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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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여성이면서 '한 사람'인 자아 찾기를 실현하며 원하는 것을 이룬 사람의 얘기다.

어쩌면 나의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건 말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자아 찾기를 저자는 저자가 대신 자아 실현을 이루고 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 리뷰를 보면서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되었다. 거기에 나오는 어떤 내용이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이제 소개한다면 이러하다.

그녀는 "결혼 휴가를 선언하고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으로 떠났다. '무릇 여자라면, 엄마라면, 아내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당위와 제약, 간섭이 없는 그곳에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매일을 살며 다시 자신의 일상과 가족을 끌어안을 힘을 회복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붓 사람들의 틈에서 순간을 사는 법, 현재에 집중하는 법, 가끔은 삶이 던지는 문제에 바짝 엎드려 항복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우며 부부생활의 또 다른 주체인 남편과 공존하는 지혜도 터득해나간다."

아이 부럽다. 그리고 대단한 여성이라 생각된다. 결혼 후에 한 여성의 삶은 많은 것으로 덧칠해 진다. 그건 바로 엄마, 아내, 며느리이다. 물론 남자 또한 가장, 남편, 아버지, 사위로서 존재하며 직장의 삶을 끼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과감히 던지고 결혼 후에 그녀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4년여의 시간동안 '결혼 휴가'라는 어쩌면 조금 생소한 이름을 걸고 과감히 일상을 탈출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다.

그녀는 어쩌면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른 여성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말들을 쉽게 털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즉 '엄마가 어떻게 그래?' '결혼한 여자가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구시대적인 발상, 가부장적인 시선, 부당한 모성신화로부터 심리적으로 주저없이 결단하는 것을 보며 이제는 그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여성인지 알고 결혼을 했나?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편은 한 여성의 자아 찾기를 보면서 아마도 체념하였을 것이다.

책을 보다 보면 남편의 심정과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미안하지만, 나라도

"나라도 가야겠어. 자기가 안 간다면 나라도 당분간 떠났다가 돌아올게. 학비도 이미 보냈잖아. 2년 정도 아이 학교 보내고 올게."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도 간절했다. 모험이 필요했다. 지금 이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이국의 땅, 낯선 사람들, 새로운 사고방식 --- 무엇이든 '새'것이 필요했다. 20대 시절, 워킹 홀리데이를 가서 경험했던 나다운 삶을 다시 살고 싶었다. 이미 알아버린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추운 계절이 지나갔고, 꽃피는 봄이 돌아왔다. 이별의 시간도 다가왔다. 그가 눈물을 보이기 전에 등을 돌렸다. 공항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 아이가 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별의 안타까움보다 나라도 먼저 갈 수 밖에 없다는 비장함이 더 컸다. 그가 마주할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우리가 없는 시간을 그가 알차게 보내길 기원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 틈에서 에너지를 얻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홀로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이 그에게 뭉근한 성찰의 기회가 되길 바랐다." p122-123


그녀의 삶과 남편의 삶은 어쩌면 나와 닮았다. 즉 저자의 남편은 '북적북적 사람들과 어울리며 충전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저자는 '혼자 있을 때 차오르는 사람'이었다. 바로 내 아내가 저자의 남편 성격이며 나는 저자의 성격이다. 둘(함께)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 혼자 자아 찾기를 즐기는 존재가 바로 나다. 나 또한 하루에도 열두 번 캐리어 짐을 쌌다가 푼다.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는 '세계테마기행', '트레킹 노트 세상을 걷다', '넷지오 와일드'와 같은 세계와 자연을 향한 다큐 프로그램이다. 수없이 이런 프로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면서 나 어느 날 은퇴후에는 꼭! 가리라고 다짐하는데 그런데 '아리'라는 저자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1000%정도 되는 범접할 수 없는 여성이라 생각된다.

