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 - 산골로 간 CEO, 새집을 짓다
이대우 지음 / 도솔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마이너리티

이대우, <새들아, 집지어 줄게 놀러 오렴>, 도솔 오두막, 2006.


잘 나가던 CEO가 시골생활로 들어갔다. 그의 표현대로 ‘전원생활’이라고 하면 괜히 폼이 나고 ‘시골생활’이라고 하면 촌스러워지는데, 그는 굳이 전원생활을 버리고 시골생활이라는 어휘를 택했다. 그것부터가 맘에 든다.
리영희 선생 밑에서 <조선일보> 외신부에 근무했던 게 첫 직장생활이라고 한다. 그 무렵 중국 관련 기사에서 purify를 ‘피의 숙청’이라고 했다가 리영희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야단 맞고 일장 연설까지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리영희 선생처럼 언론인의 길은 간 것은 아니다. 곧 선박회사 일을 했었고, 여기서 다시 벤처 기업의 전문 경영인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리곤 나이 들어 강원도 어느 산골에 들어 조용히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관심을 가진 건 목공이다. 그리곤 그 목공 실력으로 새집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새집들로 전시회도 열고 책도 내었다.
처음 책을 읽어갈 때는 글 내용도, 그리고 그가 만들었다고 하는 새집도 그저 그랬다. 사진을 통해서 보건데 그가 만든 새집이 그리 훌륭한 작품 같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 까지도.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에 대해 감정이 달라진다. 대단함 보다는 소박함이 더 큰 힘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가 만든 새집도 그렇고, 그의 생활도 그렇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다. 새집도 주로 폐자재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굳이 따진다면 예술성보다는 그의 정성이 나를 감동하게 만든다.
역시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여러 귀농 관련 책, 혹은 ‘전원생활’ 관련 책을 통해 익숙한 대목이 없진 않으나, 상당히 소박하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욕심이 없는 그의 삶을 보면서 말이다.
그가 권하는 삶, 예전부터 나 역시 꿈꾸고 있는 삶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채소와 곡식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 손으로 거두고, 화폐(돈)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며, 집을 손수 지을 수 없으면 창고나 작업실을 목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같이 지어 보라고 권한다. 집 안에 필요한 책꽂이, 선반, 간단한 의자, 탁자 같은 것을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자그마한 마당에는 야생화 화단을 만들어 가꾸고, 나무를 부지런히 심는 이런 시골 생활을 몇 년 간이라도 해보라고 권한다.”
여기서 집짓기.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온 과제다. 근데 이 양반 말을 듣고 보니 동감한다. 살림집은 작게, 대신 작업실과 창고, 그리고 가능하면 소도서관 겸 전시실을 크게 지으라 한다. 시골생활에선 실내 보다 야외 혹은 작업실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참고할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권하면서 그는 헨리 소로의 <월든>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목수를 100프로 신뢰하지 말라는 것. 자신이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 작은 오두막도 철저한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의 조언을 더 한다.
주변 사람들이 때론 신기하게 때론 부러워하며 그리고 때론 중앙 무대에서 잊혀져 감을 안타까워하며 말들을 건넨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초현대풍이라는 바람이 불어 닥칠 때마다 그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 명예로운 일이라고 여겨지고, 또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붙들고 꿋꿋이 버티는 것, 그 시대의 단단한 참나무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마이너리티로서의 고집일까”라며 ‘마이 웨이’를 말한다. 이런 고집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좋다. 요즘은 더욱 더.
나 역시 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환멸감이 들면서 더욱 그렇다. 근데 때론 이렇게 살면서 내가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는 느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조언에 따르면 그건 그리 걱정할 게 못 된다. “커다란 허구였던 공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무대를 마련하면 된다. 스스로가 품 넓은 자연을 배경 삼아 시골이라는 아담하고 알찬 무대를 만들고 그 무대의 주연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남을 의식하며 굳이 주연이 될 생각은 없다. 그저 나 자신에 충실하고 싶을 따름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그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마련한 무대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스로 자신을 지칭하는 ‘마이너리티’라는 단어에 공감하고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보면서 부러운 건 여럿 있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였다는 이야기, 산을 그렇게 도 좋아해서 딸아이가 세 살 때부터 함께 캠핑을 다녔다는 이야기, 산악자전거에, 한 때 화가를 꿈꿨을 정도로 그림 솜씨도 있고, 책 구입엔 월급의 10%를 썼다고 한다. 물론 그가 가진 목공 작업실과 거기에 있는 목공 도구들이 지금으로선 가장 부럽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하나하나씩 준비할 것이다. 나는 늦지 않았다. 지금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연제덕 선생님 밑에서 10년 쯤 배우다 보면 내 나이 50대 초반, 그쯤이 가장 좋겠다. 그쯤이면 지금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착실히 준비하는 시간. 먼저 눈앞에 놓인 과제들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 열도 속의 슬픈 인물 탐구




