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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흘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소설[나흘]은 6.25 당시 내 고향 영동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전쟁이 발발하자 영동은 북한군과 미군의 격전지로 변했고 그 와중에 민간인이 300명 이상이 미군에 의해서 사살되었다.
이런 엄청난 비극이 있었음에도 군사 독제시절에는 아군에 의한 민간인 사살에 대해서는 일절 발설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문민정부가 수립되면서 여러군데에서 자행되었던 아군의 민간인 학살등도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
노근리 사건도 이 시기에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내가 노근리 사건을 알게 된 것도 이 시기에 신문과 tv를 통해서 이다.
그리고 마침 아버님이 노근리에 있는 학교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에 취재기자들이 노근리 일대와 임계리 등에 사시는 연로한 분들을 인터뷰하고 갔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도 했다.
물론 학교에까지 와서 이것 저것 물어보셨단다.
우리 집안의 원 고향은 추풍령이다. 같은 황간면이긴 하지만 추풍령은 더 남쪽인 경상도와 경계에 있다.
전쟁이 났을때 우리 어른들은 당연히 남쪽으로 피난을 가셨기때문에 노근리의 참상을 비켜갈 수 있었다.
[나흘]을 쓴 이현수 작가님도 고향이 영동이라고 한다. 이 분이 노근리 사건을 알게 된 것은 2004년 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보다 10년쯤 더 뒤에 알게되신 것이다.
나도 아버님이 그곳으로 발령이 나지 않았으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학교 사택에 살았기 때문에 집에 가려면 쌍굴앞을 지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사건현장을 일년에 최소한
대여섯번은 보게 되니모를 수가 없었다.
소설 [나흘]은 작가가 6.25 당시의 미군의 형편과 영동이 격전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쌍굴안에 대피하고 있던 민간인을 사살하게 된 상황들을 정말 상세하게 잘 서술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영동 출신이면서 노근리에서 벌어진 일에대해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변명해 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속의 김진경이란 인물은 내시의 자손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조상이 내시라는 사실은 자손들이 별로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사실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입양으로 구성된 가족인 것이다.
그래서 진경이라는 인물은 가족과의 끈끈함이 없고 뽀송하기 그지 없다.
그러한 김진경이라는 인물을 노근리 사건의 쌍굴과 관계가 있는 인물을 만들려고 작가가 엄청 애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노근리 쌍굴과 내시 집안의 인연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내시집안의 이야기만 내던가 동학의 조재벽 대접주 이야기로만 또다른 소설을 냈다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김진경을 노근리 사건과 연관시키려고,
엄마인 채희가 부모를 불태워 죽이고 그로인해 유사자폐적인 삶을 살다가 사생아인 진경을 낳고
쌍굴에서 목을 매 자살하게 한것도 너무 억지스러웠다.
소설이 재미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인물과 사건의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뻐들네라는 캐릭터는 잘 잡았다.
그렇다면 뻐들네를 악인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