만나고 싶은 여성 중에 한 사람이 되었고, 언젠가 우붓에 가게 된다면 이 여성과 우연히 만나는 가운데 많은 얘기를 하며 자아 찾기의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다짐해 본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 찾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내면 찾기에는 장소 또한 중요하다. 책을 펼치면 우붓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사진이 나온다. 책에 나오는 사진은 우붓이 어떤 곳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볼거리다. 특히 저자가 우붓에 매료된 이유 중에 '나는 푸르른 논이 드넓게 펼쳐진 조용하고 소박한 그 시골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푸르른 이국적인 정취가 너무나 멋지게 글 요소요소마다 적절히 넣어져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 안에는 독자인 내 내면의 무엇을 건드려 준다. 글솜씨가 헤르만 헤세처럼 뛰어나다고 하면 헤세가 인상을 찡그릴지 모르겠지만 헤세의 여행지에 대한 얘기가 담긴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을유뮨화사)'이라는 여행담 에세이와 견주어도 될 정도의 책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번역자이며 작가로서 지켜보고 싶고, 더불어 더 나은 책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탐험을 멈추지 않고 글을 쓰면서 우리들에게 내면이 추구하는 길을 보여주면 좋겠다 생각된다.

이쯤에서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서 찾다가 이 책 끝부분에 드디어 해먹에 누워서 아주 편안한 미소로 두 손 모아 나마스테하는 그녀가 보인다. 이미 작가의 모습에는 한국 땅은 그저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고향일 뿐이며, 우붓과 같은 세상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처럼 너무나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이렇게 작가가 궁금해질 정도로 내 삶을 요동치게 만드는 글솜씨, 자아 찾기를 풀어가는 과정, 우붓의 아름다움, 해내고 싶은 삶을 살고야 마는 그녀의 결단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경험을 통해 숙고를 통해 저자의 책이 또 다시 내 손에 들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책 속에서

그래, 답은 없다. 내 인생에도, 그의 인생에도, 함께 하는 인생에도, 그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각자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할 뿐. 지금부터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일 테지. p223

우붓에서 더 살고 싶은 마음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우붓에서의 삶이 내게 일러준 바들을 떠올렸다.

순간을 살아라.

현재에 충실해라.

가끔은 삶에 바짝 엎드로 항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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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향기 -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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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향기라는 책은 손에 잡히자 마자 내 영혼이 본성에 끌리듯 나를 기억 속의 저편, 내 어릴적 고향의 풀 냄새로 향하게 하였다. 태어난 고향은 하회마을 위 병산서원과 가까운 낙동강을 바로 끼고 도는 시골이다. 부친(모친)의 타지 생활로 인해 서울과 대구, 기타 지역에 잠시 있었지만 나의 부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오셨다. 그리하여 내 어릴적 추억은 은빛 물결을 비추는 낙동강 물결과 함께 풀내음새 가득한 정취로 내 온몸을 감싸주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곳에 태어난다면 신을 향해 원망은 커녕 또 다시 감사하며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만큼 나는 '풀의 향기'를 잘 알고, 좋아하고, 풀을 통해 장난도 치면서 동네 친구들과 풀을 헤치며 달려가는 천방지축의 소년이었다. 또한 소꼴을 베며, 소를 끌고 낙동강 둑방에 올라 소를 묶은 뒤, 해가 질 때까지 오염되지 않은 강에서 뛰어 놀다가, 해질녘 붉은 노을을 보며 소와 함께 돌아오는 삶을 살아간 매우 행복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풀없이는, 강물이나 바다를 보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다. 도시로 오면서 나는 공원을 자주 찾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계곡에서 쉼을 누리며, 풀이 주는 아늑함과 향기를 누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주어진 업무 때문에 이것이 허락되지 않을 때는 내 영혼 어딘가는 고장이 나서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금단 현상(마음 지진)이 일어나 미칠거 같아 나는 내 아내를 데리고 또 풀의 정취를 찾는 하이에나가 되고는 한다.

그런 중에 '풀의 향기'가 나에게 다가 왔다. 책 표지가 주는 아늑함과 책 안에서 펼쳐지는 싱그러운 글풀들이 읽으면 읽을 수록 글맛에 빠져 들었고,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언급되었듯 "한 장의 풀잎에 대한 이야기에 무한한 사랑을 담아 낼 수 있겠지요."처럼 수만장의 풀잎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지면서 나는 글풀에서 나는 냄새에 너무 황홀해 있다.


책을 펼치면 그림 8점이 나온다. 모든 그림이 '풀'과 연관되어 있다. 조금 더 선명했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라도 만족한다. 책을 디자인하고 편찬한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1번 그림인 《이니 목장의 다리, 아침 풍경》이 가장 좋다.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 얘기해보자

《풀의 향기》는 프롤로그에도 언급되었듯 정말로 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풀을 접하면서 그 풀을 통해 시가 태어나고, 문학 작품이 만들어지며, 화가의 손길을 통해 명화(名畫)가 탄생하였다.

