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유명한 첫 문장.

<민음사>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열린책들>
˝재산이 많은 미혼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이 첫문장에 제인오스틴이 ˝자기만의 방˝에서 창조한 스타일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를 알려면 책을 다 읽어야 한다. 덮고 나서 다시 책을 펼쳤을 때 이 문장은 전체를 이야기한다. 여운이 짙다. 그리고 영리한 제인오스틴만의 은닉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

첫문장의 이런 경험은 최근 읽었던 고골의 <검찰관>에서 생생히 경험한 적이 있다.
이런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러시아속담˝

오만과 편견의 이중적 문장과는 다르게 검찰관의 첫 문장은 책을 읽지 않더라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쉬울 정도로 직설적이다.
하지만, 이 첫문장의 반전은 전율감이 일 정도로 한동안 감탄했었다.

고골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인류전체가 풍자의 대상이 되는 셈이나, 독자는 그 순간만은 그 풍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기이한 착각에 사로잡혀 풍자가와 더불어 자기 자신이 소속된 인류를 비웃는 것이다.
즉, 검찰관의 부정적인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초상이며 자기 동일성의 변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즉 속담의 ˝제 낯짝˝은 ˝독자의 낯짝˝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 읽고 나서야 짚어볼 수 있는 절묘한 문장이었다.

......이래서 소설의 첫 문장은 예술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오 2018-05-02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만과편견 읽으리라고 맘은 먹은책이네요. 저는 문학동네 버전으로 생각중이에요 ㅎ문동세전 수집중 ㅋ

북프리쿠키 2018-05-02 22:44   좋아요 1 | URL
문동책 컬러풀하고 고급지죠 ㅎ
문동에서 오만과편견의 첫 문장은 어떻게 번역되었나 궁금해지네요~나중에 메오님이 올려주세요 ㅎ

메오 2018-05-02 22:49   좋아요 3 | URL
‘큰 재산을 가진 미혼 남자라면 마땅히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렇게 되어있네요 ㅎ

북프리쿠키 2018-05-02 22:52   좋아요 1 | URL
오~감사합니다. 조금씩 다르네요.
깨알같은 재미가 있네요ㅎ

2018-05-02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3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8-05-03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펭귄 북스 첫문장은 이러하네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독신의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다들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5-03 09:27   좋아요 1 | URL
펭귄도 문장이 깔끔하네요.
이 문장은 마치 베넷부인의 항변같아요. 우린 저마다 베넷부인의 욕망과 천박함을 숨기고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8-05-03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 남자든 여자든 저 명문장을 인용해서 결혼을 합리화한다면 저는 반대할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처럼 ‘남편’ 또는 ‘아내’가 꼭 필요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

북프리쿠키 2018-05-03 14:53   좋아요 1 | URL
싸이러스님도 아시다시피 제인오스틴이 소설의 시작부터 저 문장으로 당시 남성위주의 사회를 은근 비틀었지요. 그걸 모르고 명문장이랍시고 합리화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껜 반드시 케어가 필요한 동반자가 필요치 않을까 싶네요^^

stella.K 2018-05-03 16:17   좋아요 1 | URL
ㅎㅎ 근데 나이들면 있는 게 없는 것 보다 났다고 생각해.
나이들어 무슨 청승이냐?

안 그래요 쿠키님?ㅋㅋㅋ
 

미셀푸코의 박사학위논문.
짙은 안개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손으로 휘저어 봤지만 더 짙게 파고드는,
읽는 내내 무진속에 혼자만 내던져진 고립감.

앞으로 어떤 난해한 책도 망설여지지 않을거란
쓸데없는 자신감만 얻은 듯.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30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린책들 2007년판에 들어있던

<쁘로하르친씨><아홉통의 편지로 된 소설><뻬쩨르부르그연대기><여주인> 4편이 빠지고,

2010년 개정판에는 7편의 단편 <남의아내와 침대밑 남편><약한마음><뽈준꼬프><정직한도둑><크리스마스트리와결혼식><백야><꼬마영웅>만 담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평판을 누려온 <백야>.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다소 지난했던 단편들의 늪속에서 허우적댔었다.

녹록치 않은 그 과정의 시간들을 백야가 한꺼번에 보상해주었다고 해야할까?

 

서로 간에 기꺼이 주고받는 사랑조차 때론 고통의 시간을 통과의례처럼 지나쳐야 할진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운좋게도 그 사랑의 대역을 맡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을때, 질투와 외로움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옛사랑에게 등을 돌리고 마는 여자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 순간조차 신성한 약속을 단숨에 저버린 나스쩬카를 축복하는 대목. 그녀의 가슴이 전 생애에 걸쳐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흔히들 얘기하는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나스쩬카,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祭臺)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서 단 한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 300쪽

 

데이트 폭력으로 얼룩진 집착과 욕망도 처음엔 사랑이라 그랬을테고, 그 후에도 사랑이라 부르리라.

