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먹나 The Collection 4
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카 외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보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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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신선한 그림책이 도착했다. 보편적인 그림책 보다는 크고, 단순하면서 큼직한 그림이 시선을 확 끈다.

23개월된 아들의 반응도 괜찮다. 다양한 동물과 곤충, 꽃의 표정은 개성있다.

젊은 디자이너 부부의 <누가 누구를 먹나>는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아주 경쾌한 리듬으로 전달하고 있다.

'꽃'에서 시작된 스토리는 '꽃'으로 막을 내린다.

 

이 자라났습니다.

진딧물들이 꽃을 먹었습니다.

늑대가 여우를 삼켰습니다.

늑대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늙었기 때문이지요.)

...

살쾡이가 족제비를 삼키고,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살쾡이도 역시 너무 늙었기 때문이지요.)

그 자리에 이 자라났습니다.

 

끈임없는 삶과 죽음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삶은 고단하고, 죽음은 슬프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이 책을 본다면 별 흥미가 없을 것 같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 어떤 생명도 유한하지 않음을.

한 생명의 희생은 또 한 생명의 지속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선. 면. 점. 짧은 해설.

그러나 그림에는 스토리가 있고, 긴장감이 있다. 웃음도 있다.

이 책의 또하나 장점은 어린이이나 어른 구분없이 각자의 시선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철학적인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올해 9월 암 투병 중이었던 아버지가 임종하셨다.

그 사이 아들이 태어났고, 외조카도 태어났다.

가족안에도 삶을 마감하는 누군가 있다면. 삶의 시작을 알리는 누군가 있다.

생명있는 모든 것의 삶이 복잡한 것 같지만, 生老病死의 계절로 나누면 생은 얼마나 단순한지?

<누가 누구를 먹나>는 죽음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또다른 생명의 시작임을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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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김선남 글.그림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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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를 따라가면 '서울'이 보인다.

 

 

일산에 살며 서울에 볼 일이 있을땐 경인선을 이용한다. 족히 20~30분이면 서울역에 닿는 것이 나에겐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 일산에 거주한지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역에 도착하면 여행을 떠나온 설렘과 두려움으로 흥분한다. 그런 감정은 대구에서 30년을 넘게 산 나에겐 서울이라는 낯선 대도시가 묘한 동경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어른들은 "서울은 가만이 있어도 코베어 간다", "서울내기들은 보통이 아니다"등의 말로 대도시 살이의 팍팍한 인심을 알려주었다. 촌아이의 무의식엔 서울은 정신을 빳짝 차리고 다녀야 하는 두려운 도시로 각인되었다.

 

홀로 여행을 다닐만큼 성장한 후, 우리나라의 그 어느곳 보다 서울여행을 좋아했다. 여름휴가엔 연극을 보기위해 대학로에 왔고, 작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들렀던 대규모의 서점도 놀라웠다. 이방인이 되어 광화문과 종로, 경복궁과 덕수궁을 기웃 거렸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웃습다. 이젠 나들이 삼아 갔다올 만큼 서울 지척에 나는 살고 있다.

 

보림에서 출간한 솔거나라 시리즈 <서울 이야기>는 촌아이의 무의식에 잠재된 도시, 이방인의 여행지인 '서울'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전해주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새 왕조 조선이 생겨났습니다.' 프롤로그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출발했음을 알려준다. 14장의 옛 지도를 따라가면 풍수지리에 따른 한양이 도읍이 된 배경, 경복궁을 깃점으로 육조거리와 시전이 형성된 이유, 임진왜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이 되기까지의 역사적 사연들이 잔잔한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서울 이야기>는 단순히 스토리 형식의 그림책 이상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지도라는 도구 활용으로 흥미를 유도한다. 설명은 간결하고, 유연하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둔감한 난 '종묘와 사직','도읍과 도성', '창경궁과 창덕궁, 덕수궁'의 차이와 쓰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큰 역사적 흐름 파악도 좋았지만, 그런 해석이 효과적으로 전달 되었다. 그림책은 '500년 도읍의 옛것을 간직한 이곳 '서울'에서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로 끝을 맺고 있다.