풀이 주는 매력 때문에 너무나 많은 문인들과 화가들이 넋을 잃고 감성을 마구마구 풀어 헤치는데 책을 읽어보면 어떤 문학적인 책보다 뛰어난 책이며 무한한 인간의 감성을 '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렇게도 풀어 낼 수 있다니 너무나도 놀랍다.

풀은 본질적으로 태초의 정취를 간직한 듯 우리 기억 속 유년기의 원형적 장면을 이룬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이브 본느프와'의 말처럼 풀을 만나는 순간 특별한 느낌과 마주 대하는 감동을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내가 있을 자리이니. 결코 이론의 여지조차 없는 이곳." 랄프 에머슨 또한 풀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여기가 나의 고향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풀은 이렇게 인간의 감각과 욕망, 시간, 공간 인식, 감수성, 호감, 편안함, 욕망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우리 인간 곁에 머물며 미묘한 행복함과 기쁨과 평온함을 주고 있다.


여기에 관해 이 책은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어 단지 그 글풀들을 가지고 와서 소개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풀이 주는 매력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문학적 감성을 가진채 읽어보자!


풀은 인간을 바라본다. 풀은 인간에게 말을 건다. 풀이 건네는 말이 곧 자연의 말이다.

"불변의 상형문자"를 만들어내듯, 풀을 바라보고 글을 쓰면 풀처럼 담백한 말들을 찾아 쓰게 된다.

풀은 시의 근원이 된다. 그 이유는 풀의 존재는 비관념적 언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풀은 대지의 수많은 비밀을 담고 있으며 땅 그 자체를 담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풀은 안과 밖 사이의 연속성에 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월트 휘트먼의 눈에는 풀이 지상 최고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미셀 콜로는 풀을 "감정적 물질"로 정의했으며, 풀에 관해 글을 쓴 수많은 문호들은 그것이 가진 무수한 특징들을 끊임없이 찬양해왔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입을 모아 찬양한 것은 바로 풀의 온화함과 명료함, 깨긋함, 순수함이다. 빅토르 위고는《내면의 목소리》에서 그 누구도 밟지 않은 풀을 상상한다. (...) 풀이 지닌 수많은 특징들 가운데 하나를 더 말한다면 '기인한 간결함'이다. 풀은 세상과 생각을 단순하게 만든다.

풀은 눈부시고도 "명백한 빛"을 지닌 강한 존재이자, 온화한 퇘와 근원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풀이 지닌 타고난 순수함이다. 인간은 "구름의 푸른 자매"인 풀의 "한없는 품속"으로 저도 모르게 파고들게 된다. 또한 필립 자코테가 말했듯 풀은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고, 잘 웃으면서도 과묵하며 다정하면서도 억세다." (...) 풀이 주는 다양한 교훈적 가치에는 풀의 끈기, 에너지, 솟아나는 능력이 있는데 '장 피에르 리샤르'는 풀이 차분한 힘을 지녔다고 말했다. "풀은 포기할 줄 모른다.", "풀은 자신의 존재를 붙들고 인내한다." (...) 이렇게 풀은 순수함과 고요함, 일렁임을 통해 때로는 우리를 환상으로, 무위의 상태로, 혹은 영혼의 평안함으로 이끌기도 한다. p10-12

중세 문학을 보면 봄을 찬양하는 대목, 즉 초록색에 매료된 자들이 품어내는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 대문호인 괴테는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은 고요하고 바람도 잔잔할 제,

어린 풀은 물결 이는 냇가에 자기를 비추네.

봄은 즐거이 일하며 살아가누나.”

《풀의 향기》는 이렇게 ‘풀’이라는 미시적인 소재를 분석하면서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풀과 관련된 풍부한 감정들을 폭넓게 다루어 준다. 그 중에 대문호들과 유명 화가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참고해서 먼저 기대하며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이름들은 익히 귀에 익숙한 자들이니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보들레르, 릴케, 헤르만 헤세,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인들과 조르주 쇠라, 조르조네, 앙투안 셍트뢰유 등등의 유명 화가들이 있다.

