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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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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이 사람의 글을 처음 접한 건 <한겨레>신문 별지에서다. 이제는 나오지 않지만 몇 년 전에는 그 별지가 있었다. 책 소개와 좋은 칼럼이 있던 별지다. '책과 지성'이었던가. 

암튼 거기서 김선우라는 사람을 처음 봤다. 시인이라고 한다. 근데 그의 시는 지금까지 보질 못했다. 내가 문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서 김선우를 좋아하는 만큼 그의 시도 보아야 마땅하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러질 못했다.  

그럼 시인인데 시가 아니고 무엇으로 만났는가. 칼럼이다. 시사적이면서도 생태에 관심이 많은 글이었다. 딱 마음에 들었다. 그 감수성과 그리고 그 감수성을 표현해내는 문학적 능력, 그렇다고 누구의 지적처럼 '나희덕과도 최영미와도 전혀 다른' 그런 '여류(?)' 시인이었다. 단순히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구조를 사회과학적으로 정확히 짚어 내면서도 그걸 다시 딱딱한 과학으로만이 아니라 과학적 바탕 위에 문학적으로 풀었다고나 할까. 암튼 글 몇 편 보고 반했다.  

그래서 구입한 책이다. 실망시키지 않는다. 일부 글은 예전에 <한겨레>에서 봤던 글이다. 더 반갑다. 여러 부분 공감하지만, 특히 세금 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적극 공감이다. 그의 말대로 세금을 내더라도 세금 내는 사람이 희망하는 곳에 그 세금이 쓰여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세금 많이 낼 의향도 있다. 근데 현실은 전혀 아니다. 그게 화난다. "좀 엉뚱한 고백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더 이상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 거의 모든 물건들에 간접세의 형태로 지불하는 세금 중 단 한푼이라도 이라크 파병을 위한 예산으로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나라 도처에서 불필요하게 파헤쳐지는 산하와 그 무수한 도로 공사의 소음들과 살아있는 개펄을 강제로 메워 죽이는 새만금 공사 같은 끔찍한 재앙에 내게서 걷어간 세금이 포함되어 있을지 몰라 불안하다. 당면한 민생 현안에 수수방관인 채 정치적 계산으로 속내 복잡한 국회의원들에게는 내가 낸 세금이 한푼이라도 월급으로 줄 생각이 전혀 없다. 공동선의 가치에 기여하기는 커녕 눈먼 뭉치돈으로 전락하기 일쑤인 세금들 속에 내가 낸 돈이 있을까봐 겁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내는 세금, 내가 정하는 곳으로. 하긴 세상이 망조를 보이니까 이런 걱정도 나오겠지. 그 망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 소위 덕담이라고 하는 말이 "부우자 되세요오-" 이런, 이런. 그도 역시 이에 분개한다.  "덕담으로 자주 인용될 때마다 뒷자리가 슬펐다"고 한다.  

많이 슬프다. 별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그도 "결국 실패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기지 못할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운명이 있다. 시는 어쩌면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을 모르는 나이지만 이 말 참 좋다.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 사실 이 말 속엔 그의 비관주의가 드러난다. 안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몸으로 느낀다. 우리 사회, 정말이지, 안 된다.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따뜻하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우리끼리라도 따뜻하게 체온을 나워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래서 그의 글이 더욱 좋다.  

그 비관, "커다란 빈 통에 콘크리트를 붓다가 중단한 것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까지 콘크리트가 부어진 채 딱딱하게 굳어가는 중에도 아이만을 양팔로 들어올려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의 얼굴 위로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일이며, 살겠다고 우는 아이와 어머니를 산 채로 콘크리트 속에 매장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손해가 얼마라는 얄팍한 수치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한번 죽여버리면 다시 살릴 방도가 아득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새만금 공사를 두고 한 말이다. 비유가 너무도 처절하다. 그러나 그 처절함이 사실은 현실인 것이다.  

그래도 어떠겠는가.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야지. 따뜻하게. 그람시가 그랬나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어려운 말이다. 그래도 김선우 같은 따뜻함이 있기에 그 비관마저도 내 삶에는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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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04호 - 2009년 1.2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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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104호, 2009년 1-2월호




단 한 권의 책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이젠 당연 <녹색평론>이다. 예전엔 그 원칙주의 앞에 주눅 들어 피하고만 싶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그나마 대안이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책을 펴내며’ 제목이 ‘희망을 위한 보이콧’이다. 제목만 봐도 대략 알겠다. 나도 이젠 그 정도의 내공은 생긴 셈이다. 근데 문제는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 그래도 차근차근 준비를 한다. 자립을 위한 준비. 기존의 이 체제에서 벗어나려면, 보이콧을 하려면 자립, 자급자족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이 책도 읽는다.

김종철 선생님의 글에서 이 자유주의 경제가 무엇이지 말한다. “말이 좋아서 자유주의지, 이것은 노골적인 양육강식을 합리화하는 극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논리”라고 한다. 그 놈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되풀이하면서 실은 기업의 자유를 위한 규제철폐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규제철폐 혹은 규제완화 요구는 결국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나 자본가가 돈벌이를 위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뜻”이며 “신자유주의자들의 가장 큰 죄악은 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자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진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국가와 자본의 영향력 바깥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창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위한 구체적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그 틀 속에서 우애와 상호부조의 원리에 입각한 협동과 자치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언급했고 공부했던 올바른 아나키즘이다.