김충식, <슬픈 열도-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효형출판, 2006.




책을 잡자 순식간에 진도가 나간다. 글쟁이가 쓴 글이라서 그렇다. 글발이 좋다. 아주. 이런 사람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난 당분간 차분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 논문 말이다. 하지만 그 논문 끝나면 다시 저널적 글쓰기로 돌아가고 싶다. 학자들 안에서의 글이 아니라, 대중적 글쓰기 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문성은 더 높여야 한다.

김충식은 <동아일보>도쿄 지사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래서 일본 속의 사정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그도 역시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일본 속의 한국인을 집중 취재했다. 인물 취재인 것이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일본과 한국 사이엔 드러나지 않은 인적 관계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을 받다 보니 사실 피해자 입장이 많다. 그 과정에서 조선 사람이 택할 수 있었던 길은?

처절하게 저항하거나. 아니면 철저히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화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생각 없이 사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이었기에 그 모든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순히 친일파라고 밀어버릴 것만은 아니다.




먼저 저자는 김옥균을 탐구한다. 일본을 이용하려다가 처절히 배신당했던 풍운아. 그러나 그의 용일(用日)을 단순히 친일이라고 할 순 없다. 1958년에 김일성도 김옥균의 긍정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일본 망명 생활과 최후가 드라마틱하게 잘 묘사가 되어있다. 암살당한 후 시신은 다시 능지처참되었지만, 1904년 그의 머리카락과 의복 일부를 훔쳐다가 도쿄 아오야마 공원 안 외국인 묘역에 그의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그 묘에는 유길준이 썼다는 묘비명이 있다.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도 세우지 못하고, 비상하게 죽어간, 하늘나라의 김옥균 공이여.”




최익현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대마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문제는 돈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일본어를 좀 해야 되겠다. 돈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일단 일본어만 되면 한 번 뛰어봐야겠다.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일본의 섬. 최근엔 한국인에게 부동산 투자까지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선전문구가 “대마도에 별장을”이란다.




임란 때 잡혀가 그곳에서 일본인의 스승이 되어 살았다는 이진영의 이름은 처음 듣는다. <간양록>을 남긴 강항과는 달리 그는 돌아오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때 잡혀간 도공의 후예 중에 일본의 외무대신을 두 번이나 지냈다는 도고 시게노리, 역시 처음 듣는다. 약간 당혹스럽지만, 그의 치열한 삶은 인정한다. 다만 그런 힘이 한일 간에 화해와 평화에 기여했기를 바랄 뿐이다. 본래 이름이 ‘박무덕’이었다고 한다.

한국 이름 ‘김신락’이라는 함경도 출신 역사 ‘역도산’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김일성 생일에 독일제 벤츠를 선물하기도 했고, 또 남한의 중앙정보부와도 거래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 그가 했다는 말 “나는 항상 네 귀퉁이를 쳐다보며 살아야 했다”는 그 말이 가슴을 때렸다.

도공 심수관의 집, 거긴 나도 가봤다. 지금은 ‘심수관’ 14대와 15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시바료타로’라고 한다. 이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지극 정성이면 이런 행운이 오는가 보다. 심수관 집에 걸려 있다는 액자의 문구, “黙而識之(묵이식지).” 말로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말이다. 가슴에 새긴다. 성심으로 살아갈 뿐이다.

근데 ‘심수관’ 편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본다. 이번에 총리가 된 아베 신조, 그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인데, 바로 그 ‘기시 노부스케’가 이 도예촌 출신, 즉 조선 핏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럴 수가. 하긴 중세의 민족과 오늘날의 민족이 무슨 의미가 있으련만. 암튼 그래도 황당했다. 이런 점들이 모두 평화를 향한 것으로 쓰이면 좋으련만. 천만에. 그는 일본 최대의 극우분자다.