이 책을 보며 저자가 누구일까하며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문 분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다. 저자인 알랭 코르뱅은 역사가다운 통찰력과 방대한 지식으로 많은 작가들의 문학 작품과 그림을 깊이 있게 분석해 주면서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 한 편안함을 주는 인문역사서를 완성시켜 우리에게 선사해 주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만일 섬에 홀로 떨어진다면 가져 갈 책 중에서 몇 권을 고른다면 어떤 책입니까할 때 몇 권 중에 들어갈 만한 책이 오늘 내가 보고 있는 《풀의 향기》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하리라!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대목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가져와 본다.

이제는 풀이 더욱더 환영을 받고 치워버려야 할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즉 이제는 보도에 자란 잡초를 뽑아보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창가와 건물 지붕에 화분을 올려두는 일뿐만 아니라 19세기부터 파라의 나무들 주변에 쳐져 있던 철책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풀을 위한 자그마한 공간들을 마련하는 일을 두 팔 벌려 환영할 때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풀은 우리 삶의 공간에서 낫을 들고, 살충제를 들고 훼손해도 되는 당연함이 아닌 우리의 정서와 감성을 위해 함께 동행하는 소중한 개체로 봐야한다. 해로운 풀이 존재할까? 어쩌면 인간이 해로운 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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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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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을 요소가 많은 책 중에 하나다. 일단 책을 광고하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며 인류의 기원을 넘어 문명의 진화와 지구 변천사의 황홀한 조화를 이루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 책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저자는 광범위한 일반론에서부터 놀랍도록 구체적인 세부 사실까지 아주 흥미진지하게 인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일단 화려한 소개를 더 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될 책'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아마존 닷컴 베스셀러, 워터스톤스 선정 2019년 최고의 책, 타임스, 가이언, 네이처 추천에 오를정도로 굉장한 책이며 통찰력이 가득한 책인 동시에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책이다.

소위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부분 소수의 지도자와 집단의 대이동 그리고 결정적인 전쟁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행성, 지구 자체에 대한 것이다. 과연 인류의 역사는 오롯이 인류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일까? 지구는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의 질문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독자들을 처음부터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안 그래도 어저께 EBS에서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다큐가 방송이 되었다. 지구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무서울 정도이다. 지금도 세계는 대재앙과 같은 재앙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21세의 번번한 이상 기후 현상은 우연이 아닌 예고된 예상인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쓰나미나 인도의 대홍수, 필리핀의 슈퍼 태풍, 호주의 대형 산불, 미국의 토네이도와 함께 대형 산불, 지난해 7월에서 9월까지 발생한 시베리아의 산불, 이 불은 우리나라 면적의 30%를 태웠다고 한다. 그리고 가까이 중국의 대홍수 또한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남태평양의 눈부신 섬나라인 '투발라'라는 섬 나라가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을 위기가 되었다.


책에도 언급되듯이 "지구의 시간에서 마지막 찰나에 등장한 우리 인간은 기술을 갖게 된 지구 유일한 존재로서 우리가 지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지만 이건 오해라는 것이다. 현재 지구가 우리를 만들어 왔고, 우리가 지구를 바꾸고 있다고 믿는 지금도 그러한데 즉 우리가 녹인 빙상의 물과 영구동토층에서 배출된 메탄을 통해 다시 지구는 기후를 빠르게 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여러 기후 요인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임계연쇄반응'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응의 시작은 우리가 했을지 몰라도 이후 주도권은 지구에게 있다"고 하니 지구의 운명에 대한 주도권의 문제에 대해 다루는 이 책이 매우 흥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바로 우리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관해 자료를 찾다보니 세종 출판사에서 나온 "6도의 멸종"이라는 책이 우리 지구의 문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어 함께 참고해 보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영국 우주국의 과학자 루이스 다트넬 교수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는 우리를 수십억 년에 걸친 지구의 과거로 데려감으로써 인류의 궁극적인 기원에 대해 매우 상세히 들려준다. 즉 판의 활동과 기후 변화에 대해, 빙하기로 인한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경로와 인류의 대탈출에 대한 추적에 대해, 인류 진화를 도운 생물지리학적인 환경에 대해, 금속을 통해서 인류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해, 대기 순환과 해류를 통한 인류의 대탐험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석탄과 석유가 바꿔놓은 현재 인류의 문화까지 인류의 역사는 지구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져 왔음을 강조한다.

