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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와 철학자들 - 덕질로 이해하는 서양 현대 철학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20
차민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나는 덕질을 해보지 않았다. 단 한번도!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재미없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미쳐야 미친다.' 라고 했는데. 난 어떤 대상에게도 확 미쳐보지 못했다.
그래도 나를 설레게 하는 무엇을 굳이 하나 찍으라고 한다면 책이다. 그렇지만 누구처럼 간서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는 못되고, 다방면으로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만화, 소설, 동화, 그림책, 철학, 과학, 경제학, 등등. 대부분의 쟝르를 가리지 않는다. 단 라이트 노벨 종류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환타지 소설류를 좋아하지도 않고, 빠져들지도 못하는 내 성향이 덕후가 되기에는 뭔가 한참 모자라다.
차민주 작가의 책은 [덕후와 철학자들]이 처음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철학적인 시선을 덕질과 연관지어 풀어내다니! 이글을 쓴 작가가 다방면의 덕후였고, 철학덕후라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현대 서양철학과 지금의 문화 현상인 덕질을 접목해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에 놀랍기도하고, 존경스럽기도하다. 청소년들에게 철학을 쉽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철학이란 삶에서 생겨난 다양한 질문에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이 책에 거론된 28명의 철학자 대부분이 내가 참 좋아하는 철학자들이다. 그들의 철학에 50대 후반의 내가 소리내어 읽기가 뭔가 조금은 거북한 '시발비용, 굿즈, 일코, 현타, 떡밥, 덕계못'등 덕후들의 용어들을 아주 잘 접목해서 설명하고 있다.
덕질을 시작하게 된 사건을 '덕통사고'라고 한단다. 큰 트럭이 갑자기 나타나 나를 치고 간 것처럼 순식간에 어떤 분야에 푹 빠져마니아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아닌 덕통사고인 것이다.
그래서 덕질은 스투디움(사진을 보는 이에게 작가가 제공하고자 한 의도의 일반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푼크툼(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감상자에게 개인적으로 일아아는 강력한 '꽂힘')인 것이다.
푼크툼과 덕통사고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나를 관통당하는 일이다. 푼크툼은 취향의 정중앙을 저격당해 즐거움을 사냥하는 야수로 변하게 되는 일이다. 첫눈에 반하는 일은 우연히 맞닥뜨린 사고처럼 찾아온다. 그 사람을 사랑할 계획 같은건 누구에게나 없듯이-p103,104
이렇게 덕후가 된 그들은 빡센 상징계를 웃으며 버틸 수 있다고 한다.-p135
스피노자식으로 말하자면 덕후는 자신의 코나투스(자신을 행복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인 덕질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지속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철학자들이 언급 될때마다 친구를 만난 것 처럼 반가웠다.그리고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와 인용된 책들을 꼼꼼히 메모했다. 이 작가가 읽고 인용한 책이라면 쉽고 재미있을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구입목록에 넣었다.
철학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차민주 작가의 또다른 책이 궁금해서 [BTS를 철학하다]를 구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