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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재판 ㅣ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21
홍성찬 글.그림 / 보림 / 2012년 5월
평점 :
'옛날 옛적에…'의 귀환
어느 노작가의 순수한 열정이 빛나는 <토끼의 재판>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는 구전은 너무 익숙해서 듣기에도 귀찮은 폐물로 물리칠지 모르겠다. 스마트한 것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투막하고, 고루한 훈시의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는 엄마의 귀찮은 잔소리 만큼 흘려듣고 싶을지도. 그래서 독자들에게 널리 익숙한 것에 작업을 건다는 것은 작가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모험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오랜 세월 철저한 고증, 사실적 묘사로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홍성찬 작가의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너무나 친숙한 <토끼의 재판>이 그것이다. 많은 작가들 글에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한 작가에게 이번 작품은 글과 그림을 동시에 진행한 두 번째 그림책이라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훈장네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궁리 끝에 허방다리를 파기로 결정한다. 어느 날, 허방다리에 호랑이가 빠져 울부짖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고는 호랑이를 구해준다. 그러나 허기진 호랑이는 나그네를 잡아먹겠다고 넘벼든다. 죽기전에 아홉번의 재판을 받아보기로 결정한 나그네와 호랑이는 재판관을 찾아 나선다. 첫 재판은 나무에게, 먹이를 찾아나선 돼지에게, 사람과 어울려사는 닭에게도 물어본다. 황소, 염소, 곰, 여우, 사슴에게 순차적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나그네를 잡아 먹으라는 결정을 내린다. 마지막 재판관을 기다리던 중 토끼를 만난다. 꾀 많은 토끼는 은혜도 모르는 호랑이를 다시 허방다리에 가두는 지혜를 발휘한다는 전래동화이다.
단순하게 줄거리만 읊는다면 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하다. 잠깐만 뒤져봐도 <토끼의 재판> 그림책은 숱하게 널려있으니 말이다. 모든 예술 쟝르가 그렇듯이 작가의 철학, 기획의도 등에 따라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느낌과 공감의 질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전달된다. 홍성찬 작가의 <토끼의 재판>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유연하게 전개된다. 무작정 허방다리에 빠진 호랑이의 등장이 아니라 어떤 상황 설명과 이야기 흐름에 따른 생동감 있는 묘사도 흥미로웠다. 재판관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의 개별적인 별론도 독자에게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것 같다. 여느 <토끼의 재판>과는 차별성 있는 작품임을 눈 밝은 독자라면 알 것이다.
몇 년 전, 백석의 시를 찾다 <여우난골족>이라는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작가의 그림을 접했을 때의 감동은 여전하다. 서평을 쓰는 계기로 선생의 그림책을 몇 권 다시 들여다 보았다. <땅속 나라 도둑 괴물>, <집짓기>를 한 쪽씩 들여다 보며 옛날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생명력, 생동감, 옛 이야기의 영속적임 힘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홍성찬 작가의 그림책에 애정이 있는 독자라면 <토끼의 재판>을 읽으며 뭔가 이상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류재수 작가의 추천서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일말의 우려대로 선생의 그림은 예전의 그림이 아니었다. 사물을 분간할 정도로 흐릿한 시력에 의지한 탓에, 지난날의 엄격하고 치밀한 묘사는 무뎌졌고, 반복된 덧칠과 불안정한 데생으로 … "예전의 예리함과 긴장감이 느슨해 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화면에 스민 빛의 밝은 기운과 견고한 구도의 공간감, 온기있는 서정은 더욱 풍부했다고 평하고 있다. 공감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여든이 넘어 시력 조차 흐릿한 상황에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과 흥미를 놓치 않았다는 노작가의 한결 같은 마음이 작품을 통해 전달된다. 류재수 작가는 그것을 '축복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그림책 역사에 이런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독자로서 참으로 행운이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