그렇다. 이 책은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이 관여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지구 역사 속에 있는 인간은 지구가 만들어 놓은 공간 안에서 헤엄치고, 적응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지구에게 맞추어 나가는 실정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지구는 매우 화가 나서 대재앙의 과속화를 더 부추겨 인간을 멸종시킴으로 이곳에 주인이 자신임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뒤, 장엄한 지구의 활동을 보고 들을 존재가 없다할 때 지구는 어쩌면 최고의 친구를 잃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만물이 사라지고 태어나더라도 태양은 어김없이 뜨고 지듯이 지구 또한 존재하여 우주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지구와 인류가 만들어온 서로의 역사

'지구는 왜 이렇게 생겼는가?' 이 질문은 철학적 의미의 질문이 아니라 깊은 과학적 의미에서 던진 것이다. 표현을 바꿔서 이렇게 물을 수가 있는데 지구의 주요 특징들, 즉 대륙과 바다와 산맥과 사막 같은 물리적 풍경을 낳은 원인은 무엇인가? 지구의 지형과 활동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주의 환경은 우리 종의 출현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쳐온건가? 또 사회와 문명의 역사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무엇보다 지구는 인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에필로그에서 언급하듯이 우리 인간은 지구 전체 육지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경작하고 있다. 채굴과 채석 작업은 전 세계의 모든 강들이 실어 나르는 것보다 더 많은 물질을 이동시킨다. 또한 산업 활동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아 전 세계의 기후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세계를 아주 크게 변화시켰지만, 자연을 압도하는 힘은 최근에 와서야 손에 쥐게 되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지구는 인간이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마련했고, 그 자연 지형과 자원은 계속해서 인류 뮨명을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의 역사 가운데 인간은 자연을 향하여 겸허해야 한다. 아무리 자연을 압도하는 힘이 있더라도 그 힘은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가 우리를 새롭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의문을 가지면서도 전혀 과학적이지 않는 유인원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시작은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시작하며 우리 인간을 유인원 즉 진화의 나무에서 호미닌hominin이라 부르는 종족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인간의 가지는 영장류라는 더 큰 동물 집단의 일부라는 것이다. 유전학 연구는 우리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을 거쳐 침팬지와 갈라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갈래는 오늘날의 침팬지와 보노보의 공통 조상으로, 다른 한 갈래는 호미닌으로 갈라졌 나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호미닌 가지에 달린 하나의 잔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호미닌의 진화에서 중요한 변화를 낳은 사건들은 모두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두발 보행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러하다. 우리의 영장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열매와 잎을 먹고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탄생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즉 무성한 숲으로 덮여 있던 서식지를 메마른 사바나로 변화시켰다. 이 사건은 나무에 매달려 살아가던 영장류에서 풍요로운 초원을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두발 보행 호미닌으로 진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음...뭐랄까? 본 책의 2장 부터는 과학적 유추를 통해 지구와 인류가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합리적이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1장은 도통 검증도 되지 않은 것을 끌어다가 인간을 침팬지화 시키고 있다. 창조적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이지만 일단 책이 펼쳐지는 인류 역사의 흐름은 인간이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철학적 질문과 삶의 양식을 하루 빨리 바꾸어 나가기를 원하고 있다. 흥미롭게 펼쳐지는 지구 역사의 흐름을 보는 시간이 되어서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의 한 문장

