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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 전직 CEO 인생선배의 36가지 충고
김종헌 지음 / 정신세계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김종헌,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정신세계원, 2005.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 동안 내가 주로 읽던 책은 사회과학 이론서, 역사서, 시사문제, 환경 생태 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젠 나이가 들었나 보다. 확실히 삶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은근히 두렵다. 완숙을 향해 나가야 할 나이에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엔 패기라도 있었지, 요즘엔 그것도 없다. 그러면서 두려우니 참으로 준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이 책을 손에 넣었다.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실제 이런 제목을 보면 우선 나는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광고에 실린 몇몇 구절들을 보며 책을 구입했다. 예를 들면 '최후의 동반자, 아내에게 투자하라'라든가, '몸값 관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하라', '회사 가기 싫은 날에는 결심을 하라', '아내와 사이만 좋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남자의 사추기(思秋期), 마흔에 필요한 건 방황이 아니라 꿈이다', '은퇴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라' 등의 문구가 나를 끌어 당겼다. 소위 내가 약간을 경멸적으로 봐왔던 처세술 비슷한 책 같아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약해져만 가는 나의 비루함이 이런 책에라도 매달리게 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시이오 출신이다 보니 나하고는 생각이 다른 점이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지런히 살았던 그의 경력, 그리고 경영 노하우는 내가 상대적으로 약점이기에 본 받을 것이 많았다. 그래서 골라서 섭취한다.
우선 문제의식은 함께 한다. 이제 마흔을 넘은 시점이라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지금의 샐러리맨으로 안주할 순 없다. 특히 나처럼 현재 교직에서 아이들 가르치며 부끄러움만 더해가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도교육, 특히 그 중에서도 한참 막힌 우리학교의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이 직장에서 나의 자아를 키워갈 순 없다. 다만 적은 시간을 들이면서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만 남는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에 얽매여 나의 "인생을 저당 잡혀 살 수는 없다." 물론 저자의 경우처럼 그러기에 마지막 직장 생활은 더욱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떠날 것이기에, 그 떠남을 준비하기에 더욱 열심히 하는 것이다. 물론 떠남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천한다. 지금은 준비기다. 그도 40대에 결심하고 10년 뒤인 54세에 떠났다. 그 동안은 인생 2모작을 했던 것이다.
나도 따지고 보면 인생을 2모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2모작이 아니라, 3, 4, 5모작쯤 하고 있는지도 모르나. 현직 교사, 박사과정, 요가. 목공, 펜션 등등등 많다.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무계획적이다. 이걸 이제부터라도 보다 세심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마련할 것이다.
인생을 60대에 끝낼 게 아니라 70,80까지 갈 것이라면 지금이야 말로 인생 후반전의 준비시기이다. 저자는 '책이 있는 찻집'을 꿈꿨다. 나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책은 함께 할 것이다. 끝까지.
그가 충고하는 인생 2막 설계에서의 주의점이다.
1. 부부 두 사람이 함께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만들라. 이건 그 동안 많이 이야기 되었다. 우선 기본적인 농사. 그리고 나는 목공, 마누라는 염색 등이다. 물론 그것으로 밥벌인 못한다. 밥벌이 수단은 따로 또 준비해야 한다. 앞에 든 것은 생활, 즉 삶의 주된 테마다.
2. 과도한 토지보다 적정 규모의 토지. 500평 이상은 노년의 부부가 관리하기 힘들다. 동감한다. 욕심 내지 않으련다. 500평에서 커봐야 1000평.
3. 차별화된 업종이라야 가능하다. 이게 문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돈벌이에는 재주가 없다. 그래서 차별화도 어렵고 또 그것을 돈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어렵다. 그래도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살면 된다. 적은 수입, 적은 소비. 본래 이게 건강한 삶이니까. 차별화를 고민하되, 그것이 억지로 만든 차별화가 아니라, 내 삶이 그냥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4. 충분한 준비 기간. 옳은 말이다. 오히려 나는 너무 그 기간이 긴 게 아닌가 싶다.
5. 미리 배워둘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라. 목공을 그래서 배우고 있다. 저자는 원예도 언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거기엔 못 미친다. 그건 나중에.
5.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먼 길 마다 않고 가서 자문을 구해라. 그럴 것이다. 아직은 뭘 해야 할 지 구체적이지 않아서 그냥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산다.
6. 수입을 크게 기대하지 말고 즐기며 일하는 방안을 찾아라. 좋은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우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큰 수입은 애당초 나와 거리가 멀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수익보다 일하는 즐거움에 무게"를 둘 것이다.
7. 이를 위해서 부부가 평소에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게 참 좋다. 이런 구상을 할 때 마치 신혼 때 새로운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항상 꿈이라는 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같이 꾸는 꿈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인생 최후에 남는 건 부부 두 사람 뿐인데.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관계다. 우선 나. 그 다음 배우자. 그리고 자식이다. 이 책에선 이 부분을 따로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계의 문제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우선 나의 문제. 한 마디로 성실하게 사는 거다. 다분히 CEO적인 발언이지만 "죽을 때까지 몸 값 관리를 하라"는 말을 다시금 새긴다. 새로이 펼쳐지는 환경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컴퓨터다. 우선 내 앞의 불을 끈다면 언젠가는 이 부분도 제법 한다는 수준까지 해 보고 싶다.
