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한자가 내아이를 천재로 만든다
이시이 이사오 지음, 신채식 옮김 / 키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石井 勳, <한자가 내 아이를 천재로 만든다>, 키출판사, 2003.




책 제목이 좀 그렇다. 내 아이를 천재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별로 당기는 제목은 아니다. 천재? 그거 피곤하다. 평범함 속에서 성실하게 그리고 맑고 밝게, 이웃과 함께 하며 사는 게 좋다. 그러니 나는 굳이 내 아이를 천재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아무리 한글 전용, 국어 사랑을 외쳐도 나는 그 취지엔 공감할 지언지, 한자 자체가 가지는 효용성과 그 철학적 깊이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아이 덕연이가 벌써 여섯 살이다. 나는 내 공부에 바빠 사실 아이들을 챙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불쑥 커버린 내 딸 덕연이를 보며 아빠가 챙길 것은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규칙적인 만남이 우선 필요하겠다 싶었다. 아무런 매개체 없이 만나는 게 아니라 특정 매개체를 가지고 아이와 내가 대화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섯 살 아이라면 지적 욕구도 왕성할 때다. 그리고 바쁜 아빠하고 같이 하고 싶은 시간도 많을 나이이다. 더 커버리면 멀어진다. 그러기 전에 같이할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으로 만날까 생각은 한자였다. 오래 전부터 나는 한자 교육이 삶에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걸 택했다. 다만 두려웠던 건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공부를 강요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다행이 덕연이는 아빠와 한자 공부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자공부보다 아마 아빠하고 시간을 같이 갖는다는 게 좋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까지 참으로 못된 아빠였던 것 같다. 저렇게 아빠와의 시간을 원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나 혼자 바쁨으로 시간을 다 써버렸으니........

그런 고민 속에 지난주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특별한 교육론은 없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읽고 쓰고 그러면 된다. 그러나 생각보다 덕연이가 제대로 익히질 못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찾은 책이다. 한자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효율적일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책 제목을 보면서는 아니다 싶었지만 아쉬운 대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얻을 게 있었다. 물론 책 분량은 20페이지면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여러 차례 계속되는 반복, 그리고 엄청나게 큰 활자. 장사 속이다 싶었지만 참고 읽었다. 어쨌거나 얻은 게 있었으니 참 다행이다.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렇다. 한자는 이미지다. 그러니 복잡하게 쓰려고 하지 말고 이미지 그대로 일단은 읽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추상을 나타내는 글자 말고 구체적 사물을 가리키는 글자부터 익히게 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홉 구(九)라는 추상어보다 비둘기 구(鳩)라는 구체적 글자를 더 빨리 익힌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라면 당연히 아홉 구가 쉬울 것 같은데 실험 결과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우선은 관심이다. 그리고 그 관심은 생활 속에서 나온다.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 속의 사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바빠지겠다. 집에 있는 각종 사물들에 한자로 명찰을 붙여놔야 한다. 일상 속에서 익힐 수 있게 말이다

바쁜 아빠, 좋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7
김동훈 지음 / 책세상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동훈,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2001. 책세상



바로 그것이다.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제화되지 않았던 학벌, 저자 김동훈은 그 이유를 밝히고 질타하는 데서부터 글을 시작한다. 바로 사회의 의제설정을 맡은 지식인들이 학벌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어떠한가? 성골이 아닌 진골이니, 문제를 제기할 법도 한가? 아니면 학벌의 그 더러운 인연을 일찌감치 잘라버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예를 들어 인터넷 신문 제주의 소리 컬럼자 소개에서 나는 과감히 학벌을 무시하는 자세로 임했다)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지만 솔직히 어려움이 닥칠 때면 대학 동문을, 잘 나가는 동문들을 찾고 싶어진다. 그것마저도 탓해야 한다면, 정글 속에서 살아가기가 정말 무섭다. 그러나 나와 같은 처지에도 있지 못한 사람은? 하긴 그들 중 일부는 부지런히 술자리를 따라다니며 연을 맺긴 하더라.

