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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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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이 책을 손에 잡게되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에서 50%할인행사 중에 있었기 때문에 고른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근데 그것만은 아니겠지. 수도원, 이게 나를 끌었다. 솔직히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이었으면 더 좋겠다 싶었다. 예전에 공 작가의 소설을 몇 권 읽고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역시 20 여년 만에 하느님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울며 용서를 빌었던, 아니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던 처지였기에, 그런 공통점이 나를 위로했다. 하느님을 떠난 동기도 유사했다. 그래서 친근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우린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신을 떠났다. 그리고는 내가 신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심하게 두둘겨 맞았다. 하느님이 보낸 매인데, 이럴 때 쓰는 말이 '사랑의 매'다. <성경>에도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매를 드신다고 했다.

 

근데 읽으면서 작가 특유의 상처를 보면서, 그리고 그 상처를 유난히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세상에, 다 살다보면 그 만한 상처들은 다 입고 사는 것인데, 무슨 세상 상처는 혼자 다 받은 것처럼 징징거리는가, 그랬다. 그만한 학벌에, 그만한 유명세에, 그리고 그에 따를 부와 명예에, 뭐가 그리도 부족해서 원망하고 있는가, 뭐가 그리 못마땅해서 그 고통을 유난히 강조하는가. 남들도 다 그래. 아니 남들은 당신보다 더 아파, 그러면서 말이다. 그래서 불편했던 것이다.

근데 그러면서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부끄러움이 사실은 내 모습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를 피하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 징징거림이 나의 숨긴 얼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말은 그가 그 만큼 대중적인 작가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솔직하게 써 대는 글. 부끄럽고 숨기고 싶어도 그가 그렇게 까발리니 나도 발가벗는 느낌을 받기에 당혹스럽고, 그러면서도 다시 들춰 보게 되는 그런 모순. 암튼 그래도 나는 불편하다. 좀 더 큰 모습으로 품어가는 모습의 글을 좋아한다.

 

어쨌거나 나도 그런 데를 가 보고 싶다. 근데 돈도 없고, 우리 가족 넷이서 한꺼번에 이동하려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 떨궈 놓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작가도 말한 것처럼 세상 모든 곳이 수도원이고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수도자이기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많아도, 혼자 허영된 마음으로 날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본능도 중요하지만 컨트롤할 이성도 내겐 중요하다. 그리고 함께 함을 나는 늘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도 가긴 갈 것이다. 돈 좀 모아둬야겠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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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나의 정원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김향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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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늘 그랬다. 떠나야 한다고. 더 이상 이 미친 문명 속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나는 떠나지 못했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계시고. 여러가지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도 준비는 한다. 특히 내년부터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준비가 시작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예전에 사둔 책들을 꺼낸다. 그래서 꺼낸 책 타샤 투터의 <나의 정원>이다. 그냥 부러울 뿐이다. 사진이 좋다. 글은 몇 없다. 글로 보는 책은 아니다. 맑은 영혼으로 담을 책이다.

그래도 메시지는 있다. 이런 아름다운 정원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20년 후의 정원을 생각한다. 오솔길, 그리고 테마 정원. 요즘 관광지에 깔끔하게 만들어지는 그런 정원이 아니다. 야생화인듯 아닌듯 하면서, 자연이 녹아있는 정원.

꽃은 피는 계절을 고려하며 섞어 심는다고 한다. 그래야 사계절 꽃이 필 터이니.

나무를 엮어서 만든 담장도 재미 있었다.

그래, 서두르지 말자. 그러나 쉬지도 말자. 하나 하나 준비하자.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열심히 눈으로 익히는 연습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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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서 아흔까지 -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
유경 지음 / 서해문집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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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진 자리

유경, <마흔에서 아흔까지>, 서해문집, 2005.