문명의 전체 역사는 현재의 간빙기에서 잠깐 동안 반짝이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잠깐 동안 기후가 안정된 시기에 살고 있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지구의 암석층을 파내 땅 위에 쌓으면서 건물과 기념물을 지었다. 우리는 특정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금속이 농축된 광석을 캐냈다. 그리고 지난 수백년 동안 지구의 과거에서 변덕스러웠던 시기에 생성된 석탄을 채굴했고, 산소가 부족한 해저로 가라앉은 플랑크톤 유해에서 만들어진 석유를 퍼올렸다. (...) 이러한 인간의 활동으로 전 세계의 기후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 힐 것인가? 그건 인류의 숙제이면서 지구가 펼쳐 나갈 '주권'인 것이다.(끝 부분은 독자가 자의적으로 글을 수정하고 넣었음) p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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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 바이러스 · 종교 · 진화
방영미 지음 / 파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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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은 흥미를 가진 자들에게는 이슈가 되며 자신을 대변해 주는 책이 되겠지만 종교에 신물이 나거나 종교를 넘어선 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사설(辭說: 늘어놓는 말이나 이야기) 밖에는 되지 않는 글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잘못된 제도 종교에 대해, 기독교에 대해, 카톨릭에 대해 이미 많은 이들이 종교가 혹세무민하는 종교로 전락하였음을 말해왔다. 이러한 종교의 해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종교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중국 명나라 때에 유약우(劉若愚)라는 사람이 자신의 저서 《작중지(酌中志)》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불교를 매우 싫어하니, 혹세무민하므로 물리치고 끊어내야 마땅한 것들(極厭憎釋教, 以爲惑世誣民, 最宜擯絕者)'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독자로서 이런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잘못된 종교를 까는 것에 대해 희열을 느끼며 열심히 까기도 했는데 이제는 뭐랄까? 무심한듯 바라보며 종교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종교 본연의 깊은 관점에서 바라 본다면 종교를 까는 사람이나, 종교의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인 성직자들이나 '성직자를 타락시키는 신자들(p73)'이나 서로가 앙숙 관계이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가짜는 존재해 왔다. 굉장한 진품일수록 이미테이션한 제품은 어디에선가 만들어 지고 있다. 니체가 종교를 열심히 해체시킴으로서 종교 본연의 모습을 가져왔다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그가 써낸 독소에는 썩 내키지 않는 글도 많아 오히려 진짜 신을 죽이고 있는 그가 바로 니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핵심 요지는 이것이다.

종교는 버려도 신앙은 버리지 말라!

잘못된 제도 종교, 사이비 종교로 인해 다른 나라 종교는 뒤로하고라도 한국의 교회는 이미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아버린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소금은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뿐이니라(신약성경 마태복음 5:13절)'고 말해 준다.

종교학 박사인 방영미 작가가 우리 시대의 종교에 대한 존재 양상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독설을 하지 않아도 이미 기존의 교인들에게나 가나안 성도들, 일반 시민들에게 교회는 침몰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익히 아는 바이다. 여기에 미디어+정치가 많이 작용하였다는 것을 방영미 작가가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세상이란게 진실(정의)이라는 잣대로 오히려 상배방을 더 심각하게 매도하고 짓밟아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 진실(정의)이 누군가에 의해 네모라고 봐야 될 대상을 세모라고 바라보도록 하여, 진실이 역전되어 그게 악이라고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멀리 보지 않아도 된다. 히틀러 시대에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그의 생각과 이념대로 움직이는 것이 신의 뜻처럼 여겨졌었다. 여기에 칼바르트라는 대신학자의 스승도, 본회퍼라는 목회자의 스승도 히틀러를 지지했으니 알만하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순교 당한 본회퍼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이 책이 잘못된 종교의 관행을 들춰내며 교회의 속물적인 것을 긁어내는데 있어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쾌감이 되고, 혐오하게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하는 책이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 잘못된 오해의 불씨도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저자 또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그 안에 있는 아기까지 버리는 일'이 생기게 만들 수 있다.

페이지 27, 32페이지를 보면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누구나 돈 때문에 현장 예배를 고집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을 교회만 모르는 척 아닌 척한다." 그리고 선민 의식까지 들먹이며 교회가 마치 지성적으로 아마베가 되어진 것처럼 얘기한다. 그리고 "한때 선진문화로 존경 받던 종교가 21세기에는 후진문화로 전락해 버렸으며, 미개하고 구태스러우며 무지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치부한다. 또한 맹목적이며 개념이 없는 종교로 낙인을 찍는다.

한 외국인이 한국에 관광을 왔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안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만 아니라 아사아계 사람들을 다 나쁜 사람으로 보고 피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과연 옳은 행위이며 지성적인 사고인가 묻고 싶다. 최근 뉴스이다. 한국계 미국인 자매에게 다짜고짜 “우한으로 돌아가라"며 폭언을 퍼부은 백인 남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계기로 그는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지성이 결여된 사람이리라.

