을 구속하는 한편, ‘소비’라는 달콤한 당근과 ‘대중문화’라는 신종 아편으로 우리를 부단히 유혹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순치되어 주체적 인간의 뿌리인 ‘반란성’을 상실한 동아시아인으로서 우리가 새롭게 지향해야 할 ‘반란자적 모습’을 찾기” 위해서도 그의 뼈아픈 지적을 아로 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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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 열도 속의 슬픈 인물 탐구




김충식, <슬픈 열도-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효형출판, 2006.




책을 잡자 순식간에 진도가 나간다. 글쟁이가 쓴 글이라서 그렇다. 글발이 좋다. 아주. 이런 사람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난 당분간 차분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 논문 말이다. 하지만 그 논문 끝나면 다시 저널적 글쓰기로 돌아가고 싶다. 학자들 안에서의 글이 아니라, 대중적 글쓰기 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문성은 더 높여야 한다.

김충식은 <동아일보>도쿄 지사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래서 일본 속의 사정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그도 역시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일본 속의 한국인을 집중 취재했다. 인물 취재인 것이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일본과 한국 사이엔 드러나지 않은 인적 관계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을 받다 보니 사실 피해자 입장이 많다. 그 과정에서 조선 사람이 택할 수 있었던 길은?

처절하게 저항하거나. 아니면 철저히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화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생각 없이 사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이었기에 그 모든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순히 친일파라고 밀어버릴 것만은 아니다.




먼저 저자는 김옥균을 탐구한다. 일본을 이용하려다가 처절히 배신당했던 풍운아. 그러나 그의 용일(用日)을 단순히 친일이라고 할 순 없다. 1958년에 김일성도 김옥균의 긍정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일본 망명 생활과 최후가 드라마틱하게 잘 묘사가 되어있다. 암살당한 후 시신은 다시 능지처참되었지만, 1904년 그의 머리카락과 의복 일부를 훔쳐다가 도쿄 아오야마 공원 안 외국인 묘역에 그의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그 묘에는 유길준이 썼다는 묘비명이 있다.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도 세우지 못하고, 비상하게 죽어간, 하늘나라의 김옥균 공이여.”




최익현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대마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문제는 돈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일본어를 좀 해야 되겠다. 돈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일단 일본어만 되면 한 번 뛰어봐야겠다.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일본의 섬. 최근엔 한국인에게 부동산 투자까지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선전문구가 “대마도에 별장을”이란다.




임란 때 잡혀가 그곳에서 일본인의 스승이 되어 살았다는 이진영의 이름은 처음 듣는다. <간양록>을 남긴 강항과는 달리 그는 돌아오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때 잡혀간 도공의 후예 중에 일본의 외무대신을 두 번이나 지냈다는 도고 시게노리, 역시 처음 듣는다. 약간 당혹스럽지만, 그의 치열한 삶은 인정한다. 다만 그런 힘이 한일 간에 화해와 평화에 기여했기를 바랄 뿐이다. 본래 이름이 ‘박무덕’이었다고 한다.

한국 이름 ‘김신락’이라는 함경도 출신 역사 ‘역도산’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김일성 생일에 독일제 벤츠를 선물하기도 했고, 또 남한의 중앙정보부와도 거래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 그가 했다는 말 “나는 항상 네 귀퉁이를 쳐다보며 살아야 했다”는 그 말이 가슴을 때렸다.

도공 심수관의 집, 거긴 나도 가봤다. 지금은 ‘심수관’ 14대와 15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시바료타로’라고 한다. 이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지극 정성이면 이런 행운이 오는가 보다. 심수관 집에 걸려 있다는 액자의 문구, “黙而識之(묵이식지).” 말로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말이다. 가슴에 새긴다. 성심으로 살아갈 뿐이다.

근데 ‘심수관’ 편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본다. 이번에 총리가 된 아베 신조, 그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인데, 바로 그 ‘기시 노부스케’가 이 도예촌 출신, 즉 조선 핏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럴 수가. 하긴 중세의 민족과 오늘날의 민족이 무슨 의미가 있으련만. 암튼 그래도 황당했다. 이런 점들이 모두 평화를 향한 것으로 쓰이면 좋으련만. 천만에. 그는 일본 최대의 극우분자다.

