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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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교수의 『백치』 강의

석영중 / 열린책들

이 책은 러시아 문학 해석에 대한 국내 최고 권위자인 석영중 교수님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에 대한 해석집이다. 아직 백치를 읽지 못한 나는 책을 읽기 전 해석집을 먼저 봐야 할지 백치를 읽고 이 해석집을 읽어야 할지 살짝 염려가 되었지만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먼저 작가 석영중 교수님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찾아 쌓아보자. 현재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시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강의로도 유명하다. 러시아 문학의 다수를 번역하였으며 러시아 신학, 과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연구로 최고의 러시아 문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인 철도, 칼, 그림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를 읽을 때 제시되는 세 가지의 키워드로 볼 수 있다. 소설이 쓰인 시기인 당대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러시아 상인계급, 물신숭배를 담아내는 이미지로 철도가 제시된다. 칼은 폭력, 죽음을 드러내는 실질적 범죄의 이미지이고 그림은 이미지에 관한 이미지, 즉 도스토옙스키가 예술적 바라보기를 실현시키는 궁극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 소설 백치의 간단한 줄거리



몰락한 공작 가문의 출신 청년 미시킨이 스위스에서 후원자의 도움으로 지병인 간질을 치료받고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신분은 공작이지만 그는 현재 빈털터리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눈치 없고 어리숙한 성품 때문에 그는 종종 『백치』라 불리지만 실제로 그에게 심각한 인지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그의 먼 친척인 예판친 장군이 있고 장군에게는 세 딸이 있다. 장군의 맏딸 알렉산드라에게 예판친 장군의 사업 동료인 55세의 중년 토츠키가 청혼을 한다. 사업상 막대한 이익을 주기 때문에 아버지 예판친은 나이 따위 불문하고 딸을 토츠키에게 시집보내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토츠키는 어린 시절부터 오갈 데 없던 지인의 딸 나스타시아를 양육해 미성년자일 때부터 자신의 내연녀로 삼는 살짝 말종의 인간이었다.

토츠키의 결혼 소식을 듣자 분개한 나스타시아는 둘의 결혼을 방해하려고 하고 이를 알게 된 예판친 장군은 자신의 비서 가냐에게 막대한 지참금을 줄 테니 나스타시아를 꼬드겨 결혼하라고 요구한다. 가냐... 이 인간도 엄청 돈 욕심이 많아 어떻게든 장군에게 지참금을 받고 나스타시아와 결혼하려고 애를 쓰지만 의외의 복병인 거상의 아들 로고진이 등장해 나스타시아의 미모에 홀딱 반해 막대한 재산을 자랑하며 청혼을 한다. 나스타시아는 완전 인기쟁이다!


이 시점에 청년 미시킨은 난데없이 생면부지의 먼 친척으로부터 거금을 상속받게 된다. 항상 나스타시아의 불행을 안타까워한 미시킨마저도 그녀의 불행을 끝내주고 싶은 마음에 나스타시아에게 청혼을 한다. 그런데 또 누가 끼어든다. 예판친 장군의 막내딸인 아글라야가 미시킨 공작에게 사랑을 느끼며 구애를 하니 이들의 사랑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미시킨 공작이 나스타시아와 아글라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거상의 아들 로고진이 나스타시아를 차지해 결혼하게 된다. 사이코 같은 인간 로고진은 어렵게 차지한 나스타시아를 영원히 자신이 간직하기 위해 살해한다.


이후 아글라야는 백작을 사칭하는 폴란드 사기꾼과 결혼하고, 로고진은 나스타시아를 살해한 죄로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공작 미시킨은 페테르부르크에 올 때보다 더욱 백치가 되어 스위스로 돌아간다.




백치 소설의 큰 주제는 돈, 치정, 살인이다. 특히 은 이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결말까지 플롯을 이끌어 가는 주요 동인으로 등장한다. 또한 톨스토이가 글을 쓰던 시대적 배경에 철도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첨단 주제였다. 19세기의 철도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곧 철도와 돈은 같은 명맥을 유지한다.

나스타시아가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살인의 장면은 칼과 연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칼이 여주인공의 살인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칼과 칼에 의한 입체적인 죽음을 파고들어 간다. 칼의 변주인 처형 장면을 보이며 사형수의 시간체험을 극도로 첨예하게 만들어 나가고 미시킨의 간질병을 통해서도 긴밀함을 유지한다. 사형수와 미시킨을 동일한 궤적으로 움직이며 독자들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미지를 형상화해 글로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유배지에서 4년여의 생활 동안 신약성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그는 신실한 신자이기도 하다. 그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단언한다. 그가 가장 사랑하고 애정 하는 소설 백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소설에 그대로 옮겼다. 그리스도를 닮은 백치의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정 한 것이다. 전적으로 아름다운 인간,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시킨은 결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아무것도 구원하지 못하고 더욱 백치가 되어 돌아간다.



출처:네이버블로그:julie / 한스 홀바인 2세-무덤 속의 그리스도



철도도, 칼도, 그리고 그림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그 모든 복잡한 망 조직의 종착점으로 삼는다.

page77



도스토옙스키는 마치 위대한 건축가가 성당을 건축하듯 소설을 구조적으로 사유했다. 그가 유독 고딕 성당을 사랑했던 이유도 자신의 소설 세계의 시공적 피라미터를 장악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축가가 중력을 생각하고 아름다움과 쓸모를 생각하듯이 소설의 구조를 짜 맞춰 온 것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동안은 항상 성당의 첨탑과 창문을 강박적으로 그리며 소설의 형식을 짜 맞춰 나갔음을 짐작하는데 이는 실제 전체적 구도가 정해지면 고딕 창문을 그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고딕 성당의 건축구조를 보고 감동받아 자신의 소설 구조의 전체적 기반으로 삼는 천재 작가의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작가는 그 이유까지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에게 소설은 서사로 구축한 성전이었다"




◆ 책을 읽고 난 소감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힘겹게 썼다는 소설 백치는 석영중 교수에 의해 극도로 치밀하게 읽혔다. 너무나 깊게 파고 들어가 마치 직접 그를 만나 인터뷰하고 돌아온 듯 소설 속 도스토옙스키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옮겨 둔 느낌이었다. 이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좀 더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과 서사의 표면에 드러난 내공을 읽을 수 있어 무척 도움이 되었다. 백치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 어렵다는 책에 무난하게 도전해 보고자 한다면 나는 과감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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