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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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일지

대니얼 디포 /열린책들

얼마 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서인지 『전염병 일지』 속 드러나는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 또한 페스트와 관련된 작가의 다양한 관찰과 문제점들을 서사한다. 더구나 우리가 충분히 숙지한 코로나의 상황과 몇백 년 전의 재난에 대한 시민들과 국가의 상황적 대처 방식들이 비슷해 놀라웠다.

작가 소개 - 대니얼 디포(1660~1731)




대니얼 디포는 영국의 소설가, 언론인으로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목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사업으로 도전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이때의 경험은 『로빈슨 크루소』라는 명작으로 탄생한다. 결국 자신이 타고난 글쓰기를 중점적으로 한 결과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근대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전염병 일지를 통해 인본주의 서사의 전범임을 제대로 알려준 작가이다.



간단한 내용 소개


1664년 11월 소문으로만 떠돌던 페스트에 의한 사망자가 영국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각 지역의 교구청에서 의사 소견을 받아 사망자 수를 주보에 싣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교구의 감소된 사망자 수 발표에 다시 희망을 갖기도 하며 살아가지만 점점 불신은 높아져가고 페스트도 더욱 퍼져 나갔다.


두렵고 우울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행렬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도 다른 볼 것이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시를 덮칠 무서운 재앙에 대해, 그리고 시내에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불행한 상황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page16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나'는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으로 이 상황들을 묘사한다. 이러한 현상에 자신이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 페스트가 창궐하는 런던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주위 사람들처럼 집을 단단히 잠그고 피난을 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나는 남아 있어야 할 중요한 고려 사항이 있었고 그것은 자신의 전 재산이 투자된 사업과 가게 운영이었다. 그의 형은 이 고민을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네 목숨이나 건져!" 형은 이미 가족들을 피난시킨 상태이고 페스트에 대한 최고의 대처법은 도망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딱히 책임질 가족이 없지만 자신의 사업과 물품, 채무관계 등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자신을 하느님께서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피난 못 갈 이유로 들자 형은 사업장의 손해 볼 가능성도 하느님께 믿고 맡기는 게 어떻겠냐며 대응한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매번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나는 전염병이 돌 때 살던 곳에 남아야 할지 피난을 가야 할지를 신의 전언으로 해석해 주어 화자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스스로를 온전히 전능하신 주님의 선의와 보호에 맡기리라 결심한 나는 이곳에 남아 하느님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자신을 처분하기로 하고 어떠한 사명감을 가진 채 전염병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다.



재난의 와중에도 도둑이 들끓고 온갖 종류의 악행과 방탕함들이 난무한다. 왕족들은 전염병이 퍼지기 전에 비판의 귀를 막고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주변의 죽음에 대해 점점 무심해져 갔다. 피난도 부유한 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 지옥 같은 곳에 남아서 최악의 상황을 견디어 내야 한다. 두려움이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미신이나 신에 의존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무리들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작품 속 나는 마치 중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기자처럼 실제 광고문이나 부적, 출입이 금지된 감염 사망자 매립지까지 방문해 부조리한 상황들을 관찰 후 서술해 놓기도 했다.





도시 봉쇄, 감염자 감시, 환자 사망 확인 후 시체 매장, 모임 금지 등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여러 대처방안들은 이미 코로나를 겪은 우리가 충분히 인지한 방법들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지침들을 후세에 사람들이 그대로 참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쇄된 집들의 수만큼 도시 안 감옥이 생겨났고 시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 나갔다. 전염병의 상황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의 싸움만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과 무책임한 지도층의 이기적인 문제와의 사회적 싸움이기도 했다.

이 책이 18세기 인본주의 서사의 전범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모든 사상의 중심이 인간이 되므로 이전의 소설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신에게 벌을 받아 죽었다거나 운이 나빴다거나라는 방식의 죽음에 대한 결론을 배제한 사망의 원인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책에 실린 전문용어로 가득한 소견서나 공표 명령서 등 각종 자료들이 이 상황이 재난이었음을 제대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책에서는 향후 같은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항들을 행동지침으로 삼기 바라며 기록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오고 있다. 전염병 일지는 작가가 투영된 나라는 존재가 그 당시 런던시가 취한 보건 의학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를 세세히 기록하고 그 공과를 평가함으로써 이후 세대가 다시 전염병을 겪을 경우 행동지침으로 참조할 수 있도록 이 기록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나의 생각