저자는 외국어 구사능력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건 자신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다 한다고 한다. 신입사원 시절 월급보다 외국어 학습 수강료에 더 많이 돈을 썼던 때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럴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대로 외국어 공부는 오직 반복, 이것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 차 안에의 시간을 적극 활용함이 좋겠다.
"늙어 죽을 때까지 지적 호기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인생을 활기차게 살고 싶다면 말이다." 나는 이건 가능할 것 같다. 다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은 그의 지적 호기심은 실용성에 무게가 두어져 있고 나의 관심은 실존의 문제이다. 이게 다르다.
그 외에 그의 조언. 시간을 만들어 써라. 남보다 한 박자 앞서 가라. 등등등.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성실이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도 물론 있다. 맹목적 성실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역시 배워야 한다. 시간은 만들어 쓰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배우자와의 관계. 그의 모토는 "아내와 사이만 좋아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이다. 그러면서 '최후의 동반자, 아내에게 투자하라'라고 가르친다. 좋은 말이다. 여기서 하나 배운 점. "아내의 스승들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종종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나는 여민회 회원들과 별로 친하지 않다. 마누라가 상당 부분 열정을 바치는 곳인데도 말이다. 앞으로 이 점 개선. 마누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도 힘써야겠다.
'틈날 때마다 아내와 노후를 계획하라'. 이건 연애시절, 결혼생활을 꿈꾸듯 둘만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기에 황홀한 일이다. 상대방에게 실망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았자 부부 싸움밖에 하지 않는다.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 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도모하고 노후를 안정적으로 설계하는 길이다." 그래야 "젊었을 때와 같은 화끈한 재미는 없어도 서로 의지하며 느끼는 부부의 정이 이리도 애틋한 것"이 된다고 한다. 이건 달리 말할 것 없다. "인생에 수많은 관계가 있지만 결국에 남는 것은 부부 두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배려와 희생, 그리고 신뢰"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와의 관계. 우선 자녀와 나의 정류장은 다르다는 걸 전제해야 한다.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거는 일은 잘못이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성숙된 인격으로의 훈련"이 중요하다. 짧게 말해서 그는 자녀를 "부모의 열망과 재산으로부터 독립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세상은 아주 많이 변할 것이다. 외국 학위보다는 한 분야의 장인, 스스로 하고 싶은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 들 줄 아는 아이"가 장래에 더 유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누구나 영어를 해대기에 외국 유학이 그리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앞가림을 하도록 자립적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확실한 노후 대책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행한 자녀 교육법. 사교육에 투자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우선 집안 분위기. 엄마 아빠가 모두 매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러면 자연스레 배운다. 그의 집에는 만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부모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주말이면 가급적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가족 외식이라도 하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애들 교육에 거의 시간을 쓰지 못했다. 올해부터 조금 달라졌다. 더 크기 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몇 개의 비싼 학원보다 둘러 앉아 식사하는 일이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더 필요한 일"이라는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는 유산이 아니라 가풍을 남기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하게 생각한 부분이 이 대목이다. 당연한 말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머지않은 시간에 가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안의 교훈, 부모의 교훈, 이것은 말로만 하거나, 액자 속에 글씨만 써 넣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몸으로의 공감, 그리고 실천 속에서 애들에게 전해 줘야 한다.
그래서 계속 생각해 온 것을 한 번 정리해 본다.
1. 정성(正誠): 올바르게 성실해야 한다. 성실한 가풍이야말로 좋은 유산일 것이다.
2. 정직(正直): 우직함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신뢰감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올바른 우직함이라야 한다. 잔 머리나, 맹목적 우직함이 아니다.
3. 정의(正義): 모은 일을 할 때 옳고 그름을 따져서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높여 준다. 기교가 아니라, 영리가 아니라, 삶 자체의 품격은 옳은가 그른가로 판가름 된다. 특히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황금만능의 시대이기에 맹자의 한 구절 견리사의(見利思義)는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아무리 부자이고 유명 인사라 해도 올바르지 못하면 그건 상품에 불과하다. 그건 슬픈 일이다. 인간이 상품으로 평가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 삶 그 자체의 가치인 義를 항상 드높여야 한다.
조만간 생각이 더 다듬어지면 우리 집의 가훈으로 세우고, 차분차분 집안의 분위기로 만들어 애들에게 남겨 줘야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의 생활,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길게 썼다. 처세술 책을 읽고 이렇게 장황하게 쓸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러나 단순한 처세가 아니라, 인생 중반에 삶을 정리하며 새롭게 계획하는 마당이기에 그런 계기를 준 이 책에 이 정도의 성의를 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 2막, 모든 것이 그렇지만 준비가 착실해야 한다.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고. 성실히, 우직하게, 의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