 

대학시절 작가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 적이 있다. "특별나다 생각했지만, 특별난 것 없다 여겼다. 그러나 특별나 보였다."라는 메모가 떠오른다. 그 막연한 특별함을 <서울 이야기>로 깨닫는다. '서울'은 600여 년 전 '조선'의 삶을 품었기에'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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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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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경제분석 전문가들은 한국도 저성장시대가 장기화 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경제라는 것을 쉽게 말하면 '먹고사는'문제 아닌가. 성장이 약화된다면 먹고살기가 힘들어진다는 말로 이해된다. 인간의 기초욕구가 어려워 진다는 것은 불안으로 다가온다.

 

 

 

불안의 시대. 출판계의 화두로 떠오르는 키워드는 의아하게 '古典'이다. 벌써부터 인문학이 죽었다는 등, 대학은 인문학과를 폐지하거나 합병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옛것을 읽자니 얄궂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인문학이 죽었다해서 확인은 묘연하고, 인간의 생로병사 가운데 인문학이 빠질 수는 없는 일 아닐까. 인문학이 뭔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이야긴데 죽인다고 죽나. 시대의 흐름을 타고 부활한 '古典'읽기의 대중화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몇 달 전, 이지성의 인문독서지도법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읽었다. 부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독서법'이었다. 베스트 작가인 공병호 역시 <고전강독>을 내놓았다.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古典'읽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다. 여기에 더하고 싶은 작가가 있다. 어려운 '古典'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편집하는 '고전의 트랜스레이터' 정민 선생이다.

 

 

 

보림에서 출간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은 208쪽 분량이다. '책 이야기·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책 아닌 것이 없다'라는 3가지 대목차를 두고, 그에 따른 15가지 소목차로 분류하여 자분자분 설명한다. '책(冊)'과 연관된 한자의 뜻을 풀어내는 해설이 먼저다. 다음 동서양을 아우르는 책 사랑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고전 독서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는 18세기 조선 지식인 연구자답게 다양한 학자들의 책읽기 방법을 펼쳐보인다. 연암 박지원의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 홍길주 가 쓴 <수여방필>, 독서광인 이덕무의 <간서치전>을 읽다보면 꾸준히 읽는 독서의 힘 외, 범인은 흉내도 못내겠다는 단정을 짓고 싶어진다. 읽고, 또 읽어라, 소리 내어 읽고, 기록하며 읽고, 통째로 외우고, 메모하라, 의심을 품으며 읽어라! 읽는 것에 대해 끈임없이 요구 하지만, 무조건 읽어서는 안된다고 엄중이 타이른다.

 

 

읽다보니 이 책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김영사>을 재편집한 듯 느껴진다. 닉네임 '파란여우'님이 서평에서 "정민 교수의 책은 '반복의 부산물'이다."라는 글이 공감된다. 그렇더라도 책이란 기획의도와 주독자의 범위를 따져 새로운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은 600쪽 분량의 <지식경영법>에 기가 눌린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눈높이를 '벼리'에게 맞추고 있다. 청년이 된 자녀 '벼리'에게 고전을 읽어야 하는 중요성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읽기에 군더더기 없으며, 구어체로 이루어져 편안하다. 아마도 이 책은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진 부모님. 특히 엄마 독자분들이 많을 것 같다. <지식경영법>을 읽을 때, '문심혜두(文心慧竇)'에 꽂혀 저 어려운 한자를 쓰고 또 썼다. 고전을 읽고, 또 읽고, 읽으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던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고전읽기가 말처럼 쉬운 작업도 아닌데 말이다. 교육열이 드높은 이땅의 엄마들은 '고전 읽기'의 열풍속에 공부 잘하기 바라며 '고전'을 들이 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전 독서법>은 공부를 잘하기 위한 독서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는 에필로그에 "책읽기는 어쩌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삶의 기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고 했다. 불안한 시대에 '古典'읽기가 유행하는 것은 정민 선생의 말 처럼 인간사의 본질적 안목을 키우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지식인 박제가의 말처럼 "경전은 세상을 건너는 힘"이다. 18세기 조선지식인은 말들도 멋지다. 그 대표주자인 연암 박지원의 글을 낭독하며 '책 아닌 것이 없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 보며 <고전독서법>을 여민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했다.