마침 최종수 신부님이 방문한 어느 공동체 이야기도 실려 있어서 좋았다. 공동체가 사실 쉽지는 않다. 한계 많은 인간이라서 그렇다. 그러니 신앙이 실려 있는 곳은 다르다. “신앙의 삶에는 두려워할 실패도, 자랑할 성공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하다 중단되더라도 그만큼 성공한 거지요.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 밖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삶이 될 때 서정홍 시인의 글에서처럼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밥을 먹고 숨을 쉽니다”라는 꼴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내 삶을 돌아본다. 이제 교사로서의 인생은 사실 실패했다. 애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타러 학교에 간다. 비참한 꼬라지다. 벗어나야 한다.

이민철 광주자유대학 일꾼의 글에서처럼 “자격증 따서 돈 벌 목적이 아니라면 대학에 갈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어야 한다. 학자가 되어 일을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좋은 대학 안가도, 아니 좋은 대학 가려고 청춘을 허비하지 않을 때 자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독립의 출발점이라는 데 공감한다.




사실 이번 호에서 가장 공감한 글은 장성익의 글이다. 환경운동의 과오를 지적한 글이다. 단적으로 ‘최열 사태’를 보면 안다. 아프지만 꼴 필요한 글이라 장황하게 옮긴다.

“돈의 논리와 조직의 성장 논리에 무비판적·무반성적으로 매몰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운동의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단에 규모도 빠르게 커졌고, 그렇게 비대해진 몸뚱어리를 건사하는 데 휘둘려 운동 본연의 목적·지향·가치 등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확인과 성찰적 경신 작업은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그 결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조직을 위한 조직, 사업을 위한 사업, 돈을 위한 돈이라는 타성적인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장을 하니까 자연스레 거대 상근 구조로 상징되는 많은 인력을 거느리게 됐고, 그 인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조직을 더 키워야 했으며, 이를 위해 돈을 더 많이 끌어 모아야 했고, 이를 위해 또다시 더 많은 프로젝트를 끌어와야 하는 악성 연쇄고리가 관성적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조직운용과 활동 방식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다보니 회원이나 개별적 시민 후원자들이 내는 다수 성격의 회비와 후원금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고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대신 한번에 뭉텅이 돈이 들어오는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 후원금 확보 위주의 프로젝트 사업에 알게 모르게 경도되지 않았을까? 결국 환경운동의 주요 비판대상인 성장주의, 물량주의, 규모주의, 속도주의, 효율주의, 편의주의 따위의 함정에 역설적이게도 환경단체 스스로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아간 형국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돈이 없으면 활동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조직, 돈을 핵심 기준으로 사업이나 활동을 계획·배치·평가하는 조직, 성장 자체가 마치 조직의 목적이 되어버린 조직이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중략) 유독 언론의 조명이 비추는 자리를 선호한다든가, 유명 인사를 불러 모으고 행사장을 다니면서 축사하고 시상식하고 사진 찍고 악수 나누는 일에 몰두한다든가, 환경운동의 커진 영향력과 높아진 지명도가 무분별하게 기업의 후원이나 정부의 예산 지원 확보에 활용된다든가, 그 연장선에서 설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신중한 문제의식 없이 기업 등으로부터 함부로 돈을 받는다든가, 현장의 풀뿌리 주민과 민중보다는 정치인, 관료, 기업체 인사, 기자 등 ‘힘 있는 자’들을 상대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는가 하는 모습들은 그 구체적 양상이다.”

너무도 소중한 지적이다. 성찰, 그 구체적 기준들이다. 누구를 만나는가. 이웃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기자든, 공무원이든, 경제인사든 뭔가 힘 있는 자들을 만나고 있는가 성찰할 일이다. 나의 뿌리, 운동의 뿌리가 무엇인지 다시 볼 일이다.







그 외 가슴에 다가왔던 글들. 더글러스 러미스의 말 “오늘날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정치적 독재가 아니라 맹목적 경제성장이다.” 맞다. 지금 나라 꼴이 이런 것도 국민들이 ‘독재라도 좋다. 돈만 벌면 된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티 비롤의 말, “석유가 우리를 떠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석유를 떠나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환경운동가들이 식민지(지방) 휴양지 훼손을 걱정하는 제국의 백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녹색평론>, 희미해져가는 내 의식을 언제나 선방의 죽비처럼 내려치는 책.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책을 기다린다. 아니 올해는 최소 3명에게 선물을 해 주어야겠다. 1년 정기 구독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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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
문용포.곶자왈 작은학교 아이들 지음 / 소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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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포 선생님은 내게 처음으로 오름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소박하고 큰 욕심 없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가득한 사람. 그가 몇 년 전부터 아이들 모아 장난을 하더니 그 폼새가 아름답게 전해진다.

