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방랑하는 사람들
밀다 드뤼케 지음, 장혜경 옮김 / 큰나무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밀다 뒤르케, <바다를 방랑하는 사람들>, 큰나무, 2003.




뭐라 말할까. 기분 좋게 그냥 잘 읽었다고 말하자. 속았다고 말하려니 나 스스로 창피하다. 좋은 사진, 그리고 낭만적인 글. 그것만으로도 좋다. 근데 나 지금 그 정도로 한가해?

이 책에 손에 댄 건, 순전히 '바다 유목민'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안미정의 어느 논문 속 각주에서 본 것인데, 그래서 서둘러 구입하고 읽었던 것인데, 아, 이런 난감함이라니. 아니 그래도 좋았다. 번역자의 문장이 깔끔하고 힘 있는 것도 좋고. 인도네시아 어느 바다의 바다 유목민들의 삶을 엿보게 된 것도 좋았고. 단지 내가 찾던 그런 책이 아니었을 뿐.

바다 유목민, 바조족의 삶은 그야말로 어쩌면 현대문명에 지친 사람들이 되찾아야할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걸 전해준 독일 작가이자 기자인 밀다 뒤르케의 시선은 그가 아무리 눈높이를 낮추어도 그는 역시 오리엔탈리즘을 가진 서양인일 뿐이다. 언제든지 문명 세계로 돌아가고야 마는.

그렇기에 바조족의 삶을 미화하는 건 곤란하다. 그래도 그들의 삶에서 맑음은 본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이미 이젠 자본에 서서히 포섭되어 가는가 보다. 그들은 유목민이기에 소유를 최소화한다. 일본인 진주 양식장에 고용된 동료를 보면서 하는 말, 이제 보스가 생겼군. 하기 싫어도 매일 일을 해야 해.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 배에 어울리지도 않는 물건들을 사겠지. 그리고 그 물건들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을 거야. 그는 이제 자유인이 아니야. 나 같으면 보스가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그는 돈이 생기면 모터를 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모터가 기름을 먹는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 그렇게 되면 모터가 우리의 보스가 되어 버려요."

그들은 자유인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을 정착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본시 권위, 권력은 자유를 싫어하니까.

이 책에선 바다 유목민의 기원을 말레이시아 남부에서 찾는다. 전설은 이렇다. 공주를 납치당한 왕이 신하들에게 바다로 나가서 공주를 찾아오라고 했다. 찾아오기 전에는 상륙하지 말라고 하자,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육지 권력이 만든 이야기겠다.

이들은 주로 해삼을 잡는다. 그리고 그건 홍콩 쪽으로 수출되는 모양이다. 근데 그것이 상당히 힘든 노동이라고 한다. 전복 잡는 제주해녀를 떠올리게 한다.

좋은 건 사진과 몇몇 표현들.
"태양은 다른 나라를 향해, 다른 바다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태양에 취한 바다"
"늘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천성"
"구름이 붓의 터치처럼 하늘에 걸려 있던 어느 날"

그런 어느 날 좋은 사진과 자유인의 삶을 살짝 훔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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