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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서 아흔까지 -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
유경 지음 / 서해문집 / 2005년 3월
평점 :
꽃 진 자리
유경, <마흔에서 아흔까지>, 서해문집, 2005.

어쩌다 이 책을 손에 들었을까. 아마 <녹색평론>을 읽다가 그곳에서 인용된 어느 구절, 그것 때문에 읽게 된 것 같다. 어떤 내용인지 거의 몰랐다. 그냥 좋은 책일 것이라는 느낌 뿐. 그런데 막상 책을 대하니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어느 아나운서 출신의 노인복지 전문가가 쓴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다. 내용에 흠 잡을 건 없다. 다만 내가 아직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그래서인가 솔직히 가슴에 팍팍 와 닿은 건 아니다. 그래도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본래 의도야 ‘내가 나이 들어가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가’라는 데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의 부모님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별 다른 게 아니다. 마음 다하여 부모님 한 번 더 찾아뵙는 것. 그것이면 다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못했다.
더구나 어제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의 <디어평양>을 보고나서 더욱 심해졌다. 부모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 말보다 생각, 생각보다 몸으로 부모님 찾아 뵈야 하겠다. 그런 것만으로도 이 책 읽기가 내게 준 선물은 값지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그래도 좋은 구절 몇 옮기는 작업도 같이 하고 싶다.
“그러나 어디 나무가 꽃으로만 존재하는가.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으며 가지가 있고 잎이 있어 나무 아니던가.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나무에서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꽃이 피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나무에 눈길을 돌리고 한없는 사랑과 경탄의 헌사를 바친다. 그러나 꽃이 지고나면 그뿐, 나무는 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사람들의 눈과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앉는다. 아니,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다만 사람들이 꽃 진 나무에 더 이상 관심과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 그러니 꽃 진 나무가 더 푸른 것을 알지 못한다.”
“꽃이 아닌 잎을 통해 푸름을 얻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꽃 피는 청춘의 때에 지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게 되는 나이 듦의 선물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며”
‘나의 듦의 선물’이라. ‘꽃 진 자리’라. 곰곰이 생각하며 준비할 일이다.
건강 문제도 그렇다. 다 아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제 내 나이면 준비해야 한다. 치료가 아닌 예방을. ‘우리는 늘 잃음을 통해서야 무언가를 얻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내가 그렇다. 걷기, 올바른 식습관, 금연, 정기적인 건강검진, 숙면. 여기서 나는 걷기, 숙면, 식습관 이것 특별히 잘해야지 싶다. 바탕은 물론 웃음과 감사하는 마음.
버려야 할 것으론 물질에 대한 욕심, 자녀에 대한 집착, 지나간 젊음에 대한 향수라 한다. 아직 내 이야긴 아니다. 하지만 더불어 생각할 일이다. 최고의 노년 준비가 ‘자원봉사’라고 하는데, 슬슬 이 문제도 고민해 둬야겠다.
청소년 이야기도 나온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 굴복시키는 일은 자신에게 처참한 일이고 또한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열한 행동을 하는 법”이라고 한다. 나도 평소에 애들한테 하는 말이다.
죽음에 대해서. “죽음 준비가 전혀 안 되어서 끝까지 발버둥치느라 살아오며 쌓은 덕을 다 망가뜨리고 마는 불안하고 불행한 죽음도 많다. 또한 떠난 뒤의 빈자리가 말끔하지 못하고 흉할 때도 있다. 준비된 죽음은 깨끗하며 인간의 존엄을 느끼게 한다. 죽음의 모습은 먼저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므로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들. 분별력, 원숙함에 바탕을 둔 충고, 지혜, 풍부한 경험 그리고 영적인 성숙까지. 어렵다. 어찌 이런 걸 다.
근데 며칠 전 무슨 회의에 갔다가 유명한 원로와 식사를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자랑. 원로이기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진리다. 근데 가만히 보니 주변 어르신들이 대부분 그랬다. 아, 이거다. 간디가 말한 “티끌만큼 작아져라”라는 가르침과 달리 자꾸만 부풀리는 게 노년의 특징인 것 같다. 살아온 삶에 대한 긍정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자기 긍정을 하지 않으면 너무도 괴로울 것이기에. 그러나 진정한 큼은 그게 아니다. 간디처럼 ‘티끌’이 될 때 아름다운 노년이 될 것이다. 이 점 명심하고 또 명심할 지이다.
자주 안 써서 까먹는 나이 이름. 회갑(60), 古稀(70), 喜壽(77), 傘壽(80), 米壽(88), 卒壽(90), 白壽(99), 이런 상식도 다시 확인해 둔다.
저자가 노인대학에서 한다는 말과 노년준비교육에서 한다는 말 두 이야기를 인용하며 마친다.
“자녀는 선물입니다. 어려서 예쁜 짓을 할 때 이미 평생 효도 다 받으셨으니까 호의호식시켜달라 바라지 마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주면 그게 효도다 생각하십시오.”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시는 것 자체가 선물입니다. 세상에 단 한 분,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와 아버지만은 대신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