각설하고, 김동훈의 책을 검토해보자.
학벌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물론 다른 나라도 학력이나 학연에 따라 무리 짓는 현상이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벌처럼 학벌도 영어로 따로 번역할 게 마땅치 않다.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라는 뜻이다. "아직 개인 중심의 시민사회가 정착되지 못하고 집단 소속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위상이 정해지는 집단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수 현상"이다. 이걸 사회학적, 정치학적, 경제학적,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그에 따른 결론은 학벌은 신분이다. 학벌은 붕당이다. 학벌은 독점이다. 학벌은 편견이다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분, 물론 많다. 저자는 그들의 논리를 소개한 후 하나씩 격파해나간다.
먼저 경쟁동기론, 학벌이 있어야 경쟁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천만에, 한번 서울대는 영원한 서울대이기 때문에 성취 이후에는 경쟁이 사라진다.
기회균등론, 대학입시야말로 가장 공평한 기회 배분이라는 말이다. 역시, 천만에다. 이미 서울 강남지역 출신 아이들이 서울대 입학생의 반을 점거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입시는 사회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고착화의 도구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꽤 위력이 있는 능력지표론, 이건 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다. 누가 서울대 들어오지 말래? 열심히 공부해봐. 서울대 간 사람이 다른 것도 잘해.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논리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외교협상에 가서 한 짓이 지금의 현실이다. 물론 서울대는 국내 최고다. 하지만 세계무대에 가면 팡팡 깨진다. 그런데도 능력지표라고? 아니다. 권력 독점의 정당화 수단일 뿐이다.
통쾌하다. 소위 서울대 이데올로그들을 손쉽게 박살낸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대안을 보면 솔직히 신뢰하기가 어렵다. 아! 학벌 극복,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인가?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라는 건 너무 안이하다. 현실성이 너무 없다. 그냥 프랑스의 예처럼 대학평준화 같은 이야기만 한다. 전형을 비공개로 하여 순수 '교육적' 목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나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정성이 아니라 '교육적 가치'다.
이게 문제다. 강준만 같은 현실성이 없다. 만약 전형을 비공개로 해 봐라. 대한민국이 남아나겠는가? 아마 학부모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대학 여구실에 앉아서 글로써 막아보시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교육적 가치에 의한 선발이 되려면, 대학입학 자체가 가지는 사회경제적 메리트 자체를 없애야 한다. 대졸에게 떡이 훨씬 많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공정성 문제가 부차적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대졸-고졸 입금차 완전 철폐가 우선이다. 대학은 말 그대로 출세의 수단이 아니라, 학문의 전당으로 바꾸어 놓는 게 순서다. 이게 될 때 비공개 전형이 되고, 교육적 가치가 살아난다. 저가 김동훈은 이 절차를 생략했다. 그게 결정적 과오다.
그래도 어디냐? 이런 문제제기가 있기에, 정운찬 총장 같은 사람이 서울대 폐지 불가라는 발언이라도 나오는 게 아닌가? 일단 의제 설정까지는 성공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제는? 여기서는 김경근의 제안, 즉 학부모가 나서야 한다. 국민투표를 요구해야 한다. 대학서열철폐 국민투표 말이다.
아! 내 딸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지금같은 불지옥이면 어떡하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학서열 깨기
김경근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김경근, <대학서열깨기>, 1999, 개마고원.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이 책의 부제다. 서울대를 나와서 국립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김경근이 한 말이다. 일류 코스를 달려온 그도 지금의 입시경쟁이 살벌하게 느껴진 걸까?
그랬던 모양이다. 단순한 문제의식이 피부에 와 닿은 건 그의 어린 자녀들이 숨막히는 정글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서울대를 나온 기득권층 부모 역시 피해자인 것 같다.

그럼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책 표지에 써 있다. 이것도 하나의 부제인 모양인데, 답은 이렇다.
"대학입시 평준화만이 살 길이다"

18세 때 단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 그렇다고 해서 기회가 모두에게 공정한 건 아니다. 강남 부유층 자제들이 당연히 좋은 기회를 잡는다.

잘못된 대학서열제 때문에 애들은 죽어가고, 대학 역시 망가져왔다. 서울대의 세계적 위치를 보면 안다. 800등에도 못낀단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학입시평준화이다. 혹 그렇다면 그 모순이 대학원으로 옮겨가 단지 시기만 늦춰지는 건 아닐까? 그는 아니라고 한다. 대학원 단계면 유학길도 있고, 진짜 공부할 놈들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은 간판에 불과하니까.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은 솔직히 장담하기 쉽지 않다.

