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수 뽑기 대소동 이런 수학동화는 처음이야 1
최영기.김선자 지음, 영수 그림 / 을파소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장 수 뽑기 대소동]은 수를 처음 배우는 아동에게 수 개념을 일깨워주는 동화이다.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때 읽어 주었던 숫자 그림책들이 생각났다. 그 그림책에는 0에 대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숫자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숫자 그림책을 읽어주고, 생활속에서 숫자 세기를 했을 거고, 학교에 다닐때부터 아라비아 숫자를 직접 써보게 했을 것이다.

내가 수를 배울 때는 어땠을까? 대여섯 살때의 일이다. 사촌 언니와 마당에서 놀았다. 막 학교에 입학했던 사촌언니는 1000이 가장 큰 수라고 말했다. 그당시 100까지 밖에 모르던 나는 100이 크다고 빡빡 우겼다. 나중엔 어른들이 나서서 언니 말이 맞다고 판결을 내려주었다. 그때 얼마나 충격 받았는지 모른다. 나는 마당에 퍼질러 앉아서 발을 버둥대며 엉엉 울었다. 누가 뭐래도 100이 크다고!

그때부터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꼈던것 같다.

[대장 수 뽑기 대소동]에서는 1에서9까지 각 수들의 역할을 설명한다. 그런데 0은 없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물론 0은 없는 게 맞다. 하지만 0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그 중요성은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된다. 물론 어른들은 돈의 개념을 깨우치면서 끝자리에 0이 한 더 붙었느냐 덜 붙었느냐가 엄청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정보는 책 뒷면에 다 나와 있다.

"과연 대장 수는 누가 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들 자기가 대장 수라고 주장하니까 말이다. 서열을 정하는 것은 어른들이 만든 놀이다. 누가 먼저 할 지 순서는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 모두가 대장이고, 주인공이니 서열을 나누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0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진짜 작가가 이 책에 담고 싶은 내용이다. 똑같이 어른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야기 구조가 너무나 단순하고 뻔하지만, 유아들이 충분히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만 한 내용이었다.

[대장 수 뽑기 대소동]을 읽고 0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보고, 0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를 놓는 소년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병자호란으로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병자호란때이고, 공간적 배경은 청나라 심양이다. 소년의 이름은 윤승이다. 윤승은 특이하게도 수를 잘 놓는 재주를 가졌다. 조선의 남성들이 수를 놓는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여자 아이도 아닌 남자 아이가 수를 놓는다는 발상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병자호란 때 볼모로 끌려간 양반의 수행원이나 호위무사들이 무료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자수를 배웠다는 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특히 평안북도 안주에서 만든 수를 '안주수'라고 한단다. 남성 장인들이 전문적으로 수를 놓았다는게 엄청 신기했다. 난생 처음 알게된 이야기에 완전 매료되어서 기대를 잔뜩하고 책을 읽었다.

양복점이나 세탁소, 옷 수선 집에서 남성이 바느질하고 옷을 만드는 경우는 종종 보았다. 하지만 수를 놓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로 그 시절은 남녀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별하던 시대였다. 물론 잘 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도 윤승의 어머니는 수를 놓는 아들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내놈이 할 일이 아니라면서.

사실 세상에는 남자일, 여자일이라고 딱 정해 놓은 것은 없다. 다 인간들이 왜곡시킨 시선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성이 수를 놓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전혀없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수를 놓는 소년이 주인공이고, 윤승은 수를 놓는 재주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더 큰 위기를 맞기도 한다. 솔직히 이 소설이 매우 재미있지는 않았다. 소재가 특이했고,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속 이야기라는 것 말고 크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소년이 스스로 위기를 해쳐나가서 발전하여가는 모습이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쉽게도 소년이 수놓은 물건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그곳에서 달아나는 것으로 끝이난다. 작가는 또다른 세상, 즉 보다 넓은 세상으로 꿈을 펼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처음에 하려는 말이 끝에가서 달라진 느낌이랄까? 물론 살다보면 처음 펼치려던 일이 그 지역에서는 받아들여지지않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뜻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경우가 어디 흔하겠는가? 더구나 열 대여섯 정도의 소년에게 말이다. 윤승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면 좋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린아이의 재주만 이용하려는 나쁜 어른들이 너무나 많다. 늘 도와 주는 어른이 있고, 스승이 있었다는 설정은 정말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소재가 참 좋은데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려서 너무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자칭 타칭 독서광이라면서. 벌써 출간 된지 8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며칠전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드라마를 발견했어. 오늘밤에 같이 보자."