이와같이 신천지 이만희나, 전광훈이라는 사람 하나로 모든 크리스천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개독교 수준의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현장 예배를 드리려 하는 사람 보다 현장 예배를 드리지 않고 수칙을 지키는 교회가 더 많으며, 위선의 탈을 쓴 종교인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한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을 전부 악한 세상이라고 보며 사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며 밝게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제품도 완점품은 없다. 똑같은 기계에서 찍어내는 아이폰도 뽑기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선한 역할을 하는 종교가 있고 썩은내가 나는 종교가 있다. 그것을 가려주는데 있어 방법론을 종교학 박사라면 좀 더 다르게 표현해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 책은 펜데믹으로 인해 교회가 관행적으로 해왔던 신앙생활에 대해 심판을 제대로 당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페이지 16페이지에서 언급하듯 비대면 접촉은 신앙의 진화 과정을 겪는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각종교마다 믿고 있는 신에 대한 정립이 새롭게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이 책은 종교와 신앙의 관계에 대해 종교학자답게 사회 속에서 신앙의 윤리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처음 이런류의 책을 읽는 자들에게는 신앙의 지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변동이 종교가 추구하고 있는 종교성에서는 결코 멀어지는 않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 어떤 것은 거르고, 어떤 것은 담아두면서 각자가 결국 택하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진리를 추구하는 관점이 열려 있으면서 그 진리가 관습된 진리가 아닌, 사회적 시선에서 볼 때 정의의 관점, 사랑의 관점, 평화의 관점,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주어진 종교성을 유지해 나간다면 관행적인 종교의 행위 또한 그렇게 썩 나쁘지는 않는 것임을 알면 좋겠다. 종교의 외적 행위는 내적인 신을 만나기 위한 불교 용어로 볼 때 '방편'인 것이다.

어떤 글을 봤는데 자료가 어딨는지 몰라 스토리만 써본다. 어떤 초자 스님이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3천배를 해야 된다는 말에 절을 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3천 배를 하면서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3천 배는 단 한 번의 진짜 '배(拜)’를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잘못 이해하여서 종교가 주는 유익을 버리려다가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종교성(심) 마저 버린다면 그처럼 불쌍한 영혼은 없다. 이 책을 읽어나가데 종교의 핵심과 진리를 보면 좋겠다.

그렇다 종교는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종교는 누군가에 의해 혹세무민 당해서는 아니 된다.

탐욕으로 거대해진 권력형의 교회는 어느새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처럼 보완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완전하게 걷어 낸들 이 세상에서는 그 완전함이 언제나 불완전함을 갖춘 상태임을 안다면 너무 곧세워 날을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경의 또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1:4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후반부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어떤 면에서는 이런 책도 버리지 말고, 그리고 기존의 종교적 행위 또한 지나치게 버리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리석게도 막 걷어내다 보면 남아 있는 것이 먼지만 쌓인 빈공간만 덜렁 남아 있게 된다. 즉 또 다른 십자군 전쟁이며, 마녀 사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한 가지 적고 이 책에 대한 나의 담론을 마치고자 한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다. 그녀는 교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즉 그녀는 동성애 옹호론자다. 저자의 말이다. "만약 동성애자들이 아직 사회적 약자라서 외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그리고 신앙인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 말에 이런 말이 떠오른다. "말이야 방구야!" 즉 허튼 소리라는 말이다.