문인 ‘김달수’와 ‘이회성’ 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삶 자체가 지옥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올린 문학 혼. 절절한 체험이 가난도, 멸시도, 차별도 이겨냈던 것 같다. 김달수의 말, “무엇을 소재로 글을 쓰든 인간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문학이 된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리다.

특이한 건 둘 다 열렬한 조총련 인물이었다가 모두 탈퇴했다는 점.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특히 이회성의 경우 1998년까지도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조선국적. 나라를 빼앗길 때 그 때의 국적. 남도 북도 아닌 하나인 조선 국적을 고집했다고 하니, 그의 정신세계를 짐작할 만 하다.




다 읽고 나니, 일본이라는 나라가 더 당긴다. 그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삶도 새롭게 보였다. 말 그대로 슬픈 열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 우리 문화 바로 찾기 1
조용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조용헌,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생각의 나무, 2002.




요즘들어 부쩍이나 공부하고 싶다. 미친 듯이 읽고, 신들린 듯이 써대고 싶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너무 많이 놀았다. 근데, 그럼에도 집중력은 떨어지고 이것 저것 잡다한 것에 마음을 너무 많이 빼앗긴다.

조용헌, 벌써 10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그의 강의를 들었다. 그때 들은 강의 이야기가 이번에 읽은 책보다 낫다. 워낙 첫 인상이 그래서 그랬나.
솔직히 이 친구 쓴 글엔 알맹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바람은 잔뜩 들었으나, 가만히 놓고 보면 허상이란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읽었던 <방외지사> 역시, 대중들 흥미거리 이상이지 못했다. 진정한 방외지사는 드러나지 않는 법인데, 얼치기 방외지사들이 그의 책에 포착된 것 같았다. 그 만큼 내공이 깊지 못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지금 시대에는 충분히 뜰 만하다.

그런 그여서 그랬나. <한겨레>에서 소개를 했다. 우리시대 글쟁이로 말이다. 그가 쓴 책들과 함께 지면에 실렸다. 부러웠다. 큰 내공 같지도 않은데, 저 정도라니. 그런 호기심에서 이 책을 샀다. 물론 명리학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 보고 싶기도 했다.

내가 하고 다니는 외모가 그러하니 사람들이 나보고 '도사'라고 한다. 도사는 무슨. 순 엉터린데. 그 만큼 사람들은 겉을 보고 판단한다. 그래서 사기치기가 쉬운지도 모르겠다. 내친 김에 완전히 도사 흉내 내면서 교주 행세나 해 봐?

말이 그렇고. 어쨌든 나는 그의 수준을 그리 높게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리학에 대해선 한 번 보고 싶었다. 예전에 그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동양적 가치관에서의 3재, 즉 천, 지. 인. 거기서 요즘, 지와 인은 시민권을 제법 얻었다. 인은 한의학으로, 지는 풍수지리로, 하지만 천은 역시 황당한 이야기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명리학이 바로 그것인데, 소위 말하는 '천기'다. 그 천기는 여전히 신비롭게 혹은 황당하게, 비과학적으로 여겨지기에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매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이 분야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싶긴 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또 다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물론 그 투자에 합당한 나름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모를까. 심심풀이로 시간 죽이기는 아깝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꾸 고개가 돌려진다.
이 무렵 <한겨레 출판>에서 작년에 낸 관련 책 광고를 보았다. 많이 끌린다. 하지만 아직 저지르진 않았다.
아, 나의 오지랖이여. 그만 좀 벌려야 할 텐데. 이러다가 또 다시 허우적 거리면 어떡하지. 그래도 이 동네도 보고 싶긴 하다. 특히 <주역>은 너무도 어렵다는데, 그러니 뻔히 헤맬 게 분명한데도, 왜 이러지 정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를 방랑하는 사람들
밀다 드뤼케 지음, 장혜경 옮김 / 큰나무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밀다 뒤르케, <바다를 방랑하는 사람들>, 큰나무, 2003.