무엇이든 처음 시도하고 변화하는 데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니얼 디포는 재난의 상황들이 신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마련하는 글쓰기 방식을 쓰면서 그만큼 글에 대한 책임도 가중되어 각종 조사자료를 다양한 근거를 들어 제시해 둔다. 1665년 전염병 발발 당시 런던시가 취한 보건 의학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를 세세히 기록해 이후 세대가 전염병 같은 재난에 대비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재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할 부분이고 어느 사회나 재난 앞에서는 반목과 갈등, 폭력과 무질서는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반면 희생과 봉사, 배려와 관심, 믿음 등 따뜻한 인간관계도 배제하지 못한다. 작가가 당부하듯 과거의 재난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더 자비롭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전반적으로 소설적인 구성의 페스트와는 좀 다르게 신문의 칼럼을 읽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대니얼 디포가 전하는 재난에 대한 경각심과 인본주의 속 사실적 묘사 안에서도 자신만이 가지는 신앙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놓지 않아 그에 따른 작가의 성찰과 실천을 확인할 수 있어 의미 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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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언어가 필요한 순간 - 흔들리는 나를 위한 라틴어 문장들
니콜라 가르디니 지음, 전경훈 옮김 / 윌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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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언어가 필요한 순간

흔들리는 나를 위한 라틴어 문장들

니콜라 가르디 / 윌북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주는 한 문장의 말, 답답한 세상의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한 마디의 말, 내 안에서 정리되지 못하는 숱한 감정들과 질문을 대신해줄 말, 세상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하고 그들의 고민에 직면하는 대답을 꺼내둔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 작가들이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라틴어 문장 한마디를 찾아 볼 수 있는 초대장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작가 소개

작가 니콜라 가르디니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탈리아 문학 및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소설가, 시인, 비평가,번역가, 화가로서 그는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이 책 『인생의 언어가 필요한 순간』으로 출간 즉시 이탈리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라틴어, 살면서 이 언어를 접할 일은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중 성가나 기도문에서 접한다. 많은 이들의 카톡 프로필에 저장된 까르페디엠이나 메멘토모리 역시 아름다운 라틴어이다. 이 라틴어를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말하기는 애매하다.

작가는 라틴어의 우수성과 그 쓸모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흔들리는 순간 라틴어 옛 문장 하나가 삶을 바꿔버린 이유를 설명해주고 여러 문장을 예로 들어 라틴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준다. 작가의 말로 "라틴어가 살아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작가가 주장하는 부분을 쉽게 말 정리해 보자면 살아있는 언어는 지속되면서 다른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라틴어가 바로 그러한 언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라틴어는 어떤 언어일까? 라틴어는 고대 로마의 언어로서 그곳에 뿌리를 내린 문명의 언어이기도 하다. 로마의 영토확장으로 라틴어 역시 세계인류의 언어로 소통의 수단이 되었으며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들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라틴어 문학을 통해 위대한 철학자와 작가들의 지식과 내적인 힘을 가진 다수의 글이 전해지고 있으며 인류가 언어로 문명을 이룬 기념비적 요소를 보여준다.


이 책은 라틴어 '문학' 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작가가 애정하는 17명의 철학자와 사상가, 작가들이 전하는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 라틴어가 현재까지 이 세계에서 강하게 살아 숨쉬고 있음을 전하고자 하며 독자들이 기계적, 실질적 지식에만 집중하다 많은 것을 놓치기보다 이 아름다운 언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해석하는 가운데 느끼는 행복을 기까이 느껴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라는 기원전 70년의 시인이 전하는 메세지를 전해 본다. 로마의 대표 시인으로써 웅변술과 수사학에 능통했으며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을 배웠다. 이는 인간의 삶을 쾌락과 고통, 행복과 불행 두가지로단순화시킨 학파이다 .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하기 위함이므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를 전하며 그 방법은 욕심을 줄이고 현재에 만족하면 행복하다는 현재의 소확행과 같은 맥락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omnia vincit amor

베르킬리우스

작가는 베르길리우스의 목가를 해석하며 명확하고 기억에 남는 문장을 만난다. ...사랑에 무슨 척도가 있으랴! 아이가 미소로 자연스럽게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이해하듯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길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라틴어 시에 대한 해석과 원문 그리고 어느 포인트에서 작가가 감동을 받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부연설명이 들어있다.