어쩌다 이 책을 손에 들었을까. 아마 <녹색평론>을 읽다가 그곳에서 인용된 어느 구절, 그것 때문에 읽게 된 것 같다. 어떤 내용인지 거의 몰랐다. 그냥 좋은 책일 것이라는 느낌 뿐. 그런데 막상 책을 대하니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어느 아나운서 출신의 노인복지 전문가가 쓴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다. 내용에 흠 잡을 건 없다. 다만 내가 아직 이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그래서인가 솔직히 가슴에 팍팍 와 닿은 건 아니다. 그래도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본래 의도야 ‘내가 나이 들어가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가’라는 데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의 부모님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별 다른 게 아니다. 마음 다하여 부모님 한 번 더 찾아뵙는 것. 그것이면 다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못했다.
더구나 어제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의 <디어평양>을 보고나서 더욱 심해졌다. 부모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 말보다 생각, 생각보다 몸으로 부모님 찾아 뵈야 하겠다. 그런 것만으로도 이 책 읽기가 내게 준 선물은 값지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그래도 좋은 구절 몇 옮기는 작업도 같이 하고 싶다.
“그러나 어디 나무가 꽃으로만 존재하는가.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으며 가지가 있고 잎이 있어 나무 아니던가.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나무에서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꽃이 피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나무에 눈길을 돌리고 한없는 사랑과 경탄의 헌사를 바친다. 그러나 꽃이 지고나면 그뿐, 나무는 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사람들의 눈과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앉는다. 아니,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다만 사람들이 꽃 진 나무에 더 이상 관심과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 그러니 꽃 진 나무가 더 푸른 것을 알지 못한다.”
“꽃이 아닌 잎을 통해 푸름을 얻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꽃 피는 청춘의 때에 지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게 되는 나이 듦의 선물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며”
‘나의 듦의 선물’이라. ‘꽃 진 자리’라. 곰곰이 생각하며 준비할 일이다.
건강 문제도 그렇다. 다 아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제 내 나이면 준비해야 한다. 치료가 아닌 예방을. ‘우리는 늘 잃음을 통해서야 무언가를 얻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내가 그렇다. 걷기, 올바른 식습관, 금연, 정기적인 건강검진, 숙면. 여기서 나는 걷기, 숙면, 식습관 이것 특별히 잘해야지 싶다. 바탕은 물론 웃음과 감사하는 마음.
버려야 할 것으론 물질에 대한 욕심, 자녀에 대한 집착, 지나간 젊음에 대한 향수라 한다. 아직 내 이야긴 아니다. 하지만 더불어 생각할 일이다. 최고의 노년 준비가 ‘자원봉사’라고 하는데, 슬슬 이 문제도 고민해 둬야겠다.
청소년 이야기도 나온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 굴복시키는 일은 자신에게 처참한 일이고 또한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열한 행동을 하는 법”이라고 한다. 나도 평소에 애들한테 하는 말이다.
죽음에 대해서. “죽음 준비가 전혀 안 되어서 끝까지 발버둥치느라 살아오며 쌓은 덕을 다 망가뜨리고 마는 불안하고 불행한 죽음도 많다. 또한 떠난 뒤의 빈자리가 말끔하지 못하고 흉할 때도 있다. 준비된 죽음은 깨끗하며 인간의 존엄을 느끼게 한다. 죽음의 모습은 먼저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므로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들. 분별력, 원숙함에 바탕을 둔 충고, 지혜, 풍부한 경험 그리고 영적인 성숙까지. 어렵다. 어찌 이런 걸 다.
근데 며칠 전 무슨 회의에 갔다가 유명한 원로와 식사를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자랑. 원로이기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진리다. 근데 가만히 보니 주변 어르신들이 대부분 그랬다. 아, 이거다. 간디가 말한 “티끌만큼 작아져라”라는 가르침과 달리 자꾸만 부풀리는 게 노년의 특징인 것 같다. 살아온 삶에 대한 긍정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자기 긍정을 하지 않으면 너무도 괴로울 것이기에. 그러나 진정한 큼은 그게 아니다. 간디처럼 ‘티끌’이 될 때 아름다운 노년이 될 것이다. 이 점 명심하고 또 명심할 지이다.
자주 안 써서 까먹는 나이 이름. 회갑(60), 古稀(70), 喜壽(77), 傘壽(80), 米壽(88), 卒壽(90), 白壽(99), 이런 상식도 다시 확인해 둔다.
저자가 노인대학에서 한다는 말과 노년준비교육에서 한다는 말 두 이야기를 인용하며 마친다.
“자녀는 선물입니다. 어려서 예쁜 짓을 할 때 이미 평생 효도 다 받으셨으니까 호의호식시켜달라 바라지 마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주면 그게 효도다 생각하십시오.”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시는 것 자체가 선물입니다. 세상에 단 한 분,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와 아버지만은 대신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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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 - 산골로 간 CEO, 새집을 짓다
이대우 지음 / 도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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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마이너리티