뭐라 말할까. 기분 좋게 그냥 잘 읽었다고 말하자. 속았다고 말하려니 나 스스로 창피하다. 좋은 사진, 그리고 낭만적인 글. 그것만으로도 좋다. 근데 나 지금 그 정도로 한가해?

이 책에 손에 댄 건, 순전히 '바다 유목민'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안미정의 어느 논문 속 각주에서 본 것인데, 그래서 서둘러 구입하고 읽었던 것인데, 아, 이런 난감함이라니. 아니 그래도 좋았다. 번역자의 문장이 깔끔하고 힘 있는 것도 좋고. 인도네시아 어느 바다의 바다 유목민들의 삶을 엿보게 된 것도 좋았고. 단지 내가 찾던 그런 책이 아니었을 뿐.

바다 유목민, 바조족의 삶은 그야말로 어쩌면 현대문명에 지친 사람들이 되찾아야할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걸 전해준 독일 작가이자 기자인 밀다 뒤르케의 시선은 그가 아무리 눈높이를 낮추어도 그는 역시 오리엔탈리즘을 가진 서양인일 뿐이다. 언제든지 문명 세계로 돌아가고야 마는.

그렇기에 바조족의 삶을 미화하는 건 곤란하다. 그래도 그들의 삶에서 맑음은 본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이미 이젠 자본에 서서히 포섭되어 가는가 보다. 그들은 유목민이기에 소유를 최소화한다. 일본인 진주 양식장에 고용된 동료를 보면서 하는 말, 이제 보스가 생겼군. 하기 싫어도 매일 일을 해야 해.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 배에 어울리지도 않는 물건들을 사겠지. 그리고 그 물건들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을 거야. 그는 이제 자유인이 아니야. 나 같으면 보스가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그는 돈이 생기면 모터를 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모터가 기름을 먹는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 그렇게 되면 모터가 우리의 보스가 되어 버려요."

그들은 자유인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을 정착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본시 권위, 권력은 자유를 싫어하니까.

이 책에선 바다 유목민의 기원을 말레이시아 남부에서 찾는다. 전설은 이렇다. 공주를 납치당한 왕이 신하들에게 바다로 나가서 공주를 찾아오라고 했다. 찾아오기 전에는 상륙하지 말라고 하자,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육지 권력이 만든 이야기겠다.

이들은 주로 해삼을 잡는다. 그리고 그건 홍콩 쪽으로 수출되는 모양이다. 근데 그것이 상당히 힘든 노동이라고 한다. 전복 잡는 제주해녀를 떠올리게 한다.

좋은 건 사진과 몇몇 표현들.
"태양은 다른 나라를 향해, 다른 바다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태양에 취한 바다"
"늘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천성"
"구름이 붓의 터치처럼 하늘에 걸려 있던 어느 날"

그런 어느 날 좋은 사진과 자유인의 삶을 살짝 훔쳐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 전직 CEO 인생선배의 36가지 충고
김종헌 지음 / 정신세계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김종헌,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정신세계원, 2005.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 동안 내가 주로 읽던 책은 사회과학 이론서, 역사서, 시사문제, 환경 생태 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젠 나이가 들었나 보다. 확실히 삶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은근히 두렵다. 완숙을 향해 나가야 할 나이에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엔 패기라도 있었지, 요즘엔 그것도 없다. 그러면서 두려우니 참으로 준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이 책을 손에 넣었다.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실제 이런 제목을 보면 우선 나는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광고에 실린 몇몇 구절들을 보며 책을 구입했다. 예를 들면 '최후의 동반자, 아내에게 투자하라'라든가, '몸값 관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하라', '회사 가기 싫은 날에는 결심을 하라', '아내와 사이만 좋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남자의 사추기(思秋期), 마흔에 필요한 건 방황이 아니라 꿈이다', '은퇴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라' 등의 문구가 나를 끌어 당겼다. 소위 내가 약간을 경멸적으로 봐왔던 처세술 비슷한 책 같아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약해져만 가는 나의 비루함이 이런 책에라도 매달리게 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시이오 출신이다 보니 나하고는 생각이 다른 점이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지런히 살았던 그의 경력, 그리고 경영 노하우는 내가 상대적으로 약점이기에 본 받을 것이 많았다. 그래서 골라서 섭취한다.