나의 생각

라틴어는 우리의 눈을 틔워 언어에 숨은 비밀을 깨닫게 하고, 언어의 역사는 하나의 직선이 아니라 확장하는 기억의 모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page326

라틴어가 지구상 수많은 언어들의 본래 의미를 보여준다는 것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라틴어의 parentes는 프랑스어 parents, 이탈리아어에 parenti가 되어 부모, 친척이라는 의미를 전한다. 또한 라틴어는 고대의 위대한 작가들이 전하는 라틴어를 통해 풍부한 표현들을 전달 받을수 있음을 자신한다. 라틴어를 배우고, 읽고, 쓰고, 사랑하면서 고대 속 한 시간으로 들어가 역사가 전하는 깊이를 전해 듣고 역사 속 인물들이 우리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하고 전하는 메세지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한다.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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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김상래 외 지음 / 멜라이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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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이설아 외 11명의 작가 / 멜라이트


각기 다른 연령대의 다양한 작가들이 함께한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는 우리 인생의 다양한 시간과 이야기를 담아 둔 포트폴리오와 같다. 나이가 다르다고 해서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이고 살아낸 인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왜 이 작가들이 함께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유는 각자가 글을 쓰며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해 주고 치열하게 오랫동안 쓴 과정들에 대한 인생의 궤적을 담아두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작가만의 이야기일수는 없다. 타인의 인생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고 작가들마다 각기 다른 삶에 대한 소회와 경험들을 풀어두었기에 그 속에서 내 삶을 찾아보고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초입에 선 정지우 작가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바가 컸다. 나 역시 중년이 되고 퇴사를 하고나니 살면서 지금처럼 여유로운 적이 없는듯 하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각자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독립했고 온 집안이 고요해졌다. 매 끼니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분주했던 저녁시간에 여유를 찾으며 운동을 다니기도 한다. 내일을 걱정하며 일찍 잠에 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읽고 싶을 때까지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본다.




이 책은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를 책 서두에 적어두었다. 충분히 공감 되는 메세지이다. 동명이인으로 보이는 작가 이설아의 글은 독특하다. 입양으로 부모가 된 삶을 드러내 주는데 실제 그녀의 이야기인지도 궁금해졌다. 입양으로 부모가 된 자신의 변화와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면서 자신의 삶은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내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서야 내 부모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듯이 내가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일기를 쓴 건지 상상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어쩌면 그 꿈은 나의 꿈과도 흡사해 그녀의 삶 속으로 흡입 되어 들어가 꼼꼼히 읽게 되었다. 노년의 시골 민박과 가드닝, 그 사이 짬짬히 쓰는 글쓰기는 늘 나의 상상 속에 그려진 나의 미래였는데 말이다.




이 책을 한 번에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짬짬이 한 작가의 글을 곱씹어 읽으며 생각하고 뒤돌아 볼 수 있는 삶, 다채로운 이야기들 속에서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오래오래 남는 책이다. 에세이나 글을 한번 써 보고 싶은 독자들은 이 책을 참고로 삼아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지원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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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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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교수의 『백치』 강의

석영중 / 열린책들

이 책은 러시아 문학 해석에 대한 국내 최고 권위자인 석영중 교수님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에 대한 해석집이다. 아직 백치를 읽지 못한 나는 책을 읽기 전 해석집을 먼저 봐야 할지 백치를 읽고 이 해석집을 읽어야 할지 살짝 염려가 되었지만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먼저 작가 석영중 교수님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찾아 쌓아보자. 현재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시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강의로도 유명하다. 러시아 문학의 다수를 번역하였으며 러시아 신학, 과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연구로 최고의 러시아 문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인 철도, 칼, 그림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를 읽을 때 제시되는 세 가지의 키워드로 볼 수 있다. 소설이 쓰인 시기인 당대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러시아 상인계급, 물신숭배를 담아내는 이미지로 철도가 제시된다. 칼은 폭력, 죽음을 드러내는 실질적 범죄의 이미지이고 그림은 이미지에 관한 이미지, 즉 도스토옙스키가 예술적 바라보기를 실현시키는 궁극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 소설 백치의 간단한 줄거리