문인 ‘김달수’와 ‘이회성’ 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삶 자체가 지옥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올린 문학 혼. 절절한 체험이 가난도, 멸시도, 차별도 이겨냈던 것 같다. 김달수의 말, “무엇을 소재로 글을 쓰든 인간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문학이 된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리다.

특이한 건 둘 다 열렬한 조총련 인물이었다가 모두 탈퇴했다는 점.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특히 이회성의 경우 1998년까지도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조선국적. 나라를 빼앗길 때 그 때의 국적. 남도 북도 아닌 하나인 조선 국적을 고집했다고 하니, 그의 정신세계를 짐작할 만 하다.




다 읽고 나니, 일본이라는 나라가 더 당긴다. 그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삶도 새롭게 보였다. 말 그대로 슬픈 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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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 전직 CEO 인생선배의 36가지 충고
김종헌 지음 / 정신세계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김종헌,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정신세계원, 2005.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 동안 내가 주로 읽던 책은 사회과학 이론서, 역사서, 시사문제, 환경 생태 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젠 나이가 들었나 보다. 확실히 삶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은근히 두렵다. 완숙을 향해 나가야 할 나이에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엔 패기라도 있었지, 요즘엔 그것도 없다. 그러면서 두려우니 참으로 준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이 책을 손에 넣었다.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실제 이런 제목을 보면 우선 나는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광고에 실린 몇몇 구절들을 보며 책을 구입했다. 예를 들면 '최후의 동반자, 아내에게 투자하라'라든가, '몸값 관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하라', '회사 가기 싫은 날에는 결심을 하라', '아내와 사이만 좋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남자의 사추기(思秋期), 마흔에 필요한 건 방황이 아니라 꿈이다', '은퇴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라' 등의 문구가 나를 끌어 당겼다. 소위 내가 약간을 경멸적으로 봐왔던 처세술 비슷한 책 같아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약해져만 가는 나의 비루함이 이런 책에라도 매달리게 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시이오 출신이다 보니 나하고는 생각이 다른 점이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지런히 살았던 그의 경력, 그리고 경영 노하우는 내가 상대적으로 약점이기에 본 받을 것이 많았다. 그래서 골라서 섭취한다.

우선 문제의식은 함께 한다. 이제 마흔을 넘은 시점이라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지금의 샐러리맨으로 안주할 순 없다. 특히 나처럼 현재 교직에서 아이들 가르치며 부끄러움만 더해가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도교육, 특히 그 중에서도 한참 막힌 우리학교의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이 직장에서 나의 자아를 키워갈 순 없다. 다만 적은 시간을 들이면서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만 남는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에 얽매여 나의 "인생을 저당 잡혀 살 수는 없다." 물론 저자의 경우처럼 그러기에 마지막 직장 생활은 더욱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떠날 것이기에, 그 떠남을 준비하기에 더욱 열심히 하는 것이다. 물론 떠남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천한다. 지금은 준비기다. 그도 40대에 결심하고 10년 뒤인 54세에 떠났다. 그 동안은 인생 2모작을 했던 것이다.

나도 따지고 보면 인생을 2모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2모작이 아니라, 3, 4, 5모작쯤 하고 있는지도 모르나. 현직 교사, 박사과정, 요가. 목공, 펜션 등등등 많다.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무계획적이다. 이걸 이제부터라도 보다 세심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마련할 것이다.

인생을 60대에 끝낼 게 아니라 70,80까지 갈 것이라면 지금이야 말로 인생 후반전의 준비시기이다. 저자는 '책이 있는 찻집'을 꿈꿨다. 나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책은 함께 할 것이다. 끝까지.