어떤 이야기인지 물었더니 독일인 천재 소년이 나치에 이용당하고, 어떤 신비한 힘을 가진 보석과 관계된 프랑스 장님 소녀가 전쟁에 휘말리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했다. 제목이 [우리가 볼수 없는 모든 빛]인데 전개가 약간 몽환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는 말에 책을 먼저 읽기로 결정했다.

바로 검색엔진을 돌렸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은 벌써 출간한지 꽤 지나있었다. 바로 중고 서점을 뒤졌고, 부산에는 옆동네 알라딘 중고 서점에만 있었다. 누가 가로채 갈까봐 조바심이 났다. 토요일 특강 수업을 끝내자 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을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데,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기분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일하는 틈틈이 읽었다. 하지만 이번 주까지 보내야하는 글이 있어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간 글을 퇴고하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수요일 밤에 1권을 다 읽었다.

아직 소년과 소녀가 만나지는 못했고, 어떻게 연결될지 라디오라는 연결 고리만 찾았다. 이 이야기가 어느만큼이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잘 모르지만, 어느정도는 사실에 기반했을 것이다.

주인공 베르너 남매는 고아다. 알자스의 탄광촌에서 자라던 베르너는 독학으로 라디오를 조립하고 고치는 기술을 습득한다. 수학에도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본 관리가 그를 국립 정치 교육원에 추천한다. 시험에 통과한 베르너는 그 곳에 당당히 입학하게 된다. 베르너가 다닌 영재 사관 학교의 실상이 이랬다면 당시 독일은 자국민에게 조차 너무나 끔찍한 짓을 벌인 것이다. 어른도 아닌 아이에게 말이다.

반면 프랑스 맹인 소녀 마리로르는 6살에 실명된 딸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아빠가 있다. 자물쇠 장인인 아버지는 딸을 위해 마을 전체를 모형으로 만들어 아이가 스스로 산책할 수 있게 안내하고, 점자책을 익히게 해준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독일의 침략으로 프랑스 전체는 전장이 된다. 전쟁이 불러일으키는 소용돌이가 마리로르의 일상에 휘몰아친다.

불가사이한 힘을 가진 보석은 소설의 재미를 위한 장치인 것 같다. 물론 보석의 행방을 쫒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석에 관한 것 뿐아니라 1권에서는 아직 진짜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두 아이를 힘들게 할것만 같은 불안함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쓴 작가 앤서니 도어의 문장력이 정말 대단하다. 서사를 이끄는 힘이나 소설의 내용도 매우 좋지만 한문장 한문장 표현해 내는 능력이 시인 같다.

-창문 세개를 통해 새벽이 소중한 금빛 광선을 한다발 보낸다-p210

-새벽이 도시를 가로질러 흘러들어 오기 전에, 그들은 잠이 든다.-276

작가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주제에 잘 녹아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2권으로 넘어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전 글쓰기 동아리 후배가 딸아이가 쓴 시를 보여 주며 어떻게 조언해야할지 물어왔다. 나도 딱히 시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읽었을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쉽게 쓴 시가 좋은 시다. 거기에 더해서 가슴속에 뭔가 와서 박히는 말이 있다면 더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나는 어줍잖게 은유를 많이 넣어서 무슨 말인지 한참 생각해야하는 시보다는 솔직 단백한 시가 훨씬 좋다.

정말 오랜만에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었다. 소녀시절부터 무척 좋아하던 시인이라 내심 기대했다. 늘 느끼던 대로 수녀님 시는 참 쉽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직설로 풀어 내신다. 솔직히 시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얼치기에게 딱 맞다. 이번에 낸 시집[이해인의 햇빛일기]도 수녀님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시들이었다.

'이해인 수녀님이 이제 할머니가 되었구나'

이번 시집을 읽고 전해온 이해인 수녀님의 소식은 세월의 무심함이었다.