이대우, <새들아, 집지어 줄게 놀러 오렴>, 도솔 오두막, 2006.


잘 나가던 CEO가 시골생활로 들어갔다. 그의 표현대로 ‘전원생활’이라고 하면 괜히 폼이 나고 ‘시골생활’이라고 하면 촌스러워지는데, 그는 굳이 전원생활을 버리고 시골생활이라는 어휘를 택했다. 그것부터가 맘에 든다.
리영희 선생 밑에서 <조선일보> 외신부에 근무했던 게 첫 직장생활이라고 한다. 그 무렵 중국 관련 기사에서 purify를 ‘피의 숙청’이라고 했다가 리영희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야단 맞고 일장 연설까지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리영희 선생처럼 언론인의 길은 간 것은 아니다. 곧 선박회사 일을 했었고, 여기서 다시 벤처 기업의 전문 경영인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리곤 나이 들어 강원도 어느 산골에 들어 조용히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관심을 가진 건 목공이다. 그리곤 그 목공 실력으로 새집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새집들로 전시회도 열고 책도 내었다.
처음 책을 읽어갈 때는 글 내용도, 그리고 그가 만들었다고 하는 새집도 그저 그랬다. 사진을 통해서 보건데 그가 만든 새집이 그리 훌륭한 작품 같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 까지도.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에 대해 감정이 달라진다. 대단함 보다는 소박함이 더 큰 힘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가 만든 새집도 그렇고, 그의 생활도 그렇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다. 새집도 주로 폐자재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굳이 따진다면 예술성보다는 그의 정성이 나를 감동하게 만든다.
역시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여러 귀농 관련 책, 혹은 ‘전원생활’ 관련 책을 통해 익숙한 대목이 없진 않으나, 상당히 소박하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욕심이 없는 그의 삶을 보면서 말이다.
그가 권하는 삶, 예전부터 나 역시 꿈꾸고 있는 삶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채소와 곡식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 손으로 거두고, 화폐(돈)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며, 집을 손수 지을 수 없으면 창고나 작업실을 목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같이 지어 보라고 권한다. 집 안에 필요한 책꽂이, 선반, 간단한 의자, 탁자 같은 것을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자그마한 마당에는 야생화 화단을 만들어 가꾸고, 나무를 부지런히 심는 이런 시골 생활을 몇 년 간이라도 해보라고 권한다.”
여기서 집짓기.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온 과제다. 근데 이 양반 말을 듣고 보니 동감한다. 살림집은 작게, 대신 작업실과 창고, 그리고 가능하면 소도서관 겸 전시실을 크게 지으라 한다. 시골생활에선 실내 보다 야외 혹은 작업실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참고할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권하면서 그는 헨리 소로의 <월든>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목수를 100프로 신뢰하지 말라는 것. 자신이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 작은 오두막도 철저한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의 조언을 더 한다.
주변 사람들이 때론 신기하게 때론 부러워하며 그리고 때론 중앙 무대에서 잊혀져 감을 안타까워하며 말들을 건넨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초현대풍이라는 바람이 불어 닥칠 때마다 그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 명예로운 일이라고 여겨지고, 또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붙들고 꿋꿋이 버티는 것, 그 시대의 단단한 참나무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마이너리티로서의 고집일까”라며 ‘마이 웨이’를 말한다. 이런 고집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좋다. 요즘은 더욱 더.
나 역시 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환멸감이 들면서 더욱 그렇다. 근데 때론 이렇게 살면서 내가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는 느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조언에 따르면 그건 그리 걱정할 게 못 된다. “커다란 허구였던 공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무대를 마련하면 된다. 스스로가 품 넓은 자연을 배경 삼아 시골이라는 아담하고 알찬 무대를 만들고 그 무대의 주연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남을 의식하며 굳이 주연이 될 생각은 없다. 그저 나 자신에 충실하고 싶을 따름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그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마련한 무대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스로 자신을 지칭하는 ‘마이너리티’라는 단어에 공감하고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보면서 부러운 건 여럿 있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였다는 이야기, 산을 그렇게 도 좋아해서 딸아이가 세 살 때부터 함께 캠핑을 다녔다는 이야기, 산악자전거에, 한 때 화가를 꿈꿨을 정도로 그림 솜씨도 있고, 책 구입엔 월급의 10%를 썼다고 한다. 물론 그가 가진 목공 작업실과 거기에 있는 목공 도구들이 지금으로선 가장 부럽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하나하나씩 준비할 것이다. 나는 늦지 않았다. 지금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연제덕 선생님 밑에서 10년 쯤 배우다 보면 내 나이 50대 초반, 그쯤이 가장 좋겠다. 그쯤이면 지금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착실히 준비하는 시간. 먼저 눈앞에 놓인 과제들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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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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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h Fromm, - The Art of Loving