물론 그의 문제제기는 옳다. 땜질식 입시제도 개혁은 백 날 해봐야 소용이 엇다.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근본은 김경근과는 조금 다르다. 대학 서열깨기에 앞서 고졸.대졸자의 임금격차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입사원서에 학력란을 없애는 것이다. 즉 고졸과 대졸이 '계급장'의 힘이 아니라 직무 수행 능력을 가지고 경쟁하자는 것이다. 이게 오히려 더 근본적이자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굳이 대학에 몰릴 일도 없을 것이며, 그래야 대학은 공부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서울대 출신이 스스로의 기득권을 버리고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용기와 대안 제시 능력, 고맙고도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글이 읽기 쉬운 점, 이것도 미덕이다. 그러니 그의 요구 처럼 많은 학부모들이 앞장 섰으면 좋겠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가지고 국민투표를 할 것이 아니라 서울대 폐지, 대학평준화 등 이런 걸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
현대판 신분제, 새로운 씨족 해체를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회의 교육열 - 기원과 심화
오욱환 지음 / 교육과학사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욱환의 <한국사회의 교육열: 기원과 심화>, 2001, 교육과학사.


사회불평등론 기말 리포트를 준비하다가 읽은 책이다. 한 학기 동안 불평등에 관한 이론만 공부했을 뿐, 정작 내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심한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 교육문제 등에 대해서는 따로 고민하질 못했다. 그러니 이젠 이론에서 구체적 현상으로 내려와야 할 때.

오욱환의 이 책은 차분하다. 그리고 진지하다. 고려와 조선시대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사회 교육열의 기원 그리고 그 심화를 살핀다.
여기에 동원된 이론은 우선 서구이론이다. 인적자본론, 지위획득론, 선별이돈, 계층경쟁론, 계급배제론 등이다. 하지만 한국사회 교육열이 워낙 특이한 만큼 그 이론도 서구의 것으로는 한계가 있겠다.
그래서 저자가 시도한 것이 한국적 이론이다. 그 핵심은 '교육출세론'
이쯤이면 더 할말이 없다. 교육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한국사회 내에서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걸 이론적으로 잡아내었기 때문이다. 정직하다. 그리고 정확하다. 더하여 외국어 능력이 중시된다는 점, 온 가족이 매달린 전쟁이라는 점 등에 대한 지적도 타당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 음울한 전망을 미리 피력했다. 별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암시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심각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큰 몫은 했다는 것이다. 맞다.
그래도 아쉽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운동, 의식개혁운동이 교육열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건, 아무래도 맥빠지게 하고 만다.
제도적 개혁은 왜 언급하지 못했을까. 그도 역시 서울대 출신이라서?
그러고 보면 같은 서울대 출신이면서도 강력하게 그걸 부정하는 김경근의 <대학서열깨기>가 기다려진다. 바로 그 책을 잡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회의 학력 학벌주의
이정규 지음 / 집문당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정규, <한국사회의 학력, 학벌주의: 근원과 발달>, 집문당, 2003.


새로울 건 없다. 우리사회의 학벌, 학력주의의 폐해를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했다는 장점만이다. 아니 그것이 크다. 큰 미덕이다.
예를 들면 역대 국회의원의 출신대학 통계 같은 게 그렇다.

학력은 직종 선별 기능, 산업별 선택의 기회, 학력간 임금격차, 통혼권 형성 등을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임금의 구체적 데이터도 같은 예다.

그러면서 준신분화라고 말한다. 사실 이전에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카스트'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학력과 학벌이 계층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 혹은 확대재생산 하는 도구라는 말이 맞다. 즉 사회경제적 기득권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혹은 새로운 신분의 세습화를 위한 통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인재할당제, 평가방법의 개선, 실력중시 사회구축, 서울대 폐지 등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이다. 때문에 그도 지적하고 있지만 기득권 층의 양보, 즉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출세지향성을 지양하고 모든 사람이 공생공영할 수 있도록 학력과 학벌로 획득한 기득권을 과감히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정규의 말이다.

쉽지 않지만 가야할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