그들의 천박한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다시는 사랑하지 말지어다.

 

 

 

 

   

 

 

 

당신이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한다면,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내 사랑이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당신이 느끼지 못하도록 그렇게 사랑할 겁니다. -288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8-04-28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데이트 폭력은 그 후에는 사랑이라 안 불러줄테에요^^; 그나저나 <백야> 궁금합니다. 마치 다네이 대신 죽음을 선택한 칼튼이 생각나네요.

북프리쿠키 2018-04-28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 인간들은 진심으로 사랑했었다..지껄이겠죠..
아 ~ 두도시 이야기..˝사랑하다면 시드니 카튼처럼˝이란 독자의 100자평이 생각나는군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생색내기에 급급한 사랑의 이벤트, 열정보다 부족함이 많은 담백하고 차분한 사랑이 좋으네요.
도스토예프스키가 27살때 쓴 책인데..네프스키거리에서 4일간의 백야(잠을 이루지 못하는)를 경험한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의 바르바라와 제부쉬낀의 편지만큼이나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꼬마요정님도 안 읽어본 문학이 있었습니까.?^^


꼬마요정 2018-04-28 22:19   좋아요 1 | URL
ㅎㅎ 제가 읽은 게 별로 없어요^^;; 아직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외엔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도전해보겠습니다 ㅎㅎㅎ
 
[eBook] 라쇼몽 - 문예 세계문학선 061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쇼몽

두통의편지
지옥변

늪지
의혹
미생의믿음
가을
묘한이야기
버려진아이
남경의그리스도
덤불속
오도미의 정조
인사
흙한덩어리
세개의 창

17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책이다.
아쿠타가와가 등장하였을 때 아쿠타가와를 소세키와 오가이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비유하는 말도 있었는데, 그것은 고전에서 제재를 가져와 소설로 한 오가이의 방식을 따르고, 인간의 에고이즘을 주로 다룬 소세키의 주제를 도입하였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원래 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솔직히 이 책도 단편집인줄 몰랐었다.
근데. 아~ 단편도 작가에 따라 이렇게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전에 읽었던 순이삼촌 단편집처럼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른 시점과 다양한 등장인물, 시대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다 읽었을때 뭔지 알수 없는 완결성에서 오는 충만감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단편 중에서 수작을 꼽는다면
<라쇼몽><코><귤><덤불속><오도미의정조>가 좋았다.

특히, <귤>에서 내 마음을 흔든 문장을 소개한다.
피곤하고 음울했던 주인공은 열차 맞은편 좌석에 앉은 10대 꾀죄죄한 시골처녀가 짜증스럽고 못내 불만스러웠다. 그 권태와 피로가 귤6개로 환희를 얻는 대목이다.

[그 순간이었다. 창밖으로 상반신을 내민 소녀가, 그 부르튼 손을 내밀고 힘차게 좌우로 흔드는가 싶더니,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따뜻한 햇살로 물든 귤 대 여섯개가 기차를 배웅하는 아이들 쪽으로 어느새 날아가 흩어졌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리고 찰나에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지금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것일 터이고, 가지고 있던 몇 개의 귤을 던져, 일부러 멀리 건널목까지 배웅 나온 남동생들의 노고에 답한 것이었다.
저녁 노을에 물든 마을의 건널목과, 참새처럼 소리를 질러대던 세 아이, 그리고 아이들에게 날아가 흩어진 선명한 귤 빛, 그 모든 것은 차창 밖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애절할 정도로 확연히 이 광경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내 속 깊은 곳에서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밝은 것이 용솟음쳐오는 것을 느꼈다.나는 이때 비로소 알 수 없던 피로와 권태를, 그리고 또 이해할 수 없고 저급하며 지루한 인생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누구라도 타인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불행을 어떻게라도 극복하게 되면,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던 쪽에서 왠지 섭섭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시 한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뜨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생기게 된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된다...<코> 18쪽

사람을 속여 뱀 고기를 판 여자, 그 여자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여는 노파, 그 노파를 위협하여 옷을 벗기고 도망가는 하인, 세상은 악의 고리로 연결된 듯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하인은 노파 덕분으로,노파는 여자 시체 덕분으로, 여자는 속아준 사람 덕분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 가능하니, 그것은 선의 고리이기도 하다. 증오나 죄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인 것이다.-작품해설 305쪽

에고이즘은 아쿠타가와의 영원한 테마이다.-3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쓰메소세키의 문하생으로
1935년 제정되어 현재까지 신인소설가에게 수여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쿠타가와‘ 상의 장본인.
이 책은 라쇼몽 외 열편이 넘는 짧은 단편모음집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라쇼몽이 내가 생각했던 스토리와 다르다는 사실에 머쓱~했다. 그리고 엄청 짧은 단편이라는 것도.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나 ‘코‘라는 동제목의 단편소설, 짧은 이야기지만 하나같이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의 면면에서 고골이 떠오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4-16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2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