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
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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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송 깎고 씀,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 현문서가. 2003.




아직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세속적 명예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박스레 헛된 것을 쫓으며 무엇을 하려는 건 아니다.

차분해지기도 했지만, 욕망엔 끝이 없다. 다만 그 욕망이 세련되어졌다고 할까. 불의의 세계에 여전히 발언해야 함을 알지만, 그보다 우선은 나 자신의 문제부터 풀고 가고 싶다. 그래서인가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나 자신의 실존 문제에 많이 매달린다.

요즘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 뿐, 새삼스레 무슨 유행을 탄 건 분명히 아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내가 나무를 본격적으로 만지는 건 아니다. 그냥 토요일 오후에만 장난처럼 손대고 있다.

책으로 모든 것을 열어갔던 버릇이 남아서인가, 목공에서도 실습 이상으로 관련 책을 뒤지고 싶다. 우선 내가 눈 여겨 봐두었던 목수는 신영훈과 김진송이다. 신영훈이야 감히 내가 어쩌지 못하겠고, 코드도 그리 맞지는 않는다. 반면 김진송은 계속 눈 여겨 보아왔고, 그의 기발함에 매번 감탄했던 처지라 그에게서 도움을 얻고 싶었다.

아마 그를 처음 접한 건 벌써 10년쯤 전에 그가 <한겨레>에 칼럼을 썼을 때였던 것 같다. 물론 그를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모두 글을 통해서 본 것뿐이다. 감각이 뛰어나다. 한국사회 진단이 날카롭다. 근데 그의 직업이 목수란다. 아니, 이런......

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 뒤 미술평론, 전시기획, 출판기획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면서 목수 일을 한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그가 목수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싶었었다. 근데 오늘 본 책은 그의 목공 실력이 최고 수준임을 알게 한다.

이 책은 그가 깍은 작품들을 그가 쓴 글과 버무려 놓은 것이다. 글은 동화 같기도 하고, 무슨 환타지 같기도 하다. 곤충과 그가 대화를 한다. 우주인과도, 그리고 신을 가지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 글을 드러내는 게 그가 깍은 나무다. 아니 어쩌면 나무가 먼저고 글이 나중일 것 같다. 그의 직업이 목수가 먼저인지 아니면 평론가가 먼저인지 몰라서 그렇다. 암튼 특이하다.

물론 내가 탐내는 것은 그의 글 솜씨가 아니라 조작 솜씨다. 목수 솜씨다. 그렇다고 글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예전 <한겨레>에서의 칼럼도 그랬지만 최근까지도 그의 글은 예술성이 높으면서도 사색의 깊이도 있다. 특히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여러 자료들을 발굴하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잘 한다. 내가 그의 단행본을 처음 본 것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이다. 일제 강점기 사회현상을 당시 신문 자료로 복원 해석한 책이다. 일제 강점기 그러면 막연히 지배, 착취, 저항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가 발굴하고 풀어낸 글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암튼 이번 책은 동화처럼 덕연이하고도 같이 읽을 수 있겠다. 글 내용도 그렇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각종 나무 곤충, 우주선 등이 애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건 여기에 있는 나무 곤충들을 깎아보고 싶어서였다. 여전히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없다. 지금의 실력이나 장비를 가지고는 엄두도 못 낸다. 아니 나중에 그런 장비가 갖춰져도 김진송 같은 감각이 없기에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래도 그를 통해 목각의 영감을 얻고 마음 한 번 시원해졌으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는 "상투적 세계의 지겨움에 대한 보상심리였건, 아니면 꼼지락거리며 뭔가라도 해야만 하는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보상심리였건, 낯선 물건들을 만들어 내면서" 그는 "아주 특별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게 그 즐거움의 결과물이다. 부럽다.

"그것은 나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를 전복시키거나 아니면 회복시키는 즐거움 혹은 '터무니없음'을 빌미 삼아 뭔가를 뒤집어 보고 싶은 충동"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제발 세상을 하나의 눈으로만 보지 말라고" 말한다.

나무토막 가지고 별 말을 다 한다 싶다. 그 만큼 깊은 사색의 결과이리라. 난 이 만큼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폼 나게 나무 한 번 깎을 수 있으면 그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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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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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h Fromm, - The Art of Loving





때론 황당한 일도 겪는다. 갑자기 에리히 프롬 책을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통해 마구 구입했다. 들어본 제목이라면 모두 불렀다. 근데 그 중 유독 책 값이 싼 게 있어 덤으로 하나를 추가했다. 그게 바로 이 책이다.