그가 충고하는 인생 2막 설계에서의 주의점이다.
1. 부부 두 사람이 함께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만들라. 이건 그 동안 많이 이야기 되었다. 우선 기본적인 농사. 그리고 나는 목공, 마누라는 염색 등이다. 물론 그것으로 밥벌인 못한다. 밥벌이 수단은 따로 또 준비해야 한다. 앞에 든 것은 생활, 즉 삶의 주된 테마다.
2. 과도한 토지보다 적정 규모의 토지. 500평 이상은 노년의 부부가 관리하기 힘들다. 동감한다. 욕심 내지 않으련다. 500평에서 커봐야 1000평.
3. 차별화된 업종이라야 가능하다. 이게 문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돈벌이에는 재주가 없다. 그래서 차별화도 어렵고 또 그것을 돈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어렵다. 그래도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살면 된다. 적은 수입, 적은 소비. 본래 이게 건강한 삶이니까. 차별화를 고민하되, 그것이 억지로 만든 차별화가 아니라, 내 삶이 그냥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4. 충분한 준비 기간. 옳은 말이다. 오히려 나는 너무 그 기간이 긴 게 아닌가 싶다.
5. 미리 배워둘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라. 목공을 그래서 배우고 있다. 저자는 원예도 언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거기엔 못 미친다. 그건 나중에.
5.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먼 길 마다 않고 가서 자문을 구해라. 그럴 것이다. 아직은 뭘 해야 할 지 구체적이지 않아서 그냥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산다.
6. 수입을 크게 기대하지 말고 즐기며 일하는 방안을 찾아라. 좋은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우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큰 수입은 애당초 나와 거리가 멀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수익보다 일하는 즐거움에 무게"를 둘 것이다.
7. 이를 위해서 부부가 평소에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게 참 좋다. 이런 구상을 할 때 마치 신혼 때 새로운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항상 꿈이라는 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같이 꾸는 꿈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인생 최후에 남는 건 부부 두 사람 뿐인데.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관계다. 우선 나. 그 다음 배우자. 그리고 자식이다. 이 책에선 이 부분을 따로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계의 문제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우선 나의 문제. 한 마디로 성실하게 사는 거다. 다분히 CEO적인 발언이지만 "죽을 때까지 몸 값 관리를 하라"는 말을 다시금 새긴다. 새로이 펼쳐지는 환경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컴퓨터다. 우선 내 앞의 불을 끈다면 언젠가는 이 부분도 제법 한다는 수준까지 해 보고 싶다.
저자는 외국어 구사능력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건 자신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다 한다고 한다. 신입사원 시절 월급보다 외국어 학습 수강료에 더 많이 돈을 썼던 때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럴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대로 외국어 공부는 오직 반복, 이것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 차 안에의 시간을 적극 활용함이 좋겠다.
"늙어 죽을 때까지 지적 호기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인생을 활기차게 살고 싶다면 말이다." 나는 이건 가능할 것 같다. 다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은 그의 지적 호기심은 실용성에 무게가 두어져 있고 나의 관심은 실존의 문제이다. 이게 다르다.
그 외에 그의 조언. 시간을 만들어 써라. 남보다 한 박자 앞서 가라. 등등등.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성실이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도 물론 있다. 맹목적 성실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역시 배워야 한다. 시간은 만들어 쓰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배우자와의 관계. 그의 모토는 "아내와 사이만 좋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이다. 그러면서 '최후의 동반자, 아내에게 투자하라'라고 가르친다. 좋은 말이다. 여기서 하나 배운 점. "아내의 스승들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종종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나는 여민회 회원들과 별로 친하지 않다. 마누라가 상당 부분 열정을 바치는 곳인데도 말이다. 앞으로 이 점 개선. 마누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도 힘써야겠다.
'틈날 때마다 아내와 노후를 계획하라'. 이건 연애시절, 결혼생활을 꿈꾸듯 둘만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기에 황홀한 일이다. 상대방에게 실망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았자 부부 싸움밖에 하지 않는다.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 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도모하고 노후를 안정적으로 설계하는 길이다." 그래야 "젊었을 때와 같은 화끈한 재미는 없어도 서로 의지하며 느끼는 부부의 정이 이리도 애틋한 것"이 된다고 한다. 이건 달리 말할 것 없다. "인생에 수많은 관계가 있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부부 두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배려와 희생, 그리고 신뢰"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와의 관계. 우선 자녀와 나의 정류장은 다르다는 걸 전제해야 한다.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거는 일은 잘못이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성숙된 인격으로의 훈련"이 중요하다. 짧게 말해서 그는 자녀를 "부모의 열망과 재산으로부터 독립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세상은 아주 많이 변할 것이다. 외국 학위보다는 한 분야의 장인, 스스로 하고 싶은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 들 줄 아는 아이"가 장래에 더 유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누구나 영어를 해대기에 외국 유학이 그리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앞가림을 하도록 자립적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확실한 노후 대책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행한 자녀 교육법. 사교육에 투자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우선 집안 분위기. 엄마 아빠가 모두 매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러면 자연스레 배운다. 그의 집에는 만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부모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주말이면 가급적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가족 외식이라도 하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애들 교육에 거의 시간을 쓰지 못했다. 올해부터 조금 달라졌다. 더 크기 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몇 개의 비싼 학원보다 둘러 앉아 식사하는 일이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더 필요한 일"이라는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는 유산이 아니라 가풍을 남기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하게 생각한 부분이 이 대목이다. 당연한 말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머지않은 시간에 가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안의 교훈, 부모의 교훈, 이것은 말로만 하거나, 액자 속에 글씨만 써 넣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몸으로의 공감, 그리고 실천 속에서 애들에게 전해 줘야 한다.
그래서 계속 생각해 온 것을 한 번 정리해 본다.
1. 정성(正誠): 올바르게 성실해야 한다. 성실한 가풍이야말로 좋은 유산일 것이다.
2. 정직(正直): 우직함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신뢰감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올바른 우직함이라야 한다. 잔 머리나, 맹목적 우직함이 아니다.
3. 정의(正義): 모은 일을 할 때 옳고 그름을 따져서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높여 준다. 기교가 아니라, 영리가 아니라, 삶 자체의 품격은 옳은가 그른가로 판가름 된다. 특히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황금만능의 시대이기에 맹자의 한 구절 견리사의(見利思義)는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아무리 부자이고 유명 인사라 해도 올바르지 못하면 그건 상품에 불과하다. 그건 슬픈 일이다. 인간이 상품으로 평가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 삶 그 자체의 가치인 義를 항상 드높여야 한다.
조만간 생각이 더 다듬어지면 우리 집의 가훈으로 세우고, 차분차분 집안의 분위기로 만들어 애들에게 남겨 줘야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의 생활,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길게 썼다. 처세술 책을 읽고 이렇게 장황하게 쓸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러나 단순한 처세가 아니라, 인생 중반에 삶을 정리하며 새롭게 계획하는 마당이기에 그런 계기를 준 이 책에 이 정도의 성의를 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 2막, 모든 것이 그렇지만 준비가 착실해야 한다.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고. 성실히, 우직하게, 의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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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어제와 오늘
이경명 지음 / 어문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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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경명, <태권도의 어제와 오늘>, 어문각, 2002.




