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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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일지

대니얼 디포 /열린책들

얼마 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서인지 『전염병 일지』 속 드러나는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 또한 페스트와 관련된 작가의 다양한 관찰과 문제점들을 서사한다. 더구나 우리가 충분히 숙지한 코로나의 상황과 몇백 년 전의 재난에 대한 시민들과 국가의 상황적 대처 방식들이 비슷해 놀라웠다.

작가 소개 - 대니얼 디포(1660~1731)




대니얼 디포는 영국의 소설가, 언론인으로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목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사업으로 도전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이때의 경험은 『로빈슨 크루소』라는 명작으로 탄생한다. 결국 자신이 타고난 글쓰기를 중점적으로 한 결과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근대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전염병 일지를 통해 인본주의 서사의 전범임을 제대로 알려준 작가이다.



간단한 내용 소개


1664년 11월 소문으로만 떠돌던 페스트에 의한 사망자가 영국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각 지역의 교구청에서 의사 소견을 받아 사망자 수를 주보에 싣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교구의 감소된 사망자 수 발표에 다시 희망을 갖기도 하며 살아가지만 점점 불신은 높아져가고 페스트도 더욱 퍼져 나갔다.


두렵고 우울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행렬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도 다른 볼 것이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시를 덮칠 무서운 재앙에 대해, 그리고 시내에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불행한 상황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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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나'는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으로 이 상황들을 묘사한다. 이러한 현상에 자신이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 페스트가 창궐하는 런던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주위 사람들처럼 집을 단단히 잠그고 피난을 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나는 남아 있어야 할 중요한 고려 사항이 있었고 그것은 자신의 전 재산이 투자된 사업과 가게 운영이었다. 그의 형은 이 고민을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네 목숨이나 건져!" 형은 이미 가족들을 피난시킨 상태이고 페스트에 대한 최고의 대처법은 도망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딱히 책임질 가족이 없지만 자신의 사업과 물품, 채무관계 등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자신을 하느님께서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피난 못 갈 이유로 들자 형은 사업장의 손해 볼 가능성도 하느님께 믿고 맡기는 게 어떻겠냐며 대응한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매번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나는 전염병이 돌 때 살던 곳에 남아야 할지 피난을 가야 할지를 신의 전언으로 해석해 주어 화자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스스로를 온전히 전능하신 주님의 선의와 보호에 맡기리라 결심한 나는 이곳에 남아 하느님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자신을 처분하기로 하고 어떠한 사명감을 가진 채 전염병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다.



재난의 와중에도 도둑이 들끓고 온갖 종류의 악행과 방탕함들이 난무한다. 왕족들은 전염병이 퍼지기 전에 비판의 귀를 막고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주변의 죽음에 대해 점점 무심해져 갔다. 피난도 부유한 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 지옥 같은 곳에 남아서 최악의 상황을 견디어 내야 한다. 두려움이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미신이나 신에 의존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무리들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작품 속 나는 마치 중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기자처럼 실제 광고문이나 부적, 출입이 금지된 감염 사망자 매립지까지 방문해 부조리한 상황들을 관찰 후 서술해 놓기도 했다.





도시 봉쇄, 감염자 감시, 환자 사망 확인 후 시체 매장, 모임 금지 등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여러 대처방안들은 이미 코로나를 겪은 우리가 충분히 인지한 방법들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지침들을 후세에 사람들이 그대로 참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쇄된 집들의 수만큼 도시 안 감옥이 생겨났고 시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 나갔다. 전염병의 상황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의 싸움만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과 무책임한 지도층의 이기적인 문제와의 사회적 싸움이기도 했다.

이 책이 18세기 인본주의 서사의 전범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모든 사상의 중심이 인간이 되므로 이전의 소설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신에게 벌을 받아 죽었다거나 운이 나빴다거나라는 방식의 죽음에 대한 결론을 배제한 사망의 원인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책에 실린 전문용어로 가득한 소견서나 공표 명령서 등 각종 자료들이 이 상황이 재난이었음을 제대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책에서는 향후 같은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항들을 행동지침으로 삼기 바라며 기록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오고 있다. 전염병 일지는 작가가 투영된 나라는 존재가 그 당시 런던시가 취한 보건 의학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를 세세히 기록하고 그 공과를 평가함으로써 이후 세대가 다시 전염병을 겪을 경우 행동지침으로 참조할 수 있도록 이 기록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나의 생각


무엇이든 처음 시도하고 변화하는 데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니얼 디포는 재난의 상황들이 신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마련하는 글쓰기 방식을 쓰면서 그만큼 글에 대한 책임도 가중되어 각종 조사자료를 다양한 근거를 들어 제시해 둔다. 1665년 전염병 발발 당시 런던시가 취한 보건 의학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를 세세히 기록해 이후 세대가 전염병 같은 재난에 대비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재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할 부분이고 어느 사회나 재난 앞에서는 반목과 갈등, 폭력과 무질서는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반면 희생과 봉사, 배려와 관심, 믿음 등 따뜻한 인간관계도 배제하지 못한다. 작가가 당부하듯 과거의 재난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더 자비롭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전반적으로 소설적인 구성의 페스트와는 좀 다르게 신문의 칼럼을 읽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대니얼 디포가 전하는 재난에 대한 경각심과 인본주의 속 사실적 묘사 안에서도 자신만이 가지는 신앙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놓지 않아 그에 따른 작가의 성찰과 실천을 확인할 수 있어 의미 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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