책값이 싼 건 다름 아니라 영어로 된 책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런 황당함이라니. 내가 언제 영어책이나 읽고 있겠나.

그렇게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을, 이번에 읽었다. 박사과정 졸업시험에 전공외국어가 있는데 전공 영어책을 읽기는 좀 갑갑하고, 그래서 워밍업 기분으로 잡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진도가 나갔다. 어라!!1
신이 났다. 내가 영어책을 읽을 수 있다니. 아마 부담 없이 잡은 책이라 그런 것 같다. 교재로 잡았다면 갑갑했을 것이다. 어쨌든 다행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경험을 한다.

번역본 이름은 대부분 <사랑의 기술>이다. 근데 읽어보니 제목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기술? 테크닉? 그거 아니던데. 왜 그런 제목을 붙였을까. 차라리 그냥 <사랑에 대하여>나, <사랑에 대한 에세이>나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라는 건> 등, 이런 제목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 먼저 Care 돌봄이라고 할까, 아니면 배려, 관심, 정확한 번역어가 힘들다. 엄마가 자기 자녀를 살피 때,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마음이 사랑의 기본 구성 요소 중 첫번째다.
다음은 Responsibility, 이건 외적으로 주어지는 책임감? 아니다. 그러면 부담스럽다. 책에서도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건 완전히 자발성에 근거한 행동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태도에 기꺼이 응할(respond) 자세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Respect이다. 존경이 사라진 사회. 권력 앞에서 굴종만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존경을 떠올리기가 어색하다. 여기서도 이 항목은 강제성이나 어떤 공포에 의해 조성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존경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그 특성을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 그게 바로 사랑을 이루는 세번째 기본 요소라고 한다.
네번째가 Knowledge다. 물론 알아야 한다. 근데 이건 상대방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아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사랑에 의해 그 앎은 제대로 된다고 한다. 사랑을 통해 상대를 알고 나를 알게 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가 왜 이런 책을 썼을까. 사회에 대한 걱정 때문이리라. 물론 사회는 사회 구조가 문제다. 그러나 구조 탓만 할 건 아니다. 개인의 행위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행위를 규정하는 건 비단 구조만이 아니다. 심리적 요소도 있다. 그것 때문이 아닐까. 구조에 대한 강조 못지 않게 개인의 행위를 중시했기 때문에.

암튼 난 영어 공부했다.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그냥 영어 공부했다는 것만으로 뿌듯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좀 그렇긴 하다.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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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 -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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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이 아니라 새벽형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사이쇼 히로시, <아침형 인간-인생을 두 배로 사는>, 한스미디어, 2003.




뻔한 내용인 줄 알고도 샀다. 예전에 구입한 책이다. 집안 분위기를 바꿔 보고 싶어서 그랬는데, 아직까지도 안 바뀌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내가 읽었다. 그냥 후딱. 뭐 특별히 챙길 내용이 있어서 읽은 건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사실 책 내용은 뻔하다. 그래도 내가 구입한 책이 1판 22쇄이다. 그 만큼 쫓기는 삶을 사는 한국 그리고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나도 그렇고. 그 뻔한 내용을 확인하며, 다지고 또 다진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검색해 보니 '아침형 인간'이 들어간 책만 해도 15 종류 이상이 된다. ‘아침형 인간을 위한 4시간 숙면법’, ‘아침형 인간의 시간활용법’, ‘아침형 인간 성공 기’, ‘아침형 인간의 초고속 성공법’, ‘아침형 인간의 비밀’ 등등. 사실 다 뻔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잘 팔린다. 그 만큼 사회가 빡빡하다는 말이겠다. 그런 빡빡함에 나 역시 일조를 하고 있다. 상황이 그리 되었다.

올해부턴 집안일에 더욱 많이 신경 써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대학원 수업 때문에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젠 애들도 챙겨야 한다. 무엇보다 일찍 자게 해야 아침에 헤매지 않는다. 아침마다 애들과 전쟁할 순 없지 않은가. 어쨌거나 애들은 일찍 재우고 일찍 일어나게 하는 게 좋겠다. 여기에 내가 맞추기로 한 것이다. 자기 최면을 위해

나는 어차피 시간이 많지 않다. 물론 이건 나의 욕심 때문이긴 하다. 그래도 이왕 벌린 일, 잘 마무리 짓고 싶다. 그래서 새벽 시간을 쓰기로 했다. 새벽 3시 일어나고 밤 9시에 잠자리에 든다.
이제 며칠 째다. 근데 사실 밤 9시라는 것이 쉽지 않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그래도 새벽 3시는 사수하고 있다. 하루가 나른하다. 이걸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만들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 그냥 이 책을 잡았다. 자기 최면 강화를 위해서다. 근데 이 책에서 권하는 취침 시간대는 밤 11시부터 새벽 5시다. 물론 저자도 자기 상황에 맞추라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아침 기상은 새벽 5시를 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다. 나는 너무 당겼나. 그렇지만 달리 답이 없다. 현재 나의 상황에서는.