우선 문제의식은 함께 한다. 이제 마흔을 넘은 시점이라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지금의 샐러리맨으로 안주할 순 없다. 특히 나처럼 현재 교직에서 아이들 가르치며 부끄러움만 더해가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도교육, 특히 그 중에서도 한참 막힌 우리학교의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이 직장에서 나의 자아를 키워갈 순 없다. 다만 적은 시간을 들이면서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만 남는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에 얽매여 나의 "인생을 저당 잡혀 살 수는 없다." 물론 저자의 경우처럼 그러기에 마지막 직장 생활은 더욱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떠날 것이기에, 그 떠남을 준비하기에 더욱 열심히 하는 것이다. 물론 떠남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천한다. 지금은 준비기다. 그도 40대에 결심하고 10년 뒤인 54세에 떠났다. 그 동안은 인생 2모작을 했던 것이다.

나도 따지고 보면 인생을 2모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2모작이 아니라, 3, 4, 5모작쯤 하고 있는지도 모르나. 현직 교사, 박사과정, 요가. 목공, 펜션 등등등 많다.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무계획적이다. 이걸 이제부터라도 보다 세심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마련할 것이다.

인생을 60대에 끝낼 게 아니라 70,80까지 갈 것이라면 지금이야 말로 인생 후반전의 준비시기이다. 저자는 '책이 있는 찻집'을 꿈꿨다. 나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책은 함께 할 것이다. 끝까지.