내 나이 먹은 건 생각지도 않고 수녀님이 아직 청춘이기를 기대한 걸까? 늘 영롱하고 찬란한 시어들로 소녀 감성을 전해 주시던 세월이 어느새 60년 가까이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이번 시집에서는 수녀님의 병고가 그대로 전해졌다. 78세라는 연세가 있으니 여기저기 아플때가 되셨다는 걸 알겠지만 많이 안타까웠다. 특히 대장암으로수술도 하시고 30번가량 항암치료를 받으셨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병마를 끌어 안고도 참으로 밝게 지내신다니 정말 큰 인물은 다르구나 싶다.

막내 시누가 지난 3월에 암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갔다. 지금도 시누가 고통으로 잠들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죽하면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것을 택했겠나.

암을 이겨내신 수녀님께 박수를 보낸다. 살아 주셔서 정말 고맙다.

얼마전 모임에 갔다가 함께 책읽기 동아리를 하던 지인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데 말이다. 그 소식을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이제 우리가 언제 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거야"라고.

[이해인의 햇빛일기]를 읽고 많이 위로 받았다. 수녀님은 이제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신의 고통을 시로 승화 시키신 수녀님이 참 고맙다. 병마 또한 자신의 것이라서 살살 달래면서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제발 수녀님이 많이 아프지 말기를 기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탈무드 - 유대인 지혜의 원천
탈무드교육 연구회 엮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절판


[탈무드]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여러번 읽었다. 청소년 시절에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읽었다. 이번이 딱히 몇번째 읽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사뭇 다른 것 같다.

한창 신앙심이 솟아오르던 청소년 시절에는 참 좋은 내용이고 가슴에 담아야하는 교훈이라고 느꼈다. 3,40대에 읽었을 때도 나름 '괜찮은 책이다' 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어쩐지 감동이 없었다. 장년이 되어 다시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하게 바귀었는지 곳곳에서 내 사고와 부딪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탈무드 중에 있는 내용이다.

"어떤 왕이 있었다. 그는 두 신하에게 옷을 선물했다. 그 중 한 신하는 옷을 잘 간수해 두었고, 또다른 신하는 선물 밭은 옷을 잘입어서 옷이 해지고 망가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 옷을 어떻게 했느냐고. 옷을 간직해 두었던 신하는 깨끗한 새옷을 그대로 가져왔고, 또다른 신하는 다 망가진 옷을 가져왔다. 왕이 해진 옷을 가져온 신하늘 벌주었고, 새옷을 가져온 신하에게는 상을 주었다."

솔직히 이 내용을 읽고, 이 왕은 신하들에게 왜 옷을 선물했을까? 하고 반감이 확 밀려왔다. 옷은 입어야 하는 것이지 않은가? 입지 않을 것이라면 왜 옷으로 만드는가? 차라리 옷감인 체로 두면 되지.

탈무드에서 이 내용을 넣은 것은 나같이 불손하게 해석하라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고, 아마도 왕이라고 일컬어진 분이 하느님을 뜻할 것이라는 것도 알겠다. 옷을 선물했다는 것은 아마도 하느님이 주신 어떤 소중한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그 진리라는 것도 그렇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의 가치도 변한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도 변하고 있다. 과연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될까? 아무튼 탈무드의 해석이 썩 마음에 들지않았다. 뒤로 갈수록 내용의 참신함이 없고, 실망감이 밀려왔다.

예전에 읽었던 탈무드와 지금 새로 읽는 탈무드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옛날만큼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탈무드에서 뭔가를 깨우치기에는 너무 세상에 닳아버렸나보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계속 책상에 펼쳐두고 있었지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차라리 성경을 읽을 걸 내가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을이 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니 공개수업이다, 학예회다, 대면해야하는 일들이 많다보니 일이 바쁘다. 그런 이유에서 이책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내 불찰이 크다. 마음에서 조급증을 몰아내고 거실 탁자에 올려 놓고 시간 날때마다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처음 이 책을 다시 읽자고 마음 먹었던 대로 유태인들의 교육철학이나 교육 방법을 엿보는 독서가 되도록 힘쓰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