몰락한 공작 가문의 출신 청년 미시킨이 스위스에서 후원자의 도움으로 지병인 간질을 치료받고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신분은 공작이지만 그는 현재 빈털터리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눈치 없고 어리숙한 성품 때문에 그는 종종 『백치』라 불리지만 실제로 그에게 심각한 인지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그의 먼 친척인 예판친 장군이 있고 장군에게는 세 딸이 있다. 장군의 맏딸 알렉산드라에게 예판친 장군의 사업 동료인 55세의 중년 토츠키가 청혼을 한다. 사업상 막대한 이익을 주기 때문에 아버지 예판친은 나이 따위 불문하고 딸을 토츠키에게 시집보내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토츠키는 어린 시절부터 오갈 데 없던 지인의 딸 나스타시아를 양육해 미성년자일 때부터 자신의 내연녀로 삼는 살짝 말종의 인간이었다.

토츠키의 결혼 소식을 듣자 분개한 나스타시아는 둘의 결혼을 방해하려고 하고 이를 알게 된 예판친 장군은 자신의 비서 가냐에게 막대한 지참금을 줄 테니 나스타시아를 꼬드겨 결혼하라고 요구한다. 가냐... 이 인간도 엄청 돈 욕심이 많아 어떻게든 장군에게 지참금을 받고 나스타시아와 결혼하려고 애를 쓰지만 의외의 복병인 거상의 아들 로고진이 등장해 나스타시아의 미모에 홀딱 반해 막대한 재산을 자랑하며 청혼을 한다. 나스타시아는 완전 인기쟁이다!


이 시점에 청년 미시킨은 난데없이 생면부지의 먼 친척으로부터 거금을 상속받게 된다. 항상 나스타시아의 불행을 안타까워한 미시킨마저도 그녀의 불행을 끝내주고 싶은 마음에 나스타시아에게 청혼을 한다. 그런데 또 누가 끼어든다. 예판친 장군의 막내딸인 아글라야가 미시킨 공작에게 사랑을 느끼며 구애를 하니 이들의 사랑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미시킨 공작이 나스타시아와 아글라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거상의 아들 로고진이 나스타시아를 차지해 결혼하게 된다. 사이코 같은 인간 로고진은 어렵게 차지한 나스타시아를 영원히 자신이 간직하기 위해 살해한다.


이후 아글라야는 백작을 사칭하는 폴란드 사기꾼과 결혼하고, 로고진은 나스타시아를 살해한 죄로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공작 미시킨은 페테르부르크에 올 때보다 더욱 백치가 되어 스위스로 돌아간다.




백치 소설의 큰 주제는 돈, 치정, 살인이다. 특히 은 이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결말까지 플롯을 이끌어 가는 주요 동인으로 등장한다. 또한 톨스토이가 글을 쓰던 시대적 배경에 철도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첨단 주제였다. 19세기의 철도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곧 철도와 돈은 같은 명맥을 유지한다.

나스타시아가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살인의 장면은 칼과 연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칼이 여주인공의 살인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칼과 칼에 의한 입체적인 죽음을 파고들어 간다. 칼의 변주인 처형 장면을 보이며 사형수의 시간체험을 극도로 첨예하게 만들어 나가고 미시킨의 간질병을 통해서도 긴밀함을 유지한다. 사형수와 미시킨을 동일한 궤적으로 움직이며 독자들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미지를 형상화해 글로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유배지에서 4년여의 생활 동안 신약성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그는 신실한 신자이기도 하다. 그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단언한다. 그가 가장 사랑하고 애정 하는 소설 백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소설에 그대로 옮겼다. 그리스도를 닮은 백치의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정 한 것이다. 전적으로 아름다운 인간,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시킨은 결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아무것도 구원하지 못하고 더욱 백치가 되어 돌아간다.