놀이, 자연 속의 놀이, 산다는 게 그 이상의 것일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너무도 많은 껍질을 쓰고 산다. 그래서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머털도사와 아이들은 결국 우리들이 돌아가야할 세상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가고 싶으면서도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미루는 현대 도시 사람들. 갈증이 크기에 거꾸로 그 삶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외면하고 만다. 나는 어디인가.

 

암튼 반갑다. 그들의 기록이 책으로 엮어져 나온 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마치 차윤정의 <숲의 생활사>처럼, 숲의 생명 대신 아이들의 생명을 사계절 변화와 함께 담아냈다. 아이들에 대한 지독한 애정, 자연에 대한 경외감. 그런 것이들 함께 어울어져 빚어낸다.

 

나 역시 요즘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나의 정체성 문제다. 언제까지나 기웃거리다 끝날 것인가. 2008년 한 해를 마치고 2009년 새해를 시작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이다. 예전에 미친듯이 살았던 삶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기에, 이제 가다듬고 갈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이 책은 내게 맑은 기운을 더해준다. 고마문 사람,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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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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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앞장에 장황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존심 상할 정도로. 너 뭐 아냐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진정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잇는 지식은 얼마나 미약한가. '숲'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고, 숲을 좋아하고, 숲과 가까이 지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다음 물음에 대해 답을 해 보자. 숲에 들어가면 왜 어두운가? 봄 숲에서 야생화는 왜 꽃부터 피울까?......" 등등.

모른다. 어림잡아 답을 해 보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부실하게 읽어서 그럴 것이다. 그럼 왜 부실하게 읽었을까? 필드 없이 읽어서 그렇다. 저자의 글 솜씨도 뛰어나고 단순히 숲과 나무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철학을 같이 논할 정도로 글 맛이 뛰어난데도 나는 여전히 숲을 모르겠다.

등장하는 여러 나무들. 모르는 게 99%다. 절대 지식이 빈곤한 사람이 그저 숲 좋다고 책을 덮석 잡았다가 헤매며 읽은 것이다. 그래도 좋다.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또 겨울은 겨울대로 숲은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홀로 생명도 아니고 함께 생명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경외감. 작은 씨앗의 싹을 틔우는 것부터.

암튼 쓸 말이 많지 않다. 몰라서 그렇다. 그래도 이 책이 내게 준 것은 '이저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숲으로 가라' 메시지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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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 숲 해설가를 위한 숲의 이해와 나무 식별
남효창 지음 / 계명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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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건강 악화로 모든 걸 내려 놓고 그냥 쉬었다. 쉬면 쉴 수록 가고 싶어지는 곳이 숲이었다. 근원이어서 그런가 보다. 소로의 월든도 다시 읽고, 그러면서 보낸다.

특히 인간의 탐욕을 위해 아마존 밀림을 밀어버리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숲이 주는 고마움에 대해 진하게 느끼며 그리고 어쩌면 이제 조그마한 숲이라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산다. 기회가 다으면, 아니 기회가 닿도록 살아갈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초 공부가 필요하다 싶었다. 그래서 구입한 책이다. 책 소개문에도 나와 있듯이 숲 해설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을 듯 하다. 나는 그런 일 할 생각은 없다. 그냥 숲에 대해서 알고 싶고, 기회 만들어 숲 지어 보고 싶다.

"숲에 귀를 기울여 보자. 숲은 언제나 그들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막 싹을 틔우고 있는 나무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을까? 반짝이며 쏟아지는 아침햇살은 숲과 어떤 화음을 이루고 있는 걸까? 땅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 그루의 나무에는 어떤 친구들이 살고 있고, 어떤 손님들이 고가고, 어떤 재미난 대화를 나눌까? 나무는 모두를 품어 기꺼이 삶의 터전이 되어준다."

나무는 모두를 품는다고 한다. 그 속에서 화음이 이뤄지고.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 책엔 나무와 숲에 대한 기초 지식만 나열한 게 아니다. 나무를 분류하고 특성에 따라 구분하는 법이 자상하게 나와 있다. 아직은 나의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다 읽었다. 머리에 남진 않지만 좋았다. 구경만으로도.

지렁이의 공로도 알았고, 지렁이를 우리가 손으로 잡으면 지렁이는 화상을 입어 죽는다는 것도. 장미과 마가목 한 그루면 새가 50종류는 찾아온다는 것. 마가목이 어떤 나무지? 기억해두었다가 꼭 심고 싶다. 진달래나 철쭉 같은 나무들은 이른 봄,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시기에 서둘러 꽃을 피워 경쟁을 피하는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구사한다는 것도. 대구 도동에 있는 측백나무림이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라는 사실도. 제피나무 울타리를 두르면 모기가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도. 포유류에 의해서 씨앗 이동을 하는 도토리 류는 포유류가 나무에 올라오지 못함을 알고 스스로 열매을 땅으로 떨어뜨린다는 것도.

암튼 이러저런 즐거움으로 읽었다. 아직 상세하게 나무를 구별하는 법은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닐 테니까 하면서 만족스럽게 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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