저자가 가진 종교학자적인 생각은 대표적인 퀴어신학인 '테드 제닝스' 교수가 얼토당토 않게 말한 거와 다를바 없는 몹쓸 짓이다.(짓이라는 말은 저자의 말을 따온 것이다.) 즉 테드 제닝스의 퀴어적 성경 해석은 동성애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할 뿐 아니라 성경의 몇몇 등장인물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보려는 시도로 이어지면서 그들의 관계를 동성 간 사랑으로 해석하는 무지한 논지를 가진다. 이건 무지를 넘어 억지요, 악의적이며 검은색을 굳이 흰색으로 보겠다는 희한한 발상이다. 동성애자나 옹호론자들은 '틀림'이 문제를 '다름'의 문제로 가지고 와서 전략적으로 선천성을 주장하며 입증하려 하지만 엄연히 후천적인 것임이 연구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신체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대변을 누는 곳으로 대변을 누고 생식과 사랑에 필요한 것으로 생식기가 존재한다. 이거 어거지로 입이 있으면서 밥을 코로 넣어버리려는 격이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직관적으로 평이한 생각으로도 동성애는 합리화할 것이 아니라 수정하고 개선할 것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약자를 포용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자들을 보면 모든 다원적인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지성적 우위에 있는 존재로 여기면서 자신들을 치켜세우고 있지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단순한 진리조차도 모르는 궤변이며 사변적인 허상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할 영역'과 '타협 없이 대결해야 할 영역'을 알고 제대로 말해 줄 필요가 있다. 또한 선과 악의 기준이 각자의 소견에 따라 정해지는 도덕적 상대주의의 시대에서 '선해 보이는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예리한 영성 및 지성적인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는 무지몽매한 종교에 사로잡혀 제도적 종교속에 헤매이는 자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으나 지나치면 무엇이든 문제가 있는 법이다. 암튼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해주고자 하는 부분인 "종교는 버려도 신앙은 버리지 말라!"는 말을 새김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더 나은 종교 "종교성"에 이르면 좋겠다. 건강한 종교는 사회와 조화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진리이면서도 진리가 아님을 저자 또한 깊은 의미로 말해졌다고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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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첫걸음
최내경 외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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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봉준호 감독이 대세인 한 해였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한국을 넘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올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작품성이 있어 보이나 작품의 내용은 썩 추천을 하지 못하겠다. 끝부분의 스토리도 너무 억지스로운면도 있고 해서 그렇게 평가한다.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프랑스어를 생각할 때 한국인이라면 가장 많이 아는 단어가 바로 Bonjour.(봉주흐)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봉주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 발음 기호는 '봉즈흐'인가 보다. 봉준호 감독의 머리 스타일과 이름이 왠지 봉즈흐 해서 그냥 연결해 봤다.

 

암튼 프랑스어는 하나의 로망이다. 영어가 이제 기본어라면 프랑스 언어는 하나의 고급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왠지 모르게 해보고 싶고, 그 나라 언어를 배워서 그 나라에 있는 에펠탑은 물론 '몽마르뜨 언덕', 프랑스 여행의 정점이라 일컫는 '바토무슈',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 근교의 소도시 퐁텐드 보클뤼즈Fontaine de Vaucluse ', 그리고 '고흐드Gordes', '스트라스부루'라는 곳에 가서 맘껏 여행을 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어 몇 마디 정도는 해줘야 그들과 교류하는데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여행의 시간이 더 행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일단 프랑스의 대표 음식 바게트를 형상화한 캐릭터를 통해 재미있고 즐겁게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한 프랑스어 교재이다. 책을 펼치면 목차가 너무나 아름답게 프랑스식스러운 배경 가운데 목차가 적혀 있다. 10개의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원 구성을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일상 대화’, ‘주요 단어’, ‘문법’, ‘회화’, ‘문화등으로 구성하여 프랑스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도록 각 단원을 단계별로 나열해 놓았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도움이 되는 것은 프랑스 문화(culture)에 대한 소개이다. 각 단원별로 그들의 문화와 사회 및 역사 이야기를 통해 소소한 재미와 함께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프랑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원어민 저자와 같이 많은 논의를 거친 흔적이 있으며 실제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최우선적으로 본문과 예문으로 구성하고자 하였다. 알퐁스 도데가 그의 저서 마지막 수업에서 언급한 말이 있는데 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명료하고 확고한 언어입니다.”라고 했다.

 

그 아름다운 언어를 아는데 있어 그 첫 걸음이 되어 주겠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처음 대하는 독자로서는 그것을 선뜻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책을 열면 처음 부분에 프랑스어 알파벳과 발음 기호가 나온다. 그리고 주요 단어와 문법과 회화가 나오는데 그런데 말이다. 프랑스어 첫 걸음마가 조금은 어렵다. 회화나 단어를 보면 그 뜻이 나오지만 정작 중요한 발음 기호가 나오지 않는다. 첫 걸음이라면 당연 필요한 것이건만 저자들은 이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것만 첨가해서 책을 재편하면 더욱더 좋은 책이 되리라 생각된다.

 

첫 걸음마는 정말 첫 걸음마처럼 책이 편찬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걸 왜 네 명의 저자가 놓쳤을까? 한 명의 저자라면 이해가 가지만, 네 명의 저자가 함께 책에 대해 토론하며 모여 회의를 많이 가졌을 것인데 그 부분이 빠져 몹시 아쉽다. 그 부분을 빼고는 열심히 책을 만든 공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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