그가 충고하는 인생 2막 설계에서의 주의점이다.
1. 부부 두 사람이 함께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만들라. 이건 그 동안 많이 이야기 되었다. 우선 기본적인 농사. 그리고 나는 목공, 마누라는 염색 등이다. 물론 그것으로 밥벌인 못한다. 밥벌이 수단은 따로 또 준비해야 한다. 앞에 든 것은 생활, 즉 삶의 주된 테마다.
2. 과도한 토지보다 적정 규모의 토지. 500평 이상은 노년의 부부가 관리하기 힘들다. 동감한다. 욕심 내지 않으련다. 500평에서 커봐야 1000평.
3. 차별화된 업종이라야 가능하다. 이게 문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돈벌이에는 재주가 없다. 그래서 차별화도 어렵고 또 그것을 돈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어렵다. 그래도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살면 된다. 적은 수입, 적은 소비. 본래 이게 건강한 삶이니까. 차별화를 고민하되, 그것이 억지로 만든 차별화가 아니라, 내 삶이 그냥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4. 충분한 준비 기간. 옳은 말이다. 오히려 나는 너무 그 기간이 긴 게 아닌가 싶다.
5. 미리 배워둘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라. 목공을 그래서 배우고 있다. 저자는 원예도 언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거기엔 못 미친다. 그건 나중에.
5.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먼 길 마다 않고 가서 자문을 구해라. 그럴 것이다. 아직은 뭘 해야 할 지 구체적이지 않아서 그냥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산다.
6. 수입을 크게 기대하지 말고 즐기며 일하는 방안을 찾아라. 좋은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우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큰 수입은 애당초 나와 거리가 멀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수익보다 일하는 즐거움에 무게"를 둘 것이다.
7. 이를 위해서 부부가 평소에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게 참 좋다. 이런 구상을 할 때 마치 신혼 때 새로운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항상 꿈이라는 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같이 꾸는 꿈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인생 최후에 남는 건 부부 두 사람 뿐인데.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관계다. 우선 나. 그 다음 배우자. 그리고 자식이다. 이 책에선 이 부분을 따로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계의 문제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우선 나의 문제. 한 마디로 성실하게 사는 거다. 다분히 CEO적인 발언이지만 "죽을 때까지 몸 값 관리를 하라"는 말을 다시금 새긴다. 새로이 펼쳐지는 환경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컴퓨터다. 우선 내 앞의 불을 끈다면 언젠가는 이 부분도 제법 한다는 수준까지 해 보고 싶다.
저자는 외국어 구사능력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건 자신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다 한다고 한다. 신입사원 시절 월급보다 외국어 학습 수강료에 더 많이 돈을 썼던 때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럴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대로 외국어 공부는 오직 반복, 이것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 차 안에의 시간을 적극 활용함이 좋겠다.
"늙어 죽을 때까지 지적 호기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인생을 활기차게 살고 싶다면 말이다." 나는 이건 가능할 것 같다. 다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은 그의 지적 호기심은 실용성에 무게가 두어져 있고 나의 관심은 실존의 문제이다. 이게 다르다.
그 외에 그의 조언. 시간을 만들어 써라. 남보다 한 박자 앞서 가라. 등등등.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성실이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도 물론 있다. 맹목적 성실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역시 배워야 한다. 시간은 만들어 쓰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배우자와의 관계. 그의 모토는 "아내와 사이만 좋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이다. 그러면서 '최후의 동반자, 아내에게 투자하라'라고 가르친다. 좋은 말이다. 여기서 하나 배운 점. "아내의 스승들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종종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나는 여민회 회원들과 별로 친하지 않다. 마누라가 상당 부분 열정을 바치는 곳인데도 말이다. 앞으로 이 점 개선. 마누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도 힘써야겠다.
'틈날 때마다 아내와 노후를 계획하라'. 이건 연애시절, 결혼생활을 꿈꾸듯 둘만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기에 황홀한 일이다. 상대방에게 실망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았자 부부 싸움밖에 하지 않는다.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 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도모하고 노후를 안정적으로 설계하는 길이다." 그래야 "젊었을 때와 같은 화끈한 재미는 없어도 서로 의지하며 느끼는 부부의 정이 이리도 애틋한 것"이 된다고 한다. 이건 달리 말할 것 없다. "인생에 수많은 관계가 있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부부 두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배려와 희생, 그리고 신뢰"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와의 관계. 우선 자녀와 나의 정류장은 다르다는 걸 전제해야 한다.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거는 일은 잘못이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성숙된 인격으로의 훈련"이 중요하다. 짧게 말해서 그는 자녀를 "부모의 열망과 재산으로부터 독립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세상은 아주 많이 변할 것이다. 외국 학위보다는 한 분야의 장인, 스스로 하고 싶은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 들 줄 아는 아이"가 장래에 더 유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누구나 영어를 해대기에 외국 유학이 그리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앞가림을 하도록 자립적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확실한 노후 대책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행한 자녀 교육법. 사교육에 투자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우선 집안 분위기. 엄마 아빠가 모두 매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러면 자연스레 배운다. 그의 집에는 만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부모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주말이면 가급적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가족 외식이라도 하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애들 교육에 거의 시간을 쓰지 못했다. 올해부터 조금 달라졌다. 더 크기 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몇 개의 비싼 학원보다 둘러 앉아 식사하는 일이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더 필요한 일"이라는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는 유산이 아니라 가풍을 남기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하게 생각한 부분이 이 대목이다. 당연한 말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머지않은 시간에 가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안의 교훈, 부모의 교훈, 이것은 말로만 하거나, 액자 속에 글씨만 써 넣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몸으로의 공감, 그리고 실천 속에서 애들에게 전해 줘야 한다.
그래서 계속 생각해 온 것을 한 번 정리해 본다.
1. 정성(正誠): 올바르게 성실해야 한다. 성실한 가풍이야말로 좋은 유산일 것이다.
2. 정직(正直): 우직함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신뢰감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올바른 우직함이라야 한다. 잔 머리나, 맹목적 우직함이 아니다.
3. 정의(正義): 모은 일을 할 때 옳고 그름을 따져서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높여 준다. 기교가 아니라, 영리가 아니라, 삶 자체의 품격은 옳은가 그른가로 판가름 된다. 특히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황금만능의 시대이기에 맹자의 한 구절 견리사의(見利思義)는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아무리 부자이고 유명 인사라 해도 올바르지 못하면 그건 상품에 불과하다. 그건 슬픈 일이다. 인간이 상품으로 평가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 삶 그 자체의 가치인 義를 항상 드높여야 한다.
조만간 생각이 더 다듬어지면 우리 집의 가훈으로 세우고, 차분차분 집안의 분위기로 만들어 애들에게 남겨 줘야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의 생활,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길게 썼다. 처세술 책을 읽고 이렇게 장황하게 쓸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러나 단순한 처세가 아니라, 인생 중반에 삶을 정리하며 새롭게 계획하는 마당이기에 그런 계기를 준 이 책에 이 정도의 성의를 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 2막, 모든 것이 그렇지만 준비가 착실해야 한다.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고. 성실히, 우직하게, 의롭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