출처:네이버블로그:julie / 한스 홀바인 2세-무덤 속의 그리스도



철도도, 칼도, 그리고 그림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그 모든 복잡한 망 조직의 종착점으로 삼는다.

page77



도스토옙스키는 마치 위대한 건축가가 성당을 건축하듯 소설을 구조적으로 사유했다. 그가 유독 고딕 성당을 사랑했던 이유도 자신의 소설 세계의 시공적 피라미터를 장악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축가가 중력을 생각하고 아름다움과 쓸모를 생각하듯이 소설의 구조를 짜 맞춰 온 것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동안은 항상 성당의 첨탑과 창문을 강박적으로 그리며 소설의 형식을 짜 맞춰 나갔음을 짐작하는데 이는 실제 전체적 구도가 정해지면 고딕 창문을 그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고딕 성당의 건축구조를 보고 감동받아 자신의 소설 구조의 전체적 기반으로 삼는 천재 작가의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작가는 그 이유까지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에게 소설은 서사로 구축한 성전이었다"




◆ 책을 읽고 난 소감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힘겹게 썼다는 소설 백치는 석영중 교수에 의해 극도로 치밀하게 읽혔다. 너무나 깊게 파고 들어가 마치 직접 그를 만나 인터뷰하고 돌아온 듯 소설 속 도스토옙스키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옮겨 둔 느낌이었다. 이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좀 더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과 서사의 표면에 드러난 내공을 읽을 수 있어 무척 도움이 되었다. 백치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 어렵다는 책에 무난하게 도전해 보고자 한다면 나는 과감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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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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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을 빠트리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슈나 시사되는 부분들이 단편 속에 숨어 있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고 신인이 아닌 기존 작가들의 작품이라 밀도 높은 이야기의 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을 대표하는 7작품 중 소설적 주제와 동시대적 메시지를 어느 작품보다 강하게 전달한 안보윤 [애도의 방식]은 학교폭력 속에서 피해자인 주인공이 집요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초월한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며 갈수록 점점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소란한 것을 좋아하나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동주는 학교폭력 피해자이다. 책을 읽다 보면 동주는 크게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찻집이지만 찻집이 아닌 터미널의 찻집 『미도파』도 어정쩡한 동주의 모습과 흡사 비슷한 느낌이다. 콩나물국밥도 팔고 함박 스테이크도 파는 주체성 없는 찻집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섬에서 시금치를 키우며 살고 싶었던 동주는 이러한 계획을 가진 것도 어떤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섬으로 가기 위해 터미널을 찾아갔다가 찻집 미도파에 들러 덜컥 취업을 하게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 유달리 동주를 괴롭히던 승규, 동전을 던져 앞, 뒤를 맞추지 못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주의 뺨을 갈긴다. 아이들이 낄낄대고 한 편에서는 동주에 대한 조롱과 멸시로 소란스럽다. 동주는 그 소란스러움이 싫었고 승규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주에게 던지는 앞? 뒤?에 대한 물음에 관성의 법칙처럼 척척 자동으로 대답하는 자신이 싫었을 뿐이다.


승규의 엄마도 아들과 하는 짓이 똑 닮았다. 동주에 대한 집요함에 몸서리가 날 정도이다. 살면서 내가 맹신하는 한 가지는 인과응보이다. 남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도리에 어긋난 일을 행 한다면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른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우울하면서도 통쾌하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가 읽는 독자로서도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강보라의 작품은 개인의 심리애 대해 아주 섬세한 묘사를 드러내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우붓이라는 이국의 장소와 자신이 믿는 문화적 취향에 대한 우월성을 보이는재아의 심리적 표현들이 흥미로웠다.

김병운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는 퀴어에 대한 서사로 시대에 상응하는 문화적 변화와 그에 따르는 서로 다른 세대의 다양한 시각들과 그에 따른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어 관심이 갔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 신주희의 『작은 방주들』,지혜의 『북명 너머에서』, 그리고 작년 대상자인 김멜라의 『이응이응』 또한 설득력 있는 단편소설로 수상작 다운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효석문학상은 우리 사회를 직시하면서도 결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소설 속 인물들의 가능성을 보여준자. 벌써 24회차로 대한민국 소설 중 독자들이 가장 뜨겁게 주목해야 할 작가와 작품을 다루며 단편문학을 보편적으로 제시하는 역할과 효용을 충분히 해 내고 있다. 작가들의 세대가 점점 바뀌어 나가지만 급진적이지 않고 두루뭉술 어울리게 보여지는 작품들 속에서 멈추어 상상하는 순간들을 발견해 본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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