책에서 낮잠 30분을 권하고 있다. 이걸 잘 확보하면 좋겠다. 낮잠은 누워서가 아니라 기대서 살짝 졸라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피로를 그때그때 풀어야겠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실천이다. 며칠 해 보니까 잘 될 것 같다. 계속 이렇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주변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다. 무조건 밤 9시면 불을 끄자. 그것만이 내 시간 확보를 보장한다. 그래야 아침형을 넘어 새벽형으로 살 수 있다. 당분간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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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농부의 집 짓는 이야기 1
장진영 지음 / 샘터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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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건달 농부의 집 짓는 이야기 1>, 샘터, 2005.




처음엔 속았다 싶었다. 나는 분명 집짓기에 관심을 가지고 구입한 것인데, 집 짓는 이야기가 끝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만화라서 좋았다. 그림 솜씨는 그리 뛰어난 것 같진 않은데, 작가의 고민이 많이 드러나 좋았다. 나의 고민과도 많이 일치하니까.
어쨌거나 책 표지를 다시 보니 시리즈겠다 싶었다. 1권이라고 나온 것이다. 아하 그러니, 집짓는 이야기는 나중에 또 나오겠구나. 그러면 나는 또 사야하고.
그래도 좋다. 재미가 있으니까.
1권은 탈도시 귀농의 과정을 그렸다. 그리고 초기 정착에서의 어려움 등등이다. 그래도 그의 실제 경험인 듯 생생한 게 장점이다 싶다.
그의 고민은 ‘1장 희한한 세상’에서 표현된다. 문제의식이겠다. 도시의 경쟁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하여 행복하지 못한 삶, 그러면서도 벗어나질 못하는 그 ‘희한함’을 그린 것이다.
“땀 흘려 일하기보단 러닝머신에서 달리며 땀 흘리는 걸 좋아하고, 성인병 걸린 술 상무는 오늘도 승진을 위해 단란주점에서 양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공감한다. 그런 만큼 인내를 가지고 다음 2권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땐 나 역시 집짓는 구상을 많이 진척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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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어제와 오늘
이경명 지음 / 어문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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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명, <태권도의 어제와 오늘>, 어문각, 2002.




앞서 김용옥의 글을 읽은 이유와 같다. 태권도 관련 글을 좀 읽어야할 처지가 되었다. 이 책은 예전에 읽지 않았던 책이다. 윤용택 교수가 들고 있기에 빌려 왔고, 뒤 부록에 태권도 관련 논저가 어마어마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예스24를 통해 주문하고 줄 팍팍 쳐가며 읽었다. 남의 책에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이경명은 태권도문화연구소장이고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다. 제도권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가 일단 기본 입장은 제도권적 시각이다. 최홍희 등 국제태권도연맹(ITF)과는 다르며 그들에 대해서 그리 좋은 시선을 보내진 않는다. 오히려 최홍희의 자서전에 오류와 왜곡이 많다며 지적할 정도다.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근데 책으로 말하자면 최홍희의 자서전이 훨씬 재미있다. 태권도 문제 자체도 그렇지만 방대한 고전 인용 등 그의 박학다식이나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 역시 이경명의 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경명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필요는 없다. 특히 태권도라는 명칭이 제정된 것에 대해 최홍희는 1955년 4월 11일 명칭제정위원회에서 그리되었다고 했는데 이경명은 당시 <동아일보>등의 자료를 들이대며 그건 날조라고 한다. 최홍희가 말한 명칭제정위원회는 사실 객관성을 갖지 못한 대한당수도 청도관 제1회 고문회의일 뿐이며 그 날짜도 1955년 12월 19일이라고 말한다.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홍희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이건 그를 비판하는 이경명의 글에서도 나온다. 이경명 글이 그래도 좋은 건 최홍희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최홍희의 업적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김운용의 과오에도 불과하고 비판하면서 인정하고 있다. 나름의 개관적 시각이 돋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무술판(태권도판)하면 단순무식이 떠오르면 곤란하지 않은가.
양진방이 제대로 된 책을 하나 썼으면 좋겠다. 그가 최초로 근대 태권도 형성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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