때론 황당한 일도 겪는다. 갑자기 에리히 프롬 책을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통해 마구 구입했다. 들어본 제목이라면 모두 불렀다. 근데 그 중 유독 책 값이 싼 게 있어 덤으로 하나를 추가했다. 그게 바로 이 책이다.

책값이 싼 건 다름 아니라 영어로 된 책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런 황당함이라니. 내가 언제 영어책이나 읽고 있겠나.

그렇게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을, 이번에 읽었다. 박사과정 졸업시험에 전공외국어가 있는데 전공 영어책을 읽기는 좀 갑갑하고, 그래서 워밍업 기분으로 잡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진도가 나갔다. 어라!!1
신이 났다. 내가 영어책을 읽을 수 있다니. 아마 부담 없이 잡은 책이라 그런 것 같다. 교재로 잡았다면 갑갑했을 것이다. 어쨌든 다행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경험을 한다.

번역본 이름은 대부분 <사랑의 기술>이다. 근데 읽어보니 제목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기술? 테크닉? 그거 아니던데. 왜 그런 제목을 붙였을까. 차라리 그냥 <사랑에 대하여>나, <사랑에 대한 에세이>나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라는 건> 등, 이런 제목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 먼저 Care 돌봄이라고 할까, 아니면 배려, 관심, 정확한 번역어가 힘들다. 엄마가 자기 자녀를 살피 때,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마음이 사랑의 기본 구성 요소 중 첫번째다.
다음은 Responsibility, 이건 외적으로 주어지는 책임감? 아니다. 그러면 부담스럽다. 책에서도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건 완전히 자발성에 근거한 행동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태도에 기꺼이 응할(respond) 자세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Respect이다. 존경이 사라진 사회. 권력 앞에서 굴종만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존경을 떠올리기가 어색하다. 여기서도 이 항목은 강제성이나 어떤 공포에 의해 조성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존경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그 특성을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 그게 바로 사랑을 이루는 세번째 기본 요소라고 한다.
네번째가 Knowledge다. 물론 알아야 한다. 근데 이건 상대방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아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사랑에 의해 그 앎은 제대로 된다고 한다. 사랑을 통해 상대를 알고 나를 알게 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가 왜 이런 책을 썼을까. 사회에 대한 걱정 때문이리라. 물론 사회는 사회 구조가 문제다. 그러나 구조 탓만 할 건 아니다. 개인의 행위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행위를 규정하는 건 비단 구조만이 아니다. 심리적 요소도 있다. 그것 때문이 아닐까. 구조에 대한 강조 못지 않게 개인의 행위를 중시했기 때문에.

암튼 난 영어 공부했다.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그냥 영어 공부했다는 것만으로 뿌듯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좀 그렇긴 하다.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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