"이것은 나의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구나.오색의 아름다운 채색을 문장이라고 말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

 

 

 

※ 참고> 깐깐한 독서본능, 윤미화,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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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동차의 하루 아티비티 (Art + Activity)
조엘 졸리베 글, 장-뤽 프로망탈 구성, 정지현 옮김 / 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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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림책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다

애독서 목록에 몇 권의 그림책을 포함 시킬 정도로 난 그림책을 좋아한다. 폭이 깊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우울했던 어느 날 서점에서 들여다본 그림책 한 권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 후,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책을 소장하거나 개인적인 취향으로 괜찮은 작품을 선물 하기도 한다. '다 큰 어른이 무슨 그림책이냐?' 는 면박을 할 지도 모르지만, 그림책은 메시지를 언어로 전달하는 이상의 감동과 정보를 일러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기능면으로 그림책은 어른에게 보다는 유아기나 어린이들에게 더 친숙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어른의 시선으로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즐겨하는 그림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어 가장 중심에 둔 교육이 있다면, '책을 장난감 처럼!' 이라는 목표아래 단행본 위주로 이것저것 보여주었다. 읽어주다보면 "왜 이 그림책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까?" 의문을 가졌던 그림책의 숨은 이유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내가 공감 할 수 없는 부분을 아들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신선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미지, 움직임, 전달에 유용한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할까.

 

만 18개월에 들어선 아들을 통해 유독 좋하는 것을 들자면, 당연 바퀴가 달린 움직이는 것들이다. 포크레인을 포함한 각종 중장비차, 모토바이크, 비행기, 기차, 버스 등. 아예 '차'라는 발음은 '아빠'보다 더 빨리 시작한 것 같다. 그만큼 친숙함이 더했다면 웃으게 소리로 들릴까? 어쨌든 엄마가 된 후, 그림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사물의 인지적 기능을 담아낸 '빨간 자동차의 하루'

'빨간 자동차 라피도'는 이름 만큼 신속하게 주문한 물품을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침이면 배달 물건을 체크하고, 물건을 가득 담고는 길을 나선다. 등대가 있는 항구에 전구를 전하고, 도시로 들어와 공연장에 기타를 주고, 백화점에 들러 옷걸이를 전해준다. 식빵, 헬멧, 저울, 타이어까지 다양한 물품을 다양한 고객들에게 전해주는 업무를 완수하면 하루가 마무리 된다.

 

<빨간 자동차의 하루>를 처음 접했을 때, <수잔네의 사계절> 시리즈가 떠올랐다. 이렇게 사물과 사람이 많은 작품을 '아기 그림책'으로 왜 기획했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 이유를 아들이 사물에 대한 인지가 조금씩 생기면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지만. 4m나 되는 그림책 속의 마을을 둘러보며 18개월 된 아들은 참 즐거워한다. 당연 자신이 즐겨보는 포크레인을 짚어내고, 풍선이며, 버스, 눈사람까지 찾아내고 있다.

 

<빨간 자동차의 하루>도 '라피도'라는 배달 자동차를 따라 마을 구석구석,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다양한 사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등대 주변의 배, 갈매기, 영화관, 오토바이, 초등학교 주변에 공놀이하는 아이들, 소방차, 앰블런스 등을 표현하고 있다. '라피도'라는 빨간 자동차는 이 그림책의 안내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경계가 뚜렷한 굵은 선과 면, 단순한 색감으로 '라피도'라는 존재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점도 발견된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들여다 볼 수록 이 그림책의 주요한 의도는 아기들에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다양한 사물에 대한 인지력을 키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역시나 아들은 <수잔네의 사계절>에서 처럼 소방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기찻길을 유심히 들여다 보기를 반복한다. 엄마와 산책 중에 바라본 크레인을 발음 하고, 슈퍼마켓 물품 카를 짚으며 자신이 타 보았다는 것을 엄마에게 전한다. 그림책을 통해 들어나는 아들의 인지행동을 지켜보며 이제야 조금 아기그림책 기획의도를 엿 볼 수 있는 것 같다.