앞서 김용옥의 글을 읽은 이유와 같다. 태권도 관련 글을 좀 읽어야할 처지가 되었다. 이 책은 예전에 읽지 않았던 책이다. 윤용택 교수가 들고 있기에 빌려 왔고, 뒤 부록에 태권도 관련 논저가 어마어마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예스24를 통해 주문하고 줄 팍팍 쳐가며 읽었다. 남의 책에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이경명은 태권도문화연구소장이고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다. 제도권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가 일단 기본 입장은 제도권적 시각이다. 최홍희 등 국제태권도연맹(ITF)과는 다르며 그들에 대해서 그리 좋은 시선을 보내진 않는다. 오히려 최홍희의 자서전에 오류와 왜곡이 많다며 지적할 정도다.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근데 책으로 말하자면 최홍희의 자서전이 훨씬 재미있다. 태권도 문제 자체도 그렇지만 방대한 고전 인용 등 그의 박학다식이나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 역시 이경명의 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경명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필요는 없다. 특히 태권도라는 명칭이 제정된 것에 대해 최홍희는 1955년 4월 11일 명칭제정위원회에서 그리되었다고 했는데 이경명은 당시 <동아일보>등의 자료를 들이대며 그건 날조라고 한다. 최홍희가 말한 명칭제정위원회는 사실 객관성을 갖지 못한 대한당수도 청도관 제1회 고문회의일 뿐이며 그 날짜도 1955년 12월 19일이라고 말한다.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홍희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이건 그를 비판하는 이경명의 글에서도 나온다. 이경명 글이 그래도 좋은 건 최홍희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최홍희의 업적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김운용의 과오에도 불과하고 비판하면서 인정하고 있다. 나름의 개관적 시각이 돋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무술판(태권도판)하면 단순무식이 떠오르면 곤란하지 않은가.
양진방이 제대로 된 책을 하나 썼으면 좋겠다. 그가 최초로 근대 태권도 형성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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