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 - 산골로 간 CEO, 새집을 짓다
이대우 지음 / 도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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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마이너리티

이대우, <새들아, 집지어 줄게 놀러 오렴>, 도솔 오두막, 2006.


잘 나가던 CEO가 시골생활로 들어갔다. 그의 표현대로 ‘전원생활’이라고 하면 괜히 폼이 나고 ‘시골생활’이라고 하면 촌스러워지는데, 그는 굳이 전원생활을 버리고 시골생활이라는 어휘를 택했다. 그것부터가 맘에 든다.
리영희 선생 밑에서 <조선일보> 외신부에 근무했던 게 첫 직장생활이라고 한다. 그 무렵 중국 관련 기사에서 purify를 ‘피의 숙청’이라고 했다가 리영희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야단 맞고 일장 연설까지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리영희 선생처럼 언론인의 길은 간 것은 아니다. 곧 선박회사 일을 했었고, 여기서 다시 벤처 기업의 전문 경영인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리곤 나이 들어 강원도 어느 산골에 들어 조용히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관심을 가진 건 목공이다. 그리곤 그 목공 실력으로 새집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새집들로 전시회도 열고 책도 내었다.
처음 책을 읽어갈 때는 글 내용도, 그리고 그가 만들었다고 하는 새집도 그저 그랬다. 사진을 통해서 보건데 그가 만든 새집이 그리 훌륭한 작품 같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 까지도.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에 대해 감정이 달라진다. 대단함 보다는 소박함이 더 큰 힘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가 만든 새집도 그렇고, 그의 생활도 그렇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다. 새집도 주로 폐자재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굳이 따진다면 예술성보다는 그의 정성이 나를 감동하게 만든다.
역시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여러 귀농 관련 책, 혹은 ‘전원생활’ 관련 책을 통해 익숙한 대목이 없진 않으나, 상당히 소박하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그리고 나 역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욕심이 없는 그의 삶을 보면서 말이다.
그가 권하는 삶, 예전부터 나 역시 꿈꾸고 있는 삶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채소와 곡식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 손으로 거두고, 화폐(돈)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며, 집을 손수 지을 수 없으면 창고나 작업실을 목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같이 지어 보라고 권한다. 집 안에 필요한 책꽂이, 선반, 간단한 의자, 탁자 같은 것을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자그마한 마당에는 야생화 화단을 만들어 가꾸고, 나무를 부지런히 심는 이런 시골 생활을 몇 년 간이라도 해보라고 권한다.”
여기서 집짓기.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온 과제다. 근데 이 양반 말을 듣고 보니 동감한다. 살림집은 작게, 대신 작업실과 창고, 그리고 가능하면 소도서관 겸 전시실을 크게 지으라 한다. 시골생활에선 실내 보다 야외 혹은 작업실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참고할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권하면서 그는 헨리 소로의 <월든>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목수를 100프로 신뢰하지 말라는 것. 자신이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 작은 오두막도 철저한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의 조언을 더 한다.
주변 사람들이 때론 신기하게 때론 부러워하며 그리고 때론 중앙 무대에서 잊혀져 감을 안타까워하며 말들을 건넨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초현대풍이라는 바람이 불어 닥칠 때마다 그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 명예로운 일이라고 여겨지고, 또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붙들고 꿋꿋이 버티는 것, 그 시대의 단단한 참나무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마이너리티로서의 고집일까”라며 ‘마이 웨이’를 말한다. 이런 고집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좋다. 요즘은 더욱 더.
나 역시 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환멸감이 들면서 더욱 그렇다. 근데 때론 이렇게 살면서 내가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는 느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조언에 따르면 그건 그리 걱정할 게 못 된다. “커다란 허구였던 공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무대를 마련하면 된다. 스스로가 품 넓은 자연을 배경 삼아 시골이라는 아담하고 알찬 무대를 만들고 그 무대의 주연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남을 의식하며 굳이 주연이 될 생각은 없다. 그저 나 자신에 충실하고 싶을 따름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그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마련한 무대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스로 자신을 지칭하는 ‘마이너리티’라는 단어에 공감하고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보면서 부러운 건 여럿 있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였다는 이야기, 산을 그렇게 도 좋아해서 딸아이가 세 살 때부터 함께 캠핑을 다녔다는 이야기, 산악자전거에, 한 때 화가를 꿈꿨을 정도로 그림 솜씨도 있고, 책 구입엔 월급의 10%를 썼다고 한다. 물론 그가 가진 목공 작업실과 거기에 있는 목공 도구들이 지금으로선 가장 부럽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하나하나씩 준비할 것이다. 나는 늦지 않았다. 지금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연제덕 선생님 밑에서 10년 쯤 배우다 보면 내 나이 50대 초반, 그쯤이 가장 좋겠다. 그쯤이면 지금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착실히 준비하는 시간. 먼저 눈앞에 놓인 과제들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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