 

'빨간 자동차 라피도'가 안내하는 우리 이웃들의 일상

 

<빨간 자동차 라피도>는 또 하나의 매력을 담고있다. 아기에겐 이해 시키기엔 무리일 수 있지만, 엄마가 들려주는 일상의 삶은 나름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배달목록을 살피고, 물건을 가득히 담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라피도'. 등대지기를 만나고, 생선을 파는 어시장의 풍경, 연주가들, 백화점 매장을 관리하는 사람, 훈련하는 소방관들, 타이어를 교체하는 자동차 정비사들, 평온하게 뜨개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까지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의 풍경을 담아낸 일상의 에너지가 아들에게는 물론 엄마인 나에게도 큰 활력으로 다가오는 그림책 <빨간 자동차 라피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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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재판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21
홍성찬 글.그림 / 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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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의 귀환

어느 노작가의 순수한 열정이 빛나는 <토끼의 재판>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는 구전은 너무 익숙해서 듣기에도 귀찮은 폐물로 물리칠지 모르겠다. 스마트한 것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투막하고, 고루한 훈시의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는 엄마의 귀찮은 잔소리 만큼 흘려듣고 싶을지도. 그래서 독자들에게 널리 익숙한 것에 작업을 건다는 것은 작가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모험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오랜 세월 철저한 고증, 사실적 묘사로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홍성찬 작가의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너무나 친숙한 <토끼의 재판>이 그것이다. 많은 작가들 글에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한 작가에게 이번 작품은 글과 그림을 동시에 진행한 두 번째 그림책이라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훈장네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궁리 끝에 허방다리를 파기로 결정한다. 어느 날, 허방다리에 호랑이가 빠져 울부짖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고는 호랑이를 구해준다. 그러나 허기진 호랑이는 나그네를 잡아먹겠다고 넘벼든다. 죽기전에 아홉번의 재판을 받아보기로 결정한 나그네와 호랑이는 재판관을 찾아 나선다. 첫 재판은 나무에게, 먹이를 찾아나선 돼지에게, 사람과 어울려사는 닭에게도 물어본다. 황소, 염소, 곰, 여우, 사슴에게 순차적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나그네를 잡아 먹으라는 결정을 내린다. 마지막 재판관을 기다리던 중 토끼를 만난다. 꾀 많은 토끼는 은혜도 모르는 호랑이를 다시 허방다리에 가두는 지혜를 발휘한다는 전래동화이다.

 

 

단순하게 줄거리만 읊는다면 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하다. 잠깐만 뒤져봐도 <토끼의 재판> 그림책은 숱하게 널려있으니 말이다. 모든 예술 쟝르가 그렇듯이 작가의 철학, 기획의도 등에 따라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느낌과 공감의 질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전달된다. 홍성찬 작가의 <토끼의 재판>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유연하게 전개된다. 무작정 허방다리에 빠진 호랑이의 등장이 아니라 어떤 상황 설명과 이야기 흐름에 따른 생동감 있는 묘사도 흥미로웠다. 재판관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의 개별적인 별론도 독자에게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것 같다. 여느 <토끼의 재판>과는 차별성 있는 작품임을 눈 밝은 독자라면 알 것이다.

 

 

몇 년 전, 백석의 시를 찾다 <여우난골족>이라는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작가의 그림을 접했을 때의 감동은 여전하다. 서평을 쓰는 계기로 선생의 그림책을 몇 권 다시 들여다 보았다. <땅속 나라 도둑 괴물>, <집짓기>를 한 쪽씩 들여다 보며 옛날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생명력, 생동감, 옛 이야기의 영속적임 힘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홍성찬 작가의 그림책에 애정이 있는 독자라면 <토끼의 재판>을 읽으며 뭔가 이상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류재수 작가의 추천서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일말의 우려대로 선생의 그림은 예전의 그림이 아니었다. 사물을 분간할 정도로 흐릿한 시력에 의지한 탓에, 지난날의 엄격하고 치밀한 묘사는 무뎌졌고, 반복된 덧칠과 불안정한 데생으로 … "예전의 예리함과 긴장감이 느슨해 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화면에 스민 빛의 밝은 기운과 견고한 구도의 공간감, 온기있는 서정은 더욱 풍부했다고 평하고 있다. 공감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여든이 넘어 시력 조차 흐릿한 상황에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과 흥미를 놓치 않았다는 노작가의 한결 같은 마음이 작품을 통해 전달된다. 류재수 작가는 그것을 '축복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그림책 역사에 이런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독자로서 참으로 행운이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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